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장님? 이봐, 너희들이 도망가려고 한 일을 우리 사장님이 알게 된다면 그냥 끝장나는 거야.”직원의 말에 가태윤은 서둘러 말했다.“서준아, 그냥 돈부터 내면 안 될까?”“그럴 돈이 있으면 내고도 남았겠죠! 내가 보기에 저 새끼도 그냥 거지예요!”나수진은 이를 꽉 악문 채 팅팅 부은 눈으로 진서준을 노려봤다. 김원과 나수진은 진서준도 자신들과 똑같은 꼴로 만들고 싶었다.진서준은 고집스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술 마시다 말고 계산하는 법이 어디 있어. 난 절대 안 해.”이 말을 듣고 직원은 목청껏 외쳤다.“그렇다면 내가 새로운 법을 만들어주지!”경호원들은 진작 기다리고 있었다. 진서준이 계산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이미 슬금슬금 모여들었다.키가 2m에 달하는 경호원들은 체격도 어마어마했다. 반대로 진서준은 근육 하나 없는 것이 한 번 맞으면 픽 쓰러질 것 같았다.눈에 뻔히 보이는 격차에 사람들은 눈을 찔끔 감았다. 경호원 중 한 명은 손을 뻗어 진서준의 멱살을 잡았다. 그렇게 그를 들어 올리려고 말이다.하지만 그가 힘을 주기도 전에 진서준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것만으로 그는 추호도 움직일 수 없었다. 경호원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 지경으로 힘을 줬는데도 움직일 수는 없었다.“꺼져!”진서준은 빠르게 발을 올려 경호원을 차버렸다. 그 경호원은 벽에 부딪히며 떨어졌다.경호원이 부딪혔던 자리에는 거미줄 같은 금이 가 있었다. 그것만 봐도 진서준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알 수 있다.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 수많은 경우가 있었지만 진서준이 맞서 싸울 줄은, 심지어 우세를 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이게 어디서 감히... 때려눕혀!”경호원들은 일제히 진서준을 향해 달려갔다.퍽! 퍽! 퍽!룸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술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은 전부 검은색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었다.진서준을 바라보는 마연정의 표정은 아주 가관이었다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김성진은 인상을 썼다. 옷을 챙겨 입은 그는 분노 가득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났다.‘누군진 몰라도 오늘 내 손에 죽을 줄 알아!’하지만 문을 연 순간 그의 분노는 사르르 풀렸다. 분노가 사라진 자리를 대체한 것은 당황뿐이었다. 악마를 본 인간이 지을 법한 표정이었다.물론 진서준은 그에게 악마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만월호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그도 익히 알았기 때문이다.그는 원래 만원홀에서 만났던 고수들과 자리 한 번 마련할 생각이었다. 근데 그 고수 중 한 사람이 진서준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아무튼 그는 진서준과 자리를 마련하려던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대성 종사까지 손쉽게 상대하는 진서준이라면 그의 형인 김범수도 얌전히 고개를 숙여야 하는 레벨이었다.“사장님, 이 새끼가 술값을 내지도 않고 우리 애들을 팼어요. 아까는 제가 말렸어야 했는데 이 새끼가 너무 막무가내예요.”이때 직원이 뒤따라 들어오면서 진서준이 했던 일들을 얘기했다. 하지만 직원이 칭찬해달라는 듯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김성진이 손을 들어 그의 뺨을 힘껏 때렸다.뺨을 맞고 머리가 어지러웠던 직원은 멍한 표정으로 김성진을 바라봤다. 그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지도 못했다.“너 지금 누구한테 새끼라고 하는 거야. 죽고 싶어?!”김성진의 말을 듣고 진서준은 눈썹을 치켜떴다.“자꾸 나를 나쁜 사람 취급하네요. 난 식사가 끝나고 계산하겠다고 했을 뿐인데요.”“아닙니다! 서준 님이 저희 마그레라에 와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김성진은 굽신거리며 진서준의 앞으로 갔다. 그러고는 값비싼 담배까지 건넸다.그의 모습을 보고 직원은 입을 떡 벌렸다. 뺨을 맞은 고통까지 잊을 정도였다.“담배 안 피워요. 그나저나 이 가게는 직원 인성이 너무 더럽던데요? 밥 먹기도 전에 계산하라고 하질 않나, 깡패들을 데리고 와서 폭력을 쓰질 않나.”진서준의 말을 듣고 김성진은 손을 덜덜 떨었다. 담배마저 바닥에 떨어뜨릴 정도의 손 떨림이었다.‘서준 님한테 감히
