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백서아는 흐트러짐을 견디지 못한다. 유명 갤러리 관장이라는 지위, 세련된 취향, 천재 소설가 강도진과의 안정된 결혼. 그녀의 삶은 하나의 완벽한 전시처럼 정돈되어 있다. 거칠고 무례한 신진 화가 권이안의 그림을 만난 순간, 그 완벽한 균형에 처음으로 금이 간다. 서아는 자신이 경멸하던 충동과 욕망에 끌려 이안의 작업실을 찾고, 비밀스러운 관계는 점차 쾌락에서 집착과 통제로 변한다. 그 모든 변화를 남편 강도진은 예상보다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있다. 오랜 슬럼프에 빠져 있던 도진은 아내의 거짓말, 죄책감, 공포, 추락을 관찰하며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현실을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확인한 사실을 기록하고, 모르는 부분은 기다리고, 드러난 표정과 행동 사이의 욕망을 해석해 소설로 완성한다.
View More오전 6시 50분.
정확히 조율된 스위스제 벽시계의 초침이 서늘한 거실의 공기를 갈랐다.
서아는 눈을 떴다. 암막 커튼 사이로 스며든 미세한 아침 햇살이 정돈된 침대 위에 일정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시트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강도진은 언제나 자신보다 20분 먼저 일어났고, 그가 머물던 자리는 마치 아무도 눕지 않았던 것처럼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서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크 가운의 끈을 단정하게 묶고 욕실로 향했다. 거울 속의 얼굴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이 거울처럼 투명하고 얼룩 하나 없기를 바랐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유지해 왔다.
주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차가운 대리석이었다.
서아는 매일 아침 가사도우미가 오기 전, 남편의 아침 식사를 직접 준비했다. 그것은 이 집안의 가장 중요한 규칙이자, 두 사람이 외부 세계에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부부의 품격 중 하나였다.
탁, 탁.
도마 위에서 칼날이 아보카도와 훈제 연어를 정갈하게 썰어내는 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만들었다.
오늘의 메뉴는 호밀빵 토스트와 수란을 얹은 아보카도 샐러드, 그리고 가볍게 구운 아스파라거스. 원두는 도진이 좋아하는 케냐 AA 블렌딩이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작동하며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짙은 커피 향이 주방 가득 퍼져나갔다.
서아는 하얀 도자기 접시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접시의 가장자리와 리넨 매트의 간격은 정확히 3센티미터. 나이프와 포크의 각도 역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평행을 이루었다.
그때,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내려오는 도진의 모습은 방금 잡지 화보에서 걸어 나온 것처럼 단정했다. 집 안이었음에도 그는 가벼운 셔츠와 슬랙스 차림이었다. 구김 하나 없는 칼칼한 리넨의 질감이 그의 차분한 분위기를 돋보이게 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도진 씨."
서아가 먼저 미소를 지으며 잔에 커피를 따랐다.
"좋은 아침입니다, 서아 씨. 오늘도 고생이 많군요."
도진은 의자를 뒤로 빼며 정중하게 목례를 했다. 그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정제되어 있었고, 과도한 감정의 고저가 없었다. 마치 잘 훈련된 아나운서의 내레이션을 듣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커피 향이 아주 좋습니다. 로스팅 정도가 딱 적당하군요."
"도진 씨 입맛에 맞았다니 다행이에요. 요즘 원두 보관 상태에 신경을 좀 썼거든요."
"서아 씨의 손길이 닿은 곳은 어디든 완벽하니까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진은 나이프를 들어 토스트를 부드럽게 잘라냈다. 바삭하는 파열음이 침묵을 깨뜨렸다. 서아 역시 포크를 움직여 샐러드를 입에 넣었다. 두 사람의 식사는 소리 없이 우아하게 진행되었다. 접시와 포크가 부딪치는 쨍한 금속음조차 이 식탁 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소음이었다.
