녕비의 의심 섞인 질문에 봉구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그녀는 차분하면서도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내 가정사까지 녕비에게 알려야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쌍생아 이야기가 비밀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누군가 봉장미의 평범한 삶을 방해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다른 사람이었다면 녕비는 벌써 대들었겠지만, 새 황후는 전쟁을 치르고 사람까지 죽인 경력이 있었다.녕비는 속으로 움찔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물러났다.그러나 그녀의 마음속 의문은 커져만 갔다. 두 황후가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비빈들이 모두 떠난 후, 수방의 궁녀가 영화궁을 찾았다.“황후마마, 문안드립니다.”“이건 폐하께서 특별히 마마를 위해 새로 짓게 하신 옷입니다. 지금 입어보시겠습니까?”봉구안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색깔이 단정하구나.”궁녀는 곧바로 대답했다.“폐하께서 직접 색과 소재를 고르셨습니다.”봉구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소욱의 안목은 꽤 훌륭했다. 그녀의 취향을 잘 간파한 듯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가 입었던 짙붉은 옷이 자꾸 떠올랐다.잠시 후 봉구안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옷을 입고 보니, 이 옷의 디자인은 그녀가 본 적 없는 새로운 형태였다.남성복보다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이 있었으나, 여성복보다 간소하고 활동하기 편했다.봉구안은 여전히 복잡한 여성복이 불편했다. 층층이 겹친 옷감은 마치 족쇄 같아 움직임을 억압했고, 그녀를 무겁게 짓눌렀다.특히 ‘정결대’라 불리는 복잡한 허리띠는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허리띠가 복잡할수록 여성의 정절을 상징한다는 관념이 따라다녔다.새 옷은 그녀를 매우 만족스럽게 했다.“이것도 폐하의 뜻인가?”봉구안은 궁녀에게 물었다.궁녀는 공손히 대답했다.“폐하께서 직접 지시를 내려, 저희가 수정한 것입니다.”봉구안은 거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괜찮구나. 여성복도 이렇게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면, 민간 수방에서도 이와 같이 제작해보거라.”“이건…” 궁녀는 잠시 머뭇거렸다.“황후의
소욱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궁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오늘이 칠석인 만큼, 황후와 함께 외출하고 싶었던 것이다.봉구안은 솔직히 말했다.“다음에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냥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소욱은 쓴웃음을 지었다.“네가 이렇게 고생할 줄은 몰랐다. 칠석에도 나가지 않다니.”봉구안은 그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말했다.“폐하께서는 제가 무심하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거죠?”소욱은 황급히 그녀를 끌어안고, 뺨을 그녀의 얼굴에 살짝 맞댔다.“괜찮다. 난 그래도 네게 다정하게 굴 것이다.”“다정하신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폐하께서는 참 고운 자태를 간직하고 계시군요.”소욱은 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고운 자태?”그녀가 돌려 말하며 자신이 늙었다고 말하는 건가?소욱은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잡으며 약간 불만스러운 어조로 말했다.“아직 서른도 넘지 않았다. 여전히 팔팔하단 말이다!”게다가 ‘고운 자태’는 대개 부인에게 쓰는 표현이 아닌가. 어찌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봉구안은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하며 말했다.“폐하, 오늘은 그 붉은 옷을 입으시면 어떨까요?”촌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소욱은 봉구안이 그 옷을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여기며 만족스러워했다.그는 그녀를 더욱 꼭 껴안으며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네가 좋다면, 내가 무엇을 입든 상관없다.”자진궁.유사양이 폐하의 옷을 갈아입히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소욱이 말했다.“안목이 꽤 좋구나.”유사양은 어리둥절했다.그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빈정거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궁 밖.오늘은 칠석이라 번화한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한눈에 보아도 여인들이 대부분이었다.규수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다니며, 크고 작은 시회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봉구안이 여러 꽃등 수수께끼를 맞추자, 그 모든 꽃등을 소욱이 들고 있었다.그는 고개를 돌려 다른 부부들을 보니, 그들의 모습은 자신들
