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531화

Author: 수박빙수
윤하경은 잠시 발걸음을 멈췄고 눈앞의 장면에 잠시 갈등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고개를 돌렸다.소지연은 당황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신인아라는 애, 강현우랑 무슨 사이야?”

윤하경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몰라. 나도.”

“그럼 너랑 강현우는...”

“가자.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윤하경은 짧게 말한 뒤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강현우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민진혁에게 말했다.

“신인아 데려다줘.”

신인아는 고개를 들고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오빠는... 같이 안 가세요?”

강현우는 그녀를 보며 차분하게 답했다.

“괜찮아. 너 먼저 가. 시간 나면 갈게.”

신인아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조심히 오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민진혁에게 출발하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윤하경이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던 찰나, 갑자기 조수석 문이 열렸다.

놀라서 발을 브레이크에 올린 윤하경이 고개를 돌리자, 강현우가 몸을 살짝 숙인 채 소지연에게 말했다.

“미안. 윤하경한테 할 말이 좀 있어서.”

소지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윤하경은 입술을 꾹 다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현우 씨랑 저, 가는 길 다르잖아요.”

명백한 거절의 뉘앙스를 담았지만 강현우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긴 다리를 자연스럽게 차 안으로 뻗고 앉더니 느긋하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

“운전해.”

윤하경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저...”

“아니면 내가 운전할까?”

강현우가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를 바라봤다. 예전에 강현우가 몰았던 미친 듯한 속도가 생각나 윤하경은 말없이 시동을 걸었다.

차가 조용히 주차장을 빠져나온 후, 강현우가 물었다.

“신인아, 어떻게 알게 된 거야?”

그 말투. 마치 자신이 신인아에게 일부러 접근이라도 한 것처럼 들렸고 윤하경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 말, 제가 신인아한테 일부러 접근한 거라고 들리는데요?”

강현우는 대꾸하지 않고 그저 창밖을 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1화

    경성 상류층 사람들은 윤하경이 구지호에게 목숨 걸고 매달리는 순정파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한밤중에 몸에 꼭 맞는 섹시한 슬립 드레스를 입고 강현우가 묵고 있는 호텔 방을 두드렸을 때, 강현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물었다.“구지호가 알면 어쩌려고?”윤하경은 코웃음을 치며 그의 목을 감싸안고 대담하게 입을 맞췄고 과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그의 입술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담배 향이 이상하게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경성 상류층 사람들은 강현우가 여자를 다루는 데 능숙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윤하경이 그를 선택한 이유도 분명했다.첫째, 강현우는 구지호보다 훨씬 강력한 인물이었고 구지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둘째, 강현우는 여자를 오래 곁에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곁에 머무는 여자는 길어야 한 달이다.구지호가 자신과 이복동생 윤하연과 바람이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윤하경은 주저 없이 강현우를 찾아왔다.구지호는 윤하경이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믿음을 깨뜨릴 차례였다.‘나는 너 없이도 잘 살아!’강현우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 방 안으로 그녀를 끌어들였다. 문이 닫히고 그는 윤하경을 문에 밀어붙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후회하지 마.”“현우 씨, 뭐 이렇게 질질 끌어요? 진짜...”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현우는 그녀의 입술을 막으며 그대로 침대 위로 그녀를 던졌다.그 순간, 윤하경은 살짝 겁이 났다. 하지만 강현우는 이 방면에서 지나칠 정도로 능숙했고 처음의 고통을 제외하면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생각보다 좋은데?’다만 이상했던 건, 여자와의 경험이 많다고 소문난 강현우가 이 밤만큼은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달려들었다는 점이었다. 두 시간 동안 사랑을 나눈 윤하경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강현우는 침대 한쪽을 가리키며 물었다.“첫 경험이야?”믿지 못하겠다는 그의 말투에 윤하경은 차갑게 웃었다.“걱정하지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2화

