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진은 주변에 미인이 이렇게 많은데도 진서준이 밖에서 다른 여자들과 애매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뜻이었다.이 말을 허사연이 하면 문제가 없는데 허윤진이 말하니 이상하게 들렸다.처제가 될 허윤진도 진서준을 좋아한단 말인가?정작 허사연은 아무 생각도 없이 진서준을 흘기며 말했다.“우리는 서준 씨처럼 밖에 애인을 두고 그러지 않아요.”진서준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사연아. 그건 너의 착각이야. 나는 한 번도 밖에서 여자를 찾은 적이 없어. 나의 첫 경험을 너를 위해 지금까지 남겨두고 있어.”진서준의 말이 사실이긴 하지만 허사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무슨 헛소리를 하고 그래요.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진서준이 허허 웃으며 호텔 밖으로 나갔다.어제밤 자기 전에 류재훈으로부터 강주 호국사의 위치와 이름을 알아냈다.유기태, 2품 대종사, 베스트 랭킹 18위.실력으로 치면 그다지 강하지는 않았다.국안부에서 그를 이곳으로 파견한 이유는 유기태가 유씨 가족이기 때문이다.하여 유기태가 강주를 진수한 지 오래됐지만 누구도 감히 이곳에서 행패를 부리지 못했다.진서준은 차를 허사연 일행이 사용하라고 남겨주고 택시를 타고 유기태 만나러 갔다.유씨 가문 장원은 영남산에 있었고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는 풍수가 좋은 곳이었다.진서준이 위치를 말하자 택시 기사가 놀라면서 말했다.“나이도 젊은데 부자인가 봐요. 영남산에 다 살고.”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 만나러 가요.”“그래도 아주 대단하네요. 그곳에 사는 지인이 있다는 건 젊은이의 신분도 보통이 아니란 걸 의미하잖아요.”“우리 아들놈은 대학 졸업하고 집에서 게임만 하고 취직하라고 해도 말도 안 듣고 내 등만 처먹고 있네요.”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는지 기사는 울적해 있었다.진서준은 남의 가정사를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라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내가 만일 부자집에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살림살이 걱정할 필요 없고
아직 시내를 못 벗어났기에 진서준은 기사더러 멈추지 말고 계속 운전하라고 했다.좌, 우, 전, 후의 차도 택시를 멈추게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시내를 벗어나 차가 그다지 많지 않은 도로에 도착하자 좌, 우 양측의 차가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더니 차를 가로 멈춰 도로를 막았다.이 광경을 보고 기사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정신 나간 거 아니야?” 기사가 입으로는 욕하면서도 손은 호주머니를 향하더니 담배 한갑을 꺼냈다.“오늘 몇 푼 벌지도 못했는데 되려 깨지게 생겼어.”진서준이 그 모습을 보더니 기사를 향해 말했다.“선생님은 계속 가시면 돼요. 절 찾으러 온 거예요.”“젊은이 찾으러 온 사람들이에요?”기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자기가 욕해서 상대가 이러는 줄 알았다.“차비 드릴게요.”진서준이 만원권 한 장을 꺼내 기사에게 넘겨주고 차에서 내렸다.택시 기사는 돈을 받자마자 전속으로 도망쳤다.딱 봐도 자기가 상대할 수 없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진서준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뒤에 앉았던 사장로 일행도 따라 내렸다.“진서준, 네가 감히 강주로 와? 죽고 싶어 환장했어?”사장로가 죽일 듯이 진서준을 노려보았고 온몸에서는 강렬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죽고 싶은 사람은 당신이 아닌가요?”진서준이 조용히 말했다.“왕개미가 새끼 개미를 한 무리 거느리고 나를 죽일 수 있겠어요?”진서준이 자기를 개미라고 하자 사장로가 버럭 화를 냈다.“내가 보기에는 너야말로 개미 새끼에 불과해. 내 동생을 죽이고 어제저녁에는 또 우리 좋은 일을 망쳐버렸으니 절대 널 쉽게 죽이지 않을 거야.”“올 때 여자들도 데리고 왔던데 네가 보는 데서 여자들을 괴롭혀 죽일 거야.”말하면서 욕정이 꿈틀대는지 사장로가 나중에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흉측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이 말을 뱉는 순간 사장로는 이미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다.자기 여자를 모욕한다면 하느님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럼 괴롭힘을 당
