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밖에 바람이 좀 세게 불어서.”진서준이 말했다.“환절기라 제가 없는 며칠 동안 꼭 몸을 잘 챙기고 아프지 말아야 해요.”허사연은 진서준이 아플까 봐 무척 걱정하였다.비록 진서준이 보통 사람이 아니어서 감기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는 걱정되는 마음에 한 번 더 귀띔해 주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감기에 걸리지 않을 거예요. 오히려 사연 씨가 건강에 더 신경을 써야 해요.”진서준은 오히려 허사연을 걱정했다.“그런데 누렁이도 혜윤이와 같이 고양에 왔어요?”누렁이가 집에 없으니 진서준은 허사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종사 경지의 고수 중에서 누렁이와 실력을 겨룰 만한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누렁이는 혜윤이를 너무 좋아해요. 그래서 같이 가게 놔두었어요. 게다가 저는 집에만 있으니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빨리 서라 씨를 구해내세요. 제가 도착할 때쯤 서라 씨도 함께였으면 좋겠네요.”허사연은 걱정스레 말했다.“알겠어요. 최선을 다할게요.”진서준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전화를 끊자 또 다른 곳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지수, 왜 또 전화해?”진서준은 화를 내며 말했다.“어? 아직 죽지 않았네. 나는 네가 어제 레이 호텔에서 죽은 줄 알았어.”유지수는 듣기 거북한 말을 했다.그녀는 여전히 매를 부르는 목소리로 말했다.“할 말 있으면 빨리 해.”진서준은 차갑게 말했다.“하루밖에 남지 않았다고 통보하러 온 거야. 만약 옥선화를 얻지 못하면 나는 서라의 한 손을 자를 거야.”유지수는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서라를 다치기만 해봐!”진서준은 두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강렬한 살기가 그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병원 복도 온도마저 몇도 낮아진 것 같았다.“그럼 기다려봐.”유지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때 진서준은 손가락 마디를 움직이면서 우두둑 소리를 냈다.“옥선화가 어디 있는지 아직 몰라.”진서준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럼 내가 알려줄게.”유지수가 말했다.“정말?”진서준은
황씨 저택으로 가는 길에 진서준은 한제성을 보며 물었다.“제성 씨, 황씨 저택 뒷산에 금지 구역이 있다는데 들어본 적이 있어요?”“아버지께서 언급한 적은 있어요. 몇 년 전에 술법 대사를 청해서 큰 진을 쳤다고 했어요. 대성 종사도 그곳에 들어간 후 나온 적이 없다던데요.”한제성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정말요? 대성 종사가 안에서 죽었단 말이에요?”진서준은 궁금해서 물었다.대성 종사는 강기화이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성 종사를 죽일 수 있는 진법은 많은 양의 영기가 필요했다.지난번 황씨 저택에 갔을 때 진서준은 어떠한 영기도 느끼지 못했다.“황씨 가문 사람들이 한 말인데 사실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한제성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러자 진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이 일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왜냐하면 유지수가 방금 전화로 진서준에게 귀띔해 주었기 때문이다.그곳은 황씨 저택 금지 구역이기에 들어가기 매우 어렵다. 유지수는 진서준을 걱정해서 귀띔한 것이 아니라 진서준이 죽으면 그녀에게 옥선화를 가져다줄 사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한제성과 진서준은 곧 황씨 저택에 도착했다.불과 며칠 사이에 현관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벽에는 거미줄이 걸려 있었다.“여기서 기다리세요. 제가 들어가 보고 올게요.”진서준은 한제성의 어깨를 토닥이었다.“네. 조심하세요. 서준 씨.”한제성이 걱정스레 말했다.황씨 저택에 들어선 후 진서준은 현관을 지나 뒷마당에 도착했다. 그리고 강철로 납땜한 문 앞에 도착했다.지난번 황씨 저택에 왔을 때 그는 현관까지만 왔을 뿐 뒷마당에는 오지 않았다.만약 그때 이렇게 이상한 문을 봤더라면 진서준은 다가가서 분명히 한번 꼼꼼히 확인했을 것이다.진서준이 손바닥에 살짝 힘을 주자 용접되어 있던 강철은 마치 나무젓가락처럼 부러졌다.철거덕...불과 2, 3초 사이에 몽둥이처럼 굵은 10여 개의 철 막대기는 산산조각이 된 채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진서준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다른 세계로 들어간 것 같