    윤하경은 핸드폰을 들어 소지연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경아, 설마 구지호랑 끝까지 간 거야? 첫 경험은 결혼할 때까지 남겨둔다고 하지 않았어?]윤하경은 피식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누가 구지호라고 했어? 다른 남자가 없을 것 같아 보여?]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소지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진짜야? 윤하경, 대단한데?”
소지연의 흥분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터져 나왔다.
“그 구지호 같은 쓰레기를 네가 차버렸다니! 역시 내 친구!”누가 봐도 구지호가 형편없는 남자라는 건 다 알고 있었다.
 윤하경도 예전에 그에게 푹 빠졌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를 믿고 사랑했던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그래. 내가 구지호를 찼어. 그렇게 소문내줘.”
윤하경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구지호는 체면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이었기에 윤하경은 그를 망신 주고 싶었다.“근데 그 남자는 누구야?” 
윤하경은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답했다.
“옷 갈아입고 회사에서 얘기하자.”
“알았어. 그런데 오늘 중요한 고객 만나는 날이니까 빨리 와.”전화를 끊고 호텔을 나선 윤하경은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어젯밤, 그녀는 차를 가져오지 않고 택시를 타고 왔었다.
 시계를 보니 이 시간에 택시를 잡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난감해하며 고민하던 순간, 익숙한 검은색 차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췄다.
 천천히 내려가는 창문 너머로 강현우가 보였고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차 안 가져왔어?”
윤하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현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그럼 택시를 부르면 되겠네. 난 먼저 간다. 잘 있어.”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몰고 떠났다.“뭐야, 진짜?”
윤하경은 멀어져가는 차를 보며 혀를 찼다.
 그리고 발치에 있던 돌멩이를 발로 세게 차며 혼잣말했다.
“남자는 다 똑같아. 할 일 끝나면 모른 척.”윤하경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예상치 못했던 건,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구지호와 윤하연이었다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3화

    구지호는 쓰러질 듯한 윤하연을 서둘러 부축했다. 
윤하경은 꼴도 보기 싫어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거실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윤수철이 소리를 질렀다.
“윤하경! 당장 돌아와! 그 남자는 대체 누구야?!”‘역시. 우리 아버지는 늘 내 잘못만 본다니까.’윤하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구지호와 윤하연이 서로 껴안고 있는 걸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을 땐 마치 귀머거리가 된 사람처럼 들은 척도 하지 않더니.
하지만 윤하경은 이제 그러려니 했다. 5년 전, 계모와 윤하연이 이 집에 들어온 후에 이곳은 그녀에게 더 이상 ‘집’이라는 존재가 아니었다.
 다만 엄마의 물건들이 이 사람들 손에서 망가질까 봐 참으며 머물고 있었을 뿐이었다.회사의 문을 열고 들어선 윤하경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가 책상에 서류를 올려놓을 때쯤, 소지연이 다가왔다.
“하경아, 상대 회사 사람들이 왔어. 게다가 대표님이 직접! 우리 이번 프로젝트 진짜 중요한가 봐.”
소지연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특히 네가 직접 만나길 원한대. 잘해봐! 내가 다음 달 유럽 여행 갈 수 있을지는 네 손에 달렸어!”윤하경은 자신감 있게 회의실로 들어갔지만 문을 열고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본 순간, 잠시 발이 멈칫했다.
 그곳에 강현우가 앉아 있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윤 대표님, 소문으로만 듣던 분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치 어젯밤의 일이 전혀 없었던 사람처럼, 냉정한 태도였다.윤하경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차분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강 대표님께서 직접 와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간단한 인사를 마친 뒤 그녀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번 프로젝트는 ‘자연’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 테마를 통해 귀사의 제품이 경쟁사와 차별화될 수 있는 요소를 부각할 계획입니다.”윤하경은 프레젠테이션에 집중했다. 일에 몰두한 그녀의 표정은 더욱 진지하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화려한 이목구비에 눈가의 붉은 점은 그녀를 더욱 매혹적으로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4화

    택시 안에서 윤하경은 거울을 꺼내 립스틱을 덧발랐다. 그러자 창백한 얼굴이 조금은 생기를 되찾았다.
30분쯤 지나, 택시는 화려한 불빛으로 빛나는 클럽 ‘옥타곤’ 앞에 멈췄다.
 하이힐을 신고 안으로 룸에 들어서자 안에는 남녀가 뒤섞여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방 안 공기는 담배 연기, 술 냄새, 그리고 강한 향수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찌를 정도였다.
 윤하경은 손으로 코를 가리며 가볍게 기침하고 안쪽을 둘러보며 온지우를 찾았다.하지만 온지우 대신, 그녀가 발견한 건 소파에 비틀거리며 누워 술을 마시고 있는 구지호였다.
 그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잔을 연달아 들이켰다. 윤하경은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욕했다.
‘재수 없게.’온지우가 구지호와 짜고 자신을 여기로 불렀다는 게 뻔히 보였다.
 기분이 상한 그녀는 돌아서서 나가려 했지만 구지호가 이미 그녀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구지호의 흐릿하던 눈빛이 윤하경을 보자마자 선명해졌고 그는 휘청거리며 다가오더니 윤하경의 손을 붙잡았다.
“하경아, 가지 마. 우리 얘기 좀 하자.”“얘기할 게 없어.”
윤하경은 차갑게 대꾸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것만으로도 불쾌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구지호는 손을 놓지 않고 애원했다.
“하경아, 내 말 좀 들어봐. 나랑 윤하연은 그런 사이가 아니야. 걔가 먼저 나한테 접근한 거야.”“그만해.”
윤하경은 그의 말을 끊고 쏘아붙였다.
“책임을 여자한테 떠넘기는 게 남자라고 생각해? 윤하연이 잘못했다면 너도 똑같아. 둘 다 한심하다고.”구지호는 그녀의 날 선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평생 남에게 비난받아 본 적이 없었고 게다가 늘 자신을 쫓아다니던 윤하경에게 이런 말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구지호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내가 이렇게 사과했으면 됐잖아. 대체 뭘 더 바라는 거야? 정말 약혼을 깨겠다는 거야?”
그는 화가 난 듯 말을 이었다.
“하경아, 네가 어떻게 나한테 매달렸는지 잊었어? 네가 그렇게 애원해서 내가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5화