우르릉...무서운 기세가 진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고 강대한 압박감에 사장로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해버렸다.“이럴 수 없어. 이 자식의 강기가 왜 이렇게 강해? 이 자식도 대종사란 말인가? 아니야. 이제 몇 살이나 됐다고. 20대 초반밖에 안 된 것 같은데.”사장로와 같이 온 청년들이 놀라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이 자식이 쓸모없는 놈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렇게 강해?’사장로의 얼굴에 드러난 공포감을 보고 진서준이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날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가만히 서 있어요?”사장로의 목젖이 울렁이더니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너무 거만하지 마. 여긴 강주이고 성약당의 구역이야. 이곳에 왔으면 살아서 떠나려는 생각을 하지도 마.”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장로는 속으로 오늘 먼저 돌아가고 큰 사형과 둘째 사형이 출관하면 함께 와서 진서준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하여 말하는 한편 뒷걸음질을 쳤다.“꼴을 보니 겁을 먹은 것 같은데 감히 못 덤비겠으면 날 원망하지 마요.”진서준이 한 발짝씩 앞으로 다가가면서 사장로에게 도망갈 기회를 주지 않았다.바로 이때 뒤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앞에서 뭐 해? 왜 길을 막고 있어?”까만 아우디 차 기사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진서준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입 닥쳐. 길이 막혔으니 얼른 꺼져.”사장로는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면서 소리를 질렀다.그 말에 아우디 기사도 화가 났는지 바로 차에서 내렸다.“이 차에 누가 앉은 줄 알아?”기사는 팔짱을 끼고 사장로를 오만하게 바라보면서 눈에는 온통 비웃음으로 가득했다.“누구든 상관없어. 길이 막혔으니 다른 데로 가.”사장로는 진서준을 떼어놓을 방법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이. 차에 유씨 가문의 셋째 어르신이 타고 계셔. 너 따위가 감히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려? 확 찢어버릴라.”유씨 가문 셋째 어르신이라는 말에 사장로의 얼굴이 순간 찬란하게 빛났다.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이 있어.강
“이 자식이 갑자기 차를 멈춰 세우고는 싸우자고 하는 거 있죠?”사장로는 눈도 깜짝이지 않고 덤터기를 진서준에게 뒤집어씌웠다.“뭐라고요?”유기철이 눈살을 찌푸리고 눈앞의 진서준을 아래위로 훑어보았지만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그저 멋 모르는 젊은이였다.“오늘 내가 기분이 좋으니까 너와 따지지 않을 거야. 얼른 꺼져.”유기철이 차갑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진서준은 살짝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알겠어요.”진서준이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명쾌하게 대답하자 사장로는 순간 떨떠름해졌다.아까 전까지만 해도 진서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살기를 그는 느꼈다.‘그런데 왜 갑자기 순순히 보내줄까? 유씨 가문이 무서워서인가?’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어찌했든 유씨 가문은 서남 일류 가문으로 실력만 따져도 성약당은 축에도 끼지 못했다.“주제를 알아서 다행이야. 큰 사형이 출관하는 날이 바로 네 제삿날이야.”사장로가 진서준을 향해 낮은 소리로 말했다.진서준은 전혀 미동이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당신을 죽이지 않았다고 영원히 안 죽이는 게 아니에요. 남지 않은 인생을 잘 누리고 있어요.”어제 변희영이 한 말이 있었다.성약당의 당주가 세상을 즐기러 나간 뒤로 유씨 가문과 성약당은 아예 거래가 단절됐다고 했다.유기철이 갑자기 성약당으로 의원을 모시러 가는 데는 분명히 무슨 이상이 있었다.그중 제일 이상한 것은 유기철이 조금 전에 한 기분이 좋다는 그 말이었다.가족이 중병에 걸렸는데 기분이 좋을 수 있단 말인가?그렇다면 중병에 걸린 가족이 그와 원수지간이란 말인가?유씨 가문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진서준은 사장로가 타고 온 차에 바로 올라탔다.“이 자식이. 그건 내 차야.”사장로가 큰 소리로 욕했지만 진서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차를 운전해 유씨 가문 방향으로 달렸다.유기철이 눈썹을 찡긋하더니 말했다.“관둬요. 고작 차 한 대잖아요. 일이 잘 끝나면 몇 대 보내 드릴게요.”사장로가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말했다.‘