"참, 이번 주 토요일에 있는 서 회장님 장녀 출판 기념회 말이에요."
도진이 냅킨으로 입가를 가볍게 훔치며 말을 건넸다.
"네, 기억하고 있어요. 스케줄은 이미 비워두었답니다."
"같이 참석해 주었으면 합니다. 서 회장님이 서아 씨의 갤러리 기획전에 관심이 많으시더군요. 이번 기회에 인사를 나누는 게 서로에게 유익할 겁니다."
"당연히 가야죠. 당신의 신작에 대한 이야기도 나올 텐데, 아내로서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어요?"
서아는 눈을 휘어트리며 생긋 웃었다.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주고받는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러운 대화였다.
"당신이 곁에 있어 준다면 내 체면이 살죠. 늘 대외적인 자리에서 서아 씨는 빛이 나니까."
"과찬이세요. 도진 씨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뿐인걸요."
말은 부드럽게 오갔지만,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의 눈동자 깊은 곳까지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가볍게 부딪쳤다 떨어졌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들은 훌륭했고, 채광은 아름다웠으며, 부부의 대화는 교양의 극치를 달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안에는 온기가 없었다. 온도가 사라진 박제된 정물화 같은 풍경이었다.
"요즘 갤러리 일은 어떤가요? 신진 작가 공모전 준비로 바쁘다고 들었습니다만."
도진이 흘러가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네, 포트폴리오 접수가 시작되어서 매일 정신이 없네요. 올해는 유독 개성 강한 지원자들이 많아서 심사가 까다로울 것 같아요."
"개성이라……."
도진이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예술가에게 개성은 양날의 검이죠. 통제되지 않는 날것의 에너지는 때로 천박함으로 흐르기 쉬우니까요. 정제되고 다듬어진 미학이야말로 오래 살아남는 법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요, 도진 씨."
서아가 잔을 내려놓으며 도진을 바라보았다.
"틀을 깨부수는 파격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기도 하잖아요. 당신의 초기 작품들처럼요."
도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멈칫했다. 아주 짧은 움직임이었지만 서아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도진의 눈매가 아주 조금 서늘해졌다. 그러나 이내 그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과거의 미숙함을 그렇게 포장해 주니 부끄럽군요. 그때는 어려서 정제되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지금 보면 부끄러운 문장들이 많아요."
"저는 그때의 거친 문장들도 참 좋아했는걸요."
"지금의 내 문장이 더 완성도가 높다는 게 평단의 일관된 의견입니다. 서아 씨도 알다시피."
"물론이죠. 지금의 당신은 완벽해요. 의심할 여지 없이."
서아는 부드럽게 맞받아쳤다. 대화의 흐름이 조금이라도 위험한 곡선을 그리려 하면,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알아서 수위를 조절하고 안전한 평지로 돌아왔다. 그것이 이 결혼 생활을 5년 가까이 파탄 없이 유지해 온 비결이었다.
