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토요일 오후.송유지는 채도하와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그의 휴대전화가 울리는 걸 봤다.도하는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유지에게 물었다.“오늘 저녁 시간 괜찮아?”“왜요?”“친구들이 잠깐 보자는데.”유지가 걸음을 멈췄다.“도하 씨 친구들이요?”“응.”“저도 같이?”“같이 가도 되냐고 물어봤어.”유지는 조금 당황했다.지금까지 둘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가족과 몇몇 주변 사람 정도였다.하지만 도하가 일부러 자신의 지인들에게 데려가는 건 처음이었다.“저를 뭐라고 소개하려고요?”도하는 이상하다는 듯 봤다.“여자친구.”너무 간단한 대답이었다.유지가 웃었다.“망설임이 없네요.”“다른 말로 소개할 이유가 없잖아.”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저녁.작은 식당 안에는 도하와 오래 알고 지낸 친구 몇 명이 먼저 와 있었다.유지는 들어가기 전 잠깐 도하의 소매를 잡았다.“저 조금 긴장돼요.”“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잖아요.”도하는 자연스럽게 유지 손을 잡았다.“나 있잖아.”유지는 그 말에 조금 안심했다.문이 열리고.몇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두 사람에게 향했다.도하가 먼저 말했다.“인사해.”그리고 유지 쪽을 바라봤다.“내 여자친구.”순간.유지의 심장이 조금 세게 뛰었다.이미 수없이 들은 말이었다.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느낌이 달랐다.친구들은 크게 놀리지도 않았다.“드디어 소개하네.”“반갑습니다.”가벼운 인사가 이어졌다.유지도 웃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그걸로 끝이었다.누구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누구도 두 사람의 과거를 캐묻지 않았다.적어도 이 자리에서는.유지는 그냥 채도하의 여자친구였다.식사 중.도하의 한 친구가 물었다.“둘은 오래 만났어?”유지의 손이 잠깐 멈췄다.도하가 먼저 대답했다.“아니. 얼마 안 됐어.”“근데 되게 오래 만난 사람들 같네.”유지가 도하를 한번 봤다.친구가 웃으며 말했다.“말 안 해도 서로 뭐 필요한지 아는 것 같아서.”그제야
금요일 저녁.송유지는 퇴근하면서도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다.평소라면 작은 가방이라도 들었을 텐데.오늘은 정말 휴대전화와 지갑뿐이었다.채도하의 집에 도착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신발장 옆에 자신의 슬리퍼가 보였다.유지는 자연스럽게 갈아 신었다.거울을 한번 보고.가방도 아닌 작은 파우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그 순간 조금 웃음이 났다.“진짜 아무것도 안 가져왔네.”이제 필요한 건 거의 다 이 집에 있었다.칫솔도.화장품도.옷도.베개도.도하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유지는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시고, 자신의 간식 칸에서 요거트를 꺼냈다.그리고 소파에 앉았다.누군가의 집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느낌이 아니라.그냥 먼저 돌아와 있는 기분이었다.한 시간쯤 뒤.현관문이 열렸다.도하가 들어왔다.유지가 소파에서 고개만 들었다.“왔어요?”도하는 현관에 서서 잠깐 그녀를 바라봤다.“응.”“왜요?”“진짜 아무것도 안 들고 왔네.”유지가 손을 펼쳐 보였다.“휴대전화랑 지갑.”도하가 웃었다.“편하긴 하겠다.”“엄청.”유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준비할 게 없어요.”“좋네.”도하는 외투를 벗으며 말했다.“그냥 오면 되니까.”그 말에 유지가 잠깐 멈췄다.어제 자신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그냥 오기만 하면 되는 곳.유지가 작게 웃었다.“그러네요.”저녁을 먹고 난 뒤.유지는 드레스룸으로 갔다.두 번째 서랍이 아직 비어 있었다.유지가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도하가 뒤에서 물었다.“또 서랍 봐?”“뭘 더 넣을까 생각 중.”