경호원이 재빨리 정자로 들어가 유기태에게 전화해 진서준이 방금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별장으로 오라고 해.”“알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경호원이 진서준을 향해 달려왔다.“둘째 어르신이 지금 들어오시라고 해요.”진서준이 대문에 서서 안으로 들여다보니 장원 안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길 양측에 10여채 의 별장이 늘어져 있었다.규모가 꽤 컸고 김씨 가문 정원보다 더 호화로웠다.“어디 살고 있어요?”진서준이 물었다.“7호 별장요. 이 길을 따라 직진하세요. 길 맨 끝에 있는 별장에 살고 계세요.”경호원이 말하면서 대문을 열어젖히자 진서준은 경호원의 말대로 길 끝에 도착해 차를 주차했다.별장 대문이 열려있어 진서준은 바로 걸어 들어갔다.객실 중앙에 한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얼굴을 보니 방금 만났던 셋째 어르신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진서준 씨 맞아요?”유기태가 고개를 들어 진서준을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어려 보여 놀란 표정을 지었다.유기태는 국안부의 사람이 장난하는 줄로 알았다.“네. 제가 진서준입니다. 유기태 씨죠?”진서준은 유기태의 맞은편에 앉아 태연하게 그를 바라보았다.유기태는 진서준이 전혀 스스럼없이 자기를 대하는 모습에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 자식은 어려도 너무 어려 보였다.“무슨 일인지 바로 말해요. 가볼데 가 있어요.”유기태가 다소 조급하게 말했다.“성약당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왔어요. 유씨 가문은 서남 일류 가문이니까 성약당에 대해 잘 알겠죠?”진서준은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라 태연하게 마셨다.유기태는 속으로 회가 치밀었다.어린놈의 자식이 너무나도 뻔뻔했다.“알아요. 그리고 진서준 씨가 성약당과 모순이 있다는 것도 알아요. 내가 경고하는데 섣불리 성약당을 건드리면 안 돼요. 겉보기처럼 쉽지 않아요.”유기태가 냉랭하게 말했다.성약당에 국내 반수의 명의가 집결해 있다.전국의 귀족 가문이라면 거의 성약당의 은혜를 받은 적이 있다.진서준이 만일 성약당을 건드리면 성약당이
유기태가 움찔하더니 물었다.“무슨 뜻이에요? 그럼 방금 일부러 나를 시험해 본 거였어요?”“맞아요. 아니면 제가 당신이 적인지 동지인지 알 수 없잖아요?”진서준이 옅은 미소를 짓더니 유기태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성약당의 세력이 얼마나 강대한지 진서준은 어제 변희영을 통해 대충 요해했다.당주가 계실 때까지만 해도 성약당은 확실히 국내 제일 한의 조직이었다.하지만 당주가 여행을 떠나서부터 성약당은 변질해 재물만 끌어모으는 더러운 조직으로 변했다.“진서준 씨 진짜 20대 맞아요?”유기태가 놀란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이 자식의 심지는 절대 20대 청년의 심지가 아니었다.계략이 너무 깊었다.“당연하죠. 올해 갓 25살이 되었습니다. 신분증 보여드릴까요?”진서준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이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식견이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아니면 제가 벌써 죽었을 거예요.”유기태가 찬성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었다.“확실히 그래요.”“그럼 이제부터 성약당이 이 몇 해 동안 있은 일에 대해 상세하게 말씀해줄 수 있어요?”진서준이 물었다.유기태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눈빛이 갑자기 강인해졌다.“잠깐만 기다려 봐요.”유기태가 말하면서 몸을 일으키더니 2층으로 올라갔다.얼마 안 돼 유기태가 상자 하나를 안고 내렸다.상자를 열어보니 안에 여러 가지 사진과 문서자료가 들어있었다.진서준이 꺼내서 몇 장 읽어보더니 낯빛이 삽시간에 변해버렸다.“이 망할 놈의 자식들.”자료와 사진은 전부 성약당의 다섯 장로가 몇 년 동안 저지른 악행이었다.사람을 구타하고 여자를 강간하고 회사를 강제로 빼앗고 살인, 방화 등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빠짐없이 다 했다.저지른 죄악이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진서준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이 몇 해 동안 내가 적지 않은 증거를 수집했어요. 진서준 씨가 이 증거를 가지고 성약당을 처단해 주길 바라요.”유기태가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유씨 가문은 진서준 씨를 못 도와줘요. 유일하게 도울
