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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5화

Author: 금붕어
주예린은 늘 이렇게나 어른스러웠다. 어른스러워서,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최수빈은 이 아이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 온전한 가정을 안겨주지도 못했고 늘 곁에 있어 주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심지어 평범한 아침 한 끼조차 그녀는 아이가 이런 위험을 감수하며 준비하려 들게 만들었다.

앞 좌석에서 운전하던 주민혁은 모녀의 대화를 들으며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차창 밖 풍경이 빠르게 뒤로 흘러갔지만 그의 시선은 룸미러에 머물렀다.

눈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최수빈, 아픔을 꾹 참으며 엄마를 위로하는 주예린의 모습이 그대로 비치자 순간 가슴이 조여들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최수빈이 얼마나 버겁게 살아왔는지, 아이를 데리고 남성 중심적인 항공우주 분야에서 홀로 버텨왔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

하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것 말고 주민혁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혼을 원한 것도 그녀였고 떠나겠다고 한 것도 그녀였다.

그래서 최수빈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어쩌면 아주 잘못된 선택을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녀의 모든 바람을 들어준 것처럼 보였지만, 정말 그게 최수빈을 행복하게 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무언가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던 걸까?

차는 곧 제일병원에 도착했다.

차가 멈추자마자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다가왔는데 선두에는 화상외과 과장이 서 있었다.

“주 대표님, 이쪽으로 오시죠.”

최수빈은 그제야 주민혁이 미리 모든 걸 준비해 두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흉터는 절대 남지 않게 해주세요.”

낮고 단호한 주민혁의 목소리에 과장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주 대표님.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습니다. 아이가 어리니 더 각별히 신경 쓸 거예요.”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주예린을 받아 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 이모가 후 하고 불어 줄게. 그러면 안 아파.”

주예린은 고개를 돌려 최수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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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756화

    “내가 주씨 가문 모든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게 맞을까요?”주민혁의 눈빛이 순간 가라앉았다. 목젖이 한 번 크게 움직였고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짙고 어두웠다.그때 처치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가 주예린을 안고 나왔다.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한참 울다가 지쳐버린 듯, 작은 얼굴에는 아직도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고 팔에는 하얀 붕대가 겹겹이 감겨 있었다.“처치는 다 끝났습니다.”뒤따라 나온 담당의가 설명했다.“물집은 전부 정리했고 연고 바르고 잘 감아뒀어요. 이후에는 물 닿지 않게 주의하시고 정해진 날짜에 소독만 잘 받으시면 흉터는 거의 남지 않을 겁니다.”최수빈이 급히 일어나 주예린을 받으려 했지만 주민혁이 한발 먼저 다가가 조심스럽게 딸을 품에 안았다. 숨소리조차 낮춘 듯한,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동작이었다.이는 딸에게 무심하던 예전의 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감사합니다.”최수빈이 낮은 목소리로 인사했다.“별말씀을요.”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주민혁을 바라봤다.“주 대표님, 이후에 쓸 약은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언제든 가서 받아가세요.”주민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예린을 안은 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최수빈은 주민혁의 뒤를 따르며 넓은 등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품 안에서 곤히 잠든 딸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이 남자는 한때 최수빈 인생의 빛이었고 어느 순간에는 깊은 가시가 되었으며 지금은 또 이런 방식으로 그녀와 딸의 삶에 다시 나타나고 있었다.하지만 잘못된 건 어떻게 해도 잘못된 채로 남아 있는 법이기에 최수빈은 이러한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사실 원래 그들은 이렇게 평범했어야 했다.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겪지 않아도 됐을 사이였다.병원 입구에 이르자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고 주민혁은 걸음을 멈추며 돌아섰다.“며칠만 내 쪽에서 지내자. 도와주는 분도 있고 여러모로 편할 거야.”최수빈은 반사적으로 거절하려다 그의 품에서 잠든 주예린을 보고 멈칫했다. 게다가 아직 원금영의 장례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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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754화

