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 오랜만입니다. 여전히 몇 년 전처럼 젊고 멋지시네요.”마틴은 베컨을 보자마자 앞으로 나서서 존경심을 가득 담아 말했다.“너도 이제는 날 아부할 줄도 아는구나.”베컨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아부라니요? 제자가 하는 말은 다 진심입니다.”마틴도 웃으며 받아쳤다.“좋아, 먼저 환자를 보러 가자. 셋째 왕자님도 아직 날 기다리고 계셔.”그 말에 마틴은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흥분한 말투로 물었다.“셋째 왕자님도 여기에 계신다고요? 선생님, 저를 셋째 왕자님께 소개해 주실 수 없나요? 저도 이 기회에 왕자님과 친분을 쌓고 싶습니다.”왕실 의사 팀에 들어가는 건 곧 출세를 의미한다.아무리 많은 명예나 칭호라도 왕실 의사라는 신분에는 미치지 못한다.샛터 의사들은 평생을 분투해도 목표는 오직 이 하나뿐이었다.베컨은 그 말을 듣자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네가 왕실 의사 팀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네 노력에 달려 있어. 네 의술과 인품이 충분히 뛰어나다면 분명히 들어갈 수 있을 거야.”“스승님, 전 그냥 스승님께 의술을 배우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이제 저는 스승님 빼고는 더 이상 의술을 배울 사람이 없습니다.”마틴은 빙빙 에둘러 말하며 베컨을 칭찬했다.마틴의 칭찬을 듣자 베컨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내가 이 환자를 치료하고 나면 나와 함께 셋째 왕자님을 뵈러 가자.”“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스승님!”마틴은 흥분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병실에 도착하자 마틴은 바로 크리스에게 소개했다.“크리스 씨, 이분이 제 스승님 베컨입니다.”“베컨 닥터, 일찍이 귀하의 명성을 들었습니다. 정말 오래전부터 왕실 수석 의사인 베컨 닥터를 알고 싶었습니다.”크리스는 거만한 태도 대신 존경심만 가득한 태도로 공손하게 말했다.심지어 유옥순도 침대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서 있었는데 이전의 그 오만방자하던 유옥순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과찬입니다. 그럼 잡담은 그만하고 먼저 환자 상태부터 보죠.”베컨이 손을 내저었다.“네, 이분이 제
“겸사겸사 셋째 왕자님도 이 기회에 뵈면 되겠네요.베컨의 말에 마틴이 또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스승님, 셋째 왕자님께서 지금 그 신의를 만나고 계신다고요?”“맞아요, 셋째 왕자님 외에도 넷째 공주님도 함께 계실 겁니다. 잠시 후 만날 때 다들 꼭 용모와 태도에 신경 써 주세요. 지금처럼 흥분해서 소리치거나 통곡하고 그러지 말고요.”베컨이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베컨 닥터, 안심하세요, 우리 절대 그러지 않을 거예요. 아연아, 얼른 내가 입을 옷을 다시 골라줘.”모녀는 바로 이쁘게 화장하고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었다.유옥순 일행이 만나러 가는 사람은 신의뿐만 아니라 샛터 왕실 왕자와 공주도 있었다.이 인물들은 TV에서만 볼 수 있는 정상급 거물이었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런 인물을 직접 만나게 된다니, 유옥순뿐만 아니라 크리스도 흥분한 건 마찬가지였다.크리스는 예전에 소하비를 만난 적이 있지만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그래서 크리스는 이번에는 이 소중한 기회를 잡고 제대로 대화를 나눠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다들 일단 진정하세요. 제가 셋째 왕자님께 전화로 여쭤보고요.”베컨은 휴대폰을 꺼내 병실을 나가 소하비에게 전화를 걸었다.“무슨 일인가요? 베컨 닥터?”“소하비 왕자님, 여기 환자가 한 명 있는데 오직 진서준 씨만이 환자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남편은 우리 샛터의 파리치 가문인데 왕자님을 직접 뵙고 싶어 합니다.”베컨이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네? 파리치 가문이요? 그럼 그분들을 여기로 모셔 오세요.”소하비가 고개를 끄덕였다.샛터에서 왕권 다툼은 반드시 누군가의 지지가 필요했다.이 파리치 가문은 샛터의 4대 재벌 중 하나였다.만약 파리치 가문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면 소하비가 후계자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다.“소하비 왕자님이 동의하셨으니 다들 얼른 준비하고 바로 가죠.”“네, 알겠습니다.”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며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진서준, 잠시 후 베컨이 환자를 데