유기태의 큰형은 유기명이고 현재 유씨 가문의 가주이다.평소 건강하던 유기명이 며칠전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유명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 보였지만 유기명의 발병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곧 운명할 것 같아 유씨 가문에서 하는 수 없이 유기철을 시켜 성약당의 장로를 모셔 오라고 한 것이다.유기태의 말을 듣고 난 진서준이 눈빛이 굳어지면서 음해가 아닌지 의심되었다.“제가 한번 가볼게요. 제가 큰형님의 병을 고칠 수도 있어요.”진서준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네? 진 대사님이 병도 볼 줄 알아요?”유기태가 놀란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무술과 의술가 분리된지 천년이 넘었고 무술을 익힌 사람 중 99%는 의술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다.때문에 진서준이 의술을 안다고 하니 유기태가 놀랄 게 뻔하다.“알아요. 빨리 큰형한테 가봅시다. 늦으면 위험할 수 있어요.”진서준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유기태가 바보가 아닌 이상 진서준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유기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면서 물었다.“진 대가님, 그렇다면 성약당의 사람이 독이라도 내렸단 말인가요?”“그저 추측일 뿐입니다.”진서준이 말했다.“하지만 이 몇 년 동안 성약당의 장로가 집에 들어온 적이 없어요.”유기태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성약당의 당주가 떠나고 나서 유씨 가문과 성약당의 사이가 점점 멀어졌다.만일 유기명의 병이 중해지지 않으면 그들은 절대 성약당의 장로한테 병을 봐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것이다.“성약당의 장로가 직접 독을 내리지 않아도 가능해요. 집에 있는 가족이 했을 수도 있어요.”진서준이 귀띔했다.이 말을 듣자마자 유기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가문에 첩자가 있다면 이건 큰일이 아닐 수가 없다.“대가님 말을 들으니 진짜 그럴 수도 있겠어요.”“빨리 가요.”두 사람은 유씨 가문의 개인 병원으로 급히 달려갔다.“누가 큰형한테 독을 내릴 것 같아요?”가면서 진서준이 물었다.유기태의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말했다.“제일 의심 가는 사람은 큰형이 얼마
여태 결혼하지 않았던 유기명은 편지를 보고 감격하더니 바로 남주로 딸을 찾으러 갔다.그 뒤 유기명은 딸을 찾아 집으로 데려왔다.하지만 유씨 가족들은 갑자기 나타난 여자에 대해 악의가 심했고 심지어 적의를 보였다.결국 이 여자가 유씨 가문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유기명이 갑자기 쓰러졌다.하여 유기태는 이 여자가 한 짓일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유기명의 이야기를 듣고 난 진서준이 감탄하며 말했다.“큰형님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네요. 직접 들은 게 아니면 소설인 줄 알겠어요.”유기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소설은 논리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필요 없어요.”“그렇긴 하죠.”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었다.두 사람은 이내 유씨 가문의 개인병원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유기태를 따라 도착한 곳은 백 평 가까이 되는 개인 병실이었고 병실에는 사람이 잔뜩 서 있었다.얼굴이 창백한 유기명은 병상에 누워있었고 성약당의 사장로가 유기명의 팔목을 잡고 맥을 짚고 있었다.“한발 늦었어요.”성약당의 사장로를 보자 유기태의 낯빛이 삽시에 변했다.만일 진서준의 말이 진짜라면 유씨 가문은 지금 아주 위험한 상황이다.진서준은 체내의 영기를 모아 눈으로 집중시키니 옅은 파란색 빛이 진서준의 눈 주위에서 맴돌았다.자세히 유기명을 바라보던 진서준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호국사님 말이 맞았어요. 성약당과 묘족 마을이 확실히 연관이 있어요.”진서준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뭐라고요?”유기태가 화들짝 놀라면서 다시 물었다.“진 대가님의 뜻은 우리 큰형이 고충의 독에 중독되었단 말이죠?”“네.”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진 대가님 혹시 우리 형을 살릴 방법이 있나요?”유기태가 다급하게 물었다.유기명이 이대로 죽는다면 유씨 가문에 대란이 일어날 것이다.“있긴 한데 손 쓸 기회를 찾아야 해요.”진서준이 말했다.“제게 맡기세요.”말하면서 유기태가 바로 앞으로 걸어갔다.“둘째 형이 무슨 일로 왔어?”유기태를 보고 유기철이 놀란 얼굴
