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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Author: 귀차니즘
주시우가 교실을 나와 복도를 걷고 있을 때, 마주 오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약리학을 맡고 있는 유민수 교수였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정수리 앞머리는 이미 훤히 벗겨졌지만 유민수는 포기하지 못한 듯 언제나 작은 빗을 들고 다니며 틈만 나면 몇 가닥 남은 머리칼을 이리저리 빗어 넘겼다.

“오, 주 교수님. 이제 수업 막 끝났나 보군요.”

유민수는 반갑게 웃으며 다가오자 주시우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 교수님.”

“이제 연구실로 돌아가시는 길인가요?”

“네.”

“주 교수님은 참 부지런하시네요. 부임하신 지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다른 교수들이나 학생들한테 평판이 아주 좋더군요.”

“그저 제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오히려 유 교수님의 성실함이 제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죠.”

형식적인 덕담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젊고 촉망받는 동료에게 칭찬을 들으니 유민수의 마음은 은근히 들떠 있었다. 입꼬리를 잔뜩 올린 유민수의 시선은 곧 주시우의 왼손으로 향했고 반지는 은빛이 반짝였다.

오늘 사실 유민수는 임무를 가지고 나왔다. 교수실에서 다들 주시우의 결혼 여부가 궁금했지만 누구도 직접 물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결국 나이가 제일 많은 유민수가 이 영광스러운 임무를 맡았다. 유민수는 겉으로는 마지못한 척했지만 사실은 그도 역시 속이 근질거렸다.

유민수의 딸이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은근히 주시우와 인연을 맺어보려는 기대도 품고 있었는데 만약 이미 결혼한 거라면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는 셈이었다.

유민수는 슬며시 헛기침하고는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주 교수님, 남의 사생활에 참견하는 것 같아 좀 송구스럽습니다만 나이 들수록 괜히 궁금한 게 많아져서요... 사실은 꼭 한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주시우는 여전히 예의 바른 목소리였고 유민수는 고개를 숙여 주시우의 반지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 혹시 결혼하신 겁니까?”

주시우는 손끝으로 반지를 쓰다듬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

그 순간 유민수는 마음속에서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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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195화

    앤드루 교수와 함께 호텔 입구에 도착했을 때, 막 계단을 오르던 앤드루가 두 사람을 발견했다.“드디어 만나네요.”앤드루는 영어로 환하게 인사를 건네며 성큼 다가와 신예린을 끌어안더니 자연스럽게 뺨을 맞대는 인사를 했다.순간 신예린은 굳어 버린 듯 얼어붙었다.그 모습을 본 앤드루는 바로 눈치를 채고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쏘리, 습관이라 그만...”신예린은 얼굴을 붉힌 채 손사래를 치며 연달아 말했다.“아, 괜찮아요. 전혀 괜찮습니다.”신예린은 수줍어하는 기색이 얼굴에 가득 번졌고 앤드루는 곁에 있던 주시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Your wife is so lovely!”주시우의 입가에도 은은한 웃음이 번졌다.“I agree with you.”뜻밖의 칭찬에 신예린은 더더욱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때 주시우가 정중히 소개했다.“제 아내, 신예린입니다.”“안녕하세요. 신예린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앤드루라고 합니다.”앤드루는 이번엔 서툰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하며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잡았다.“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신예린이라고 합니다.”“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주시우가 부드럽게 권유했고 세 사람은 함께 안으로 향했다.한편, 여도준은 친구들과 함께 근처 식당에 도착했다.마침 전화가 걸려 와 여도준은 친구들에게 먼저 들어가 있으라 하고 혼자 밖에 남았다.전화를 끝내고 고개를 돌린 순간, 바로 옆에 있는 고급 호텔 쪽에서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저건... 신예린?’여도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신예린이 낯선 남자와 함께 서 있었고 그 남자가 몸을 숙이며 신예린과 뺨을 맞댔다.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여도준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들고 화면을 향해 찍었다.기둥 때문에 화면 속에는 두 사람의 모습만 어렴풋하게 잡혔지만 여도준의 심장은 심하게 요동쳤다.급히 호텔 안으로 들어가 봤지만 넓고 화려한 로비에는 이미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손님, 예약하셨습니까?”직

  • 터닝포인트   제1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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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터닝포인트   제192화

    신예린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많은 유학생은 유학의 목적을 스펙을 쌓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더 좋은 기회가 있으면 그곳에 눌러앉기를 택했다.하지만 주시우는 달랐다.주시우는 언제나 자신을 길러준 나라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고 화국의 의료 발전을 위해서라면 더 좋은 대우도 과감히 포기했다.언젠가 주시우가 가르친 제자들이 전국 곳곳에 흩어져서 그가 전해 준 지식으로 사람들을 살리고 병을 고칠 것이다.마치 민들레 씨앗이 바람을 타고 흩어져 가는 것처럼 조시우의 가르침은 구석구석 스며들어 더 많은 생명을 살리게 될 것이다.그리고 신예린도 그 민들레 씨앗 중 하나였다.순간, 신예린은 마음속 깊이 책임과 자부심이 피어올랐다.방 안은 고요했고 주시우는 마사지를 마친 손을 거두며 신예린의 옷을 다시 덮어 주었다.신예린이 조심스레 물었다.“교수님, 그럼 혼자 유학하러 갔을 때 무섭지 않았어요?”“괜찮았어. 원래부터 혼자 잘 지내는 편이라 새로운 환경도 금방 적응했지.”“혹시 가족이 보고 싶어지면요?”주시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솔직히 그럴 겨를도 없었어. 매일 연구 주제에 지치고 실험에 매달리고 논문 쓰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가족 생각할 틈조차 없었어.”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그러면 다른 것도 물어봐도 돼요?”주시우의 눈길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신예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거기서 외국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았던 거 아니에요?”신예린은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제발 아니라고 해 줬으면 좋겠지만 또 아니라고 하면 믿기 힘들 것 같은데...’신예린은 그런 생각이 그대로 머릿속에 담겨 있었다.주시우는 괜히 장난기가 동해 신예린을 놀리고 싶어졌다.“아니.”신예린의 눈에는 의심이 번졌고 곧바로 주시우의 말이 이어졌다.“외국뿐 아니라 화국에서도 인기가 많았지.”“...”예상했던 답이라 신예린은 더 당황스러웠고 서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괜히 뿌듯했다.‘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

