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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Penulis: 말린땅콩
별아는 연회장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탔다.

운전기사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 하고, 핸드폰을 들어 친구이자 변호사인 연민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하강준이랑 이혼할 거야.”

민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진짜...? 장난 아니지?]

“얼른 하강준 뒷조사 좀 해줘. 그리고 협의이혼 합의서도 빨리 초안 잡아. 최대한 빨리.”

별아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변호사로서의 민희는, 별아가 단순히 술김이나 다툼 때문에 충동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알았어. 최대한 서둘게.]

“고마워.”

전화를 끊은 뒤, 별아는 핸드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화면 속 배경은 여전히 자신과 강준의 결혼사진이었다.

그때 그렇게 환하게 웃었던 얼굴이, 지금은 참으로 비웃음 같았다.

“별아, 평생... 아니, 다음 생까지, 그다음 생까지 널 사랑할 거야. 죽을 때까지.”

“자기야, 널 아내로 맞은 건 내가 몇 생을 공들여 얻은 복이야. 널 매일 웃게 해줄게. 울게 하지 않을 거야.”

“여보, 우리 아기 낳자. 우리 사랑의 증거.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아기가 될 거야.”

“별아... 우리 여보...”

“...”

별아의 가슴은 한 치씩 갉아 먹히듯 아파왔다. 입꼬리가 서늘하게 휘어졌다.

‘하강준, 벌써 네 맹세를 잊어버렸지. 우리 아이도...’

별아는 눈을 감았다. 날카로운 손톱이 가죽 시트를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입술이 떨리더니, 뜨거운 눈물이 두 줄기 흘러내렸다.

그날 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린 뒤에야 별아는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익숙한 집의 현관문을 열자 가사도우미들만 보였고, 강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모님, 대표님 아직도 안 들어왔어요?”

강준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적어도 마음을 빼앗긴 시정은 집에 데려다 줬어야 했다.

“소시정 씨는요? 아직 안 왔나요?”

가사도우미는 당황한 얼굴로 대답했다.

“사모님, 대표님은 안 들어오셨습니다. 말씀하신 소시정 씨는... 본 적이 없는데요.”

별아는 잠시 굳어섰다.

이내 천천히 슬리퍼로 갈아 신으며 비틀린 미소를 흘렸다.

오늘 밤은 돌아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됐어요. 들어가서 쉬세요.”

“네, 사모님.”

...

전생에, 강준은 시정을 별아에게 소개했다.

강준이 시정을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별아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리고 거절만 한 게 아니었다. 강준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별아가 시정을 향해 뱉은 말도 고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강준은 그 자리에서 분노를 터뜨렸고, 주위의 시선 따위 개의치 않고 시정을 데리고 나가버렸다.

그 모습은 꼭, 도망이라도 치는 연인 같았다.

강준은 사실 변한 게 없었다.

그는 사랑할 땐, 언제나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남자였다.

단지 사랑하는 대상이 달라졌을 뿐.

강준의 말대로였다.

상류층 남자치고 바깥에 마음 통하는 여자 몇 명쯤 없겠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와 함께 잠자리에 드는 건, 결국 한순간의 선택일 뿐이었다.

강준은 그저 그 선택을 누구보다 철저히 실행했을 뿐이었다.

별아는 정말 알고 싶었다. 강준이 시정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일 때, 과연 별아에게 ‘평생 사랑하겠다’던 약속을 떠올린 적이나 있었는지.

별아는 천천히 심호흡했다.

‘이젠 다 상관없어. 이번 생은 어차피 그 결혼을 붙잡으려고 돌아온 게 아니니까.’

불을 끄고, 별아는 발소리를 죽인 채 계단을 올랐다.

이층 모서리에 다다르기도 전에 현관문이 열렸다.

잠시 후, 강준과 시정이 함께 들어왔다.

“별아 언니는 아직 안 들어오신 거예요? 아니면 벌써 주무시나요?”

시정의 목소리는 여전히 고운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강준은 고개를 들어 거실을 둘러봤다.

“벌써 자겠지. 원래 일찍 자니까.”

시정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제가 오빠 집에 들어와 있는 게... 혹시 너무 민폐는 아닐까요? 아까 보니까, 별아 언니 얼굴이... 많이 안 좋으시던데요. 언니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닐까요? 저 그냥 나가는 게...”

시정은 난처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장 나가려는 듯한 발걸음을, 강준이 손을 들어 막았다.