    “죄송합니다. 두 분 대화를 엿들은 건 아니에요.”
강현우는 코끝을 한번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윤하경과 구지호 사이를 지나치려 했지만 윤하경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는 강현우의 팔을 당기며 구지호를 향해 말했다.
“어제 내가 누구랑 있었는지 알고 싶다며? 바로 이 사람이야.”윤하경의 말에 구지호의 창백하던 얼굴이 순간 굳어졌지만 이내 흘깃 웃으며 강현우를 향해 말했다.
“강 대표님, 죄송합니다. 하경이가 잠시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 같네요. 먼저 들어가서 술 한잔하시죠.”강현우는 상류층에서도 가장 손대기 어려운 인물로 통했다.
 그의 집안은 재력과 권력 모두 독보적이었고 젊은 나이에 이미 가문 기업의 실권을 쥐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농담을 건네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강현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는 말없이 걸음을 옮겼고 윤하경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후회했다.‘어젯밤 함께 잤는데 이 작은 부탁도 못 들어주나?’그때 구지호가 말했다.
“하경아, 네가 나를 화나게 하고 싶어 하는 건 알겠어. 하지만 강현우를 끌어들이는 건 위험해.”그 말을 들은 강현우가 걸음을 멈췄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구지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구 대표님의 말은 제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뜻인가요?”구지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 아니요. 그런 뜻은 아닙니다.”그가 어색하게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순간, 강현우는 윤하경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 끝났으니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윤하경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지금 바로 갈까요?”구지호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현우는 평소 누군가의 일에 끼어드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런 그가 윤하경을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하다니.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구지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결국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옆 벽에 주먹을 내리쳤다.강현우는 블랙 마이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6화

    소지연은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뭐 어때? 안 되면 말지. 우리한테 고객이 그 사람 하나뿐이 아니잖아. 천천히 하면 돼.”윤하경은 한숨을 내쉬며 뒷좌석에 몸을 깊숙이 기대었다. 겉으로는 언제나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가끔 모든 게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엄마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녀는 자신을 철옹성처럼 단단히 감싸며 살아왔다. 조금이라도 약해 보이면 누군가 틈을 타 자신을 짓밟아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그녀는 언제나 전투태세를 갖춘 닭처럼,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고 평소라면 윤수철은 벌써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다.하지만 오늘 윤수철은 소파에 단정히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윤하경은 그를 못 본 척 지나치려 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발걸음을 붙잡았다.“어디 갔다 온 거야? 왜 이렇게 늦었어?”윤하경은 돌아서며 쏘아붙였다.“갑자기 왜 저한테 관심을 가지세요?”엄마가 살아있던 시절, 윤수철은 괜찮은 아버지였지만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계모와 윤하연이 이 집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부녀 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하였고 지금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다.윤수철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지만 평소와 달리 화를 내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하경아, 여기 앉아봐. 할 얘기가 있어.”그의 부드러운 말투는 오랜만이라 더 의심스러웠지만 무슨 말을 꺼낼지 궁금해 얌전히 소파에 앉았다.윤수철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본론을 꺼냈다.“하경아, 우리 가문이 여기까지 오는데 쉽지 않았어. 그런데 말이다... 네 엄마가 남긴 물건 좀 나한테 줄 수 없겠니?”그 말에 윤하경의 얼굴이 단단히 굳어졌다.“그건 절대 안 돼요.” 그녀는 단호하게 외쳤다.“그건 엄마가 저에게 남긴 유일한 유산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드릴 수 없어요!”엄마가 남긴 건 열쇠 하나였다. 하지만 그 열쇠는 그녀가 스물네 살이 되기 전까지 열지 말라는 유언과 함께, 엄마의 가장 소중한 물건을 보관한 상자의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7화

