LOGIN목요일 저녁.송유지는 작은 종이봉투 두 개를 들고 채도하의 집에 들어갔다.도하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유지는 익숙하게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은 뒤 드레스룸으로 향했다.며칠 전 채운 서랍.열어보니 자신이 넣어둔 옷들이 그대로 있었다.유지는 봉투 하나를 열었다.새 양말 몇 켤레.편하게 입을 티셔츠.그리고 얇은 가디건.하나씩 접어 넣었다.서랍은 금세 더 꽉 찼다.유지는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아래쪽 서랍을 봤다.비어 있었다.손잡이를 잡았다가 멈췄다.“이건 욕심인가.”혼잣말을 하고 있는데.현관문이 열렸다.도하가 들어온 모양이었다.잠시 뒤.“왔어?”유지가 드레스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네.”도하가 외투를 벗으며 물었다.“또 뭐 가져왔어?”유지는 바로 봉투를 뒤로 숨겼다.“왜요.”“표정이 그런데.”“무슨 표정.”도하는 웃으며 가까이 왔다.그리고 열린 서랍을 봤다.“많이 찼네.”유지가 괜히 어깨를 폈다.“채우라면서요.”“응.”도하는 아래쪽 빈 서랍을 한번 봤다.유지는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왜 봐요.”“아니.”“또 그 말.”도하가 잠깐 웃었다.“그것도 써.”유지의 눈이 커졌다.“이것도요?”“응.”“한 칸이면 된다면서요.”“내가 언제.”“그런 뉘앙스였는데.”도하는 빈 서랍을 열었다.“여기도 비어 있어.”유지는 그 안을 바라봤다.“진짜 저 쓰라고?”“응.”“이러다 두 칸 다 제 거잖아요.”도하가 자연스럽게 말했다.“그러면 어때.”유지는 몇 초 말이 없었다.저녁을 먹은 뒤.유지는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도하는 옆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각자 다른 걸 하고 있는데도.이상하게 조용함이 불편하지 않았다.유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도하 씨.”“응.”“우리 요즘 만나서 말 안 할 때도 많아졌죠.”도하가 화면에서 시선을 떼었다.“응.”“예전에는 계속 무슨 얘기 해야 할 것 같았는데.”“지금은?”유지는 소파에 더 깊이 기대었다.“그냥 있어도
화요일 저녁.송유지는 채도하의 집에 먼저 도착했다.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외투를 걸었다.이제는 익숙했다.가방은 소파 옆.휴대전화는 테이블 위.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것까지.도하가 없어도 망설이지 않았다.유지는 잠깐 드레스룸에 들어갔다.주말에 입을 옷을 하나 더 가져다둘 생각이었다.그런데 옷장 아래쪽 서랍 하나가 비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예전에도 비어 있었던 자리였다.유지는 손잡이를 잡고 열었다.정말 아무것도 없었다.“여기 써도 되나.”혼잣말을 하고 있는데.뒤에서 도하 목소리가 들렸다.“뭐 해.”유지가 놀라 돌아봤다.“언제 왔어요?”“방금.”도하는 유지가 열어둔 서랍을 봤다.“그거 쓰려고?”유지가 조금 머뭇거렸다.“써도 돼요?”“응.”“진짜?”“왜 매번 물어.”유지는 웃었다.“그래도 도하 씨 집이잖아요.”도하는 잠깐 유지 얼굴을 봤다.“이제 그 말도 좀 이상한데.”유지의 표정이 멈췄다.“왜요?”“네 물건이 이렇게 많은데.”도하가 옷장 안쪽을 가리켰다.컵.칫솔.파우치.옷.베개.냉장고 한 칸.그리고 이제 서랍 하나까지.유지는 피식 웃었다.“그러게.”유지는 가방에서 편한 옷 몇 개를 꺼냈다.티셔츠.양말.얇은 잠옷.하나씩 서랍에 넣었다.도하는 옆에 기대 서서 보고 있었다.유지가 물었다.“왜 계속 봐요.”“그냥.”“또 그 말.”도하가 웃었다.“많이 가져왔네.”“이번엔 진짜 조금이에요.”“서랍 절반 찼는데.”유지가 내려다봤다.정말 그랬다.생각보다 많았다.“그럼 몇 개 가져갈까요?”도하가 바로 말했다.“왜.”“많다며.”“많다고 했지 가져가라고 안 했어.”유지의 손이 멈췄다.도하는 너무 자연스럽게 덧붙였다.“더 넣어도 돼.”유지가 천천히 그를 봤다.“도하 씨.”“응.”“이러다 진짜 한 칸 다 제 거 되겠어요.”“한 칸이면 되겠어?”이번에는 유지가 완전히 멈췄다.도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지금 뭐라고 했어요?”“필요하면