유옥순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어제 병원에서 유기태와 어떻게 다퉜는지 잊어버린 듯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유옥순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오빠에게 달려갔다.“큰오빠, 둘째 오빠!”어제 병원에서 오만방자했던 유옥순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어라? 너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어?”유기태가 눈살을 찌푸렸다.“베컨 닥터를 따라 여기에 계신다는 신의를 만나러 왔어.”유옥순이 활짝 웃으며 말하자 형제는 서로를 마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유옥순이 말한 신의가 진서준은 아니겠지?유옥순은 심지어 어제 신의 진서준과 한바탕 크게 말다툼까지 벌였다.“아 맞다, 내가 소개할게. 이분은 내 남편 크리스야. 샛터 4대 부자 중 한 명이야. 그리고 이쪽은 내 딸 노아연이야.”유옥순이 차례로 소개했다.“큰형님, 둘째 형님, 안녕하세요.”크리스가 유창한 대한민국어로 인사했다.크리스가 겸손하고 진심 어린 태도를 보이는 건 상대가 유옥순의 친오빠였기 때문이 아니라 소하비 왕자가 유씨 가문 저택에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소하비 왕자가 유씨 가문에 있다는 건 소하비 왕자가 유씨 가문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걸 의미했다.그래서 당연히 유씨 가문의 두 가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안녕하세요.”크리스가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자 유씨 형제는 금세 호감을 느꼈다.“첫 만남인데 급하게 와서 제대로 준비한 선물이 없네요. 간단하게 선물 두 개를 준비했는데 두 분 제 성의를 받아주시길 바랍니다.”크리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뒤에 있던 경호원이 즉시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상자를 열어 보니 안에는 투명하고 깨끗한 옥으로 만든 반지 두 개가 있었다.반지 위에는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는데 대충 추정해도 다이아몬드 한 개의 가치는 최소 2000억 이상이었다.이 정도의 크기에 완벽한 외형을 자랑하는 다이아몬드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었다.유씨 형제는 처음 보는 후덜덜한 스케일에 깜짝 놀랐다.첫 만남에 이렇게 귀한 선물을 준비했다니
“셋째 왕자님, 이쪽은 제 아내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건 베컨 닥터가 언급한 그 신의님한테서 아내의 병을 치료받고 싶어서입니다.”크리스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알겠습니다. 그 신의는 방금 화장실에 갔으니 금방 돌아올 겁니다.”소하비가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맞다, 크리스 씨, 요즘 제가 들은 소문이 있는데 우리 큰형이 크리스 씨 유전을 겨냥하고 있다던데, 맞나요?”소하비가 갑자기 화제를 틀었다.“그건...”크리스가 쓴웃음을 지었다.“첫째 왕자님 지시인지는 모르겠지만 환경보호국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서는 우리 회사 유전이 오염이 심하다며 채굴을 중단하고 개조하라고 합니다. 3개월 안에 개조한 유전이 여전히 불합격이면 다른 회사에 유전을 넘기라고 하더군요.”유전은 바로 이 샛터 부자의 목숨과도 같았다.그런데 지금 크리스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하니 크리스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환경보호국의 국장은 첫째 왕자 행크와 두터운 친분을 자랑했다.크리스도 지금 샛터 와자들이 왕위 다툼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첫째 왕자 행크가 일부러 크리스의 트집을 잡는 건 크리스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였다.“역시 소문이 틀리지 않았네요.”소하비의 눈에 의미심장한 빛이 번뜩였다.“크리스 씨, 안심하세요. 며칠 후 제가 귀국하면 이 일을 다시 조사해 보겠습니다. 환경보호국 사람들이 정말로 생트집을 잡는 거라면 제가 크리스 씨를 위해 공정하게 처리할 겁니다.”“감사합니다, 셋째 왕자님.”크리스가 바로 일어나 감사를 표했다.강압적인 행크와 비교하면 소하비가 상대하기 훨씬 더 쉬웠다.크리스가 주동적으로 후원할 왕자를 선택한다면 아마 이 왕자를 선택할 것이다.하지만 왕위 다툼은 반드시 잘 판단하고 지원해야 한다.소하비가 성공적으로 왕위에 오르지 못한다면 크리스에게 차례질 것은 죽음뿐일 것이다.크리스가 모든 재산을 버리고 본국을 떠난다면 아마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셋째 왕자님, 그 신의는 언제 오시나요?”유옥순의 질문에 소