서아는 포크를 내려놓고 시계를 보았다. 7시 30분. 식사 시작 후 정확히 30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그동안 그는 이 모니터 앞에 앉아 전지전능한 신처럼 서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그녀가 전화를 받으며 초조해하는 표정, 몰래 향수를 뿌리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눈빛, 그 모든 것을 훔쳐보며 문장을 길어 올렸다.그 관음의 시간이 도진에게는 유일한 삶의 이유이자 쾌락이었다.하지만 이제 모니터 속에는 아무도 없다.자신이 조종할 꼭두각시도, 해부할 표본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끝… 난 건가."도진의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이야기는 끝났다.결말을 지었고, 책은 출간되었으며, 초판 10만 부 돌파 기념패까지 받았다.모든 목적을 달성했다.그런데 왜.도대체 왜 이렇게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무섭도록 서늘한 것일까.도진은 키보드 위에 두 손을 올렸다.타닥, 타다닥.허공에 대고 무의미하게 타자를 쳐보았다.아무런 문장도 떠오르지 않았다.그는 사실 알고 있었다.자신은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내면에는 세상을 감동시킬 어떤 철학도,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도 없다는 것을.강도진이라는 작가는 오직 타인의 고통과 치부를 뜯어먹고 사는 기생충이자, 관음증 환자에 불과했다.그의 영감은 철저히 백서아의 타락에 기대어 있었다.백서아라는 살아 숨 쉬는 제물이 있었기에, 괴물 강도진은 그 피를 빨아먹으며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그 제물을 스스로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다시는 돌아올 수 없도록, 사회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벽하게 도살해 버린 것이다."아…."도진의 동공이 지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사냥감을 모두 죽여버린 괴물은, 결국 텅 빈 우리 안에서 굶
도진의 웃음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웃음은 점차 커져서, 나중에는 배를 부여잡고 숨을 헐떡일 정도로 광기 어린 폭소로 변했다."크하하하! 으하하하하하! 아, 미치겠군. 진짜 완벽해서 미쳐버리겠어!!"그는 부서진 거실 바닥을 뒹굴 듯이 웃어댔다.자신은 신이었다. 인간의 삶을 조작하고, 그들을 파멸로 몰아넣은 뒤, 그 파멸마저 예술로 포장해 세상의 찬사를 받아내는 전능한 신.도진은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얼마나 그렇게 미친 듯이 웃었을까.목이 쉬어갈 무렵,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하아… 하아…."잔뜩 상기된 얼굴로 숨을 고르던 도진은, 다시 한번 기념패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이제 다음 작품을 구상해 볼까. 이번엔 어떤 사냥감을 골라서 밑바닥까지 발가벗겨 줄까…."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그런데.어딘가 이상했다."뭐지."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폭풍처럼 휘몰아치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사라진 자리.그 자리에 남은 것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깊고 무거운 '침묵'뿐이었다."……."도진은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냉장고 모터가 돌아가는 미세한 백색소음.창밖으로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타이어 소리.그리고, 벽에 걸린 앤틱 시계의 초침 소리.똑. 딱. 똑. 딱.규칙적이고 건조한 그 소리들만이, 도진의 고막을 기분 나쁘게 긁어대고 있었다.평소라면 이 정적을 깨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와야 했다.자신
스르륵-.육중한 세단이 미끄러지듯 속도를 줄이며 멈춰 섰다."작가님, 도착했습니다."운전기사 김 기사가 시동을 끄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뒷좌석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던 강도진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창밖으로는 빗물에 젖은 거대한 저택의 철문이 차가운 위용을 뽐내며 서 있었다."수고하셨습니다, 김 기사님."도진이 나직하고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저기, 작가님."김 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도진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다."오늘 기념행사, 밖에서 차 대기하면서 유튜브 생중계로 봤습니다. 공식 연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작가님처럼 훌륭하신 분이 왜 그런 아픔을 겪으셔야 하는지, 참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사모님 일은…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도 다 작가님 편 아닙니까. 기운 내셔야죠. 위대한 작가님이신데."도진은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위대한 작가.감동적인 공식 연설.이 늙고 순진한 운전기사조차 완벽하게 자신의 연극에 속아 넘어가, 가해자인 자신을 동정하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강도진이 펜 하나로 빚어낸 거대한 권력이었다.하지만 도진은 짐짓 슬픔을 삼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위대하다니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십시오. 늦은 시간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아닙니다! 편히 쉬십시오, 작가님!"김 기사가 서둘러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도진은 묵직한 초판 10만 부 돌파 기념패가 담긴 벨벳 상자를 품에 안고 차에서 내렸다.철문이 열리고, 차가 멀어지는
