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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뭐?”

이민혁의 안색이 싸늘해졌다. 본인이 먼저 부딪혀놓고 되레 무례하게 굴다니?

남자가 콧방귀를 뀌었다.

“당신 어느 부서 소속이야? 이름이 뭐야?”

“그쪽은 어느 부서 누군데?”

이민혁이 싸늘하게 말했다.

남자는 건방진 표정으로 말했다.

“KP 컨소시엄 부대표 윤혁수라고 해. 당신 KP 직원 맞아?”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이민혁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윤혁수가 냉소를 지었다.

“넌 해고야, 당장 꺼져.”

이민혁은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났다. 이내 무심하게 되받아쳤다.

“여긴 해고도 마음대로 하나?”

“그래, 어쩔 건데? 내 말 한마디면 아무 때나 널 해고할 수 있어.”

윤혁수가 경멸이 가득한 얼굴로 말하자 이민혁이 느긋하게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대단해?”

“난 해외 본사에서 진무도 지사에 파견한 부대표이자 감사야. 여기 남 대표도 내 감시하에 일하는데 하물며 너 같은 놈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윤혁수는 고개를 치켜들고 이민혁을 내려다보며 비아냥거렸다.

이민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때, 문을 열고 나온 남지유가 윤혁수를 발견하고 물었다.

“무슨 일이죠?”

“대표님, 이 자식이 저랑 부딪혔는데 사과 한마디 없네요. 이런 기본도 안 되어 있는 직원은 해고하기로 했어요.”

윤혁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남지유가 문득 성큼성큼 걸어가 윤혁수의 뺨을 후려갈겼다.

‘짝’하는 소리와 함께 윤혁수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이죠?”

윤혁수가 버럭 화를 냈다.

남지유는 콧방귀를 뀌었다.

“당신 해고니까 당장 짐 싸요!”

“네?”

윤혁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남지유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진 대표님이 무슨 자격으로 날 해고하죠? 무려 본사에서 파견한 감사를?”

“그래요?”

남지유는 휴대폰을 꺼내 곧장 해외 본사에 연락했다. 잠시 후 윤혁수에게 건네주더니 버럭 외쳤다.

“받아요!”

윤혁수는 흠칫 놀라며 전화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휴대폰을 든 손까지 벌벌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지유는 자기 휴대폰을 홱 빼앗아 오며 싸늘하게 말했다.

“이제 나가줄래요?”

“아니, 대표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윤혁수는 겁에 잔뜩 질렸다. 방금 본사 직원은 그를 호되게 꾸짖었고, 해고뿐만 아니라 본사에 돌아와서 징계받도록 했다.

그는 보안과 처벌을 담당하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지유는 꿈쩍도 안 했다.

“할 말 있으면 본사에 돌아가서 해요. 지금 당장 나가요!”

이를 들은 윤혁수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알고 곧 닥칠 결과를 생각하자 온몸에 맥이 탁 빠지며 두려움에 그만 기절해버렸다.

이민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본사 놈들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죠? 개나 소나 입사할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대표님.”

남지유가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이민혁은 한숨을 쉬었다.

“당신 탓은 아니죠, 뭐.”

말을 마친 그는 미련 없이 떠났다.

남지유는 이민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슬쩍 닦았다.

건물에서 나와 대충 배를 채운 이민혁은 택시 타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니 벌써 점심이었고, 거실에는 유소희와 김현욱이 서로 껴안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김옥란과 유민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일부러 자리를 피해준 듯싶었다.

이민혁은 두 사람을 지나쳐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거기 서!”

유소희가 외쳤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이민혁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조롱이 섞인 얼굴로 말했다.

“당신 사내자식 맞아? 자기 와이프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데 어쩌면 찍소리도 못해?”

“내가 남자라는 걸 곧 증명하지.”

이민혁이 무심하게 말했다.

“다만 네가 인간이 맞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부터 드는데?”

“지금 날 욕한 거야?!”