성미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매년 혼자서만 집에 가다 보니 성미영에게 이성 친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성미영도 이제 3년만 지나면 서른이었기에 집에서는 성미영의 결혼 문제가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이성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리자 가족들이 당연히 남자친구라고 착각한 것이다.그래서 기어코 성미영에게 진서준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난리였다.“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되잖아?”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사소한 일이었다.“그게 통했으면 내가 지금 너한테 전화했겠어?”성미영이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뭘 어쩌라는 거야? 설마 내가 직접 가서 해명하라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꼭 와야 해.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날 가만히 안 둘 거라고.”성미영이 명령조로 말했다.“이봐, 지금 부탁하는 입장인데 말투가 그게 뭐야? 장난해?”진서준이 한마디 귀띔했다.“야, 진서준. 너 적당히 해.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돼?”성미영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소리쳤다.“오후에 내가 너 안 도와줬어? 지금은 네가 나 도울 차례라고. 아니야?”진서준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정정하자면 너 없어도 난 하경범을 충분히 잡아 올 수 있었어. 오히려 너 배려해서 너희 성씨 가문 구역에서 난리 안 친 거라고.”“헛소리 작작 해!”성미영이 분노에 이를 갈았다.진서준의 말이 사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렇게 재수 없게 들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럼 끊는다?”진서준이 전화를 끊으려 했다.“끊지 마. 내가 지금 데리러 갈 거야. 오늘 밤에 확실히 설명하고 가.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나 귀찮게 해 미칠 것 같다고.”성미영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럼 부탁해야지. 부탁할 땐 부탁하는 태도가 있는 법이거든.”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사실 일부러 성미영을 약 올리는 건 아니었다.그냥 이 여자가 맨날 윗사람처럼 굴었고 매번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가르
차 안.도지아는 직접 복수를 마친 뒤, 속이 어느 때보다 한결 더 시원했다.하지만 곧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진서준에게 물었다.“나중에 하경범이 복수하면 어떻게 하지?”“그럼 그냥 지옥에 보내버리면 돼. 너무 걱정되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죽여버릴까?”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어차피 그런 쓰레기는 살아 있을 가치도 없었다.진서준이 하경범을 바로 죽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금단 현상이 올라올 때의 고통을 직접 맛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죽여버리는 것보다 살아서 끔찍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게 더 잔인한 법이었다.“아니야, 죽이는 게 오히려 그 녀석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야.”도지아가 고개를 저었다.그 한마디로 도지아가 하경범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 수 있었다.하경범은 도지아의 미래를 망가뜨렸고 행복했던 가족을 박살 내버렸다.이제 도지아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지아는 막막하기만 했다.호텔로 돌아오자 진서준이 물었다.“여기서 계속 있을 순 없잖아. 앞으로 어디로 갈 생각이야?”도지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예은에게 가볼까 해. 걔 집 넓잖아.”“그것도 괜찮네. 황예은은 돈이 넘치니까 황예은한테 붙어 있으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겠네.”진서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한편, 성현도가 빠르게 정보를 통제한 덕분에 하경범이 진서준에게 끌려갔다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하씨 가문 쪽에서도 하경범이 강제로 마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집으로 돌아간 하경범은 곧장 본인이 키운 삼생파의 두목 이시언에게 연락했다.“하 도련님, 무슨 일입니까?”전화를 받은 이시언은 조금 의아해했다.하경범이 직접 연락해 오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도 사람을 납치하라고 시켰을 때였다.“당장 나한테 와.”하경범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네, 바로 가겠습니다.”이시언은 하경범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즉시 출발했다.30분 후, 이시언은 부하들을 데리고 하경범의 저택에 도착