“왜 그래. 그런 거 아니야.”

시정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연약하고 불쌍한 얼굴로 그 눈동자를 오롯이 강준에게만 고정했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강준의 입술이 천천히, 시정을 향해 기울었다.

현관 옆 작은 조명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뒤엉켰다.

그 장면은 별아의 시야에 고스란히 박혔고, 유난히 따가웠다.

‘사랑은 늘 새사람이 웃고, 이전 사람이 우는 거지.’

별아는 시선을 거뒀다. 입술 끝을 차갑게 당기며,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날 밤.

강준은 곧장 별아와 함께 쓰는 안방으로 들어오지 않고, 대신 별아가 시정을 위해 따로 준비해둔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둘이 억누른다 한들, 별아의 귀에는 남녀 사이에서만 들릴 수 있는 은밀한 소리가 또렷하게 꽂혔다.

‘지금 돌아보면, 난 정말 바보였어.’

‘내가 죽을 때까지도... 하강준이랑 소시정이 이렇게나 깊이 사랑하고 있는 걸 눈치도 못 챘다니...’

별아는 그날 강준이 끝내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준은 결국...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아니면 옆방의 아내가 떠올라서인지 안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오른 강준이 별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내의 볼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요즘 왜 이렇게 피곤해? 설마 임신한 건 아니지?”

어둠 속, 별아의 눈동자가 순간 환하게 떠올랐다.

‘임신...? 맞네...’

전생의 이 시점, 딱 석 달 전부터 별아는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고, 이즈음에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생에서만큼은... 그 비극을 다시 겪게 둘 수 없어.’

이불 속에서 별아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떨리는 입술 끝에서 간신히 말이 흘렀다.

“아니.”

강준은 잠시 멈추더니 낮게 말했다.

“다음에 같이 병원 가보자. 아니면... 우리 더 노력해도 되고.”

그 말과 함께 강준은 별아의 목덜미에 입술을 찍었다.

남자의 손가락이 더욱 세차게 얽혔고, 강준의 몸에서는 숨길 수 없는 뜨거움이 전해졌다.

별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여자 침대에서 막 나온 남자가,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아기 얘기를 꺼낼 수 있지?’

‘하긴... 강준한테 체면 같은 게 남아 있긴 했을까.’

“여보...”

별아는 조용히 물었다.

“우리가... 굳이 아기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짧은 침묵이 흘렀다.

5초, 6초...

강준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이유를 별아는 알고 있었다. 강준에겐 이미 시정이 있었으니까.

강준은 양가 어른들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별아와 아이를 가져야 했을 뿐, 결코 별아와의 사랑을 원해서가 아니었다.

“여보가 아직 놀고 싶으면... 늦게 가져도 돼.”

강준의 목소리는 한층 차갑게 가라앉았고, 그 안엔 이상한 안도감마저 비쳤다.

별아의 가슴속으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강준은 결국 또 책임을 자기 쪽으로 떠밀었다.

“여보... 아직도 날 사랑해?”

어둠 속, 불현듯 던져진 질문은 너무도 어색하게 울려 퍼졌다.

별아는 속으로 짐작했다.

‘하강준이 솔직히 대답할까, 아니면 피할까?’

어차피 시정이 생긴 순간부터 강준은 이미 마음을 내준 사람이다.

전생, 별아가 죽기 전 가장 심하게 다툴 때도 물었던 질문이었다.

“왜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됐냐고...”

그때 강준은 이를 악물고 노려보며 말했다.

“송별아, 넌 이제 시정이 손가락만도 못해. 내가 널 어떻게 다시 사랑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별아는 다만, 혹시라도 자신이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강준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길 바랐다.

‘내가 사랑하지, 당연히...’

그런 뻔한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강준은 이번에도 침묵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가 별아를 향한 사랑은 시정이 나타난 순간 끝나버렸다는 걸, 더는 숨기지도 않았다.

“여보, 설마 아직도 시정 우리 집에 들어온 거 마음에 두고 있는 거야?”

별아는 창밖의 희미한 달빛을 바라보았다.

‘내 대답이 과연 중요하기나 할까?’

중요했다면, 강준은 애초에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정은 그냥 의지할 데 없는 애잖아. 우리가 손을 내밀면 그 아이는 진흙탕에서 벗어날 수 있어. 그게 뭐가 문제야?”

점점 강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별아, 좀 그만해라. 네 그 질투하는 성질머리 좀 접고 살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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