봉구안이 관아에 신고를 하려고 하자 모두가 어리둥절하였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려던 부부는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소욱 역시 그녀가 무슨 의도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령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한다 해도 굳이 관아에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있는 한, 그들이 감히 함부로 굴지 못할 터였다.봉구안은 차갑게 시선을 내리깔며 주인에게 방금의 수수께끼를 읊었다.“‘가을바람이 불어오니 풀빛이 늦어지고, 쓸쓸함이 겨울에 이른다.’ 이 구절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풀’과 ‘쓸쓸함’입니다. 풀빛이 늦어진다는 것은 늦음을 의미하며, 늦음은 곧 이른 아침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침을 뜻하는 ‘이를 조’에 획을 더하면 ‘풀 초’로 변합니다. 여기에 한자를 또 더하면 쓸쓸함을 나타내는 ‘쓸쓸할 소’가 됩니다.”주인의 얼굴이 약간 굳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봉구안은 이어서 말했다.“‘한밤중 새가 울며 아이를 부른다.’ 아이를 부르는 이는 누구일까요? 바로 ‘아버지’입니다. ‘쓸쓸할 소’는 남제의 성씨이니 남제를 지칭하는 말로 쓰입니다. 남제 이전은 진 나라였으니, 이로써 ‘진’ 자가 되는 것이죠.”“‘끝없이 떨어지는 낙조.’ 끝이 없다는 것은 ‘베풀 진’에서 ‘귀 이’ 부분을 없애면 ‘동녘 동’이 됩니다. 낙조, 즉 해가 지는 것을 표현하려면, ‘해 일’을 없애야 하니, ‘동녘 동’에서 ‘나무 목’이 되는 것입니다.”봉구안이 말을 끝내자 주변의 백성들은 감탄과 충격에 휩싸였다.아까 그녀를 의심하던 부부는 슬그머니 자리를 뜨고 도망가 버렸다. 다른 백성들은 그 주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남제의 백성으로서 진 나라를 마음을 두다니, 이거 반역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봉구안의 눈빛은 서늘하고 날카로웠다. 마치 날을 세운 칼 같았다.“남제 백성이면서 진 나라를 마음을 품다니, 간도 크군요!”그 순간 주인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좌판을 버리고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진한길이 재빠르게 그를 붙
강림은 봉구안 옆에 있는 소욱을 보자마자 크게 당황하며 외쳤다. “소이, 자네도 여기 있었나!” “오늘 차림새를 보니, 풍월루의 예인이라도 된 줄 알았네!” 빨간 옷은 아무나 소화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개 풍월루의 예인들이나 입는 요란한 옷이었기 때문이다. 소욱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예인이라고?” ‘이 녀석, 진짜 죽고 싶은 건가.’ 강림은 생각도 없이 막 말을 내뱉는 사람이라, 이번에도 입이 먼저 나가고 머리가 뒤늦게 따라왔다. 자신이 한 말을 곱씹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잠깐. 봉구안은 황제에게 시집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황후가 황제를 두고 바람을 피울 리는 없을 텐데… 설마, 지금 눈앞에 있는 소이가 바로… 황제? 강림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진실을 깨달았다. 순간 당황한 그는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슬그머니 오른발을 옆으로 빼고, 왼발을 뒤로 옮기며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저기, 소환, 오늘은 내가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말이오. 다음에 다시 보세!”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바람같이 사라졌다. 소욱은 술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잡아라.” 진한길은 즉시 명을 받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림은 뒷덜미를 잡힌 채 끌려왔다. 진한길이 그의 옷깃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강림은 억지로 웃으며 봉구안을 바라보았다. 눈빛에선 간절한 도움을 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봉구안은 무심하게 말했다. “자업자득이지.” 강림이 울상이 되어 소욱을 향해 애걸했다. “소… 아니, 폐하, 폐하께서는 마음이 넓으신 분이니 저 같은 미물은 그냥 바람처럼 흘려 보내 주십시오!” 평소 당당하던 강림의 모습은 사라지고, 당대 최고의 부자인 강 씨 집안의 후계자는 완전히 기세가 꺾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목숨을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소욱은 봉구안을 의식해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강 공