    주예린은 너무 아파 눈물이 줄줄 흘렀지만 입술을 꼭 깨문 채 큰 소리로 울지는 못하고 훌쩍였다.“엄마... 저 안 아파요...”“안 아플 리가 없잖아.”애써 울음을 참는 듯한 목소리, 최수빈의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할머니도 막 떠나보냈는데 예린이한테까지 이런 일이 생기다니...’여러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최수빈의 가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그녀는 주예린을 안은 팔에 힘을 더 주었다.“괜찮아. 엄마가 병원 데려가 줄게. 금방 안 아파질 거야.”최수빈은 가장 빠른 손놀림으로 깨끗한 수건을 찾아 찬물에 적신 뒤, 조심스럽게 주예린의 화상 부위에 대주었다. 그러고는 대충 외투를 걸치고 딸을 안은 채 현관으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문을 여는 순간, 예상치 못하게 무거운 시선과 마주쳤다.주민혁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벽에 기대선 채 소나무처럼 곧은 자세였지만 온몸에 밴 피로감은 감출 수 없었다. 눈 밑은 짙게 그늘이 졌고 턱에는 거뭇거뭇한 수염이 올라와 있었으며 언제나 단정하던 셔츠의 깃도 비뚤어져 있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않았다는 게 한눈에 보였다.그를 보는 순간, 최수빈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췄다.품에 안긴 주예린은 여전히 훌쩍이고 있었고 따뜻한 눈물이 최수빈의 목덜미로 떨어졌다.“여기서 뭐 해요?”최수빈의 목소리는 바싹 말라 있었다.주민혁은 그녀를 넘어 주예린의 데인 팔에 시선이 닿자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가슴이 덜컥 조여 왔다.곧 그가 몸을 바로 세우며 침을 꿀꺽 삼켰다.“많이 힘들 것 같아서... 곁에 있어 주고 싶었어.”최수빈은 잠시 멍해졌다.그의 눈 밑에 짙게 깔린 다크서클과 밤새 밖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모습들을 보며 문득 뭔가를 깨달았고 이내 가슴 한쪽이 콕 하고 찔린 듯 아려왔다.“그래서... 문 앞에 밤새 있었던 거예요?”바로 대답하는 대신 주민혁은 갈라진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가 다시 최수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일단 병원부터 가자.”최수빈이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주민혁은 손을 뻗어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753화

    최수빈은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주민혁이 데려다준다 하자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집에 올라온 뒤에는 그에게 한마디 할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머릿속이 유난히 어지러웠다.집에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웅크려 앉은 최수빈의 머릿속은 온통 원금영과의 기억으로 가득 찼다.너무도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깊숙이 묻은 채 소리 없이 울며 어깨만 작게 들썩거렸다.외할머니에 더불어 이제는 원금영까지, 어린 시절의 모든 즐거움을 안겨주던 두 할머니가 이렇게 차례로 최수빈의 곁을 떠나버렸다.얼마나 오래 거실에 앉아 있었는지, 또 얼마나 울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불도 켜지 않은 채 병원에서 돌아온 그대로 최수빈은 꼼짝하지 않았는데 신발을 벗다 묻은 바짓단의 먼지조차 여전히 남아 있었다.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실타래가 동시에 잡아당기는 것처럼 어지러웠다.응급실에 켜졌던 붉은 불빛, 주선웅이 원금영의 방에 다녀갔다던 주민혁의 말, 그리고 자신을 감싸주던 주선웅의 진심 어린 눈빛, 어릴 적 자신에게 유독 잘해주던 그의 모습까지...머리가 복잡해 관자놀이가 욱신욱신 뛰었다.“엄마?”등 뒤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최수빈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주예린이 곰돌이 잠옷을 입고 베개를 끌어안은 채 침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깼어?”최수빈은 목소리를 한껏 누그러뜨리며 다가가 딸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주예린은 그녀의 약점이자 버텨낼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곧 주예린이 고개를 저으며 작은 손으로 최수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엄마가 안 자고 있었잖아요.”아이는 어둠 속에서도 유난히 또렷한, 검은 포도알 같은 눈으로 올려다보며 물었다.“엄마, 안 행복해요?”최수빈은 몸을 낮춰 딸을 품에 안고 아이의 보송한 머리 위에 턱을 기댔다.“아니야.”잔뜩 쉰 목소리였다.“엄마가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주예린은 더 묻지 않았다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752화