    오늘은 윤하경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되는 날이었다.3년 전부터 윤수철은 이날을 완전히 잊어버렸지만 주미나는 매년 이날을 기억하며 윤하경과 함께 산소를 찾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올해는 윤하경 자신조차도 그날을 잊고 있었다.윤하경은 전화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머릿속에는 엄마가 세상을 떠나던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하경아, 오늘 오후에 같이 네 엄마 산소에 가자.”주미나는 부드럽게 말했고 윤하경은 한참 고민하다가 마침내 대답했다.“네, 어머님. 같이 가요.”결국, 그녀는 주미나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아직 아침 8시였다. 그녀는 이른 시간이지만 회사를 들러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섰다.회사의 상황은 최근 들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온지우가 어제 자신이 지나쳤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의 집안에서 맡고 있던 사업 일부를 윤하경의 회사에 넘겼다.온지우는 농담 반, 사과 반으로 메시지를 남겼다.[하경아, 어제 일은 내가 잘못했어. 구지호가 울면서 부탁하길래 도와준 거야. 이번 건 내가 우리 아버지의 파트너들한테서 어렵게 따낸 거야. 나중에 내가 회사를 맡게 되면 광고나 기획은 전부 너한테 맡길게.]메시지에 계약서 링크까지 첨부되어 있었다.[우리 회사 직원이 곧 너희와 협의하러 갈 거야. 걱정 말고 편히 있어.]윤하경은 메시지를 읽으며 약간 고개를 젖혔다. 온지우에게 화를 내는 것도 어쩐지 의미 없게 느껴져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온지우와 윤하경은 어릴 적부터 가까운 사이였다. 두 사람은 중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고 그녀가 구지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도 가장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온지우가 두 사람을 다시 이어보려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하지만 윤하경은 사랑할 땐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만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다.온지우 역시 그녀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오늘 이렇게 직접 사과하며 사업을 제안했을 것이다.온지우가 준 사업은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8화

    휴대폰 화면에는 강현우에게서 온 짧은 메시지가 떠 있었다.[시간 없어.]짧은 두 글자는 마치 그녀와의 대화를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처럼 차갑게 느껴졌다.윤하경은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고 차에 타자마자 주미나는 밝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하경아, 조금 있다가 지호랑 데이트라도 해봐.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잖아.”그녀는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고 있는 구지호를 흘끗 쳐다보며 차분히 대답했다.“오늘 저녁엔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요. 다음에 하죠.”구지호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비록 그녀가 완전히 거절한 것은 아니었지만 한때 자신을 향했던 그녀의 태도가 이렇게 달라졌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예전의 윤하경이라면 감히 이렇게 선을 긋지 않았을 텐데.그는 복잡한 표정을 숨긴 채 차를 몰아 구씨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윤하경은 차에서 내리며 주미나에게 깍듯하게 인사했지만 구지호는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바람피운 주제에. 이미 끝난 사람인데 내가 왜 다시 신경 써야 하지?’그녀는 단호히 마음을 다잡고 자리를 떠났다.차 안에서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온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곧바로 연결되었고 그가 있는 곳의 소음이 전화 너머로 생생히 전해졌다.“어, 하경아! 이제 화 푼 거야?”온지우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윤하경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건 네가 나한테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렸지.”“뭔데? 말만 해. 네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줄게.”온지우는 이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강현우가 오늘 밤 어디 있는지 좀 알아봐 줄래?”윤하경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 그러자 온지우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웃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너 설마 강현우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지? 그 남자는 좀 무서운 사람이야. 며칠 전에 어떤 여자가 강현우 방에 몰래 들어갔다가, 알몸으로 호텔 밖에 던져졌다는 얘기도 들었어.”윤하경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지만 곧 태연한 목소리로 말