“급하게 채울 필요 없는데.”유지가 돌아봤다.“지난번에는 채우라면서요.”“채우지 말라는 게 아니라.”도하가 옆에 앉았다.“필요한 게 생기면 넣으라고.”유지는 잠깐 서랍 안을 바라봤다.“그러면.”“응.”“굳이 채우려고 하지 않을래요.”도하가 조금 의외라는 듯 그녀를 봤다.“왜.”“생각해보니까.”유지는 손잡이를 잡고 서랍을 닫았다.“자리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목요일 저녁.송유지는 작은 종이봉투 두 개를 들고 채도하의 집에 들어갔다.도하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유지는 익숙하게 신발을 벗고 가방을 내려놓은 뒤 드레스룸으로 향했다.며칠 전 채운 서랍.열어보니 자신이 넣어둔 옷들이 그대로 있었다.유지는 봉투 하나를 열었다.새 양말 몇 켤레.편하게 입을 티셔츠.그리고 얇은 가디건.하나씩 접어 넣었다.서랍은 금세 더 꽉 찼다.유지는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아래쪽 서랍을 봤다.비어 있었다.손잡이를 잡았다가 멈췄다.“이건 욕심인가.”혼잣말을 하고 있는데.현관문이 열렸다.도하가 들어온 모양이었다.잠시 뒤.“왔어?”유지가 드레스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네.”도하가 외투를 벗으며 물었다.“또 뭐 가져왔어?”유지는 바로 봉투를 뒤로 숨겼다.“왜요.”“표정이 그런데.”“무슨 표정.”도하는 웃으며 가까이 왔다.그리고 열린 서랍을 봤다.“많이 찼네.”유지가 괜히 어깨를 폈다.“채우라면서요.”“응.”도하는 아래쪽 빈 서랍을 한번 봤다.유지는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왜 봐요.”“아니.”“또 그 말.”도하가 잠깐 웃었다.“그것도 써.”유지의 눈이 커졌다.“이것도요?”“응.”“한 칸이면 된다면서요.”“내가 언제.”“그런 뉘앙스였는데.”도하는 빈 서랍을 열었다.“여기도 비어 있어.”유지는 그 안을 바라봤다.“진짜 저 쓰라고?”“응.”“이러다 두 칸 다 제 거잖아요.”도하가 자연스럽게 말했다.“그러면 어때.”유지는 몇 초 말이 없었다.저녁을 먹은 뒤.유지는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도하는 옆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각자 다른 걸 하고 있는데도.이상하게 조용함이 불편하지 않았다.유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도하 씨.”“응.”“우리 요즘 만나서 말 안 할 때도 많아졌죠.”도하가 화면에서 시선을 떼었다.“응.”“예전에는 계속 무슨 얘기 해야 할 것 같았는데.”“지금은?”유지는 소파에 더 깊이 기대었다.“그냥 있어도
화요일 저녁.송유지는 채도하의 집에 먼저 도착했다.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외투를 걸었다.이제는 익숙했다.가방은 소파 옆.휴대전화는 테이블 위.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것까지.도하가 없어도 망설이지 않았다.유지는 잠깐 드레스룸에 들어갔다.주말에 입을 옷을 하나 더 가져다둘 생각이었다.그런데 옷장 아래쪽 서랍 하나가 비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예전에도 비어 있었던 자리였다.유지는 손잡이를 잡고 열었다.정말 아무것도 없었다.“여기 써도 되나.”혼잣말을 하고 있는데.뒤에서 도하 목소리가 들렸다.“뭐 해.”유지가 놀라 돌아봤다.“언제 왔어요?”“방금.”도하는 유지가 열어둔 서랍을 봤다.“그거 쓰려고?”유지가 조금 머뭇거렸다.“써도 돼요?”“응.”“진짜?”“왜 매번 물어.”유지는 웃었다.“그래도 도하 씨 집이잖아요.”도하는 잠깐 유지 얼굴을 봤다.“이제 그 말도 좀 이상한데.”유지의 표정이 멈췄다.“왜요?”“네 물건이 이렇게 많은데.”도하가 옷장 안쪽을 가리켰다.컵.칫솔.파우치.옷.베개.냉장고 한 칸.그리고 이제 서랍 하나까지.유지는 피식 웃었다.“그러게.”유지는 가방에서 편한 옷 몇 개를 꺼냈다.티셔츠.양말.얇은 잠옷.하나씩 서랍에 넣었다.도하는 옆에 기대 서서 보고 있었다.유지가 물었다.“왜 계속 봐요.”“그냥.”“또 그 말.”도하가 웃었다.“많이 가져왔네.”“이번엔 진짜 조금이에요.”“서랍 절반 찼는데.”유지가 내려다봤다.정말 그랬다.생각보다 많았다.“그럼 몇 개 가져갈까요?”도하가 바로 말했다.“왜.”“많다며.”“많다고 했지 가져가라고 안 했어.”유지의 손이 멈췄다.도하는 너무 자연스럽게 덧붙였다.“더 넣어도 돼.”유지가 천천히 그를 봤다.“도하 씨.”“응.”“이러다 진짜 한 칸 다 제 거 되겠어요.”“한 칸이면 되겠어?”이번에는 유지가 완전히 멈췄다.도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지금 뭐라고 했어요?”“필요하면