진서준을 보자마자 유옥순의 머리는 새하얘졌고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아까부터 오른쪽 눈꺼풀이 계속 떨려서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소하비 왕자가 말한 그 진 신의가 진짜 진서준이었다.수습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어제까지만 해도 진서준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는데, 과연 진서준이 유옥순을 치료해 줄까?“너희 서로 아는 사이야?”소하비는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하고 물었다.진서준의 얼굴엔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고 유옥순은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잘 알지. 게다가 우린 한 번만 만난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죠? 유옥순 씨?”진서준이 싸늘한 말투로 물었다.“대체 무슨 일인데?”소하비는 미간을 찌푸렸다.설마 이 둘 사이에 뭔가 갈등이 있었나?“단순한 일이야. 첫 번째 만남은, 이 사람들이 역주행해서 우리 차를 들이받을 뻔했어.”진서준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두 번째 만남은, 유기태 삼촌이 병원으로 날 데려갔는데 유옥순 씨가 내 의술을 믿지 않고 병원에서 쫓아냈지.”“그리고 오늘이 세 번째 만남이야.”이 말을 듣자 소하비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상황을 이해했다.진서준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단순했다.유옥순이 외모만 보고 대놓고 사람을 무시했기 때문이었다.유옥순의 얼굴은 완전히 창백해졌다.유옥순은 빠르게 머리를 굴린 후 이내 결정을 내렸다.“죄송합니다, 진서준 씨. 어제는 제가 너무 흥분해서 큰 실수를 했어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진서준과 소하비 왕자의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지금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병도 못 치료할 뿐만 아니라 남편까지 곤란해질 수 있었다.“사과한다고?”진서준이 쌀쌀하게 비웃으며 말했다.“소하비 왕자가 여기 없었다면 과연 나한테 사과했을까?”자기 속셈을 그대로 들켜버리자 유옥순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응접실의 분위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베컨은 모든 게 자업자득이라는 표정으로 유옥순을 쳐다보았다.유옥순은 오빠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
“왜? 못 쓰겠어?”진서준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아, 아뇨. 씁니다, 쓸게요.”유옥순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지금 자기 목숨이 진서준 손에 달렸는데 감히 반항할 수 없었다.“손으로 써.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때울 생각은 하지 말고. 반성이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난 널 절대 치료하지 않을 거야.”진서준이 한마디 더 보탰다.펜으로 써야 한다는 말에 모녀는 울상이 되었다.하지만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황급히 종이와 펜을 찾아 들고 반성문을 쓰기 시작했다.“너희 둘은 정말 집안 망신이야. 돌아가면 제대로 혼내줄 거야.”크리스가 두 사람의 뒷모습에 화도 나고 답답하기도 해 이를 악물었다.그러고는 소하비 왕자에게 다가가 감사의 뜻을 표했다.“왕자님, 아까 제 아내를 위해 진 신의님을 설득하셔서 감사합니다.”“별거 아니에요. 같은 식구인데 도와주는 건 당연하죠. 다만...”소하비가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앞으로 가족 교육에 신경 좀 쓰세요. 집안사람들이 밖에서 막 나가면 안 되잖아요.”“네, 알겠습니다. 셋째 왕자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크리스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 이쪽은 크리스 씨야. 샛터 4대 부자 중 한 명이야.”소하비가 소개하자 크리스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셋째 왕자님 앞에서 제가 감히 부자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겠습니까.”“괜히 겸손 떨지 마세요.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다 같은 식구잖아요.”소하비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진 신의님, 제 아내와 딸을 대신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크리스는 진서준을 향해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나한테 사과할 필요 없어요. 대신 저 두 사람을 데리고 역주행으로 크게 다친 소녀에게 사과하세요.”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사실 유옥순이 진서준한테 진 빚은 없었다.진서준이 유옥순을 치료해 주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두 사람의 오만함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걱정 마세요, 이따가 사고 피해자 두 분을 찾아