Latest chapter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531화

    윤하경은 잠시 발걸음을 멈췄고 눈앞의 장면에 잠시 갈등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고개를 돌렸다.소지연은 당황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저 신인아라는 애, 강현우랑 무슨 사이야?”윤하경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몰라. 나도.”“그럼 너랑 강현우는...”“가자.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윤하경은 짧게 말한 뒤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강현우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민진혁에게 말했다.“신인아 데려다줘.”신인아는 고개를 들고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오빠는... 같이 안 가세요?”강현우는 그녀를 보며 차분하게 답했다.“괜찮아. 너 먼저 가. 시간 나면 갈게.”신인아는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럼 조심히 오세요.”그렇게 말하고는 민진혁에게 출발하라고 고개를 끄덕였다.윤하경이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던 찰나, 갑자기 조수석 문이 열렸다.놀라서 발을 브레이크에 올린 윤하경이 고개를 돌리자, 강현우가 몸을 살짝 숙인 채 소지연에게 말했다.“미안. 윤하경한테 할 말이 좀 있어서.”소지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윤하경은 입술을 꾹 다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현우 씨랑 저, 가는 길 다르잖아요.”명백한 거절의 뉘앙스를 담았지만 강현우는 개의치 않았다.그는 긴 다리를 자연스럽게 차 안으로 뻗고 앉더니 느긋하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운전해.”윤하경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저...”“아니면 내가 운전할까?”강현우가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를 바라봤다. 예전에 강현우가 몰았던 미친 듯한 속도가 생각나 윤하경은 말없이 시동을 걸었다.차가 조용히 주차장을 빠져나온 후, 강현우가 물었다.“신인아, 어떻게 알게 된 거야?”그 말투. 마치 자신이 신인아에게 일부러 접근이라도 한 것처럼 들렸고 윤하경은 속으로 혀를 찼다.“그 말, 제가 신인아한테 일부러 접근한 거라고 들리는데요?”강현우는 대꾸하지 않고 그저 창밖을 보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530화

    소녀는 말끝마다 볼이 희미하게 붉어졌다. 부끄러운 건지, 숨결 때문인지 얼굴이 희미하게 물들어 있었다.그제야 윤하경은 복잡한 생각을 털어내고 조용히 그녀를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었고 소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정말 고맙습니다.”“별말씀을요.” 윤하경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도, 윤하경은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멍하니 서 있었다.‘대체 저 애는 누구지? 송시안이 말했던, 강현우에게 중요한 여자라는 게... 설마?’“야, 너 왜 그래?”소지연이 옆에서 그녀 어깨를 툭 치며 말했고 윤하경은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아니야, 가자.”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옮겼지만 윤하경의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기만 했다.그런데 보석 매장 안에서 윤하경은 또다시 휠체어를 탄 소녀를 마주쳤다.진열대 앞에 앉은 그녀는 턱을 괴고 귀걸이들을 보고 있었고 표정은 어딘가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윤하경은 모른 척하고 돌아서려 했지만 이번엔 신인아가 먼저 그녀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어머, 그 언니다! 또 보네요?”“그러게요.”윤하경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쇼핑하러 오신 거예요?”소녀는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그냥 좀 둘러보는 중이에요.” 윤하경이 대답하고는 소지연의 팔을 끌어 매장을 나가려 했지만 소녀는 다시 윤하경을 불러세웠다.“잠깐만요! 혹시 시간 되세요? 제가 얼마 전에 귀국해서 친구도 없고... 혹시 이 두 개 중에 어떤 커프스링크가 더 나은지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도저히 못 고르겠어요.”윤하경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걸음을 멈췄다.하지만 그녀의 목에 걸린 곤륜 부적이 다시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윤하경은 결국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그때 소지연이 윤하경의 귀에 속삭였다.“너 원래 이렇게 남 일에 잘 끼어들었나?”윤하경은 못 들은 척하며 말했다.“어떤 두 개요?”신인아는 바로 점원에게 자신이 고른 두 가지를 꺼내달라고 했다.“이거랑 이거요.”윤하경은 커프스를 들여다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529화

    윤하경은 다시 한번 오건우가 보냈던 사진을 꺼내 봤다.흐릿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윤하경은 자조적으로 입꼬리를 살짝 비틀었다.‘내가 왜 이렇게 지질하게 굴지...’강현우와 자신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명분 없는 사이이고 떳떳할 것도, 묻고 따질 자격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 이렇게 사진 하나에 마음을 흔들리고 있다는 게 웃겼다.윤하경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휴대폰 화면을 꺼버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올라갔다.그런데 사무실에 도착한 순간, 그녀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배경빈 씨 오늘 안 나왔어?”윤하경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우슬기를 바라봤고 우슬기는 책상에 기대앉아 어깨를 으쓱였다.“안 왔어요. 앞으로도 안 올 거 같은데요? 아까 어떤 남자가 와서 자기가 경빈 씨네 집 가사 도우미라며 대신 사직서 냈다더라고요.”“대표님, 경빈 씨 진짜 어디 대단한 집 도련님 아니죠?”윤하경은 우슬기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잠시 바라보다,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신경 꺼.”그렇게 말은 했지만 책상에 앉아 커피잔을 집어 드는 순간, 윤하경 머릿속엔 어제 강현우가 툭 던졌던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배경빈, 왜 자꾸 네 주변에 맴돌지?’강현우와 이 일이 무관할 리 없었다.하지만 한편으론 잘된 일이기도 했다. 배경빈이 나간 덕에 그녀의 사무실이 다시 조용해졌으니까 말이다.윤하경은 서류를 정리하며 정신을 다잡았고 겨우 집중하기 시작했을 무렵 오랜만에 소지연에게서 카톡이 왔다.[하경아, 오늘 시간 돼? 잠깐 얼굴 좀 보자.]지난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연락을 끊었던 소지연이었다.회사는 부하직원들에게 잠시 맡기고 있었다고 했지만 그 뒤로 소식이 없었기에 더는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이제야 겨우 마음을 추스른 듯했다. 윤하경은 반가운 마음에 흔쾌히 약속을 잡았고 근처 대형 쇼핑몰에서 만나기로 했다.카페에 도착했을 땐, 소지연이 먼저 와 있었다. 얼굴에 살짝 피곤기가 보였지만 화장은 또렷했고 입술에는 진한 레드 컬러가 눈에 띄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528화

