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무협 / 천풍무상가(天風無常歌) / 52화 차가운 만남 3

Share

52화 차가운 만남 3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5 23:55:16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통증이 밀려들어 다시 자리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지 마라. 아직 기맥(氣脈)이 안정되지 않았다."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풍진이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눈처럼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자신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화영.

나룻배에서 자신을 향해 얼음 같은 기세를 뿜어내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풍진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눈에 경계심이 떠오르면서 본능적으로 태허풍운공(太虛風雲功)을 운용하려 했지만, 단전은 텅 비어 있었고 상처 입은 기맥에서는 날카로운 통증만 밀려왔다.

지금은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

"꼬, 꼬마야! 진정해라! 저 여협이 우릴 구해줬어!"

팽대협이 다급하게 옆으로 다가왔다.

"네놈이 정신을 잃고 죽기 직전이었는데, 저 여협이 내공을 불어넣어 널 살린 게야. 적이 아니야, 일단은..."

팽대협의 설명을 들으며 풍진은 자신의 몸 상태를 다시 살폈다.

몸 안에는 낯선 한기의 흔적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천풍무상가(天風無常歌)   57화 깨어진 얼음3

    다가오던 두 명의 설가 무사.그리고 그들 너머에 선 설무진.풍진은 세 사람을 똑바로 바라봤다."그 여인에게는... 내가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당신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순간 사당 안의 공기가 설무진이 내뿜는 냉기보다 더욱 차갑게 굳었다.팽대협은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눈앞의 소년은 지금 강호에서도 손꼽히는 오만한 절정(絶頂) 고수, 북해빙검(北海氷劍) 설무진의 권위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있었다."하..."설무진의 입에서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이윽고 웃음소리가 커졌다."하하하하! 빚? 관여할 일이 아니다? 네놈, 지금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그 웃음에는 유쾌함이라곤 한 점도 없었다.상대를 벌레만도 못하게 여기는 지독한 경멸과 뼈를 깎아낼 듯한 살의(殺意)가 사당 안을 메웠다.설무진은 더 이상 무사들에게 명령하지 않았다.천천히 오른손을 움직여 허리춤의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우웅.순백의 검집 안에서 그의 검, 북해빙백(北海氷魄)이 낮게 울었다."화영아, 똑똑히 보거라. 저런 근본 없는 마공(魔功)의 잔재주가 우리 북해 설씨(北海 雪氏)의 정통 검법 앞에서 어찌 부서지는지를. 이것이 너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이다."말이 끝나기도 전에 설무진의 몸이 움직였다.검을 뽑지는 않았다.검집에 손을 얹은 채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었다.그런데 그 한 걸음과 함께 사당 안의 온기가 빠르게 사라졌다.등잔의 불꽃이 파랗게 질린 듯 흔들렸고, 설무진이 딛고 선 곳을 중심으로 낡은 마룻바닥 위에 하얀 서리가 얇게 번지기 시작했다.설화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오라버니, 안 됩니다! 그 아이는 지금...!"설무진은 듣지 않았다.그의 모든 신경은 압도적인 기세를 정면으로 받고도 자신을 바라보는 풍진에게 쏠려 있었다.풍진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정확히는 움직일 수 없었다.내상(內傷)을 입은 육신은 천근만근처럼 무거웠고, 단전(丹田)에 살아난 불씨 역시 꺼지지 않는 것만으로 벅찬 숯불과 같았다.힘으로 맞

  • 천풍무상가(天風無常歌)   56화 깨어진 얼음 2

    설화영과 희미하게 닮은 이목구비를 지녔으나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설화영에게 날카롭게 벼려진 냉철함이 있다면, 사내의 얼굴에는 상대를 내려다보는 오만함과 억누르지 않은 분노가 짙게 어려 있었다.그는 사당 안을 한 차례 훑었다.탈진한 설화영.바닥에 앉은 팽대협.그리고 이제 막 죽음의 고비를 넘긴 풍진.마침내 시선이 설화영에게 멈췄다."화영아."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설화영의 심장을 꿰뚫었다."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도, 이쯤 했으면 족하지 않으냐."그 말이 떨어지자 사당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듯했다.설화영이 내뿜는 서늘한 한기(寒氣)와는 결이 달랐다. 사람의 영혼까지 베어낼 듯 날카롭고 오만한 냉기(冷氣)가 좁은 사당을 짓눌렀다.설화영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그녀는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당혹감이 스쳤고, 그 아래에는 차마 쉽게 거역할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한 깊은 갈등이 자리하고 있었다."...오라버니."거의 신음처럼 흘러나온 한마디였다.사내는 설씨(雪氏) 가문의 차기 가주이자 설화영의 친오빠, '북해빙검(北海氷劍)' 설무진(雪武進)이었다.강호의 젊은 후기지수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무위를 자랑하는 절정(絶頂) 고수."오라버니라..."설무진이 코웃음을 쳤다.그의 시선에서는 동생을 향한 반가움이나 걱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가문의 명예에 먹칠한 죄인을 심판하듯 차갑고 경멸적인 눈길이 설화영을 훑었다."무림맹(武林盟) 임무를 핑계로 가문을 떠난 지 수개월. 연락 한 통 없더니, 고작 이런 쥐새끼들과 어울리며 가문의 영약(靈藥)과 내공(內功)을 허비하고 있었더냐. 네가 정녕 설(雪)가의 핏줄이 맞느냐."설무진의 시선이 움직였다.먼저 팽대협을 지나 풍진에게 닿았다.팽대협은 그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움켜쥐어지는 듯한 압박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설화영은 입술을 깨물었다.내공을 모두 소진한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오빠의 오만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이분들은