  • 터닝포인트   제191화

    신예린은 불빛에 드러난 주시우의 뚜렷한 옆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그가 유학 시절 젊고 패기 넘쳤을 모습을 떠올렸다.자신이 너무 어려서 주시우의 과거를 직접 보지 못한 게 아쉽기도 했고 또 마음 한구석에선 설령 동갑이었더라도 주시우의 눈길이 자신에게 머물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지금 상황이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을 거야.’신예린은 자신을 다독였다.주시우는 언제나 자신이 닮아가야 할 앞서 있는 목표 같은 사람이었다.통화를 끝낸 주시우가 서재 불이 꺼져 있는 걸 보고 방으로 향했고 침대에 앉아 있던 신예린은 손바닥에 아로마 오일을 덜어내려던 참이었다.주시우가 들어서자 신예린이 먼저 말을 건넸다.“통화 끝났어요?”“응.”주시우는 손짓으로 신예린을 불러 눕히고 그녀의 손에 들린 병을 대신 받아 들었다.신예린은 천천히 몸을 주시우의 쪽으로 기울였다.다시 시작된 잠자리 전의 작은 의식이었다.며칠째 이어지는 일이라 이제는 예전만큼 어색하지 않았지만 신예린의 여전히 얼굴은 조금 붉어졌다.주시우는 능숙하게 신예린의 옷을 걷어 올리고 오일을 덜어 손바닥을 덮었고 따뜻한 손길이 부드럽게 아랫배를 문질렀다.그런데 문득 신예린이 장난스럽게 중얼거렸다.“나중에 퇴직하시면 마사지사로 취직해도 되겠어요.”“뭐라고?”뜻밖의 발상에 주시우가 잠시 멈칫했고 신예린은 입꼬리를 올리며 계속했다.“이 정도면 가게 차려도 되죠.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쓰면... 완전 안마원 원장님 같을걸요?”그 말과 함께 일부러 눈을 감고 두 팔을 휘휘 저으며 흉내까지 냈다.교수를 은퇴 후 마사지사로 상상하는 건 신예린 밖에 못 할 일이었다.그 말에 주시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그렇게 마사지를 좋아하는 줄 알아?”주시우의 손길은 여전히 배 위를 따라 부드럽게 움직였다.“이런 건 내 아내한테만 해 주는 거야.”그 한마디에 신예린의 가슴은 두근거리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입술 끝이 절로 올라가 버렸다.“아까 전화 온 분은 내가 아르덴에서 박사 과정 할

  • 터닝포인트   제190화

    주시우의 말에 신예린의 얼굴이 단숨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그럼... 이 목걸이는 호칭 바꾸기 위해 준 선물인가요?”신예린이 장난스럽게 물었다.“아니. 목걸이가 없어도 넌 남편이라고 불러야 해. 목걸이가 있어도 불러야 하고.”‘아니, 도대체 말은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신예린은 속으로 새콤달콤한 기분에 잠겼고 주시우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신예린은 작게 속삭였다.“교수... 여보.”주시우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교수 여보? 다른 여보도 있단 말이야?”주시우가 일부러 놀리는 걸 알면서도 신예린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주시우의 팔을 톡 쳤다.그 순간 주시우는 곧장 신예린의 손을 잡아끌어 품에 안아 버렸고 콧날이 신예린의 귓불을 스치듯 부드럽게 문질렀다.“한 번 더 불러 봐.”주시우의 매력있는 저음이 나지막이 감돌며 신예린의 귀를 파고들자 귓가가 짜릿하게 전율했다.“여보.”품에 안긴 채 신예린이 낮은 목소리로 불렀고 달콤하게 젖은 목소리에 주시우의 심장이 덜컥 흔들렸다.“아이고, 우리 착한 마누라...”주시우는 신예린의 귀끝에 가볍게 입술을 닿았고 따스한 숨결이 깃털처럼 간지럽게 스쳤다.민감한 곳이 스치자 신예린은 마치 전류가 흐른 듯 몸이 움찔했고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두 사람은 한참이나 차 안에서 달콤한 시간을 나누다 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저녁을 먹은 뒤 신예린은 늘 그렇듯 서재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다.주시우는 그 사이 침대 시트와 이불을 바꾸고 다시 내려와 시간을 확인한 후, 부엌으로 가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데워 왔다.책상 위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신예린은 문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문 앞에는 훤칠한 주시우가 서 있었고 하얀 손에는 김이 오르는 우유 잔이 들려 있었다.불빛 속에서 주시우의 옆모습은 한층 뚜렷하게 드러났고 고귀한 기품이 묻어났다.신예린은 주시우가 다가와 잔을 내려놓는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쉬면서 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주시우가 다정하게 말했다.예전에 아르바이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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