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눈빛과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지닌 남하준이 싸늘한 말투로 정호에게 물었다.“지금 이 사람 가르치는 거야 그냥 놀리는 거야?”정호는 바짝 긴장하여 침까지 삼켰다.“도련님, 저는 사모님께 호신술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장내에 있는 모든 이가 정호 대신 식은땀을 뺐다.그의 비겁한 수작을 남하준이 모를 리 있을까.그는 서다인을 옆으로 밀어내며 말했다.“멀리 가 있어.”서다인은 심장이 움찔거리고 이유 모를 설렘을 느꼈다.남하준은 그녀를 제대로 쳐다본 적도 없지만 이 동작은 분명 그녀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니까.‘하준 씨가 대체 왜 이러지?’그녀는 몹시 의아했다.남하준은 여유 있게 손목시계를 풀며 말했다.“우리 한 판 붙어. 네가 이기면 여기 남는 거고 지면 당장 꺼져.”정호는 식겁하여 사색이 된 얼굴로 횡설수설하며 해명했다.“도련님, 저는... 도련님께 상대가 안 돼요. 단지 사모님께 호신술을 가르쳐드렸을 뿐이에요. 제발 저 자르지 마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도련님...”남하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목시계를 서다인에게 건넸다.그녀는 시계를 받으며 또다시 이유 모를 설렘을 느꼈다.정호는 긴장하고 당혹스러운 채 꿈쩍없는 남하준을 쳐다보다가 결국 애원하는 눈길로 서다인에게 말했다.“사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러 넘어뜨린 건 아니에요.”남하준은 그에게 시끄럽게 변명할 기회를 안 줬다. 그는 마치 맹수처럼 정호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퍽!”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정호는 1미터 밖으로 튕겨 나가더니 바닥에 쓰러진 채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배를 끌어안고 서서히 몸을 움츠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서다인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남하준의 충격적인 무력에 그만 입이 쩍 벌어졌다.대박! 이토록 살벌한 공격이라니.만약 아까 맞은 게 그녀였다면 한방에 하늘을 뚫고 올라갔을지도 모른다.정호는 고통이 조금 가신 후 몸을 지탱하며 겨우 일어나 도련님이 여느 때보다 진지하단 걸 깨달았다.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오늘 무조건 잘릴 것이다.
서다인은 손 내밀어 그의 말을 툭 잘랐다.“됐어요. 여기 남으셔도 돼요.”그녀는 결코 속 좁은 여자가 아니다. 이런 사소한 일로 직업에 애정 품은 사람을 밥그릇을 잃게 할 생각은 없다.정호는 희열에 넘쳐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고맙습니다, 사모님. 사모님은 역시 마음이 너그러운 분이시네요.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분부만 하세요. 사모님을 위해서라면 두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서다인은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혼란스러워 무심코 손목시계를 정호에게 건넸다.“두 발 벗고 나설 필요는 없고, 일단 이 시계를 하준 씨한테 돌려주세요.”“네.”정호는 손목시계를 건네받았다.이때 서다인이 또 물었다.“이 근처에 기차역이나 공항 있어요?”정호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사모님 여길 떠나시게요?”서다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제 남편이 딴 여자랑 알콩달콩한 모습을 한시라도 쳐다보고 싶지 않으니까.이런 식으로 저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해 경향이 전혀 없다.돌아가서 할머니께 잘 설명해 드리고 이 죽일 놈의 결혼생활에 얼른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정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사모님, 제가 내일 휴가 신청하고 바래다 드릴게요. 안성시까지 차로 가려면 6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그래요, 고마워요.”서다인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몸에 기운이 쫙 빠진 채 나긋하게 대답했다. 이건 아마도 남하준을 향한 마음을 다 내려놓아서 그런 듯싶다.그녀는 흐리멍덩하게 훈련장을 떠났다.저녁 무렵 드리워진 따뜻한 노을빛은 아늑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냈다.서다인은 방에 숨어 책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점심도 안 먹었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됐다.그녀는 방에서 나와 곧게 주방으로 향했다.가는 길에서 남하준과 마주쳤고 그의 뒤엔 류청과 정호 두 명의 비서실장도 있었다.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올렸다.“사모님.”서다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응했다.“네.”남하준은