    윤하경은 박소희와 다를 게 없이 놀랐다. 그녀 역시, 강현우가 다시 돌아올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강현우는 아무렇지 않게 윤하경의 허리를 감싸안은 채, 비죽 웃으며 박소희를 바라봤고 겉으론 웃고 있지만 눈빛만은 싸늘했다. 박소희는 그 눈빛에 순간 굳어버렸지만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경 씨 말에 너무 화가 나서 잠깐 이성을 잃었어. 현우야, 그런 뜻은 아니었어. 나 진짜...”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고는, 낮고 느린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다시 묻을게. 도대체 누가 누구 약혼자를 유혹했다는 거지?”박소희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윤하경 쪽을 힐끔 보더니 결국 강현우의 싸늘한 눈빛에 기가 죽은 듯 고개를 숙였다.“우리 곧 약혼하잖아. 약혼자로서 적어도 사람들 앞에서는 나한테 체면은 세워줘야 하는 거 아니야...?”강현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렇지? 근데 말이야...”“내가 언제 약혼했는데?”그 한마디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폭탄처럼 박소희에게 직격했고 윤하경도 순간 숨을 멈췄다.그 말은, 눈앞에서 공개적으로 뺨이라도 맞은 듯한 충격을 안겨줬다.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런 수모를 겪어본 적 없는 박소희는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누구도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는데 강현우만은 예외였다. 그리고 더 괴로운 건, 그런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현우야... 그건 네 어머님이랑 우리 아빠가...”“그래서?” 강현우는 가볍게 웃었다. “그럼 그 사람들이랑 따져. 나랑은 무슨 상관이야?”그 말에 박소희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렸고 윤하경은 강현우 품 안에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무슨 뜻이지? 그럼 진짜 약혼한 건 아니었던 거야? 그 곤륜 부적은?’윤하경의 시선이 무심코 박소희 쪽으로 옮겨졌고 그제야 깨달았다.박소희의 목에는 어젯밤 그 값비싼 곤륜 부적이 없었다.그녀의 성격상, 만약 강현우가 그걸 준 거라면 분명 자랑하듯 걸고 나왔을 텐데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527화

    윤하경은 아직 마음이 복잡해, 강현우가 탄 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그런 그녀를 누군가가 부르자,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박소희를 보자 윤하경은 잠깐 당황한 표정이 스쳤지만 곧 웃으며 말했다.“소희 씨.”박소희는 턱을 살짝 들고 도도하게 물었다.“하경 씨, 시간 좀 있으세요? 아침이라도 대접하고 싶어서요.”“없어요.”윤하경은 단호하게 거절했고 박소희와는 굳이 엮이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박소희는 물러서지 않았다.윤하경이 거절하자, 아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숲길 안쪽의 레스토랑으로 끌고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 박소희는 두 팔을 끼고 앉아 윤하경을 노골적으로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윤하경은 시계를 슬쩍 확인하곤 무표정하게 말했다.“하실 말씀 있으면 빨리하세요. 회사에 회의 있어서요.”박소희는 윤하경의 여유로운 태도에 불쾌감이 치밀었다. 분명히 자신은 정식 약혼자임에도, 눈앞의 여자는 전혀 죄책감도 없어 보였다.“참 뻔뻔하시네요.”박소희가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하경 씨는 부끄럽지도 않아요? 정식 약혼자가 있는 남자랑 엮여 있으면서.”윤하경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제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죠?”늘 우아하던 박소희는 순간 이성을 잃었다. “윤하경! 너 윤씨 가문 딸 아니야? 경성에서 그 정도면 그럭저럭 이름 있는 가문인데 그런 여자가 감히 남의 약혼자랑 그렇게 엮여? 이런 자리에서 들키고도 창피한 줄도 몰라요? 양심 없어?”.아침 시간이라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커져가는 박소희의 목소리 때문에 레스토랑 안에 있던 직원들이 하나둘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고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그쪽을 힐끔거렸다.윤하경은 그녀의 격앙된 모습을 지켜보다,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차분한 그녀의 태도는 분노에 휩싸인 박소희와 극명하게 대비됐다.원래부터 윤하경은, 누가 위에서 내려다보듯 가르치려 들면 질색이었다.더군다나 그녀의 오늘 하루는 애초에 좋지 않았고 지금 이 상황은 한 번쯤 터뜨릴 좋은 기회였다.“소희 씨.”윤하경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526화

