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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말린땅콩
별아는 쓴웃음을 흘렸다. 자신은 전생의 별아는 그저 ‘질투 많은 여자’였다.

강준은 별아를 그렇게 낙인찍었고,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별아가 임신 중이던 그 시절, 강준은 매일같이 그녀를 ‘질투녀’라며 몰아붙였다.

심지어 어서 이 집을 떠나라고, 자기 인생에서 사라지라고.

강준은 이혼이라는 단어만 꺼내지 않은 건, 자기 체면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비겁한 남편으로 불리는 건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때의 별아는 반쯤은 인간도 반쯤은 유령도 아닌 상태였으며, 끝내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날 아직 사랑하긴 해?”

별아가 다시 물었다.

강준은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해. 넌 지금 잠이나 푹 자. 난 객실에서 잘게.”

그 말은 도망이었다.

급하게 빠져나가는, 명백한 회피였다.

...

아침.

별아가 계단을 내려왔을 때, 시정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서툴게 조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강준은 문가에 팔짱을 낀 채 서서, 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가에 머금은 웃음은, 당장이라도 흘러 넘칠 듯했다.

마치 이 집의 주인은 강준과 시정 단 둘인 듯, 별아는 잘못 들어온 제3자인 것만 같았다.

시정이 만든 건 카레라이스였다.

냄비가 뜨거워 손에 잡히지 않자, 강준이 대신 받아 들었다.

시정은 얼떨결에 귓불을 만지며 수줍게 웃었다.

그 화면은 보기 좋을 만큼 따뜻했다.

별아의 존재 자체가 죄처럼 느껴질 정도로.

시정은 고개를 돌리다 별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당황이 스친 눈빛, 그리고 조심스러운 목소리.

“별아 언니, 제가 아침을 조금 해봤는데...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어요.”

별아의 시선은 식탁 위 두 벌의 수저로 옮겨갔다.

그 자리엔 애초에 별아의 몫은 없었다.

별아가 내려오는 소리를 듣고, 강준이 고개를 들었다.

“시정이 아침 했어.”

어젯밤과는 달리,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였다.

“여보, 늘 위가 안 좋잖아. 밥은 잘 소화돼. 조금이라도 먹어.”

강준의 온화함은 별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별아가 혹시라도 시정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려운, 그런 조심스러움일 뿐이었다.

하지만 강준은 잊고 있었다.

별아는 카레를 좋아하지 않았고, 강준 자신도 그랬다는 사실을.

“됐어. 나 나가봐야 돼.”

별아는 단호히 잘랐다.

오늘 별아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변호사 친구 민희를 만나러 가야 했다.

강준은 별아의 말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별아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떤 감정이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랑이 옮겨간 뒤, 강준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다.

별아가 머리 손질을 하러만 나가도 불안해하던, 그때의 강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

별아가 신발을 갈아 신고 나가려 할 때,

시정이 빵 두 개를 들고 다가왔다.

“언니, 아침 안 드시면 건강에 안 좋아요. 이거 두 개 가져가세요. 배고프면 드세요.”

빵은 아보카도 맛이었다.

재료는 넉넉했지만 모양새는 영 보기 좋지 않았다.

시정은 머쓱한 듯 덧붙였다.

“제가 아침에 직접 만든 거예요. 모양은 좀 그래도... 맛은 괜찮을 거예요.”

“받아. 시정이 정성인데.”

강준이 곁에서 거들었다.

시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빵을 별아 앞으로 내밀었다.

별아는 잠시 시정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결국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들었다.

집을 나서자마자, 별아는 그 빵을 근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차로 가던 길, 문득 차 키를 두고 온 걸 깨달았다. 아까 신발 갈아 신을 때, 현관 옆 신발장 위에 올려두고는 깜빡한 것이었다.

별아는 다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별아의 시야에 들어온 건, 강준이 시정을 식탁 앞에 거의 몰아붙인 모습이었다.

두 사람의 눈빛은 서로 얽혀 있었다.

너무도 짙고, 너무도 은밀하게.

둘이 아마도 너무 깊이 빠져 있었던 탓일 것이다.

별아가 돌아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때, 별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놀란 듯,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별아를 향했다.

별아는 전화를 끊고, 시선을 강준 쪽으로 옮겼다.

강준의 입술 한쪽에 카레가 묻어 있었다.

