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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에 김현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군. KP 같은 세계적인 컨소시엄은 어디서든 화제를 일으키기 마련인데, 그것도 몰라요? 이렇게 무능력할 줄이야...”

“모태 쓰레기라서 말해줘도 소용없을 거예요.”

김옥란은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이민혁을 바라보았다.

장인어른 유민상도 두 눈을 부라렸다.

“먹고 자고를 제외하고 할 줄 아는 게 있기나 해? 괜히 여기서 망신당하지 말고 꺼져.”

이민혁은 황당해서 되려 웃음이 났다. 나중에 그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이들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그나마 애초에 신분을 숨겼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이렇게 엉큼한 속내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 도우미들이 산해진미를 들고 와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곧이어 유민상이 말했다.

“김 대표님, 같이 식사하시죠.”

“좋아요.”

김현욱이 천천히 일어서자 유소희가 다정하게 팔짱을 꼈다. 네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식탁으로 다가가 차례로 앉았다.

이민혁은 시간을 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아직 10시밖에 안 됐는데, 점심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 아닌가요?”

“네가 뭘 알아? 김 대표님은 귀한 손님이시니 당연히 최선을 다해 접대해야지!”

유민상이 호통쳤다.

김옥란도 비꼬는 얼굴로 말했다.

“여기에 네가 낄 자리는 없어. 배고프면 주방에 가서 아무거나 주워 먹어.”

유소희도 이민혁의 체면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 김현욱과 딱 붙어 앉았고, 이대로 얼싸 껴안는 건 아닌지 싶었다.

이민혁은 속으로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 이는 누가 봐도 그에게 망신을 줘서 결국은 수치심에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내 빈털터리 신세로 쫓아내려는 심보였다.

사실 홀몸으로 유씨 가문을 떠날 계획이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다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떠보고 싶어서 느긋하게 말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으니까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그때 제가 드렸던 백억을 돌려주면 이혼할게요. 괜찮죠?”

“장난해?”

이 말을 듣자 김옥란이 발끈 화를 냈다.

“우리 집에서 3년 동안 지내면서 넌 한 푼도 안 쓴 줄 알아? 우리 딸이 너 때문에 돌싱녀가 되었는데 손해 배상을 청구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감히 우리한테 돈을 요구해?”

유민상도 냉소를 지었다.

“우리 집에서는 할 만큼 해줬다고 보는데? 적어도 제 분수는 알아야지.”

“이민혁,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해. 나랑 김 대표님이야말로 천생연분이야. 설마 네 앞에서 진짜 부부만 할 수 있는 일을 보여줘야 포기할 거야?”

유소희가 뻔뻔스럽게 말했다.

이민혁은 실망이 극에 달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극도로 실망한 탓에 아예 생각까지 바뀌었다.

그는 이혼을 서두르는 대신 경성에서 자신만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물론 이는 그에게 식은 죽 먹기였고, 주요하게 나중에 유씨 가문 사람이 무슨 표정을 지을지, 또한 눈앞의 김 대표란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을 뿐이다.

“그럼 천천히 드세요. 전 피곤해서 쉬러 올라갈게요.”

이민혁은 말을 마치고 나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유소희가 입을 열었다.

“김 대표님, 신경 쓰지 말고 어서 식사하죠.”

이내 반찬을 한 젓가락 집어서 그의 입에 가져다 댔다.

자기 방으로 돌아온 이민혁은 콧방귀를 뀌더니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잠시 후 전화가 연결되면서 청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하, 드디어 저희 생각이 나셨군요.”

그녀는 전 정보관이자 천재 해커, 최고의 저격수인 진이랑이다. 현재는 KP 컨소시엄 해외 본부장 직책을 맡고 있다.

“이랑아, KP가 서경에 왔어?”

이민혁은 본론부터 언급했다.

“네! 그분들이 결정한 일입니다. 각하께서 저희한테 보안만 책임지고 운영은 관여하지 말라고 하셔서...”