지금은 과연 안전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되었다. 진서준이 돈을 내지 못하면 가태윤의 얼마 남지 않은 돈이 탈탈 털리게 된다.“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진서준 그 자식은 쫄보야. 해외에서 싸움질 좀 배웠다고 이 세상이 자기 거라도 되는 줄 알아?”마연정은 사정없이 말했다.“제기랄, 내가 여기에서 나가기만 해봐. 그 자식을 죽여버리고 말 거야!”김원은 표독한 눈빛으로 말했다.이때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의 시선 끝에 진서준이 태연하게 걸어들어왔다. 몸에는 상처는커녕 생채기 하나도 없었다.“서준아, 너 왜 괜찮아?”마연정이 물었다.“내가 안 괜찮아야 하는 건가?”진서준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너 여기 사장 만나러 갔다며?”“응.”자리에 앉은 진서준은 자신이 산 양주를 태연하게 마셨다.“그럴 리가! 마그레라의 사장은 널 가만히 내버려둘 사람이 아니야!”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진서준을 노려보며 말했다.“그래요? 근데 가만히 내버려뒀을 뿐만 아니라 선물까지 주던데요?”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 그가 말하는 새로 섹시한 드레스를 입은 여직원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그녀들이 품에 안은 술은 하나같이 2000만 원을 넘기는 것이었다.“서준 님, 이건 저희 사장님께서 드리는 서비스입니다.”예쁘게 생긴 여직원 한 명이 진서준의 앞으로 가서 공손하게 말했다.“전부 따줘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게 다섯 개의 술 뚜껑은 전부 따졌다.“서준 님, 저희가 노래를 불러드릴까요?”여직원은 교태롭게 말하면서 윙크까지 했다. 다른 여직원도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녀들을 보내기 전 김성진은 수도 없이 당부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서준을 기분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됐어요. 필요할 때 부를 테니까 이만 나가요.”진서준은 그녀들을 보는 체도 하지 않았다.“네!”여직원들이 떠난 다음 룸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
술자리가 끝났을 때는 어느덧 저녁 11시가 되었다. 카운터에서 계산하려고 할 때 김성진의 지시로 계산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진서준은 김원을 호락호락하게 보낼 생각이 없었다.“그중 네 병은 이 두 사람이 주문한 거예요.”그는 김원과 나수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돈 절약 했다고 속으로 좋아하던 김원은 놀란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두 사람의 불편한 사이를 보아낸 직원은 눈치껏 김원에게 말했다.“잔돈 빼고 총 4500만 원입니다, 손님.”김원은 곧바로 카드를 꺼냈다. 그의 얼굴 꼴만 봐도 지금은 자존심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카드에서 돈이 긁혀 나간 순간 그는 가슴에서 피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서준 님, 이건 저희 사장님께서 선물로 드리는 VIP 카드입니다. 이 카드가 있다면 앞으로 마그레라에서의 모든 소비는 무료입니다!”직원은 카드 한 장 꺼내서 진서준에게 공손히 건네줬다. 진서준은 이 카드가 김성준이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주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별말 없이 받아서 들었다.곁에서 가태윤 등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그레라에서 무료라니, 이런 카드는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마그레라에서 나간 다음 가태윤이 진서준이게 말했다.“서준아, 너 택시 타지 마. 내 차 타고 가자, 내가 대리기사 부를게.”“괜찮아, 내 차도 근처에 있어. 조심해서 돌아가.”진서준은 웃으면서 거절했다. 그러고는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마이바흐를 향해 걸어갔다.“서준 씨!”차를 마그레라에 두고 가라는 말에 조성우는 진서준이 술을 마셨으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특별히 대리기사를 불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산성 별장으로 가주세요.”차에 올라탄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 기사는 곧바로 시동을 걸었고 그렇게 가태윤 등의 눈앞에서 사라졌다.“헐, 최고가 마이바흐?! 저거 족히 4억 원은 하는 차야!”마이바흐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면서 가태윤은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마연정은 후회하고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멍청한 짓이 자꾸만