월요일 저녁.송유지는 퇴근하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채도하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오늘 늦어.유지는 잠깐 화면을 바라봤다.—몇 시쯤요?—아홉 시 넘을 것 같아.평소 같으면 그냥 집으로 갔을 것이다.그런데 요즘은 달랐다.유지는 잠시 고민하다 메시지를 보냈다.—그럼 저 먼저 가 있을게요.답장은 금방 왔다.—응.그리고 잠시 뒤.—저녁은 챙겨 먹고.유지는 피식 웃었다.—도하 씨 것도 해놓을게요.—무리하지 말고.—알겠어요.그 짧은 대화를 끝내고도 기분이 이상했다.자신의 집이 아닌 곳으로 가면서.마치 퇴근 후 돌아가는 곳처럼 느껴졌다.도하의 집에 도착한 유지는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눌렀다.신발을 벗고 들어가.가방은 소파 옆에 놓고.외투는 늘 두는 자리에 걸었다.이제는 행동 하나하나에 망설임이 거의 없었다.냉장고를 열자 자신의 간식 칸이 눈에 들어왔다.“진짜 내 자리네.”유지는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간단히 저녁을 먹고.도하 몫은 따로 덜어두었다.설거지를 마친 뒤에는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봤다.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여기는 도하의 집인데.도하는 없고.자신만 있었다.그런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오히려 편했다.유지는 소파에 기대어 거실을 천천히 둘러봤다.액자.컵.자신의 작은 물건들.이 집 안에 자신의 흔적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밤 아홉 시 반.현관문이 열렸다.유지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왔어요?”도하가 들어오다 멈췄다.“안 갔네.”유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가길 바랐어요?”“아니.”도하는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있을 줄은 알았는데.”유지가 웃었다.“그럼 왜 물어봐요.”“그냥 확인.”유지는 주방으로 가며 말했다.“밥 데워줄게요.”도하가 뒤를 따라왔다.“먹었어?”“저는 먹었죠.”“혼자?”“네.”“왜 기다리지.”유지는 전자레인지 버튼을 누르며 고개를 돌렸다.“너무 늦잖아요.”도하는 잠깐 말이 없었다.“잘했네.”“그 말투 뭐예요.”
일요일 오후.송유지는 채도하와 마트에 들어섰다.원래는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사기로 했다.우유.계란.커피.그리고 유지가 좋아하는 딸기잼.그런데 카트를 끌고 매장을 돌기 시작한 지 십 분도 안 돼 물건이 하나둘 늘어났다.유지가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이거 맛있어요.”도하가 카트 안을 봤다.“또 단 거.”“싫으면 안 먹으면 되죠.”“네가 먹을 거잖아.”“그럼 됐네.”유지는 그대로 카트에 넣었다.도하는 아무 말 없이 카트를 밀었다.잠시 뒤.유지가 멈췄다.“근데 잠깐.”“왜.”“이거 다 도하 씨 집에 둘 건데.”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응.”“제가 너무 제 것만 사는 거 아니에요?”도하는 카트 안을 한번 봤다.과자.요거트.딸기우유.작은 과일팩.대부분 유지 취향이었다.“괜찮은데.”“왜요?”“네가 먹으면 되니까.”유지가 웃었다.“이제 냉장고도 제 취향 되는 거 아니에요?”“상관없어.”대답이 너무 빠르자 유지가 도하를 빤히 봤다.“진짜요?”“응.”“나중에 도하 씨 먹을 게 없어도?”도하가 피식 웃었다.“그럼 네 거 먹지.”*채소 코너를 지나던 중.도하가 양파를 집었다.유지가 바로 옆에서 말했다.“그건 큰 걸로.”“왜.”“작은 건 금방 쓰잖아요.”도하는 아무 말 없이 큰 봉지로 바꿨다.조금 뒤에는 유지가 두부를 집었다.도하가 말했다.“그거 말고 옆에 거.”“왜요?”“그게 더 괜찮아.”유지는 바로 바꿨다.그렇게 몇 번 주고받다 보니.유지가 갑자기 웃었다.도하가 물었다.“왜.”“우리 되게 자연스럽다.”“뭐가.”“장보는 거.”유지는 카트 손잡이에 팔을 기대었다.“각자 필요한 거 고르는 것도 아니고.”잠깐.“같이 먹을 거 고르는 것 같잖아요.”도하는 별다른 반응 없이 말했다.“같이 먹을 거 맞잖아.”유지의 웃음이 조금 커졌다.“요즘은 이런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네요.”“사실이니까.”*계산대 앞.유지는 카트 안을 보고 놀랐다.“왜 이렇게 많아요?