“아, 허사연 씨, 오해하지 마세요. 전 그냥 진서준을 도와주러 왔을 뿐이에요.”예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매우 당황했다.허사연과 진서준이 공식적인 연인 관계라는 걸 알고 있는 예린은 지금 자기가 바람피우다 걸린 기분이 들었다.머지않아 두 사람은 곧 결혼할 것 같은데 지금 자기가 상대방의 남자친구와 단둘이 방에 있다가 들킨 것이었다.“예린 씨는 샛터 공주님이잖아요. 이런 잡일은 우리에게 맡기세요.”허사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저도 예전부터 약을 제조하는 걸 한번 쯤 시도해 보고 싶었어요.”예린의 말에 허사연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럼 우리는 더 이상 방해하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친 허사연이 돌아서서 방을 떠났다.“언니, 이렇게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허윤진은 허사연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허윤진은 사실 예린을 밀어내고 허사연과 함께 진서준을 도와 약재를 만들려고 했다.“그럼 어쩌겠어?”허사연이 되묻자 허윤진이 머리를 긁적였다.“이렇게 그냥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진서준이 저 공주에게 마음이라도 생긴다면 어쩔 건데?”예린은 중동 여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린의 아름다운 미모는 세계 어느 나라 남자라도 충분히 끌어당길 수 있었다.아름다운 것에 대해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의견은 사실 일치했다.게다가 예린은 샛터의 공주였다.한 나라의 공주를 손에 넣는다면 그 성취감만으로도 수많은 남자의 정복욕을 자극할 수 있었다.“진서준을 믿어야 해.”허사연은 담담하게 웃으며 전혀 당황해하지 않았다.“알았어, 언니도 그렇게 태연한데 내가 굳이 당황할 필요는 없겠네.”자매가 방에서 나가자 예린은 마음이 불안해졌다.“진서준 씨, 제가 진서준 씨와 허사연 씨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요?”“아니요, 사연은 배려할 줄 알고 이해심도 깊은 사람이니 이런 일을 마음에 두지 않을 겁니다.”진서준이 담담하게 웃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을 무조건 믿었고 진서준 또한 마찬가지로 허사연을 믿었다.
“너 정말 남의 집에서 주인 행세를 잘하는구나.”진서준이 눈을 부라리며 아니꼽게 말했다.“당연하지, 우리 사이가 보통 사이야?”소하비는 진서준의 어깨를 감싸며 어깨동무했다.이 모습을 본 크리스는 입이 떡 벌어졌다.샛터 왕자는 고귀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이건 아무리 봐도 자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강남, 진씨 가문.지금의 진씨 가문은 김연아의 통제 속에 있었다.김연아는 이제 진씨 가문의 가주가 되었다.본래 진씨 가문 내부에서 김연아에 대해 불만이 섞인 소리가 많았는데 김연아와 진서준의 관계가 공개된 후, 아무도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진서준이 동북의 두 명문대가를 제압한 일은 이미 대한민국의 모든 가문에 널리 알려졌다.그러니 더 이상 진서준과 공개적으로 적대적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은 없었다.“아가씨, 차이더리스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 뵙고 싶다고 합니다.”진씨 가문의 집사가 김연아에게 보고했다.“또 왔어요?”김연아는 눈살을 찌푸렸다.요새 차이더리스 가문의 셋째 도련님은 자주 김연아를 찾아왔다.말로는 진씨 가문과 협력하고 싶다고 했지만 김연아는 상대방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았다.증거는 없지만 김연아의 직감은 항상 정확했다.“들어오게 하세요.”김연아는 잠시 생각한 후, 상대방을 방에 들이기로 했다.차이더리스 가문은 초아국 최고의 3대 가문 중 하나였다.가문 구성원은 거의 초아국의 군부, 사업체, 정부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그 세력이 무시무시했다.게다가 대한민국에서도 차이더리스 가문 산하의 회사가 적지 않게 있었다.이런 대단한 가문을 진씨 가문이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잠시 후, 금발에 푸른 눈의 잘생긴 청년이 사무실에 들어왔다.이 사람은 바로 차이더리스 현 가주의 셋째 아들 리앙이었다.“김연아 씨, 어제보다 더 아름다워지셨군요.”리앙은 들어오자마자 바로 김연아의 미모를 칭찬했다.“리앙 씨, 여기 오신 이유가 제 미모를 칭찬하기 위해서는 아니겠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