완부옥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혼인까지 이틀 남았으니 여러 가지 예법을 익혀야 했다. 하지만 몸은 역관에 머물러 있어도, 마음은 이미 먼 곳에 닿아 있었다. 밤이 되자, 한 남자가 얼굴을 가린 채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공격 자세를 취했지만, 남자가 얼굴을 드러내자 멈칫했다. "사제?" 남자는 화난 얼굴로 말했다. "선배, 스승님께서 선배가 남제로 갔다고 들으시곤 매우 화를 내셨어요. 그래서 절 보내셔서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예전에야 선배가 소환을 따라다니는 걸 그냥 넘어갔다지만, 이제는 혼인까지 한다니요? 스승님이 알게 된다면…" "그럼 안 들키면 되겠네." 완부옥은 그의 말을 끊으며 게으른 듯 침대에 기댔다. "그럴 순 없죠! 저는 스승님께 선배와 관련된 모든 일을 낱낱이 보고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말이 많군." 완부옥은 그를 차갑게 쳐다보며 비웃었다. "역시나 쓸모없어서 보낸 거겠지. 네 독술은 워낙 형편없으니, 너 하나 빠져도 아무 문제없겠지." 그녀의 말에 사제의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선배, 너무하십니다! 저, 스승님께 다 일러바칠 겁니다! 선배가 저를 이렇게 놀렸다고요!" 완부옥은 팔짱을 낀 채 비웃으며 말했다. "이런, 두 마디 했을 뿐인데 울려는 거니?" "선배,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제가 왜 선배가 서왕에게 시집가려는지 모르겠습니까? 다 소환 때문이잖아요! 하지만 소환은 이제 남제 황후가 되었습니다! 평생 기다려도 그녀를 가질 순 없을 겁니다!" 완부옥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뭐라고? 이 개 자식! 다시 한 번 더 그 입을 함부로 놀린다면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제 성은 개가 아니라 갈입니다! 갈십칠이라고요!" 그는 급히 반박하며 소리쳤다.남방 사투리에서는 '갈'과 '개'의 발음이 비슷했다. 완부옥은 그의 옷깃을 거칠게 잡아끌며 진지하게 말했다. "네가 뭘 모르는 줄 알아? 스승님이 곧 죽을 날이 가까워서 날 불러
한밤중, 동방세는 문을 두드리는 급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옷을 걸쳐 입고 문을 열자, 봉구안과 눈이 마주쳤다."소환?"깊은 밤에 그녀가 여긴 왜 온 걸까?그의 시선이 봉구안 뒤로 향하자 황제인 소욱이 서 있었다.동방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황제 부부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시간에 찾아올 줄이야.…"내게 용모파기를 부탁한다고?"잠에서 막 깬 동방세는 졸린 눈을 비비며 물었다.봉구안은 그에게 정중히 손을 모아 예를 갖추었다.소욱은 진한길에게 미리 준비하라고 명한 금전을 전달하라 명했다.그러나 동방세는 돈에는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우리 사이에 용모파기 정도야 문제없지.""다만, 이 시간에 찾아오는 건 좀 아니지 않소.""한밤중에 사람의 단잠을 깨우다니, 정신을 집중하기가 힘들군.""잠시 기다리게. 머리를 좀 식히고 오겠소."봉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방세가 방을 나서는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그녀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대략 두 시진이 지나고, 동방세는 붓을 잡고 정신을 가다듬었다.봉구안의 묘사를 귀 기울여 들으며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렸다.약 한 시진이 지나고 용모파기가 완성되었다.동방세는 용모파기화를 봉구안에게 내밀었다."자네 말대로라면 이 사람이 맞을 걸세."용모파기화 속 남자는 20대 초반으로 보였고, 차갑고 준수한 외모를 가졌다.그의 눈은 깊고 냉랭하여 서릿발처럼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봉구안은 어딘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누구인지 정확히 떠올릴 수 없었다. 머릿속을 수많은 얼굴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누구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익숙함은 그녀의 마음을 놓아주지 않았다.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초상화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침이 되자 교무당에 있는 학생들은 저마다 기숙사에서 하루를 시작했다.유연은 무과 시험 중 다친 뒤로 기숙사에