5번 과학 연구소 건물.사람들이 줄지어 코를 막고 안에서 도망쳐 나왔다.중독당한 대부분 사람들은 구토 증상을 일으키고 또 일부는 머리가 어지러워 바닥에 누워 있었다.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캠프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 전부 환자를 구하러 달려왔다.서다인은 숨을 헐떡이며 현장으로 달려와 남하준의 안위가 걱정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이때 남하준이 백하린을 안고 5번 건물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더니 의료 침대에 눕혔다.서다인은 문득 저 자신이 우스워졌다.그녀의 신경은 온통 이 남자인데 정작 이 남자의 눈엔 백하린밖에 없다.남하준은 백하린을 의사에게 넘긴 후 또다시 안에 들어가 사람을 구하려 했다.이때 백하린이 그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울며 애원했다.“오빠, 가지 말아요. 나 너무 아파. 토하고 싶어요...”“착하지.”남하준이 다정하게 타일렀다.“괜찮아. 의사 선생님이 옆에 있어.”백하린은 머리를 내저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울먹이며 계속 중얼거렸다.“가지 말아요. 나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오빠, 나 진짜 죽으면 어떡해요?”이때 류청이 달려와 보고했다.“도련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고 총 35명이 중독되었습니다.”남하준은 옆에 있는 연구원에게 물었다.“유 교수님, 대체 무슨 액체가 누출된 거죠? 생명의 위험은 있나요?”유주헌이 사색이 되어 바짝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청유액이라고 해외에서 들여온 신제품이라 저희도 아직 연구 단계에 있습니다. 이 제품에 대해 아예 익숙하지 않습니다.”남하준은 차가운 시선으로 의사를 쳐다봤다.의사는 흠칫 놀라더니 긴장감이 더 조여왔다.“도련님, 제가 오랫동안 의학을 공부해왔지만 청유액이란 화학 물질은 들어본 적이 없어 그 독성도 잘 모릅니다. 각 환자의 화학 실험 보고서가 나와야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할 수 있습니다.”“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왜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고 누출하게 된 거죠?”남하준은 분노 조로 쏘아붙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포스에
설마 이 여자의 조사에 대한 조사에 착오가 있었단 말인가?하지만 유주헌은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 미소를 활짝 지어 보이고는 가슴이 벅찼는데도 예의를 지키며 물었다.“사모님, 혹시 화학을 전공하셨어요?”강물처럼 맑은 눈을 가진 서다인은 순간 머리가 하얘져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모르겠어요, 기억이 없거든요.”“기억이 없다고요?”유주헌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보였다.“그럼 청유액이랑 레늄 원소는 어떻게 알고 있어요? 해독할 줄도 아시잖아요.”서다인이 한참 고민을 하다가 여유롭게 대답했다.“요리할 때는 소금을 넣어야 하듯이, 낚시할 때는 미끼를 던져야 하듯이, 이건 상식 아닌가요?”그녀의 말에 유주헌은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숭배의 눈빛으로 서다인을 바라봤다.멀지 않은 곳에서 정호와 류청은 부하들과 함께 중독된 사람들에게 식용 알칼리수를 마시게 했다.얼마 있지 않아 사람들의 구토 증상과 복통이 사라졌다.머리가 아직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해독약의 효과는 대단했다.류청은 남하준 앞에 다가오고는 예의를 갖추며 그에게 알칼리수를 건넸다.“도련님, 효과가 좋으니 하린 씨께 드리세요.”백하린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녀는 주목받는 서다인이 싫어 고집을 부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안 마셔요.”남하준이 미간을 구기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안 마셔?”백하린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하준 오빠, 나 이런 거 안 마실래요. 서다인 언니는 중학교도 졸업 못했잖아요, 지식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믿고 마시겠어요.”중학교도 졸업 못했다니, 그럼 초졸이란 말인가?놀라움을 금치 못한 사람들이 경멸이 깃든 눈빛으로 서다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서다인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속상하고 억울했지만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기에 일부러 괜찮은 척하며 입을 열었다.“하린 씨, 차래지식을 먹지 않으려는 그 패기, 대단하시네요. 어떤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켜나가시길 바랄게요, 화이팅!”말을 마친 서다인이