눈 깜짝할 사이에 요괴는 광풍을 일으키며 진서준 앞에 도착했다.하지만 진서준의 옷은 바람에 날리지도 않았다.“흥!”호진요괴는 진서준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경고하며 울부짖었다.“꽃 한 자루를 가지러 왔어. 갖고 이내 돌아갈게.”진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호진요괴는 영성이 있어 진서준이 하는 말을 대충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임무는 대진을 지키고 외부인의 침입을 막는 것이다.그는 진서준을 들여보낼 리가 없었다.그래서 진서준의 말을 듣자 요괴는 갑자기 뛰어올랐고 2미터 넘는 거대한 몸집으로 진서준을 향해 돌진했다.진서준이 한 손을 앞으로 내밀자 검소리가 들리더니 예리한 검 한 자루가 나타나 주위의 흰 안개를 쓸어버렸다.천문검을 손에 쥐자 진서준 체내의 신기는 천문검으로 몰려들었다.진서준은 검을 들고 머리 위에 떠 있는 요괴를 향해 돌격했다.탕!검과 요괴의 발이 부딪히자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진서준이 서 있던 곳은 20센티미터 정도 꺼지면서 발이 움푹 패어 들어갔다.“2품 대종사에 가까운 실력이네. 그러니 대종사도 들어가지 못하지.”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하지만 너는 영기로 만들어진 물체이니 내가 마침 너와 맞설 수 있는 한 수가 있군.”진서준은 한 손을 요괴의 발 위에 올려 놓았다. 그러자 힘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느낀 요괴는 진서준을 발로 차면서 버둥거렸다.하지만 진서준은 요괴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힘을 다해 그의 발을 꽉 잡았다.“흥!”요괴는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요괴가 아무리 분노해도 소용이 없었다.진서준의 흡성대법은 효과가 대단했다. 진서준이 이 기술을 쓸 줄 몰랐더라면 그는 요괴를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10여 분 후 요괴는 점점 더 허약해지고 눈빛도 흐리멍덩해졌다.진서준은 담담하게 웃더니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면서 요괴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요괴는 비명을 짖고 쓰러졌다. 순간 산속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진서준은 천문검을 거두지 않고 계속 산속으로 걸어갔다. 그는 또 무슨 일이 생길까
진서준의 위치를 알게 된 뒤 유강은 곧바로 황영산을 데리고 한씨 일가로 향했다.“우리 둘만 갔다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황영산은 조금 두려웠다.한씨 일가는 대단한 가문으로, 총 세 명의 종사와 진서준이 있었다.유강과 함께 갔다가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까 봐 황영산은 두려웠다.진서준은 황영산에게 고양시로 다시 돌아오면 죽여버리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두려운 건 아니죠?”유강은 경멸에 찬 눈빛으로 황영산을 바라보았다.“그래도 황씨 일가 가주인데 겨우 이 정도로 무서워해요? 그날 무도 경기 때 먼저 떠나지 않았으면 겁을 먹고 기절했겠어요.”유강의 날카로운 비아냥에 황영산은 얼굴이 뜨거웠다.“나는 만일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사람이라면 실수할 때가 있기 마련인데 그래도 안전한 편이 낫지...”황영산이 말했다.“전 어차피 이곳에 아는 사람이 없어요. 혹시 아는 사람이 있으면 몇 명 불러와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와도 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들이 나설 기회 따위는 없을 테니까요.”유강은 말을 마친 뒤 차 천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퍽...유강의 주먹으로 인해 두랄루민으로 만들어진 차 천장이 망가졌다.반대로 유강의 손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아니, 안 불러도 되겠어. 너 혼자면 될 것 같아.”황영산이 서둘러 말했다.“흥, 진서준이라는 놈의 몸이 이 차보다 더 단단하지는 않겠죠.”유강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더니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무도 경기 때, 유강은 심하게 맞았었다. 그 이유는 그의 상대가 인의방 11위인 대종사였기 때문이다.인의방 40위 아래의 무인들이라면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1품 대종사도 마찬가지였다.국안부에서는 아직 진서준의 이름을 인의방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유강은 진서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그리고 유강은 진 마스터라는 사람을 속 빈 강정이라고 생각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곧 망가진 차를 타고 한씨 일가 앞에 도착했다.“한씨 일가 가주와 진서준에게 전해. 내가 왔으니 당장 나오