  • 천풍무상가(天風無常歌)   55화 깨어진 얼음 1

    설화영은 풍진의 인사를 애써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길을, 빌려주어 고맙소.'조금 전 들었던 말이 귓가에 남아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심장이 기이할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내공(內功)을 모두 소진한 탓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오랜 시간 극도로 정교하게 빙심결(氷心訣)을 운용했으니 몸이 탈진한 것도 당연했다.그러나 설화영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지금 가슴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은 탈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헛소리 마라."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으나 이전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있지는 않았다."나는 내 임무를 다했을 뿐이다. 너를 살린 것은 네가 혈교(血敎)를 상대할 유일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풍진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거듭 확인하는 말이기도 했다.그럼에도 방금 전 풍진과 나누었던 기묘한 교감(交感)의 순간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서로 다른 두 사람의 의지(意志)가 맞물리고, 각자의 내공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움직였다. 풍진이 길을 찾아내면 자신이 그곳을 열었고, 다시 약기가 흘러들어가 끊어진 생명의 흐름을 이어놓았다.혼자였다면 어느 쪽도 이루지 못했을 일이었다.평생 연마해온 빙심결은 고독한 무공이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고, 타인의 개입 없이 스스로를 갈고닦는 수련을 반복해왔다.그런 설화영에게 조금 전의 경험은 정반대의 감각을 남겼다.낯설 만큼 따뜻했고,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했다.설화영은 그 감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무림맹(武林盟) 수사관으로서의 냉철한 이성과 한 명의 무인(武人)으로서 느낀 경외감, 여기에 아직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미지의 감정까지 뒤섞여 얼음처럼 굳어 있던 마음을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어쨌든,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구만!"어색하게 내려앉은 침묵을 깨뜨린 것은 팽대협이었다.그는 두 사람을 번갈아 살피더니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자자, 이제 막 깨어났으니 뭐라도 좀 먹어야지! 마침 내가 아주 맛있

  • 천풍무상가(天風無常歌)   54화 활(活)의 이치 2

    시간이 흘러 한 시진(2시간)이 훌쩍 지났을 무렵, 설화영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져 있었다.자신의 내공을 이토록 정교하게, 그것도 오랜 시간 다른 사람의 몸속에서 운용한 경험은 그녀에게도 처음이었다. 단전(丹田)의 기운은 거의 바닥을 드러냈고 정신력 역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이제, 한계다.'설화영의 집중력이 흔들리려던 바로 그 순간.풍진의 의지가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감싸왔다.그리고 마지막 남은 가장 큰 목표,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독맥(督脈)의 끊어진 부분을 가리켰다.'한 번만 더.'소년의 필사적인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설화영은 이를 악물었다.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흡!"마지막 남은 내공까지 쥐어짜자 수백 갈래로 나뉘어 있던 얼음침이 하나의 거대한 송곳처럼 뭉쳐졌다.풍진의 의지가 가리키는 곳.독맥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단단한 어혈 덩어리를 향해 모든 힘이 내리꽂혔다.콰득!막혀 있던 혈관이 뚫리는 둔탁한 감각이 두 사람의 내면에서 동시에 울려 퍼졌다."후우..."설화영의 입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풍진의 등에서 손을 뗀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내공을 거의 소진한 탓에 시야까지 아찔하게 흔들렸다.벽에 등을 기대고 나서야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었다."여, 여협! 괜찮으시오? 꼬마는, 꼬마는 어찌 된 게요!"팽대협이 다급하게 달려왔다.그의 눈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했다.설화영은 대답할 기력조차 남지 않아 숨을 몰아쉬며 풍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그녀의 눈에서 수사관의 냉철함은 잠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자신이 평생 추구해온 무(武)의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미지의 존재를 마주한 한 명의 무인(武人)으로서, 순수한 경외(敬畏)와 혼란이 그 자리를 채웠다.설화영은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풍진의 앞으로 다가가 얼굴을 살피자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던 안색에 아주 희미하게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거칠던 호흡도 깊은 잠에 빠