유연의 본 모습은 동방세가 그린 용모파기와 거의 똑같았다.맑고 단정한 얼굴에, 기품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정체가 드러났음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봉구안을 바라보며, 눈빛 속에 담긴 것은 후회뿐이었다.봉구안은 냉랭한 표정으로 탁자 위에 놓인 용모파기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이건 내 기억을 바탕으로 그리게 한 용모파기다. 유연, 이쯤에서 내게 설명할 것이 있느냐?"둘 사이에 있었던 일은 그들만이 알고 있었다.유연은 바닥에 떨어진 용모파기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결국 절 알아보셨군요."봉구안의 손이 주먹을 꽉 쥐었다.역시 그였다.이토록 철저히 숨어 다니더니, 이제는 그녀 앞에 나타났다.과거 그는 '주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녀의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해줬고, 함께 외적을 막으며 북대영에서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었던 동료였다.북대영의 성장은 그의 공이 지대했다.사람들은 그를 적국의 첩자라고 했지만, 그녀는 결코 그렇게 믿지 않았다.그는 병사들의 군자금을 마련하려 매일 조정에 상소를 올렸고, 중상을 입은 병사를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업어 오기도 했다.그는 병법을 전심으로 가르치며 그녀를 도왔던 사람이었다.그러나, 그런 사람이 배신했다는 사실은 그녀를 더더욱 혼란스럽게 했다.전장에서 그가 그녀를 배신하고 칼을 겨눈 그날 이후, 그녀는 단 한순간도 그를 잊지 못했다.그리고 지금, 드디어 그를 마주한 것이다.봉구안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억눌린 분노를 담아 물었다."넌 대체 어느 나라의 첩자인가? 남제에 와서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이냐?"유연은 담담히 그녀를 바라보았다.눈빛은 여전히 진지했지만, 그녀는 이제 그를 믿을 수 없었다."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으실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봉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나는 한때 널 믿었다."북대영에서 그녀가 가장 신뢰했던 사람은 스승과 그였다.
유연은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 아래로 가느다란 그림자를 드리운 채 조용히 말했다.“그날 제가 마마께 칼을 겨눈 것은 이성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독에 중독되어 약쟁이가 될 뻔했지요.”약쟁이라는 단어에 봉구안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유연은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약쟁이는 독에 감염되면 발작할 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극도로 난폭해지고 통증을 느끼지 못한 채, 마주치는 사람마다 공격하게 됩니다.”그의 말은 봉구안이 알고 있던 약쟁이의 특성과 일치했다.과거 도관 아래에서 만났던 약쟁이들이나, 이후 천룡회에서 사용했던 약쟁이들은 모두 매우 난폭한 특성을 갖고 있었다.하지만 그날 유연이 그녀를 찌를 때 보였던 반응은 이제 기억이 나지 않았다.봉구안은 단호히 물었다.“우리 둘은 항상 함께 있었는데, 대체 어떻게 약쟁이의 독에 감염됐다는 것이냐?”유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제가 어떻게 그런 위험에 빠졌는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누군가와 약속한 이상, 마마를 이 일에 끌어들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누군지 솔직하게 말하거라.”봉구안이 목소리를 높이며 되물었다.유연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맹 장군입니다.”그 말을 듣고 봉구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스승님을 말하는 것인가?유연은 말을 이어갔다.“그 사건 이후, 북대영에서 저는 신뢰를 잃었고, 약쟁이의 배후 세력 또한 저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제를 떠나 약쟁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이 동산국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후로 줄곧 동산국에 숨어 조사해왔습니다.”“또한 암암리에 약쟁이의 근원을 찾았습니다.”그의 말은 봉구안이 알아낸 상로와 맞아떨어졌다.그녀 역시 약쟁이 사건에 동산국이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다만 동산국 사람들이 구매자였는지 판매자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유연을 쉽게 믿지 않았다.“네가 떳떳했다면, 왜 두 번씩이나 변장하며 나를 속였지?”봉구안이 단도직입적으로