퍽...“콜록콜록...”한서강은 자기 목을 잡고 계속 기침했다.조금 전 황영산이 목을 졸랐을 때 한서강은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이건 살짝 혼내준 것뿐이에요. 당장 진서준에게 연락해서 이곳으로 오라고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여버릴 거니까.”황영산은 한서강을 내려다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다.“다 죽여버릴 거라고요? 우리 한씨 일가에 종사가 없는 줄 아는 건가요?”한서강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인승민 종사님, 얼른 나와요. 여기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어요.”눈 깜짝할 사이에 인승민과 두 명의 종사가 한씨 일가 별장 안에서 걸어 나왔다.“누가 한씨 일가에서 소란을 벌이는 거죠? 죽고 싶나 봐요?”인승민이 차갑게 말했다.“저 두 사람이에요!”한서강은 황영산과 유강을 가리켰다.유강의 얼굴을 본 인승민과 다른 두 명의 종사는 안색이 순식간에 달라졌다.그날 무도 대회 때 세 사람은 현장에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유강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당신들, 죽고 싶지 않다면 당장 꺼져. 난 유명하지도 않은 자들을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유강은 팔짱을 두른 채 거만한 표정으로 인승민 등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인승민 등 사람들은 사실 조금 두려웠으나 유강의 말을 듣자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화르르 타올랐다.종사로서 그들 또한 자긍심이 있었다.“유강 씨,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건 아닙니까?”인승민이 차갑게 말했다.“날 과대평가하는 게 아니야. 그저 당신들은 전혀 내 상대가 되지 않을 뿐이야.”유강은 끊임없이 비아냥댔다.“당신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난 전력을 다할 필요도 없어.”“건방지군요!”“같이 덤벼. 난 약자를 괴롭혔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유강은 중지를 세우더니 인승민 등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세 사람은 그 광경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더는 참을 수 없었다.“같이 덤비죠. 저놈을 단단히 혼내주자고요!”갑자기 주변에서 광풍이 몰아치기 시작했고, 세 개의 서로 다른 색의 강기
황영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유강이 인승민 등 세 사람의 상대가 안 될까 봐 조금 걱정됐었다.인승민 등 세 사람도 이름을 날린 지 꽤 된 사람들이라 실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 보니 민머리 유강의 실력이 더욱 강한 듯했다.“한서강 씨, 지금 당장 진서준에게 죽으러 오라고 연락하지 않는다면 이 세 사람부터 죽일 줄 알아요. 그리고 당신 가족들도 한 명씩 죽일 거예요.”황영산은 앞으로 나서면서 흉악한 얼굴로 말했다.한서강은 황영산이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란 걸 알았다. 황영산은 정말로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래요. 기다려요. 지금 당장 진 마스터님께 연락하겠어요.”한서강은 허성태와 달리 진서준과의 관계가 그리 깊은 편은 아니었다.휴대전화를 꺼낸 한서강은 진서준에게 연락하는 대신 먼저 한제성에게 연락했다.그는 진서준이 일을 보러 외출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진서준에게 연락하면 그의 일을 방해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아빠, 무슨 일이세요?”한제성은 본인이 직접 운전해서 진서준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진 마스터님은? 어디 계셔?”“차에 타고 계시는데요.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에요.”한제성은 아버지의 말투에서 이상함을 눈치챘다.“아빠, 무슨 일 있는 거예요? 아주 조급한 것처럼 느껴지네요.”한제성이 황급히 물었다.“황영산 씨가 민머리 남자와 같이 찾아왔어. 인승민 등 종사들도 그 민머리 남자의 상대가 되지 않았어.”한서강이 말했다.“뭐라고요? 황영산 그 자식이 사람을 데리고 복수하러 왔다고요?”한제성은 깜짝 놀랐다.당시 황영산이 진서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얼마나 애절하게 빌었었는지 한제성은 직접 두 눈으로 보았었다.그런데 겨우 며칠 지났다고 황영산은 사람을 데리고 와서 진서준에게 복수하려고 했다.“빨리 갈게요. 십 분 내로 도착할 거예요.”전화를 끊은 뒤 한제성은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진서준 씨, 황영산 씨가 진서준 씨에게 복수하려고 민머리 남자를 데리고 왔대요