깊은 밤.서다인은 샤워를 마친 후 햇살이 가득한 등나무 의자에 앉아 잃어버린 휴대폰을 들고 뉴스를 확인했다.그녀를 납치한 김호영은 현장에서 사살되고 사기 센터의 피해자들도 모두 구출되었다. 그리고 범행에 가담한 사람들은 남하준의 부하들에게 잡혀 경찰에 인계되었다.그녀의 가방도 휴대폰도 모두 되찾았지만 아쉽게도 3년 동안 모은 돈은 모두 그녀의 친오빠가 빼돌렸다.지금의 그녀에게는 이 휴대폰 말고는 무일푼이다.기억을 잃은 후로 그녀는 은경애를 만났는데 은경애는 마치 원래 그녀를 알고 있던 것처럼 예뻐했고, 꼭 그녀를 곁에 두려고 했다.그렇게 서다인은 은경애 옆에서 3년 동안 간병인을 해 왔다.친구도 없고 불운과 재앙만 안겨주는 가족을 찾아갈 수도 없으니 생활고에 쪼들리는 지금 누구에게 돈을 빌려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서다인이 생각을 거두고는 문 쪽을 바라봤는데 남하준의 튼실하고 넓은 어깨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지금 문을 닫고 있었다.그런 그의 모습을 본 서다인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긴장된 마음에 시선을 거두고는 고개를 푹 숙여 휴대폰으로 디지털책 아무거나 하나 열어 읽기 시작했다.남자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는데 그가 내디딘 걸음마다 서다인의 심장을 강타하고 있었고 긴장감은 갈수록 커졌다.남하준이 그녀의 앞을 지나갔다.그녀가 고개를 들자 남하준은 베란다 난간을 등진 채 정면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압감을 풍기는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의심스러운 듯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그와 눈을 마주치자 서다인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지만 겨우 침착을 유지하며 나지막이 물었다.“왜 나를 그렇게 봐요?”남하준이 대답했다.“정말 3년 전에 있었던 일을 잊었어?”“네.”서다인이 고개를 끄덕였다.남하준이 입술을 감쳐물고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킨 뒤 또 물었다.“청유액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서다인의 머릿속에는 이 물질
서다인이 방 안의 책장을 가리키며 말했다.“요 며칠 하준 씨 책장에 있는 책은 전부 다 읽었어요.”남하준이 한 번 더 물었다.“정말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않겠어?”서다인이 고개를 숙였다.“네, 나 내일 아침 바로 갈 거예요. 앞으로 이곳에 올 기회는 더 없겠죠.”남하준은 더는 그녀를 설득하지 않았다.그녀의 곁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면서 외투 단추를 풀며 당부했다.“집으로 돌아가면 할머니에게 이혼 얘기를 꺼내지 마. 할머니께서 자극받으실까 봐 걱정돼.”휴대폰을 쥐고 있던 서다인의 손에는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그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괴로운 감정이 북받쳐왔다.“미안한데 하준 씨 책에서 어떤 여자애 사진을 봤어요. 그 뒤에 ‘내가 사랑하는 여자 백하린’이라고 쓰여 있더군요.”외투 단추를 풀던 남하준이 멈칫하더니 온몸이 굳어진 듯 제자리에서 꼼작도 하지 않았다.그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서다인은 가슴이 비수에 꽂힌 듯이 아팠다.말 못 할 고통에도 애써 괜찮은 척하며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면 당신이 가장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하린 씨겠죠?”한참 뒤에야 남하준이 정신을 차리고는 계속 외투를 벗으면서 무심하게 말했다.“어렸을 때 하린이를 많이 좋아했던 건 맞아. 하지만 하린이가 14살 때 외국 명문 학교에 합격했거든. 하린이가 출국한 뒤로 우리는 연락이 끊겼어. 10년 동안 한 번도 못 만났지. 심지어 하린이가 돌아온 첫해에도 두 사람 사이는 어색했어.”말을 마친 후 남하준은 곧장 욕실로 향하고는 문을 닫아 샤워하기 시작했다.그의 설명에도 서다인은 괴로운 마음이 조금도 덜해지지 않았다.그녀는 심지어 자기가 내연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남하준과 백예린은 어려서부터 서로를 좋아했으니까 말이다.만약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남하준은 분명 백하린과 결혼했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사랑도 감정도 없는 이 결혼에서 고통스럽게 버티지 않았을 것이다.찬 봄바람이 불어 들어오면서 서다인의