유소희는 발끈하며 이민혁의 뺨을 때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민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고, 유소희는 아픈 듯 비명을 질렀다.

이를 본 김현욱은 곧바로 달려가 외쳤다.

“그 손 놓지 못해?!”

이민혁은 피식 웃기만 했을 뿐,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김현욱은 이민혁의 얼굴을 때리려고 주먹을 뻗었다.

이민혁이 눈 깜짝할 사이에 다리를 들어 올려 그를 걷어찼고, ‘퍽’하는 소리와 함께 김현욱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러고 나서 유소희를 놓아줬는데, 그녀는 뒤로 물러서며 괴로운 표정으로 손목을 움켜쥐었다.

이민혁의 싸늘한 시선이 두 사람의 얼굴을 잇달아 스쳐 지나갔고, 이내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한테 덤비지 마. 결국 본인만 다칠 테니까.”

김현욱이 버둥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나 욕설을 퍼부으려던 찰나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이내 휴대폰을 꺼내 보더니 서둘러 받았다.

잠시 후 그는 아픈 것도 잊은 듯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전화를 끊었고, 유소희를 향해 말했다.

“소희야, 나중에 다시 본때를 보여주자. 지금 KP에서 계약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우선 일부터 보러 갈게. 너도 얼른 회사로 출근해.”

이에 유소희는 원망이 담긴 눈빛으로 이민혁을 째려보더니 김현욱에게 말했다.

“알겠어요.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할게요. 얼른 가서 일부터 보세요.”

김현욱은 이민혁을 힘껏 노려보았다.

“딱 기다려요!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기다리죠, 뭐.”

이민혁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김현욱은 콧방귀를 뀌더니 이민혁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유소희와 함께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천억 투자금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만큼 반드시 거래를 성사해야만 했다.

허둥지둥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이민혁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환장하겠네, 정말. 나중에 일이 마무리될 때 무슨 표정을 지을지 너무 기대되는군.”

이민혁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한편, 김현욱은 차를 몰고 쏜살같이 KP 빌딩까지 달려가 남지유의 사무실을 찾았다.

남지유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김현욱이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와 연신 인사했다.

“앉으시죠.”

남지유는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게 말했다.

김현욱은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남지유는 서류 뭉치를 꺼내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김 대표님께서 신청한 투자 제안은 이미 통과되었어요. 서류에 사인만 하신다면 천억은 곧 귀사의 계좌로 입금될 거예요.”

김현욱은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황급히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러나 한참 후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말했다.

“남 대표님, 뭔가 잘못된 거 아니에요? 이사회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추가된 거죠?”

“자금흐름을 감독해야 하지 않겠어요?”

남지유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려 천억이에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갚으려고 그래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너무 많은데...”

김현욱은 약관을 읽어보며 속으로 탐탁지 않은 듯 말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지분이든 이사회 구성원이든 KP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기에 아무 때나 그를 이사회에서 쫓아낼 수 있다.

남지유는 똑바로 앉더니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몸을 살짝 숙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귀사의 발전 전망이 밝은 건 사실이에요. 다만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서 자금줄이 뚝 끊겼죠. 물론 KP 컨소시엄 같은 회사만이 HT 그룹을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재력과 패기를 갖고 있죠. 게다가 KP 같은 회사가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HT를 노리고 있을 거로 생각해요? 괜한 걱정하지 마세요.”

김현욱의 머릿속이 별안간 복잡해졌다. HT 그룹이 곤경에 처해 자금줄이 끊겨 위험천만한 상황에 이른 건 사실이다.

그래서 KP에게 도움을 청하는 반면 일부러 유소희와 접촉하면서 두 가지 준비했다.

KP가 반대하는 경우를 대비해서 유소희를 손에 넣어 유씨 가문의 자금으로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유씨 가문을 꿀꺽할 작정이었다.

다만 유씨 가문의 실력으로 기껏해야 현상을 유지할 뿐이고, 정말 구사일생하기 위해서는 이 천억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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