"이번 소설을 집필하는 과정은, 제게 매일매일 피부가 벗겨지고 뼈가 깎이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었습니다."도진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마치 환상 속의 누군가를 바라보는 듯한 아련한 눈빛."인간의 밑바닥을 들여다본다는 건, 결국 그 시선을 저 자신과 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돌려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요. 글을 쓰는 내내 저는 지옥에 있었습니다. 인물들이 파멸해 가는 과정을 묘사하며, 저의 세계도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껴야만 했습니다."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대중은 이미 그의 소설이 백서아의 불륜을 소재로 했다는 것을 안다. 남편이 아내의 배신을 두 눈으로 목도하며 글을 써 내려갔을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상상하며, 사람들은 철저히 도진에게 동화되고 있었다."하지만…."도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그가 눈을 천천히 깜빡이자, 조명 빛을 받은 눈동자가 물기를 머금고 반짝였다."제가 이 지옥 같은 터널을 빠져나와, 오늘 이 뜻깊은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도진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제게 있어 세상 가장 잔인하고도 매혹적인 예술적 영감이 되어준… 저의 아내, 백서아 덕분입니다.""헉.""세상에…."객석에서 억눌린 탄식이 터져 나왔다.모두가 귀를 의심했다. 자신을 배신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당해 도망친 불륜녀를 향해, 최고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손가락질하고, 제 소설 속 인물과 그녀를 겹쳐보며 비난의 화살을 쏟아내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남편으로서, 그 화살을 제가 대신 맞아주지 못해 가슴이 찢어집니다."도진은 눈가를
제7화 불협화음의 침입자(1)오후 2시 30분.서아는 책상 위에 놓인 탁상시계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다. 시곗바늘이 초 단위로 움직이는 소리가 유독 거슬렸다.약속 시간은 오후 2시 정각이었다.서아의 사전에서 '지각'이란 허용되지 않는 단어였다. 갤러리 아르테의 수석 큐레이터인 그녀와의 미팅을 위해 내로라하는 작가들도 30분 전부터 로비에서 대기하는 것이 당연한 관례였다.그런데 이름 없는 무명 작가, 이안이라는 남자는 무려 30분이나 약속 시간을
제4화 마침표가 없는 방(2)그는 연기 속에서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꼈다.하지만 담배가 타들어갈수록, 그의 불안감은 다시 피어올랐다.담배가 손가락에 닿을 정도로 짧아지자, 그는 재떨이에 비벼 껐다.그는 다시 키보드 앞으로 다가갔다.'한 문장이라도 쓰자. 딱 한 문장만.'그는 눈을 질끈 감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타닥, 타닥, 타닥.[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그는 또다시 'Back Space' 키를 눌렀다.투투투툭.햇살? 너무 흔해. 오후? 그래서?그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가
제6화 완벽한 세계에 떨어진 불씨(2)"지루해……."서아는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완벽해서 지루했고, 안전해서 숨이 막혔다.그녀는 나른한 손길로 남은 포트폴리오 더미를 뒤적거렸다. 그러다 문득, 가장 아래쪽에 깔려 있던 서류 봉투 하나가 눈에 띄었다.다른 지원자들의 화려한 가죽 바인더나 고급스러운 클리어 파일과는 전혀 다른, 구겨지고 낡은 크라프트지 서류 봉투였다.봉투 겉면에는 발신인의 이름조차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검은색 매직으로 투박하게 갈겨쓴 두 글자만이 전부였다.[ 이 안 ]"이안……? 성도 없이 이
제5화 완벽한 세계에 떨어진 불씨(1)오전 9시 30분.갤러리 ‘아르테’의 아침은 서아의 구두굽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또각, 또각.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는 10센티미터 스틸레토 힐의 마찰음. 그 소리는 갤러리 내부의 모든 스태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이자 신호였다.서아가 메인 전시홀에 들어서자, 작품을 닦고 조명을 맞추던 직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수석님, 안녕하십니까.""좋은 아침입니다."서아는 눈으로 가볍게 인사를 받으며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허공이 아니라, 갤러리 벽면에 걸린 억대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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