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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Penulis: 말린땅콩
별아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신경 쓰는 건 강준의 재산을 얼마나 가져올 수 있느냐가 아니었다. 오직 강준이 얼마나 깔끔하게 이혼에 응할 수 있느냐였다.

송씨 가문과 하씨 가문은 얽히고설킨 지분 관계로 묶여 있었다. 서로의 회사가 교차로 주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해관계는 단순히 부부 사이 문제로 정리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강준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고 해도, 그가 별아를 함부로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 문제는 결국 변호사가 개입해야만 정리가 될 것이다.

“민희야, 우리 집안 이익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빨리 합리적인 재산 분할안 좀 만들어줘. 될 수 있으면 서둘러.”

민희는 별아의 다급한 기색을 읽었다.

“알았어.”

이런 식의 이혼 소송은 상류층에서 드물지 않았다.

그리고 어렵지는 않지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었다.

수지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다.

“너 참 대인배다. 하강준이 네 뒤통수를 쳤으면,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당장 패가망신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살갗은 벗겨 놔야 해.”

“그래야 좀이라도 고통을 알지. 네가 이렇게 대충 넘어가면, 그 인간은 내연녀랑 더 편하게 잘 살 거라고.”

별아도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사랑이 끝난 남자 앞에서, 울고불고 매달린다고 얻을 수 있는 건 자신의 체면이 무너지는 일뿐이었다.

전생에 별아는 그걸 너무 많이 했다.

그러나 울고 애원한들, 강준의 사랑은 이미 시정에게로 옮겨갔고, 그 사랑은 목숨조차 아깝지 않은 듯 절대적이었다.

이번 생에서 별아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질식 같은 결혼에서 벗어나는 것.

“민희야, 난 그냥 빨리 끝내고 싶어.”

수지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눈빛엔 못내 안쓰러움이 묻어났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수지가 말했다.

“그래. 민희는 그냥 별아 말대로 해. 어차피 그 인간은 언젠가 똑같이 벌을 받을 거야.”

로펌을 나서자, 수지가 별아에게 술 한잔하자고 권했다.

별아는 미소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수지야, 다음에. 오늘은 나 다른 일이 있어.”

수지는 더 말리지 않고 별아의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

“걱정 마. 다 길이 있어. 결국엔 잘 될 거야.”

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 길로 별아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녀는 산부인과 접수를 했다. 이번 생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건 단 하나... 자신이 임신했는지 여부였다.

의사가 차트를 확인하며 물었다.

“마지막 생리일은 언제셨나요?”

“지난달 18일이요.”

“마지막 부부생활은 언제셨죠?”

“그저께요.”

“그럼 우선 혈액검사 해보시죠.”

의사가 종이를 건네주었고, 별아는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금세 나왔다. 음성이었다.

별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야... 임신 아니야.’

“지금은 음성이지만, 임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하신 날짜는 안전기가 아니에요.”

“안전기라는 것도 사실 정확하지 않고요.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시려면 72시간 이내에 복용하는 응급 피임약을 권해드립니다.”

“그럼, 약 좀 처방해 주세요.”

별아는 담담히 대답했다.

...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별아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강준이었다.

“여보세요?”

[여보, 너랑 좀 상의할 게 있어.]

별아는 곧바로 짐작했다.

시정과 관련된 일이라는 걸.

아니면 강준이 굳이 ‘상의’라는 단어를 쓰진 않았을 테니까.

“뭔데?”

[모레가 시정이 생일이야. 집에서 파티를 좀 크게 열어주고 싶은데, 너 괜찮지?]

강준의 목소리에는 설레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자, 강준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시정이는 가족도 없잖아. 그래서 원래 생일 챙기는 걸 싫어해. 근데 내가 억지로 해주고 싶다 했어.]

[그래야 시정이 기분도 좋아지고... 병세도 조금은 나아질 거야. 좋은 일이지. 그냥 배려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해주면 되는 거고.”

별아의 가슴 한켠이 얼음처럼 식어갔다.

‘배려...? 그게 결국 네 불륜을 미화하는 말이구나.’

그때, 통화기기 너머로 시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저 생일 안 챙겨도 돼요. 별아 언니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목소리는 부드럽고 나직했다.

마치 강준 목에 매달려 애교를 부리는 듯한 울림이었다.