"공자님,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다 됩니다!" 연상은 즐겁게 부산을 떨며, 자신의 이런 행동이 소탁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곧, 음식들이 다 되었다. 연상은 미역국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소탁을 바라보았다. "소 공자님, 오래도록 장수하시길 기원합니다. 모용길처럼...""아, 이런! 제 입이 이렇게 험합니다. 모용길 같은 악인과 소 공자님은 전혀 다르시죠." 소탁은 국을 먹지 않고 연상에게 물었다."너는 행복하니?" 연상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저야 당연히 행복하죠. 나쁜 사람들이 인과응보로 벌을 받지 않았습니까.""게다가 오늘 의원께서 말씀하시길, 공자님의 눈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어요.""전 공자님께서 곧 다시 빛을 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연상아, 너와 나는 이뤄질 수 없는 사이야."소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도 결국에는 이런 말까지 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연상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웃었다. "공자님, 저도 알고 있어요. 공자님은 황실의 귀한 분이시고, 저는..." "네 신분 때문이 아니야. 연상아, 난 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너에게 짐이 되고 싶진 않다."이 말을 듣자마자 연상의 눈에 갑자기 한 줄기 빛이 어렸다. "단지 절 걱정하시는 것 뿐이지, 절 싫어하시는 건 아니군요?" 소탁의 목이 갑자기 조여들었다. "나는..." 그의 일생은 큰 기복이 있었고, 혼자 살아가게 될 운명이었다. 한 번도 인연을 찾을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연상이란 아이는 그에게 있어 더 과분한 존재였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시간 동안 그녀가 곁에 있어 그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난 너에게 남녀 간의 사랑을 품고 있지 않아. 설령 내가 여자를 찾는다 해도, 그건 아내지 시녀가 아니야." 연상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이 크게 떠졌다. 시녀? 소탁은 선의로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완부옥은 예로부터 여자를 좋아했다. 남자를 대할 때조차도, 가볍게 희롱하거나 농을 던질 뿐이었다.그런 그녀 앞에 서왕이 호의를 드러내자,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게다가… 분명 그도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가.서왕은 그녀의 반응이 예상보다 격해 당황하며 서둘러 설명했다.“우리는 비슷한 처지가 아니더냐? 같이 사는 건… 서로에게 나쁘지 않지 않느냐.”“네가 떠나면, 난 또 다른 이와 혼인해야 할 텐데… 너처럼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여인은 없을 것이다.”“또다시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이렇게 지내는 게 낫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그 말씀이셨군요.”그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고 긴장했건만… 그게 아니라니 다행이었다.……한편 모용길의 죄행이 세상에 밝혀지자, 남제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백성들 또한 믿기 어려워했다.“그 자가 그렇게 오래 살았다고? 분명 불로장생의 술법이 있었던 게지. 폐하께서 그걸 두려워해 제거한 거야.”“약쟁이 사건도 정말 복잡하군. 처음엔 모용욱이 범인이라더니… 이번엔 왜 모용길이 나와? 설마 이번에도 헛다리 짚은 건 아니겠지?”“뭐가 어쨌든 간에 약쟁이는 전부 모용가 짓이란 말이잖아. 그런 집안은 몰아내야지!”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모용가로 몰려가 돌과 썩은 달걀을 던지며 고함쳤다.“남제에서 당장 꺼져라!”“모용가 놈들은 천벌 받아야 마땅해! 죄 없는 사람들 고통받게 했잖아!”며칠째 모용가는 백성들의 소란에 시달려, 누구 하나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성 외곽의 한 촌락.낡은 농가 안,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들었어? 약쟁이 사건 피해자한텐 조정에서 보상금을 준다더라. 장순이네도 그랬잖아. 우리도 당장 관청 가자고, 장대복! 내 말 듣고 있는 거야?”장대복은 장순의 친삼촌이었다. 어린 조카를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섰다.“형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그 모자 둘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당신도 알잖아.”