“수행하는 분들은 보통 일찍 일어나지 않나요?”주혁구는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서준 님은 저희와 달라요. 이따가 만난 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죠?”전화를 끊은 다음 주혁구는 또 한 시간 기다렸다. 그러다 이승재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신성 별장으로 오라고 했다.주혁구가 도착했을 때 이승제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들어가죠!”차량은 진서준의 별장 앞에 가서 멈춰 섰다. 대문 앞으로 걸어간 이승재는 직접 초인종을 눌렀다. 진서라는 곧장 문을 열고 밖에 나왔다.“누구 찾으세요?”저희는 진서준 님과 만나러 왔습니다.”진서라를 알아본 이승재는 공손하게 말했다. 진서라는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물었다.“제 오빠를 만나러 왔다고요?”“네.”이승재는 고개를 끄덕였다.“일단 들어오세요. 제가 오빠를 부르러 갈게요.”“아닙니다, 저희가 직접 가면 됩니다!”이승재는 주혁구와 함께 진서준이 있는 옆 별장으로 향했다. 주혁구는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승재 님, 방금 전의 그 여자가 서준 님의 동생이에요? 저는 딸인 줄 알았어요!”주혁구는 이승재보다 강한 진서준의 나이가 절대 작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서라를 동생이 아닌 딸로 본 것이다.“서준 님은 아주 젊으신 분이에요. 들어가서 함부로 입 놀리면 안 돼요.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말을 마친 이승재는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한참이 지났는데도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아직 방에 돌아가지 않았던 진서라가 그 모습을 보고는 열쇠를 들고 다가왔다.“오빠 아직 안 깨났나 봐요. 거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불러줄게요.”“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거실에 들어간 다음 이승재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주혁구도 덩달아 꼿꼿하게 앉아서 추호도 움직이지 못했다.“오빠, 일어났어?”2층에 올라온 진서라는 진서준의 방문에 노크했다. 수련 중이던 진서준은 진서라의 목소리를 듣고 옷매무시를 정리하며 문을 열었다.“무슨 일 있어?”진서라는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이승재는 공지에서 벌어진 일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진서준은 주혁구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만약 진서준이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는 이번에 아주 대차게 망할 것이다.지금의 주혁구에게서는 어제의 오만함을 보아낼 수 없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후회와 공손함 뿐이었다.주혁구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던 진서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돈만 있으면 남한테 함부로 대해도 되는 줄 알았어요? 어제 아침 당신이 신호등을 어겨서 사고를 내놓고 사과하기는커녕 은행 카드나 던져댔죠.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보였어요?”진서준의 말을 들은 이승재와 진서라는 이제야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이해했다. 진서준 뿐만 아니라 그들도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화가 머리끝까지 솟아올랐을 것이다.“제가 잘못했어요, 서준 님. 앞으로 두 번 다시 같은 일을 하지 않을게요. 화 푸세요.”진서준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주혁구는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서준 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준 님만 저를 용서해 주신다면 무엇이든 할게요!”주혁구의 진심 어린 표정을 보고 진서라가 말했다.“오빠, 저 사람한테 기회를 한 번만 더 줘봐.”진서준은 진서라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넌 마음이 너무 약해서 탈이야.”만약 진서라가 아니었다면 그는 진작 주혁구를 쫓아내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사고를 내고도 사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아버지를 살려준 사람에게도 오만하게 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진서준이 흔들린 것을 보고 이승재는 말을 보탰다.“서준 님, 주 사장 공지의 살귀가 벌써 사람을 둘이나 죽였어요! 만약 서준 님이 나서주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을 거예요.”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감옥에서 장철결을 전수 받을 때부터 그는 힘든 사람을 도와야 하는 위치에 처했기 때문이다.사부의 당부가 떠오른 그는 바로 대답했다.“그래, 그럼 오늘밤 같이 다녀오지.”진서준이 허락한 것을 듣고 이승재와 주혁구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사람이 귀신을 무서워하는 만큼 귀신도 사람을 무서워했다. 