“그럼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왜 굳이 날 물고 자빠지는 건데?”하경범은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너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이 납치당할 일도 없었겠지. 그럼 내 동생도 마약과 접촉할 일도 없었을 거잖아. 네 더러운 욕망만 아니었어도 우리 가족이 이렇게 풍비박산 날 일이 있었겠어?”도지아의 분노는 점점 극에 달했다.“내가 겪은 이 모든 고통은 전부 다 네 탐욕과 욕망 때문이야. 오늘 넌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해.”하경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이제야 도지아가 진짜 죽을 각오로 덤비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내가 방금 조상규 삼촌에게 연락했어. 곧 도착할 거야. 삼촌이 오기 전까지는 너희가 아직 살아남을 기회가 남아 있어.”하경범은 이런 상황에서도 협박하기 시작했다.“그러니 함부로 날 건드리지 마. 날 손대는 순간, 너희 셋 다 살아서는 못 나갈 줄 알아.”“그 사람은 올 수 없어.”진서준이 느닷없이 말했다.“무슨 뜻이야?”하경범이 움찔하며 눈꺼풀을 떨었다.“이미 죽었거든. 이해했어?”진서준이 담담하게 대꾸했다.“뭐, 뭐라고?”하경범은 흠칫 떨더니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헛소리하지 마. 그럴 리 없어! 조상규 삼촌은 대종사야. 네놈 따위가 무슨 수로 대종사를 죽일 수 있어?”하경범은 조상규의 무도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습격당했을 때도 조상규가 나서서 하경범을 구해줬다.당당한 대종사인 조상규가 진서준 같은 애송이에게 당했을 리가 없었다.“못 믿겠으면 직접 전화해 봐. 전화 받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지 그래?”진서준이 시큰둥하게 말하자 하경범은 급히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들려오는 건 통화 연결음뿐이었다.하경범은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젠장, 전화 받아! 전화를 받으란 말이야!”하경범은 이제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통화가 안 되지?”진서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대체 왜 조상규 삼촌이 너 따위한테 당했는데?
“뭐가 두려워?”하경범은 자신만만했다.여긴 하씨 가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르벨이었다.하경범은 진서준이 이곳에서 자기를 건드릴 용기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그럼 따라와 봐.”진서준이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경범아, 저 녀석 꽤 강해. 조심하는 게 좋아.”성현도가 목소리를 낮춰 경고했다.“걱정 마.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하경범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진서준이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두고 보자는 심정이었다.차에 올라타자 하경범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의외네, 넌 여자들한테도 제법 인기가 많은 모양이구나. 황예은과 도지아만 있는 게 아니라 이번엔 또 새로운 여자가 곁에 있네.”하경범은 옆자리의 허사연을 힐끔 쳐다보며 능글맞게 웃었다.“아가씨, 저 녀석 따라다녀 봤자 아무런 미래도 없어. 나랑 함께하는 게 어때? 내 여자가 되면 평생 호화롭게 살게 해줄게. 명품, 스포츠카, 대저택, 뭐든 원하는 만큼 줄 수 있어.”허사연은 그 말에 쌀쌀하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럼 네 목숨을 원한다면 줄 수 있어?”하경범 같은 부잣집 도령이 얼마나 많은 가정을 파탄 냈을지 모른다.진서준의 얘기를 들은 후, 허사연도 이 쓰레기를 당장 없애버리고 싶었다.“내 목숨을 달라고?”하경범은 어이없다는 듯 멍하니 있다가 곧 박장대소를 터뜨렸다.“날 죽이겠다고? 그래, 해봐. 근데 네 가족이 우리 하씨 가문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하경범의 목소리엔 살기가 서려 있었다.“거참 쉬지도 않고 조잘대네.”진서준은 쉴 새 없는 하경범의 멘트에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흥, 얼마 안 가 네가 내 앞에 무릎 꿇고 날 다시 보내게 될 거야. 내가 장담하지.”하경범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진서준을 비웃었다.“오히려 네가 나한테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게 될걸?”진서준은 태연하게 받아쳤다.곧이어 진서준은 차를 한 폐기된 공장 앞에 세웠다.차에서 내리자 하경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곳에 걸터앉아 휴대폰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