월요일 저녁.송유지는 퇴근하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채도하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오늘 늦어.유지는 잠깐 화면을 바라봤다.—몇 시쯤요?—아홉 시 넘을 것 같아.평소 같으면 그냥 집으로 갔을 것이다.그런데 요즘은 달랐다.유지는 잠시 고민하다 메시지를 보냈다.—그럼 저 먼저 가 있을게요.답장은 금방 왔다.—응.그리고 잠시 뒤.—저녁은 챙겨 먹고.유지는 피식 웃었다.—도하 씨 것도 해놓을게요.—무리하지 말고.—알겠어요.그 짧은 대화를 끝내고도 기분이 이상했다.자신의 집이 아닌 곳으로 가면서.마치 퇴근 후 돌아가는 곳처럼 느껴졌다.도하의 집에 도착한 유지는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눌렀다.신발을 벗고 들어가.가방은 소파 옆에 놓고.외투는 늘 두는 자리에 걸었다.이제는 행동 하나하나에 망설임이 거의 없었다.냉장고를 열자 자신의 간식 칸이 눈에 들어왔다.“진짜 내 자리네.”유지는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간단히 저녁을 먹고.도하 몫은 따로 덜어두었다.설거지를 마친 뒤에는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봤다.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여기는 도하의 집인데.도하는 없고.자신만 있었다.그런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오히려 편했다.유지는 소파에 기대어 거실을 천천히 둘러봤다.액자.컵.자신의 작은 물건들.이 집 안에 자신의 흔적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밤 아홉 시 반.현관문이 열렸다.유지는 반사적으로 일어났다.“왔어요?”도하가 들어오다 멈췄다.“안 갔네.”유지가 눈을 가늘게 떴다.“가길 바랐어요?”“아니.”도하는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있을 줄은 알았는데.”유지가 웃었다.“그럼 왜 물어봐요.”“그냥 확인.”유지는 주방으로 가며 말했다.“밥 데워줄게요.”도하가 뒤를 따라왔다.“먹었어?”“저는 먹었죠.”“혼자?”“네.”“왜 기다리지.”유지는 전자레인지 버튼을 누르며 고개를 돌렸다.“너무 늦잖아요.”도하는 잠깐 말이 없었다.“잘했네.”“그 말투 뭐예요.”
일요일 오후.송유지는 채도하와 마트에 들어섰다.원래는 필요한 것 몇 가지만 사기로 했다.우유.계란.커피.그리고 유지가 좋아하는 딸기잼.그런데 카트를 끌고 매장을 돌기 시작한 지 십 분도 안 돼 물건이 하나둘 늘어났다.유지가 과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이거 맛있어요.”도하가 카트 안을 봤다.“또 단 거.”“싫으면 안 먹으면 되죠.”“네가 먹을 거잖아.”“그럼 됐네.”유지는 그대로 카트에 넣었다.도하는 아무 말 없이 카트를 밀었다.잠시 뒤.유지가 멈췄다.“근데 잠깐.”“왜.”“이거 다 도하 씨 집에 둘 건데.”도하가 고개를 끄덕였다.“응.”“제가 너무 제 것만 사는 거 아니에요?”도하는 카트 안을 한번 봤다.과자.요거트.딸기우유.작은 과일팩.대부분 유지 취향이었다.“괜찮은데.”“왜요?”“네가 먹으면 되니까.”유지가 웃었다.“이제 냉장고도 제 취향 되는 거 아니에요?”“상관없어.”대답이 너무 빠르자 유지가 도하를 빤히 봤다.“진짜요?”“응.”“나중에 도하 씨 먹을 게 없어도?”도하가 피식 웃었다.“그럼 네 거 먹지.”*채소 코너를 지나던 중.도하가 양파를 집었다.유지가 바로 옆에서 말했다.“그건 큰 걸로.”“왜.”“작은 건 금방 쓰잖아요.”도하는 아무 말 없이 큰 봉지로 바꿨다.조금 뒤에는 유지가 두부를 집었다.도하가 말했다.“그거 말고 옆에 거.”“왜요?”“그게 더 괜찮아.”유지는 바로 바꿨다.그렇게 몇 번 주고받다 보니.유지가 갑자기 웃었다.도하가 물었다.“왜.”“우리 되게 자연스럽다.”“뭐가.”“장보는 거.”유지는 카트 손잡이에 팔을 기대었다.“각자 필요한 거 고르는 것도 아니고.”잠깐.“같이 먹을 거 고르는 것 같잖아요.”도하는 별다른 반응 없이 말했다.“같이 먹을 거 맞잖아.”유지의 웃음이 조금 커졌다.“요즘은 이런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네요.”“사실이니까.”*계산대 앞.유지는 카트 안을 보고 놀랐다.“왜 이렇게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