특히 사람이 많은 곳에는 귀신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주혁구의 공지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런데도 살귀가 나타난 걸 보면 누군가 일부러 키웠다는 것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오빠, 나 오후에 시간 있는데 같이 구경해도 돼?”진서라는 얌전히 진서준의 곁에 앉아서 말했다. 예상 밖의 질문에 진서준은 눈썹을 찌푸렸다.“안 무서워?”“무서워, 근데 오빠가 있잖아.”진서라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동생의 애교에 진서준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그래, 같이 가자.”말을 마친 진서준은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이만 몸을 일으켰다.“오빠, 어디가?”“살 물건이 있어서.”별장을 나선 진서준은 마이바흐를 타고 골동품 거리로 향했다.그는 원래 도구를 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진서라와 함께 가야 한다면 부적 정도는 써야 할 것 같았다.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도 귀신들이 그녀를 건드리지 못하게끔 말이다.골동품 거리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난 그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기억하고 있던 몇 가게 사장들은 우르르 몰려와서 자신들이 구한 물건들을 보여줬다.“손님, 이 물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봐줄 수 있을까요?”“어이, 내가 먼저 왔거든? 이것부터 봐주세요!”“이건 제가 4000만 원이나 주고 산 것인데 꼭 좀 봐주세요!”진서준은 그들이 들고 있는 물건들을 훑어봤다. 그중에는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었다.“이상하네. 저 사람들 왜 젊은이한테 저런 부탁을 하죠?”자초지종을 몰랐던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아직 모르죠? 저분이 보기에는 젊어도 실력이 아주 출중해요.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능력이 황보식 대가님 못지않다니까요!”한 가게의 사장이 설명했다.“그뿐만 아니라 성철 어르신도 저분께는 아주 공손해요.”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허풍이라고 생각했다.오늘 단지 물건을 사러 왔을 뿐인 진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비켜요, 검증은 전문가한테 맡기고요.”진서준
가게의 문 앞에는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 있었다. 그의 피부는 천 년 묵은 나무껍질과 같았고 피부 밖으로 튀어나온 혈관은 꿈틀대는 벌레와 같았다.그중에서도 가장 불쾌한 것은 독사와 같은 그의 눈이었다.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이 일반인이라면 진작 피해 갔을 것이다.조금 전에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도 노인이 낸 목소리였다. 가게 직원은 왜 두 사람 다 쓰레기 반지에 관심을 가지는지 몰랐던지라 약간 어리둥절해 보였다.“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사장님을 불러올게요.”말을 마친 직원은 곧장 사장을 찾으러 갔다.노인이 가게 안에 들어선 순간 진서준은 곧바로 기온이 떨어진 것을 느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노인을 훑어봤다.사악한 기운은 노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삼켰다. 만약 어둠 속에서 만났다면 분명히 귀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그는 노인에게서 묘한 영기를 느꼈다. 신기하게도 그 영기는 권해철보다 얼마 약하지도 않았다.권해철은 남주성의 모두에게 존경받는 위인이다. 그만큼 명성도 자자했다. 눈앞의 노인은 권해철 정도는 아니지만 명성이 자자해야 마땅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진서준은 이런 사람의 존재를 듣도 보도 못했다.진서준이 노인을 훑어보고 있을 때 노인도 관찰하듯 그를 훑어봤다. 예리한 빛은 노인의 눈에서 번뜩이고 있었다.“어른을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미덕일세. 그 반지 나한테 양보하면 안 되겠나?”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미소에는 칼이 숨겨져 있었다.“제가 먼저 발견한 물건을 왜 양보해야 하죠?”진서준은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곧장 반지를 자기 손가락에 꼈다.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노인은 다시 한번 말했다.“아직 계산도 하지 않은 물건 아닌가. 누구의 것이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네. 지금은 내 200만 원을 줄 테니 양보하게나.”노인이 돈 얘기를 꺼냈는데도 진서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싫어요.”200만 원은커녕 2000만 원, 2억 원이 된다고 해도 그는 양보할 생각이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