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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해야 할 일

한 시간도 안 돼서 그는 최은영의 집 앞에 도착했다. 이설이 문 앞에 서있었는데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선우가 다급히 물었다.

“은영 씨는 어떻게 됐어요?”

이설은 이선우가 다정하게 최은영을 부르는 모습이 달갑지 않았지만 최은영이 명령을 내렸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오늘 병원에서 나올 때 전화를 한통 받으시고는 지금까지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세요. 제가 아무리 얘기를 나눠보려 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아가씨 마음속에는 그쪽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 들어가서 좀 살펴봐주세요. 실망시켜 드리지 말고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이설이 울먹거렸다. 최은영의 부하이기는 하지만 이설에게 최은영은 친언니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네, 저한테 맡기시고 들어가 보세요.”

이선우가 최은영의 방문을 두드렸다. 아직 최은영을 치료할 많은 약재들을 구하지 못한 데다가 치료과정이 길 것이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원래 부모님이랑 시간을 좀 보내다가 최은영을 치료해 줄 심산이던 이선우는 오늘 그녀의 상태를 보고 그냥 바로 치료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오셨어요, 이쪽에 앉으세요.”

최은영은 혈색이 안 좋았고 낯빛이 창백했다. 하지만 이선우를 보자마자 그녀의 얼굴을 뒤덮고 있던 근심은 사라지고 부드러움만이 남아있었다. 이선우는 바로 최은영 옆에 앉아 그녀의 손목을 잡고 진맥을 했다.

“은영 씨,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맥이 고르지 않아요. 증세가 악화된 것 같아요. 일단 누워봐요. 침술을 진행할게요.”

이선우는 최은영을 천천히 눕히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최은영이 이선우의 품에 안겼다. 최은영은 잠옷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몸을 이선우에게 밀착시켰다.

“전 곧 부대로 돌아가봐야 해요. 하지만 금방 다시 돌아올 거예요. 이제 한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요.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아요.”

최은영이 이선우를 침대에 눕혔다.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최은영을 보며 이선우는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지금 이 상태로 부대로 돌아가면 위험해요. 더 이상 치료를 미뤄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일단 누워요. 급한 대로 침부터 놓을게요. 그리고 내일 당장 약재를 구해서 빠른 시일 내에 나머지 치료도 진행하죠”

그는 잠옷을 가져다가 최은영의 몸을 덮고는 침들을 꺼냈다.

“선우 씨, 고마워요. 하지만 제 몸은 제가 가장 잘 알아요. 일단 침부터 놓고 제가 돌아오면 그때 다시 치료하는 걸로 하죠. 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잖아요.”

최은영의 태도가 굳건했기에 이선우도 의견을 굽혔다. 침을 놓은 후 최은영의 상태도 조금 호전되었다. 최은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이선우의 얼굴을 가볍게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전쟁의 여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위엄을 되찾은듯한 모습이었다.

“꼭 가야 하는 건가요?”

이선우는 조금 아쉬웠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사이에 최은영은 이미 이선우의 마음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버리고 말았다.

“걱정 마세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 총사령관님의 지시라 따를 수밖에 없어요.”

“몸조심하고 다치지 말아요. 기다릴게요.”

말을 마치고 이선우는 이설을 불러 몇 가지 일을 부탁했다. 최은영과 이설은 곧장 떠났다. 이설이 차에 타자마자 물었다.

“장군님, 이렇게 빨리 장군님을 부른 거 보면 북쪽 변경에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어. 저번의 그 전쟁으로 입은 피해가 막심하니 3년 내지 5년이 지나지 않고서는 회복하기 힘들 거야. 내 병세를 치료해 주려고 부른 거겠지. 하지만 난 이미 선우 씨가 있으니까 필요 없어. 이번에 가는 건 내가 먼저 사령관님에게 이번 프로젝트에 합류하겠다고 부탁드렸기 때문이야.”

“네? 하지만 몸도 아직 성치 않으신데... 선우 씨를 그렇게 믿으시는 거예요?”

이설은 놀랍기도 했지만 최은영의 몸상태가 먼저 걱정됐다.

“걱정 마, 충분히 믿으니까. 사령관님에게도 이선우를 추천할까 생각 중이야. 의사인 데다가 의술도 뛰어나니까. 이번 프로젝트에는 저런 인재가 필요해. 운전에나 집중해, 방금 치료를 받았으니 당분간 내가 죽을 일은 없어.”

최은영은 이선우를 도와 그가 빨리 이름을 떨치는 거장으로 되게 할 생각이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자신과 이선우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된다면 이선우는 언제든지 생명에 위험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최은영은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설은 더 이상 최은영을 닦달하지 않았다. 그녀도 이미 이선우가 최은영 마음속에서 어느 만큼 의 지위를 차지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설은 그저 이선우가 최은영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하고 조용히 기도할 뿐이었다.

그 시각 방안에 혼자 남은 이선우는 멀어져 가는 최은영의 차량을 보면서 섭섭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그는 부대 내의 아는 제자에게 전화를 걸어 최은영의 직위에 대해 물어볼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무례한 행동인 것 같았다.

“됐어, 방금 치료도 했으니 세 달 안에는 별 위험 없을 거야. 그녀의 직업도 존중해줘야 하니까.”

이선우는 이렇게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드디어 전화 주시는 군요. 제가 뭘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하루 안에 내가 말한 약재들 전부 구해와. 만약 이 일을 잘 해낸다면 저번에 부탁한 대로 침술을 가르쳐주도록 하지.”

전화를 받은 사람은 수라감옥에서 알게 된 범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도 전에는 신의라고 불리는 큰 인물이었다. 그자라면 이선우가 원하는 약재들을 가장 빠른 시일 내로 구해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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