소욱은 미소를 지었다.“부창부수라 하지 않느냐. 함께 손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황부도 결국 한 여자의 지아비이지 않겠느냐.”그 말을 들은 서왕은 한껏 조이던 가슴이 결국 힘없이 내려앉았다.그는 즉시 두 손을 모아 절하며 간언했다.“폐하, 그건 절대 안 됩니다!”“폐하께서는 일국의 군주이십니다. 어찌 여인의 그늘 아래 계시겠습니까?”“이 일이 만에 하나라도 세상에 알려진다면, 조롱과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평소 성정이 온화한 서왕이지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은근히 고집이 세지는 성격이었다.소욱은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그래서 말이지. 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아.”서왕은 속으로 중얼거렸다.‘폐하도 이게 창피한 줄은 아시는구나…’“황후 마마께서는 폐하께서 황부가 되겠다는 걸 허락하셨습니까?”소욱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황후가 왜 반대하겠느냐? 설마 다른 사내를 맞이해야한단 말이냐?”서왕은 잠시 헷갈려 그 말에 말려들 뻔했다.“그런 뜻이 아니라, 황후마마께서도 이 일이 폐하께 불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계신지 여쭈려는 것입니다.”소욱은 눈을 좁히며 말했다.“내 너를 형제로 생각하니까 이런 말도 하는 것이다.”“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야. 누구도 바꿀 수 없어.”“너는 그저 국정을 맡아 잘 처리하거라. 내가 황후와 함께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러자 서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하지만 폐하 신도 이번에는 휴가를 청하려 했습니다.”매번 국정을 떠맡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다.아무리 가까운 형제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겠는가.‘이 나라는 분명 소씨 가문의 일국이지 않는가.’ ‘잠깐…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서왕은 방금 스쳐간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감히 황제에게 이런 불만을 품다니. 마음으로도 짜증을 내다니, 감히 내가?’소욱은 인내심을 다잡으며 물었다.“휴가를 내겠다고? 무슨 연유냐?”서왕은 몇 초간 머뭇거리다, 정색하며 대답했다.“왕비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소욱은
서왕의 심문이 시작되자, 손추의 수하였던 자객은 결국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그… 그 일은 저희가 꾸민 일입니다.”“모용길이 왕가의 피를 원했고, 손추가 직접 그 일을 맡았습니다.”“하지만 그분은 왕이셨고, 무공도 출중하셨습니다. 손추는 선제를 이간질해 부친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모반의 증거를 조작했습니다.”그 뒤의 이야기는 서왕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의 아버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조정에 충성을 다했다.군주의 명이 떨어지면, 신하는 죽는 수밖에 없었다.유배길에 올라서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그는 끝까지 선제가 자신의 결백을 밝혀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약쟁이단이 아버지의 목숨을 노릴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실이 드러났을 때, 서왕은 마치 천근 무게의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그러나 죽은 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쓰라림으로 번져왔다.그가 정원으로 돌아오자, 멀리 나무 아래서 완부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와락 안아 올렸다.“이번 일을 해결해줘서… 정말 고맙다!”“드디어 모두가 알게 되었어. 부친께서 얼마나 억울하게 누명을 썼는지…”“선제도 진범을 찾고자 했었지만, 결국 오늘에서야 제대로 밝혀졌어. 정말, 정말 고맙다…”서왕은 거듭 고마움을 표현했고, 완부옥은 조금은 지겨워하며 그를 말렸다.무엇보다 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그녀를 직접 껴안을 줄은 몰랐다.조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완부옥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토닥였다.“됐습니다. 됐어요. 그렇게 큰일도 아닌걸요.”“정말 제게 보답하고 싶다면, 폐하께 소환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여쭤봐 주세요.”서왕은 그녀를 놓고, 놀라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아직도 포기 못 한 것이냐?!”완부옥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게 아닙니다.”“그저 소환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정인이 아니더
세상일이란 참 아이러니했다. 열무신은 한 발 늦게 도착했다. 그가 천옥에 도착했을 때, 모용길은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모용길의 시신을 바라보며 열무신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낮은 포효를 내뱉었다. 사람들은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재앙은 천 년을 간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모용길 같은 자는 200살이 넘게 살다가 죽었는데, 맹성주 같은 이는 관례도 치르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이를 생각하니 열무신의 증오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이 빚을 누구에게 갚아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열무신은 천옥을 나서자마자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기절해버렸다.황궁. 