    윤하경은 조용히 입술을 다물었다가 다정하게 말했다.“현우 씨 바쁘시면 저 혼자 아침 먹을게요.”강현우는 그 말에 휴대폰을 거두며 그녀를 돌아봤다. 또렷하고 깊은 이목구비는 한 번 마주치면 쉽게 눈을 뗄 수 없는 인상이었다.“같이 먹기로 했잖아. 당연히 같이 먹어야지.”그는 단호하게 말한 뒤, 더 이상 휴대폰을 건드리지 않았다.윤하경은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고 사실 그녀는 그렇게까지 바라진 않았다.차는 숲길 끝에 도착했고 미리 연락이 되어 있었는지 둘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식탁 위에 아침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고 여러 가지 다과와 차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강현우가 이렇게 신경 써서 아침 식사를 챙겨주는 상황이라면윤하경은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도 입맛이 없었다.그래도 강현우가 옆에서 지켜보니 억지로라도 몇 입 먹었고 따뜻한 차가 목으로 넘어가자, 몸도 점점 따뜻해졌다.그런 둘의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안현주가 급히 옆방으로 뛰어들며 외쳤다.“소희야! 강현우한테 아침밥을 차릴 그럴 때 아니야.”조심스럽게 아침 식사를 도시락에 담고 있던 박소희의 손이 멈췄고 고개를 돌려 안현주를 흘겨봤다.“잔소리 좀 그만해. 너야말로 괜한 걱정은 하지 마. 회사 갈 때 내가 직접 들고 올라가면 되니까, 너는 밑에서 기다려.”안현주가 혀를 찼다.“너는 정식 약혼자랍시고 정성 다해서 도시락 싸고 있는데 지금 강현우랑 윤하경이랑 둘이서 다정하게 아침 먹고 있다니까?”안현주는 말하면서도 억울한 듯 코웃음을 쳤다.“진짜 강현우란 남자, 너 같은 사람 좋은 여자는 안 보이고 그 윤하경 같은 요상한 여자만 눈에 들어오나 봐.”박소희의 손이 살짝 떨렸다.“뭐라고?”안현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풀이했다.“네가 그렇게 마음 써주는 약혼자는 지금 윤하경이랑 사이좋게 조식 데이트 중이라고. 근데 너는 그 사람이 배고플까 봐 도시락까지 싸고 있고. 뭐, 아침 입맛 돋워줄 애피타이저는 이미 먹었을지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525화

    그 말을 끝으로 윤하경은 휴대폰 화면을 꺼버리고 조용히 욕실로 들어갔다.양치질을 하며 거울 속 자신의 멍한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는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입안의 거품을 헹구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조용히 그녀를 안았고 보지 않아도 강현우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막 자라난 까칠한 수염이 그녀의 피부를 간질였고 윤하경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그러나 강현우는 세면대 양옆에 팔을 짚어 그녀를 가둬버렸고 한 발짝도 도망갈 수 없는 거리였다.“왜, 어젯밤 내가 안 들어와서 화났어?”강현우는 손끝으로 윤하경의 콧등을 살짝 긁으며 말했다.“봐라, 또 이렇게 새침하게 굴고.”윤하경은 잠시 멈칫하다가 가볍게 웃어 보였다.“아니요, 안 화났어요.”강현우는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윤하경은 그를 끌어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현우 씨, 저 여기서 꽤 오래 지낸 것 같아요. 이제는 슬슬 나가서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괜히 사진이라도 찍혀서 기사 나면 현우 씨 이미지에 안 좋잖아요.”강현우는 윤하경을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도망치고 싶은 거야?”그의 눈동자에 잠깐 스치는 날카로움이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윤하경은 그를 진정시키듯 그의 셔츠 단추를 매만지며 말랬다.“아니요, 진심으로 현우 씨 걱정해서 하는 말이에요. 강한 그룹 같은 대기업이면 주가에도 영향 줄 수 있는 문제니까요.”이 비슷한 말은 예전에도 한 적이 있었지만 오늘따라 그 말투에는 미묘한 날이 서 있었다.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내가 그런 걸 신경 쓰는 놈처럼 보여?”윤하경은 잠깐 손을 멈췄다가, 이내 한껏 순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현우 씨는 안 신경 쓰시더라도... 전 해야죠.”그 말에 강현우는 그녀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나지막이 묻는다.“진심이야?”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였다.“네.”강현우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524화