“알겠어. 주소 보내주고 담당자한테 지금 만나러 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전해줘.”

“네, 각하! 휴대폰으로 모든 정보를 전송하고 나서 담당자에게 연락할게요.”

이민혁은 전화를 끊고 잠시 고민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거실을 지나치던 중 유소희가 물었다.

“어디가?”

“잠깐 일 보러 다녀올게.”

이민혁이 무심하게 말했다.

유소희가 비아냥거렸다.

“너도 볼 일이 있긴 해? 어이없어서 정말, 얼른 짐이나 싸서 우리 집에서 나갈 준비해.”

이민혁은 피식 웃으면서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을 모욕한 것에 대해 김현욱과 유씨 가문은 곧 대가를 치를 테니까 건방지게 날뛴다 한들 못 본 척하기로 했다.

이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씨 가문 별장에서 성큼성큼 걸어나 왔다.

...

KP 컨소시엄, 진무도 서경시 본사.

꼭대기 층 사무실에서 대표인 남지유는 안절부절못했다.

방금 해외 본사의 연락을 받았는데 KP의 진짜 오너가 그녀를 보러 온다고 했다.

사실 그녀도 오늘에 이르러서야 이처럼 방대한 규모와 엄청난 자산을 소유한 컨소시엄의 오너가 서경시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분이 대체 왜 면담을 신청했단 말이지?

물론 해외 명문대학에서 금융학 박사학위도 취득해 견문이 넓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이런 거물급 인사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상대방은 그야말로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

연락받자마자 그녀는 즉시 프런트에 알렸고, 옷차림을 꼼꼼히 살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한 뒤 불안과 기대가 섞인 표정으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한편, 이민혁도 프런트에 접수하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남지유의 사무실 문 앞에 도착했다.

밖에 있던 비서가 벌떡 일어나서 물었고, 그가 이민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재빠르게 사무실로 안내했다.

누군가 들어서자 남지유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눈앞의 젊은 남자는 겨우 20대 초중반처럼 보였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꽤 잘 생겼다.

하지만 그는 절대 KP의 오너일 리가 없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 어찌 어마어마한 자산을 소유한 재벌일 수 있겠는가?

“누구...?”

남지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민혁이라고 해요.”

말을 마친 이민혁은 서슴없이 소파에 앉았다.

남지유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가 진짜 오너라니? 이럴 수가!

이내 충격을 뒤로 하고 직접 차를 대령하면서 허리를 굽혔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이민혁은 남지유를 위아래로 훑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지적인 느낌이 물씬 풍겼고, 성숙미와 세련미가 적절하게 섞여 있다. 오피스룩 차림은 그녀의 여성스러움을 한껏 부각하여 매력이 넘쳤다.

이민혁의 시선에 남지유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민혁은 곧바로 시선을 돌렸다.

“HT 그룹에 투자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남지유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맞아요.”

“좋아요.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일주일 안으로 HT 그룹의 실권을 장악해서 KP 컨소시엄이 HT 그룹을 장악할 수 있게 해줘요. 가능하겠어요?”

남지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KP 컨소시엄에서 투자한 자금만 해도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하기에 HT 그룹을 통제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확실히 조금 빠듯했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재빨리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꼭 일주일 안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할게요.”

첫 만남에서 상사를 실망하게 한다면 비즈니스 엘리트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은가? 더욱이 앞으로 어찌 KP에서 자리를 잡는단 말인가?

이민혁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아요. 일단은 이게 제일 시급한 일이라 나중에 차근차근 다른 일도 맡길 테니까 열심히 해요. 굳이 배웅할 필요는 없고, 제 신분도 비밀로 해주세요.”

말을 마친 이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지유는 감히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이민혁이 문을 열자 한 남자가 부리나케 들어오며 이민혁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상대방은 고개를 번쩍 들고 이민혁을 향해 말했다.

“눈은 장식품인가? 정신 안 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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