강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시정이 다급하게 변명했다.

“언니, 저... 저랑 강준 오빠는, 그게... 바, 바나나 껍질 때문에 그래요. 미끄러져서... 언니, 정말 오해하시면 안 돼요.”

강준도 시선을 피하며 말을 보탰다.

“그래, 바나나 껍질 때문에 그런 거야. 오해하지 마.”

너무도 서툰 두 사람의 거짓말에, 별아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바나나 껍질도 알까? 자기한테 이런 큰 죄를 뒤집어씌울 줄은...’

“알았어.”

별아는 차 키를 집어 들고, 가볍게 대꾸한 뒤 돌아섰다.

강준의 시선이 별아를 뒤쫓았다.

오늘의 반응은 전과 달랐다.

별아가 정말 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믿은 걸까?

예전 같았으면, 강준이 다른 여자와 조금만 가까워도 별아는 호되게 몰아붙였을 것이다.

때로는 몇 달간 냉전이 이어졌고, 강준이 달래고 또 달래야 겨우 풀렸다.

하지만 오늘은... 별아는 달랐다.

별아는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가는 길, 배수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함께 법률사무소로 가자고.

민희와의 인연은 원래 수지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이번 이혼 문제, 별아는 꼭 민희와 수지, 두 사람과 상의해야 했다.

수지는 별아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별아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강준을 향해 쏟아낸 욕설이 사무실을 메우고 있었다.

“내가 뭐랬어? 하강준 같은 남자, 유연한 척하다가도 언제든 뒤집을 놈이라고. 언제든 마음 식으면 칼 끝은 네 가슴으로 꽂힐 거라고. 너 그때도 안 믿었잖아. 지금 봐, 딱 맞아떨어졌네.”

수지의 얼굴엔 여전히 분노가 어렸다.

예전에도 수지는 강준에 대해 안 좋은 말만 했고, 그 때문에 별아와 한동안 냉전까지 했었다.

결국 별아가 강준과 결혼하자, 수지는 아예 연락까지 끊어버렸다.

오늘 별아한테서 연락을 받았을 때, 수지는 잠시 얼떨떨했다. 설마 이 일일 줄은 몰랐으니까.

별아는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난... 하강준이 평생 날 사랑할 거라 믿었는데...’

‘내가 착각했지. 남자들은 결국 새로운 데 눈이 팔리고, 뒤에 남겨지는 건 언제나 여자야.’

“수지야, 나... 하강준이랑 이혼할 거야.”

“이제야 결심했네. 진작에 했어야지.”

다행히도 강준과 별아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다. 그 덕에 복잡한 장애물도 덜었다.

“별아야, 하나님에 감사해라. 네가 하강준이랑 애 없어서. 둘이 애 있었으면 네가 진짜 고생은 지금부터였을 거야.”

별아는 씁쓸하게 웃었지만,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전생에서 별아는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강준은 그 생명을 앗아갔다.

별아가 어머니가 될 권리마저 빼앗아갔다.

그 아이가 아들이었는지, 딸이었는지조차 모른 채...

별아는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고, 심장이 죄여왔다.

민희가 얼른 물 한 잔을 따라 건넸다.

“하강준 재산 상황을 조사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 별아야, 네가 원하는 조건 있으면 미리 말해줘야 해. 그래야 내가 합의서 초안에 넣을 수 있어.”

수지가 끼어들었다.

“외도를 했으면 무조건 빈손으로 나가야지.”

별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강준은 이제 더 이상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듯 굴던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리도 없었다. 남자는 늘 책임을 피하는 데 익숙하니까.

“나 결혼할 때, 부모님이 남구에 땅 하나 해 주셨어.”

전생에서 그 땅에는 놀이공원이 들어섰다. 이름은 ‘시정랜드’.

강준이 시정에게 바친 선물이었다.

그리고 시정이 죽기 전날, 막 준공된 상태였다.

이번 생에서 별아는 반드시 그 땅을 되찾아야 했다.

민희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문제없을 것 같아. 다른 건?”

‘다른 거...’

별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챙길 수 있는 건 아직 많았다.

하지만 이미 지쳐버렸다. 변심한 남자와 더 이상 얽히고 싶지도 않았다.

수지가 눈치를 채고, 대신 민희를 향해 말했다.

“우리 별아는 이제 싸울 힘도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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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정
2025. 12. 18. AM.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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