토요일 오후.송유지는 채도하와 생활용품점에 들어섰다.원래 목적은 간단했다.도하가 쓰던 수건이 오래돼 몇 장 바꾸겠다고 했고.유지는 그냥 따라온 것뿐이었다.그런데 매장 안으로 들어온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아.둘은 수건이 아니라 컵 앞에 서 있었다.유지가 연한 회색 머그를 집었다.“이거 예쁜데.”도하가 옆에 있는 짙은 회색 머그를 들었다.“이건?”유지가 두 개를 나란히 놓았다.“세트 같아요.”도하도 잠깐 내려다봤다.“그러네.”유지는 웃었다.“우리 집에 이미 컵 있잖아요.”말하고 나서 스스로 멈췄다.우리 집.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다.도하가 바로 봤다.유지가 급하게 고쳤다.“아니, 도하 씨 집.”도하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방금 우리 집이라고 했는데.”“실수.”“굳이 고칠 필요 있나.”유지는 컵을 괜히 다시 진열대에 내려놓았다.“아직은.”도하가 그 컵 두 개를 다시 집었다.“그럼 이건 살까.”“왜요?”“나중에 익숙해지게.”유지가 웃었다.“진짜 슬쩍슬쩍 이러죠?”“뭘.”“아무것도 아니에요.”수건을 고르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유지는 부드러운 재질을 만져보다 말했다.“이게 나아요.”도하가 바로 카트에 넣었다.“그걸로 하자.”“색은요?”“네가 골라.”유지는 잠깐 생각하다 두 가지 색을 골랐다.도하는 그대로 넣었다.유지가 웃었다.“도하 씨 집 물건인데 제가 너무 결정하는 거 아니에요?”“네가 쓰기도 하잖아.”대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유지의 손이 멈췄다.“수건도요?”“자고 가면 쓰잖아.”유지는 괜히 주변을 한번 봤다.“밖에서 그렇게 말하지 마요.”“뭘.”“자고 간다는 거.”도하가 낮게 웃었다.“사실인데.”“그래도요.”유지는 카트를 먼저 밀고 갔다.그런데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침구 코너를 지나던 중.도하가 갑자기 멈췄다.유지도 따라서 섰다.“왜요?”도하는 베개 두 개가 놓인 진열대를 보고 있었다.“베개.”“베개가 왜요?”“너 지난번에 내 거
금요일 저녁.송유지는 퇴근하고 채도하의 집으로 향했다.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왔어요.”주방 쪽에서 도하가 대답했다.“응.”유지는 가방을 내려놓다가 TV장 쪽을 봤다.지난번 사진이 그대로 있었다.두 사람의 그림자 사진.그리고.자신이 도하의 뺨에 입을 맞추던 사진.정말 치우지 않았다.유지는 괜히 웃었다.“그거 아직 있네요.”도하가 주방에서 나왔다.“치우지 않는다 했잖아.”“엄마 아빠 안 왔어요?”“오늘 오신대.”유지의 움직임이 멈췄다.“오늘?”“응.”“지금?”“한 시간쯤 뒤.”유지는 바로 사진을 봤다.“도하 씨.”“응.”“그럼 저거.”도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왜.”“진짜 안 치울 거예요?”“응.”유지는 조금 당황했다.부모님은 이미 둘이 사귄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도 사진으로 직접 보는 건 다르지 않을까.특히 저 마지막 사진은.“저 조금 민망한데.”도하가 웃었다.“네가 먼저 했잖아.”“그건 사진 부스였으니까.”“그래서?”“엄마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잖아요.”도하는 잠깐 사진을 봤다.“숨길 건 아니니까.”유지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한 시간 뒤.초인종이 울렸다.유지는 괜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도하가 문을 열었다.엄마와 아버지가 들어왔다.엄마는 유지가 먼저 와 있는 걸 보고 잠깐 멈췄다.“너도 있었네.”“응.”예전 같으면 그 한마디에도 긴장했을 텐데.오늘은 조금 덜했다.엄마는 가져온 반찬통을 주방에 놓았다.그리고 거실로 돌아오다.걸음을 멈췄다.유지는 바로 알아차렸다.사진을 본 것이다.엄마의 시선이 TV장 위에 오래 머물렀다.먼저 그림자 사진.그리고 옆의 사진.유지는 손끝을 괜히 만지작거렸다.도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잠시 후.엄마가 물었다.“이건 언제 찍었어?”유지가 작게 대답했다.“지난주.”엄마의 시선이 사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둘이?”“응.”아버지도 가까이 와서 봤다.그리고 짧게 말했다.“잘 나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