봉구안은 임시로 자진궁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 중이었고, 점차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자 회임이 실감 났다.정말로 아이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소욱이 정해준 태의는 매일 그녀에게 와서 맥을 짚었다. 최근 그녀의 태상은 안정되어, 더 이상 안태약을 마실 필요가 없고 그저 조용히 쉬기만 하면 되었다.아이의 일에 대해서, 봉구안은 걱정하지 않았다. 약쟁이 사건도 이미 해결되어, 그녀의 큰 근심을 덜어주었다. 현재 유일하게 장미에 대해서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장미의 옛 병이 재발할까 걱정되었다.그것이 만약 재발한다면, 그녀의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을 터였다.봉구안이 이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황제가 도착했다. 소욱은 약쟁이 사건의 최신 진전을 가져왔다. 그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열무신이 붙잡은 그 사람들이 증명할 수 있다는구나. 이미 200년 전에 태조는 돌아가셨고, 부활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하엿다. 모든 것이 모용길의 환상이었던 거야.”“짐은 이 사건의 모든 세부 사항을 대중에게 공개할 생각이다. 모용길이 남긴 큰 돈은 모두 약쟁이 매매로 얻은 것이야. 짐은 이 돈을 피해자들과 그 친척들을 위로하는 데 쓸 것이다.”“이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그는 걱정이 가득했다.봉구안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이 조치는 백성
마지막으로 태조를 다시 보았을 때, 그는 이미 병석에 누워 숨이 끊어질 듯했다. [모용길... 내 아우야, 너는 내 마음을 알지. 짐에겐 아직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다. 새 정치를 세우지 못했고, 태자는 아직 어리지. 난 단지 하늘이 인색해서 짐에게 몇 년을 더 주지 않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단 일 년이라도 짐이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좋을 텐데... 남쪽의 수해, 북쪽의 기근, 남제는 사방에서 적에 둘러싸여 있고, 북연은 우리를 업신여기며, 내부에는 반적이 있는데... 어찌할까, 염라대왕이 목숨을 거두어 가니, 짐은... 그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구나. 아우야, 나라의 일을 모두 네 손에 맡기노니, 너는 태자를 보필하라. 너는 그의 고모부이자, 또한 그의 상부이니. 아우야, 짐은 오직 너만 믿는다.]기억 속의 태조가 눈앞의 그와 겹쳐졌다. 모용길은 낮은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의 눈에 태조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수척했다."형님! 형님께서 원하던 것을 제가 마침내 이루어냈습니다! 형님께서는 불로장생할 것이고, 이 남제는 반드시 형님의 통치 아래 번영하며, 장차 천하를 통일하여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당초 남제가 새로 세워졌을 때 태조는 약속대로 그에게 강산의 절반을 주려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태조의 뜻이 천하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태조와 계속해서 사방을 정벌하고 싶었다. 하지만 운명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태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어, 그는 마침내 모든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떠날 수 있게 되었다.모용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바닥에 쓰러졌다. 눈물로 가득 찬 시선 속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이다. 그는 팔을 뻗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여인은 몸을 숙여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대고, 그에게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대인, 남은 길은 제가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모용길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우리 함께..."
열무신은 이번에도 큰 공을 세웠다.그가 아니었다면, 또 누군가 새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그는 사로잡은 자객들을 직접 데리고 돌아와 천옥에 넘긴 뒤, 단 한숨도 쉬지 않고 곧장 심문에 들어갔다.자객들은 처음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모용길이 이미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자, 그들의 희망도 이미 무너진 셈이었다.이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저희는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폐태자를 노린 건 그 분의 ‘혈’ 때문이었습니다.”그들은 태조 황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불로장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태조 황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백골이었습니다. 이백 년 전, 모용길이 시신을 도굴해갔을 때부터 이미 시체에 불과했습니다. 살려낼 수 있을 거라는 건, 망상이었어요!”“애초에 죽은 자였다고요!”그들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 말투에는 모용길을 조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쓸모없는 일에 목숨을 건 그를 그들은 미련한 바보로 여겼다.같이 심문을 진행하던 관리가 물었다.“너희는 어떻게 아는 것이냐?”“태조 황제께서 살아난 적이 없다는 걸 말이다.”“모용길이 그렇게까지 집착한 이유가 뭐였지?”자객들 중 한 명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모용길이 약쟁이를 만든 건, 그들로 실험해 불로장생의 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약을 제조한 의원들은 손수 기록을 남겼고, 그 손책들엔 분명히 쓰여 있었죠. 이백 년 동안 그들이 상대한 건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시체’였다고요.”“아무리 약을 먹여도 살아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입니다.”다른 자객 하나는 공포 어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모용길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마치… 마치 그 자리에 태조 황제가 서 있기라도 한 듯이 말이에요.”또 다른 자객이 덧붙였다.“그 자는 단지 태조 황제를 살리려 한 게 아닙니다. 자신도 불로장생 하고 싶었던 거에요.”“그리고 그게… 그 자는 정말로 성공했