한서강은 아직 멀쩡했다. 그의 몸에는 다친 흔적이 없었고 한제성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한씨 일가 가주 자리에 앉아 있는 유강을 본 진서준은 눈빛이 싸늘해졌다.역시 그자였다.“둘 중에 누가 진서준이지?”두 젊은이를 본 유강은 느긋하게 포도를 입에 넣었다. 그는 진서준이 안중에도 없었다.황영산은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을 가리켰다.“저놈이다. 바로 저놈이 진서준이야!”유강은 진서준을 보더니 경멸에 찬 미소를 지었다.“겨우 20대로 보이는 젊은이가 강하면 얼마나 강하겠어요? 황씨 일가가 왜 저놈을 이기지 못했는지 알겠네요. 황씨 일가의 종사들도 저 쓸모없는 세 사람처럼 전부 쓰레기였던 거겠죠.”유강이 비웃자 한서강과 황영산은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러나 두 사람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유강은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진서준, 넌 오늘 틀림없이 죽을 거야.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와도 널 구할 수 없어!”황영산은 표독한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난 네 뼈를 전부 부러뜨리고 널 조금씩 괴롭혀서 죽일 거야. 너에게 죽는 것보다 괴로운 기분이 어떤 건지 똑똑히 알려주겠어!”진서준은 덤덤한 표정으로 평온하게 말했다.“내가 얘기했을 텐데. 또 한 번 고양시에 온다면 반드시 죽일 거라고.”“우습네. 유 종사가 있는데 내가 너 같은 놈을 두려워하겠어?”황영산은 같잖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조금 전 유강이 인승민 등 사람들을 이겼을 때 황영산은 자신감이 생겼다.말을 마치자마자 진서준의 모습이 사라졌다.사람들은 당황했고 곧 황영산은 죽음의 기운이 자신을 향해 다가옴을 느꼈다.황영산은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진서준은 이미 그의 앞에 나타나서 그의 하체를 찼다.퍽...황영산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두 다리를 힘껏 오므린 채로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아!”괴로워하는 황영산의 모습에 현장에 있던 남자들 모두 하체가 서늘해져서는 저도 모르게 손으로 중요 부위를 가렸다.유강은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
바닥에 누워있던 황영산은 진서준이 유강의 주먹에 맞아서 날아갈 줄 알았다.그런데 갑작스러운 반전에 아파서 기절할 뻔했던 황영산은 넋이 나갔다.한씨 일가의 세 종사는 유강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그런데 진서준은 왜 멀쩡한 걸까?설마 유강이 진서준을 봐준 걸까?“이게 힘의 반을 쓴 거라고? 너무 약한데.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진서준은 경멸에 찬 눈빛으로 차갑게 웃었다.그의 거만한 말에 유강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건방 떨지 마. 이제 곧 웃음이 나오지 않게 해주지!”유강은 잡힌 주먹에 몰래 힘을 꽉 주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마치 그의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이 손이 아니라 펜치 같았다.전력을 다한 유강은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유강, 어떻게 된 거야?”황영산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강을 바라보았다.“전... 전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어요. 제가 전력을 다한다면 이 집은 무너질 거예요. 그렇게 되면 당신은 도망치지 못할 거예요.”유강은 서둘러 거짓말했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숨기기 위해서 말이다.황영산은 유강이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금 전 유강이 보여준 힘은 확실히 대단했기 때문이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짓궂은 표정으로 유강을 바라보았다.“그래. 내가 기회를 한 번 주겠어. 우리 나가서 싸우자고!”말을 마친 뒤 진서준이 먼저 몸을 돌려 거실을 나갔다.유강은 안색이 또 한 번 달라지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같이 나갔다.황영산은 의자를 지팡이로 삼아서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갔다.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죽고 싶어질 정도로 엄청난 통증이 따랐다. 한제성 부자도 서둘러 따라 나갔다. 그들은 진서준이 어떻게 유강을 혼내주는지 보고 싶었다.별장 거실을 나가 앞마당에 있는 풀밭에 도착한 뒤, 진서준은 유강을 바라보면서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나는 당신이 이 기회를 틈타서 도망칠 줄 알았는데.”“우습네. 내가 도망칠 리가 있겠어? 너야말로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그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