    윤하경은 대답하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강현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마음에 안 들어?”윤하경은 눈썹을 살짝 모았다가, 속으로 맴도는 의문을 억누른 채 다시 환한 미소를 띠었다.“마음에 들어요.”강현우는 그녀의 말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또렷한 콧대 아래 옅은 미소가 스쳤고 그는 곧 민진혁에게 지시했다.“가자. 집으로.”그날 강현우는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실로 들어간 그는 윤하경의 입술을 조심스레 물었다.윤하경은 살짝 그를 밀치고 그의 의아한 눈빛을 받으며 변명을 꺼냈다.“저기... 오늘 좀 더워서요. 샤워 좀 하고 올게요.”하지만 강현우는 그녀를 벽에 가두며 낮게 속삭였다.“난 안 덥던데.”그 말을 마치기 무섭게 다시 입을 맞췄고 윤하경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사실 강현우는 이런 쪽에 능숙했다. 지쳐도 어쩌면 즐길 수도 있는 관계, 적어도 몸만 놓고 보면 말이다.하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할 새도 없이, 강현우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녀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고 있었다.몸이 미세하게 떨릴 무렵, 갑자기 그의 휴대폰이 울렸고 진동 소리는 조용한 방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윤하경은 조심스레 말했다.“전화 왔어요.”강현우는 이를 악물며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지만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그런데 전화를 받지는 않고 오히려 윤하경의 입술에 짧은 키스를 남겼다.“얌전히 집에서 기다려. 금방 올게.”말투는 부드러웠고 어딘가 아이 달래듯 느껴졌다. 그 말에서 ‘집’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윤하경은 잠깐 멍해졌다.‘집?’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 닿는 곳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임수연과 윤하연이 집에 들어온 이후 그곳은 더 이상 집이 아니었다.그런데 강현우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때,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다.강현우가 나간 후, 윤하경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역시 강현우 같은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523화

    오건우는 그 남자가 다가오는 걸 보더니 더욱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하 대표님, 막 서울 오셨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소개 좀 드릴게요. 이쪽은 강현우 대표님이에요.”하 대표라는 남자는 생각보다 젠틀한 인상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현우를 향해 손을 내밀며 정중히 웃었다.“반갑습니다. 평소 익히 들었습니다. 저는 하석호입니다. ”강현우는 무표정한 눈으로 하석호를 한번 쓱 훑어보고는, 그 손을 외면한 채 고개만 돌렸다.오건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이번엔 윤하경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리고 이쪽은 윤하경 씨입니다.”평소엔 권력자 곁에 있는 여자엔 별 관심 없는 하석호였지만 윤하경의 얼굴을 보자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윤하경 씨?”윤하경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현우처럼 무시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오건우와도 협업 중이었기에 말이다.“하 대표님, 반갑습니다.”말을 막 끝내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윤하경 씨, 혹시 예전에 모성에 가본 적 있으신가요?”모성은 국경 근처 외딴 도시였다.윤하경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가본 적 없어요.”하석호는 뭔가 더 묻고 싶은 듯했지만 강현우가 고개를 돌리며 그를 노려보듯 쳐다봤다.“하 대표님, 질문이 좀 많은 거 아닌가요?”하석호는 순간 당황한 듯했지만 금세 웃으며 넘겼다.“그러네요, 제가 좀 지나쳤나 봅니다.”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드디어 윤하경의 귀가 조용해졌지만 여전히 하 대표의 시선이 자기에게 꽂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이윽고 본격적으로 경매가 시작됐고 초반엔 관심 가는 물건이 딱히 없었다. 그러다 한 쌍의 사파이어 귀걸이가 등장하자 강현우가 고개를 돌려 윤하경을 바라봤다.“어때, 마음에 들어?”강현우는 윤하경 같은 예쁜 여자는 당연히 장신구를 좋아할 거라 생각했지만 윤하경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그래요.”강현우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지만 더 묻진 않았다.그때 사회자의 목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