태황태후는 직접 선조를 만나기 위해 천옥으로 향하려 했다.하지만 황제의 명이 내려져 있었다.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모용길을 접견할 수 없었다.하는 수 없이, 태황태후는 궁으로 전갈을 보냈다.하지만 설령 황제가 허락하더라도 모용길이 누구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그는 오직 태조는 아직 살릴 수 있다는 집념 하나에 사로잡혀 있었다.그런 그가 천옥에 갇힌 지금, 마음은 타들어가듯 초조했다.“그 어린 황제놈은 어딨느냐! 어서 나를 뵈러 오라 하지 못할까!”모용길에게 후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그는 생각했다.이 나라 남제는, 태조와 자신이 함께 세운 나라였다.그런 자신을 막고 있는 소욱 따위가 어찌 감히 군림한단 말인가.천옥에 갇힌 날부터,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쳤다.“태조를 살려야 한다! 어서 황제를 데려와라!”하지만 그는 몰랐다.그의 그 모든 고함과 분노는 소욱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그를 흔들기 위한 계략이었단 사실을 말이다.그리고 다섯째 날.천옥의 간수가 냉정한 얼굴로 명을 전했다.“폐하의 어명이십니다.”“모든 죄를 자백하고 문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이곳을 나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죽을 때까지 말입니다.”모용길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허튼소리 마라! 그 어린놈이 과연 알기나 한단 말이냐, 내가 이 모든 짓을 왜 해왔는지를 말이다!”간수는 능청스럽게 웃었다.“나으리, 뭐가 그리 두렵습니까?”“자백했다고 당장 목을 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태조께서 하사하신 면사금패는 아직도 가지고 계시잖아요?”그 말에 모용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졌다.그렇다.면사금패만 있으면, 그는 죽지 않는다.황제 따위가 그를 처형할 권한은 없었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태조를 다시 살려내는 것이었다.결심이 선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종이와 붓을 가져오너라!”두 시진 후.모용길이 쓴 자백서가 궁으로 들여졌다.그 문서는 곧장 어전으로 올라갔다.문서를 넘겨받은 소욱은 한 장, 또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
염 신의가 모용길의 상태를 진찰한 결과, 그의 몸은 웬만한 노인들보다 훨씬 건장했고, 외견상으로도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폐하, 이 자가 망언을 일삼는 이유는… 실성, 즉 정신 착란 증세로 보입니다.”“나는 미치지 않았다! 미친 건 너희들이다!”모용길이 즉각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그리고 소욱을 향해 고함쳤다.“어서 저놈들을 다 내쫓아라! 나는 태조 폐하를 반드시 살려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모두 다 목이 날아갈 줄 알아라!”하지만 소욱은 모용길의 광언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그저 곁에 있던 병사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붙잡아 두거라. 절대 도망 못 치게 해야 한다.”명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달려들어, 모용길의 움직임을 단단히 제압했다.염 신의는 환자의 행동에 개의치 않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실성이란 곧, 마음의 병입니다.”“이 병은 뇌와 정신의 균형이 무너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죠.”“예컨대, 저희는 백골을 보지만 이 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그만큼 이 자의 마음속 집착이 깊고, 오래도록 그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이미 병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니, 소인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의술이란 외상이나 내상은 다스릴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 병, 특히 집착이라는 건 손쓸 수 없는 법이다.그건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것이기에. 소욱은 여전히 ‘태조를 살려야 한다’며 중얼거리는 모용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그는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자였다.그러나 유일하게 태조에 대해서만은 지극한 충성과 집착을 드러내고 있었다.“저 자를 별실에 따로 가둬라. 아무도 면회하지 못하게 하라.”“명 받들겠습니다!”……자진궁.봉구안은 모용길이 실성 증세를 보였다는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오늘 제가 본 그 백골은 최근에 죽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인즉, 모용길은 이미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단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