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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7화

作者: 금붕어
주민혁은 몇 초간 말이 없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이번만큼은 정말로 마음에 새긴 대답이었다.

주민혁의 뒷모습이 문밖으로 사라지자 최수빈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창가로 가 그의 차가 단지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지난 생에서 남겨졌던 후회가 조금씩 메워지고 있었다.

한때 잃어버렸던 것들도 다시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주민혁의 차가 최수빈이 사는 별장 단지로 막 들어섰을 때였다.

그는 건물 아래에 익숙한 흰색 세단 한 대가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육민성이 트렁크에서 포장도 고급스러운 쇼핑백 몇 개를 꺼내 들고 있었는데 움직임이 여유롭고 자연스러웠다.

‘여기서 육민성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주민혁은 차에서 내렸다. 검은 정장이 그의 체형을 더 반듯하게 잡아줬고 아침 햇살이 눈매에 내려앉아 평소의 차가운 분위기가 조금 덜해졌다.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본 육민성은 주민혁을 보자 잠깐 놀란 눈빛을 보였다. 그러나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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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미연이 메시지를 보낸 뒤, 육민성은 더 이상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택시가 집 아래에 멈춰 서자 송미연은 요금을 결제하고 차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순식간에 옷깃 안으로 파고들어 그녀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그렇게 송미연은 정장 재킷을 여미며 건물 입구로 걸어갔다.그러나 문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발걸음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가로등 불빛 아래, 한 키 큰 남자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는 불붙이지 않은 담배 한 개비가 끼워져 있었고 온몸에서는 쓸쓸함이 옅게 느껴졌다.육민성이었다.꽤 오래긴 듯, 그는 발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들었고 송미연을 본 순간 눈빛이 잠시 밝아졌다가 이내 다시 어두워졌다.정장에는 아직 바깥 공기가 그대로 묻어 있었다. 위닝 테크에서 곧장 왔는지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을 틈조차 없었던 듯했다.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송미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자리를 피하려 했다.“미연 씨.”육민성이 조금 잠긴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 세웠다.고요한 밤공기 속에서 그 목소리는 유난히 또렷했고 이상하리만큼 사람 마음에 파고들었다.송미연은 그 자리에 발걸음을 멈췄다.하지만 뒤를 돌아보거나 대답을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육민성은 천천히 다가오더니 송미연의 등 뒤에서 반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녀가 싫어할까 봐 차마 다가서지 못하는 것이었다.긴장한 탓에 잔뜩 굳어 있는 송미연의 어깨를 바라보자 육민성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내가 보고 싶지 않은 거 알아. 미연 씨가 오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그래도 몇 마디만 하고 싶어. 정말 몇 마디만.”송미연은 결국 몸을 돌리더니 시선을 들어 육민성을 바라보았다.가로등 불빛이 그의 얼굴 위로 내려앉아, 눈가에 선 붉은 핏줄과 짙은 피로를 드러냈다. 그 역시 그동안 편치 않았던 게 분명했다.하지만 송미연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할 말 있으면 해요. 나 피곤해서 얼른 올라가 쉬고 싶어요.”육민성의 목울대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458화

    송미연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육민성의 말에 대답하지 않더니, 더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몸을 돌려 비상계단 쪽으로 걸어갔다.육민성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목 안이 꽉 막힌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허공에 멈춰 선 그의 손끝이 천천히 굳어 갔다.눈빛도 조금씩 어두워져 가며 남은 것은 깊은 허탈감과 무력감뿐이었다.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한결은 대충 상황을 짐작한 듯했지만 눈치 있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위닝 테크 회장이 그런 육민성을 보고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육 대표님, 저분이 송미연 씨죠? 전문성이 아주 뛰어나더군요. 임한결 씨와 함께 둘 다 보기 드문 인재입니다. 이번에 저희 법무팀이 제대로 보물을 만난 것 같아요.”육민성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려 형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마음은 이미 송미연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있었다.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난 그냥 미연 씨한테 믿을 만한 일자리를 찾아 주고 싶었을 뿐인데,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해 주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 이렇게까지 꼬여 버린 거지? 왜 날 오해하는 거지?’비상계단 안에서 송미연은 한 계단씩 천천히 내려갔다.차가운 벽이 손바닥에 닿았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답답함과 서러움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1층에 도착한 그녀는 비상구 문을 밀고 나왔다.그러다 벽에 기대어 서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는데 어깨가 아주 작게 떨렸다.자신이 조금 예민해진 걸지도 모른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쩌면 지나치게 몰아붙이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하지만 육민성이 해 온 일들을 떠올리면 그녀로서는 오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는 늘 이런 식으로 송미연을 위한다고 하면서 정작 그녀에게 한 번도 원하는지, 싫지는 않은지, 괜찮은지 물은 적이 없었다.가짜 결혼을 시작할 때도, 이혼할 때도, 그리고 이번에 일자리를 알아봐 줄 때도 그는 언제나 모든 걸 주도했다.그 속에서 송미연은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육민성이 잡아당기는 방향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1457화