별아는 눈을 감았다가 뜨며 짧게 대답했다.

“그래.”

[조금 있다가 시정이 데리고 갈게. 네가 직접 얘기해 보고, 시정이 좋아하는 걸로 준비해주면 돼. 제대로 된 생일 만들어주면, 그게 결국 우리한테도 좋은 일이지.]

“알았어...”

...

별아의 개인 작업실.

결혼 이후 별아는 직접 개인 작업실을 내고 홀로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곳에 강준이 시정을 직접 데려왔다.

하얀 레이스 원피스, 치맛단에는 진주와 스톤 장식이 빛났다.

잡지에서 본 적 있는 고가 브랜드 드레스였다.

별아는 단번에 알았다. 강준이 사준 옷이라는 걸.

“별아 언니.”

시정은 눈을 올리며 조심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감출 수 없는 행복이 배어 있었다.

“사실 그냥 조용히 보내도 되는데... 저는 아무런 요구도 없어요. 강준 오빠랑 언니가 이렇게 챙겨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붉어진 시정의 얼굴은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죄책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별아는 그저 평온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전생에도, 별아가 기억하는 시정의 인상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수가 적었고, 별아가 무슨 말을 하든 젖은 눈빛으로 가만히 응시하던 여자애.

그 눈빛 하나가 언제나 별아와 강준의 싸움에 불을 붙였다.

시정의 ‘불쌍함’이 별아를 날카롭게 만들었고, 별아의 날 선 반응은 강준을 더욱 멀어지게 했다.

그때 별아는 잊고 있었다. 자신은 이미 강준의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그리고 강준은 더 이상, 한밤중이라도 뛰어와 진통제를 내밀고 따뜻한 꿀물을 타 주던 그 남자가 아니었다.

“네가 정말 원하는 게 없다면, 그냥 내가 내 생일 준비하는 기준으로 준비할게.”

별아는 담담히 말했다.

“네, 언니 말씀대로 할게요.”

강준은 시정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차에서 잠깐 기다려. 나 별아랑 얘기 좀 하고 올게.”

“네.”

시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시정이 자리를 비우자, 강준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

“시정이는 아직 어리고 겁도 많아. 게다가 불안장애까지 있잖아. 그러니까 앞으로 시정한테 말할 때는 최대한 부드럽게 해.”

별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강준의 말투는 곧장 비난이었다.

그 순간, 별아의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잠시 뒤, 강준도 자기 말이 너무 매서웠다고 느꼈는지 톤을 낮췄다.

“여보, 내가 널 뭐라 하려는 건 아니야. 별아는 그냥 환자인데, 우리가 좀 더 이해해주면 되잖아. 괜히 마음 상하지 마.”

별아는 눈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넌... 소시정 좋아하게 된 거 맞지?”

원래는 이렇게 빨리 꺼낼 생각은 없었다.

심지어 별아가 다시 살아 돌아왔을 때도, 당장 드러내진 않으려 했다.

하지만 강준의 태도는 너무 성급했다.

마치 별아가 ‘아내’라는 사실조차 잊은 듯이.

“다른 여자 좋아하게 됐으면, 우리 그냥 이혼하자.”

강준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별아가 이렇게 담담히 말할 줄은 예상 못한 듯했다.

“왜 맨날 이혼 얘기부터 꺼내? 할 말이 그거밖에 없어?”

강준은 짙은 미간을 찌푸리며 별아를 노려봤다.

“여보, 우리 그냥 잘 살면 안 돼? 맨날 이런 말만 하니까, 우리가 부부로서 상처받는 거야. 아무도 널 평생 맞춰주진 않아.”

전생에서 별아가 강준과 가장 많이 다툴 때도, 입버릇처럼 나온 말은 이혼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강준은 무릎 꿇고 사과하며 그녀를 붙잡았다.

강준은 언제 변한 걸까?

아마 그는 시정을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였을 거고, 그때부턴 별아가 정말 이혼하겠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았으니까.

“됐어, 이런 얘기는 하지 말자. 쓸데없이 머리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별아가 말없이 있자, 강준은 억지로 인내하는 듯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여보, 힘들어도 시정이 생일은 잘 준비해 줘. 난 먼저 간다.”

그렇게 말하고는 강준은 별아를 남겨둔 채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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