  • 천풍무상가(天風無常歌)   53화 활(活)의 이치 1

    그것은 내공(內功)의 회복과는 다른 차원의 각성이었다.육체는 여전히 부서진 껍데기처럼 망가져 있었지만, 풍진의 의식(意識)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날카로웠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대치(對峙)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하게 '보고' 있었다.그곳은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선 위태로운 세상이었다.중심에는 주인을 잃고 날뛰는 야생마처럼 자신의 몸을 헤집는 태허풍운공(太虛風雲功)의 잔해가 있었고, 그것을 옭아매 폭주를 억누르는 것은 설화영이 남겨놓은 얼음 족쇄 같은 빙심결(氷心訣)의 한기(寒氣)였다.그리고 두 힘의 충돌로 황폐해진 곳곳을 어루만지며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설가의 영약(靈藥)이 품은 따뜻한 샘물 같은 약기(藥氣)였다.파괴와 억제, 그리고 재생.서로 다른 세 힘이 하나의 몸 안에서 맞물리며 위태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이전의 나라면 이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그저 지켜보다 죽어갔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풍진은 그 속에서 하나의 '결'을 보기 시작했다.조금 전 설화영의 한기가 자신의 기맥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깨달았던 이치가 다시금 선명해졌다.파괴하기 위해 찾았던 길.살리기 위해 찾아야 할 길.시작은 같았다.'파괴의 흐름을 역(逆)으로 돌리면, 그것이 곧 생성의 길이 된다.'풍진은 갓 타오르기 시작한 작은 불씨, 태허풍운공의 기운을 억지로 움직이지 않았다.지금 남은 내공으로 세 힘을 강제로 누르려 한다면 균형부터 무너질 터였다.대신 그 미약한 기운에 자신의 의지(意志)를 실었다.날뛰는 태허풍운공도, 그것을 억누르는 빙심결의 한기도, 상처를 어루만지는 영약의 약기도 결국 자신의 몸 안을 흐르고 있었다.그 흐름을 보고 길을 찾아내는 것.풍진은 이 거대한 순환의 중심에서 모든 힘을 이끌 새로운 '주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그때였다.팽대협과 대화를 나누던 설화영이 풍진의 상태를 다시 살피기 위해 곁으로 다가왔다.풍진의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설화영은 내

  • 천풍무상가(天風無常歌)   52화 차가운 만남 3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통증이 밀려들어 다시 자리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움직이지 마라. 아직 기맥(氣脈)이 안정되지 않았다."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풍진이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눈처럼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자신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설화영.나룻배에서 자신을 향해 얼음 같은 기세를 뿜어내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풍진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눈에 경계심이 떠오르면서 본능적으로 태허풍운공(太虛風雲功)을 운용하려 했지만, 단전은 텅 비어 있었고 상처 입은 기맥에서는 날카로운 통증만 밀려왔다.지금은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꼬, 꼬마야! 진정해라! 저 여협이 우릴 구해줬어!"팽대협이 다급하게 옆으로 다가왔다."네놈이 정신을 잃고 죽기 직전이었는데, 저 여협이 내공을 불어넣어 널 살린 게야. 적이 아니야, 일단은..."팽대협의 설명을 들으며 풍진은 자신의 몸 상태를 다시 살폈다.몸 안에는 낯선 한기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기운에서는 적의(敵意)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무리한 내공 운용으로 뒤틀렸던 기맥을 감싸 내상이 더 깊어지는 것을 억누르고 있었다.풍진의 눈에서 경계심이 조금 옅어졌다.그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설화영을 바라봤다.스무 살의 여인은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에는 봄날의 온기보다 겨울 서리 같은 차가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왜 구했지?"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의식을 되찾은 뒤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설화영은 그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그믐밤, 철문협(鐵門峽)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혈마수 갈효는 어찌 되었으며, 너희는 어째서 혈교의 추격을 받고 있었나."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수사관 특유의 집요함이 묻어 있었다.풍진은 입을 다물었다.낯선 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만큼 어수룩하지 않았다.팽대협이 대신 나서서 자신들이 겪은 일을 적당히 각색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연히 혈교의 음모를 엿듣게 되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