    위닝 테크는 최수빈이 소개해 준 곳이었다. 그리고 그 최수빈 역시 육민성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에게 일자리를 알아봐 준 거였다.그런데 지금 임한결까지 여기 나타났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했다.‘그 사람은 애초부터 임 선생님이 여기에 지원할 걸 알았던 건가? 아니, 어쩌면 일부러였을 수도 있지. 날 불편하게 만들고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고. 혹은 임 선생님이 나보다 더 이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수빈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해준 건가?’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송미연의 속은 점점 더 답답해졌다. 때문에 임한결을 바라보는 눈빛에도 자연스럽게 냉기가 섞였다.임한결 역시 송미연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눈치챈 듯, 가볍게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저 사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거든요. 나중에 피아노가 좋아서 피아노 선생 일을 하게 된 거고요. 그래도 전공은 계속 놓지 않았어요. 가끔 지인들 법률 관련 일도 도와주고 있었는데, 이번에 위닝 테크 채용 공고 보고 괜찮겠다 싶어서 지원해 봤어요.”송미연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시선을 내려 자신의 이력서를 바라볼 뿐이었다. 손끝은 무의식적으로 종이 끝자락만 만지작거렸다.임한결이 어쩌면 아무 잘못도 없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육민성과 임한결의 관계, 그리고 그날 아파트에서 두 사람이 함께 돌아오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그 기억만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두 사람 사이에 다시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으며 회의실 안에는 중앙 냉난방기에서 흘러나오는 바람 소리만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법무팀 팀장과 인사팀장이 회의실로 들어왔고 면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먼저 자기소개가 이어졌고 곧바로 전문 질문들이 쏟아졌다.계약 조항 검토 시 핵심 체크 사항부터 상업 분쟁 대응 전략, 지식재산권 보호 방안까지, 질문의 범위는 넓었고 전문성도 상당했다.송미연과 임한결 모두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두 사람 다 법학 전공자였고 송미연은 기업 법무 실무 경험이 풍부했다.반면 임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773화

    그 말을 듣는 순간 최수빈은 온몸이 함께 떨려 왔다. 너무나 무거운 질문이기 때문이었다.마치 하나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고 그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 정말로 목숨을 내던질 것만 같았다.그 순간, 최수빈은 주민혁의 몸에 배어있는 고통과 버거움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최수빈은 주민혁을 살짝 밀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민혁 씨의 목숨이 중요하냐고 물었죠? 그럼 나도 물을게요. 민혁 씨한테는 나랑 우리 딸의 목숨이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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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쩜 사람이 이렇게 뻔뻔할 수 있어?”주나연이 비아냥거리듯 말을 쏟아냈다.“예전에 그렇게 죽네 사네 난리 치면서 이혼하겠다고 굴더니, 우리 집안 사람들 체면까지 다 깎아놓고는 이제 와서 또 쪼르르 붙어? 할머니도 안 계시니까 이제 기댈 사람 없다고 생각해서 급하게 다리라도 붙잡으러 돌아온 거 아냐?”“누나.”주민혁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목구멍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압도적인 기세가 실려 있었다.“여자는 시집가면 외부인이나 다름없어.”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순간적으로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훑어보았다.“누나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678화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은 모두 다르다.“게다가 저랑 오빠는 오래도록 연락 없이 지냈잖아요. 그래서 지금 오빠의 능력이 어떤지 제가 감히 판단할 수 없어요.”“그럼 네 생각에는 플라잉 테크가 은산시에 분점을 열고 나면 내가 주상 그룹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아?”최수빈은 잠시 말이 끊겼다가 조심스레 대답했다.“오빠는 능력도 출중하시고 추진력도 강하시니까, 분명 플라잉 테크를 이끌고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실 수 있을 거예요.”플라잉 테크는 본래부터 업계에서 이름난 오래된 기업이었는데 심종연이 회사를 안정적으로 키우고 기술력도 탄탄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681화

    여자는 주선웅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그 말이 사실이길 바란다. 내가 속지 않길 바란다는 뜻이야. 지금 핑계 대는 게 다 거짓말이라면, 그리고 진심으로 그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겠다는 거라면... 넌 이 엄마를 없는 셈 쳐.”말투는 단호했고 눈빛도 서늘했다.지금은 몰락한 처지였지만 그녀는 여전히 가문과 도리를 중요하게 여겼다.주선웅은 어릴 적부터 계산이 빠르고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결혼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무리 집안에서 정략결혼을 밀어붙여도 단 한 번도 마음을 연 적이 없었다.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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