    “조심해!”누군가가 재빨리 그녀의 팔을 붙잡아 흔들림 없이 몸을 받쳐 주었다.주선웅이었다.귓가에서는 걱정하는 듯한 기색이 돋보이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수빈아...”최수빈은 온몸에 힘이 풀린 채 그의 품에 기대서서 끝내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그 모습을 본 주기훈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주선웅, 당장 놔!”갑자기 주기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들어도 엄하고 꾸짖는 톤이었다.“그 애는 전에 네 제수씨였던 사람이야. 그런데 그렇게 안고 있으면 돼? 이 일이 소문이라도 나면 주씨 가문 체면은 어떡하려고!”미간을 깊게 찌푸렸지만 주선웅은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최수빈을 조금 더 단단히 부축했다.그러고는 주기훈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아버지, 수빈이는 민혁이의 전처일 뿐만 아니라 제 동생이기도 해요. 오래전부터 저는 이미 수빈이를 제 친여동생처럼 생각해 왔습니다.”주기훈은 말문이 막힌 듯 잠시 굳어졌다. 얼굴은 분노로 인해 시퍼렇게 변했지만 당장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한편 옆에 서 있던 주민혁은 주선웅의 품에서 보호받고 있는 최수빈을 바라보았다.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심하게 떨며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그의 눈빛은 깊고 어두웠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찬 연못처럼, 누구도 알 수 없는 감정이 그 안에서 뒤엉켜 요동치고 있었으며 손끝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하지만 결국 주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몸을 돌려 복도 끝으로 걸어가 모두에게 등을 보인 채 잿빛으로 흐린 창밖을 바라보았다.병원 영안실 밖에는 긴 의자가 놓여 있었다.최수빈은 가장 구석진 계단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팔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눈물이 소매를 적시며 차갑게 스며들었지만 가슴속의 서늘함과 묵직한 통증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주변은 고요했고 가끔가다 지나가는 발소리와 낮은 대화 소리만이 들려왔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계단 옆에 누군가가

  •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제751화

    육민성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더는 묻지 않았다.그는 최수빈과 주민혁 사이의 얽힌 사정이 너무 많아 몇 마디 말로 설명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집에 돌아오자마자 최수빈은 그대로 소파에 몸을 던졌다.순식간에 온몸을 휘감는 피로감에 눈을 감았지만 머릿속에서는 주선웅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선웅 오빠가 한 게 아니라고? 그럼 주민혁인가?’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굳이 밝혀내고 싶지도 않았다.주민혁과 관련된 모든 일은 엉켜버린 실타래 같아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어지러워졌다.그때 갑자기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는 ‘저택’이라는 두 글자가 떠 있었다.최수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급히 전화를 받았고 수화기 너머로는 울먹이는 본가 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수빈 씨, 빨리 돌아오셔야 해요! 어르신... 어르신께서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지금 구급차로 병원에 가는 중인데 의사 선생님 말씀이 상태가 좋지 않답니다...”최수빈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피가 한순간에 얼어붙는 느낌이었다.“어느 병원이죠?”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차마 억제할 수 없었다.“제일병원이요. 빨리 오세요!”전화를 끊자마자 최수빈은 비틀거리듯 집을 뛰쳐나와 차 키를 움켜쥐고 아래층으로 달려갔다.원금영은 늘 건강한 편이었다.‘연세가 있긴 하지만 지난달에 찾아뵈었을 때만 해도 웃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쓰러지신 거지?’차를 몰고 가는 내내 최수빈은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 신호도 몇 번이나 무시했다.창밖 풍경이 빠르게 뒤로 흘러가고 심장은 터질 듯 뛰었으며 새하얘진 머릿속에 오직 하나의 생각만이 맴돌았다.‘할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안 돼.’원금영은 주씨 가문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에게 따뜻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막 주씨 가문에 시집가서 어른들에게 이런저런 구박을 받을 때도 원금영은 최수빈을 감싸주며 몰래 먹을 것을 쥐여 주고는 여자도 자기 힘을 가져야 한다고, 남들한테 무시당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었었다.이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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