남하준이 방을 떠난 후 긴 복도를 지나 서재에 도착하고는 불을 켰다. 그리고 백하린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애교 섞인 백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준 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나 너무 무섭단 말이에요.”몸도 마음도 피곤한 남하준이 나지막이 물었다.“뭐가 두려워?”백하린이 애교를 부렸다.“그냥 너무 무서워요, 그냥 와서 같이 있어주면 안 돼요?”남하준이 시간을 확인하자 어느덧 밤 11시가 되어 단호하게 거절했다.“시간이 너무 늦었어. 내가 너희 집 앞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을 보낼게. 두려워할 필요 없고 일찍 쉬어. 나 내일 아침 일찍이 다인이를 안성에 데려다줘야 해.”백하린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투덜거렸다.“정호 씨가 데려다주는 거 아니었어요? 왜 하준 오빠가 데려다줘요?”남하준이 테이블 앞에 앉고는 이마를 짚은 채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다인이는 지금 내 아내잖아.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백하린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서다인 언니는 몸이 더러우니까 절대 같이 자면 안 돼요.”남하준의 얼굴색이 어두워지더니 그는 미간을 구기고는 엄숙한 말투로 말했다.“하린아, 그런 뒷담화를 하면 되겠어? 모든 사람에게는 존경받을 만한 과거가 있어.”백하린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엉엉... 하준 오빠, 정말 서다인 언니랑 잔 거예요? 전에 서다인 언니가 성병에 걸렸었다던데. 오빠도 감염되면 어떻게 해요?”다른 사람이었다면 남하준은 진작 화를 냈을 것이다.하지만 상대는 백하린, 그가 10년 넘게 짝사랑한 여자였다.남하준은 안타까운 마음에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하린아, 내가 다인이랑 자는지 안 자는지는 다인이를 향한 내 마음에 달렸겠지. 다인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당연히 다인이의 몸에 손을 대지 않을 거야. 딴생각은 그만하고, 다른 사람 뒷담화도 이제 더는 하지 마.”“그럼 하준 오빠는 나 그렇게 사랑하면서 왜 나랑 안 자려는 거예요?”백하린이 장난기가 가득한 말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눈빛이 어두
서다인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억울한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백하린 씨 곁에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여자의 부드럽고도 조심스러운 목소리에는 억울함과 불쾌함이 묻어났다.그 어떤 남자라고 하더라도 서다인의 말에 마음이 살살 녹을 것이다. 남하준도 예외는 아니었다.하지만 그는 이런 느낌이 싫어서 일부러 차가운 척하며 대답했다.“괜찮아.”서다인이 한숨을 푹 쉬고는 더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하준 씨가 데려다준다면 받아들이지, 뭐. 마침 돌아가서 이혼하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말이야.”서다인이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유일하게 남은 휴대폰과 가방을 챙기고는 남하준을 따라 방을 나서 식당에 아침 먹으러 갔다.이른 아침 식당에는 오가는 직원들이 끊이질 않았다.그들을 본 사람들은 모두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도련님, 사모님, 좋은 아침입니다.”남하준은 그들의 인사에 대답하지 않았다.인사를 건넨 사람이 워낙 많기도 했기에 다 대꾸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서다인은 그녀에게 인사를 건넨 사람에게 모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똑같이 인사를 건넸다.“좋은 아침이에요.”서다인은 캠프에 있는 며칠 동안 예의 바르고 겸손하며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풀었다. 게다가 중독 사건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았기에 사람들은 서다인을 매우 좋아했다.서다인은 식탁 앞에서 음식을 기다렸다.남하준이 아침 두 세트를 챙기고는 하나를 서다인에게 건넨 후 식사를 시작했다.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만두피는 그대로 두고 그 안의 고기만 쏙 골라 먹는 서다인을 발견했다.삶은 달걀도 흰자만 먹고 노른자는 건들지도 않았다. 심지어 소고기죽도 파를 전부 골라냈다.남하준은 가슴이 왠지 모르게 움찔하다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그녀를 보며 물었다.“나쁜 습관은 걔랑 정말 닮았네.”서다인이 죽을 먹으면서 나지막이 물었다.“누구랑요?”“하린이 말이야.”남하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눈치 없이 또 물었다.“여자들은 다 이렇나 봐?”서다인은 원래도 기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