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경성 사람들 모두가 조원철을 올곧고 정직하며 금욕적인 사람이라, 바라만 보고 감히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말했다. 오직 강유영만이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는 겉과 달리, 속으로는 한 덩이 불과 같다는 것을. 그녀에게 닿는 순간, 거침없이 타올라 뜨겁고도 격렬해진다는 사실을. 은밀한 사정을 주고받던 나날에, 그는 '사랑하는 이'라고 다정하게 그녀를 불러주었지만, 그의 그런 비뚤어진 애정은 점점 그녀를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으로 끌어내렸다. 금욕적이고 정직한 사람? 그건 모두 거짓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날, 조원철의 혼사가 정해졌다. 강유영은 그동안 모든 은자를 들고 도주를 준비하는데, 결국 폭설이 내리던 야밤에 그에게 잡히고 만다. “어딜 도망치려고?”
View More서재 안을 감도는 은은한 침향에 조연화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소매 속에 감춘 손바닥에는 어느새 땀이 배이고 있었다.오늘 서준을 만나기 위해 그녀는 특별히 공들여 치장을 했다. 금실로 나비를 수놓은 화사한 붉은 치마를 입고, 머리에는 화려한 금비녀를 꽂았다. 얼굴에는 분을 곱게 바르고 입술엔 붉은 연지를 찍었다. 본래도 꽤 빼어난 외모였지만, 이렇게 한껏 꾸미고 나니 한 송이 꽃처럼 화사하고 교태가 물씬 풍겼다.서재 문턱을 넘기 전만 해도 그녀는 몹시 자신만만했다. 용모나 품성 모두 강유영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고, 출신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허나 막상 서준의 나른하고도 오만한 자태와 황족 특유의 위엄을 마주하고, 매일 밤 꿈에 그리던 그 훤칠한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숨이 턱 막혔다. 보이지 않는 엄청난 위압감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해, 일순 대답하는 것조차 잊고 말았다."조 소저?"서준이 눈썹을 치켜올며 그녀를 다시 불렀다."예, 전하."조연화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긴장했던 탓에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그녀는 황급히 헛기침을 하고는 최대한 조신하고 상냥한 어투를 꾸며냈다."불쑥 찾아와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힌 것은 아닌지 송구하옵니다.""많이 긴장한 모양이군."서준이 고개를 기울여 그녀를 보았다.그는 묘한 눈빛으로 조연화가 공들여 꾸민 얼굴과 화려한 옷차림을 가볍게 훑어 내렸다. 참으로 무심한 시선이었다.그 태도에 조연화는 덜컥 겁이 나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앉거라."서준이 손을 들어 올렸다."감사합니다, 전하."조연화는 감히 의자 깊숙이 앉지도 못하고 끝에만 걸터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녀는 몰래 호흡을 가다듬으며 이곳에 오기 전 어머니가 당부했던 말과 오늘의 목적을 떠올렸다. 이대로 기가 죽어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다."오늘 불쑥 찾아뵌 것은, 참으로 중대한 일이 있어… 전하와 상의를 드리고자 함이옵니다."그녀는 애써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는 진국공부의 귀
"입맞춤까지 했는데…."강유영은 말을 채 잇지 못했다.수치심과 야속함에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소리 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그가 참으로 얄미웠다."알았다, 뚝 그쳐라. 옷을 준비하라 이를 테니."조원철은 다정하게 그녀를 달랬다.그는 이리 성질을 부리는 그녀의 모습이 내심 보기 좋았다.그 말에 강유영은 눈물 맺힌 눈을 번쩍 뜨고 그를 보았다.옷을 준비한다니? 수영을 허락한다는 뜻일까?"수영을 배우려면 그에 맞는 옷이 필요하다."조원철이 담담히 덧붙였다.강유영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되물었다."그럼 어디서 배우는 겁니까?"설마 진국공부의 연못에서 배우는 건 아닐 것이다.조원철은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며 대답했다."성 밖의 온천 산장으로 갈 거다.""예."강유영은 고개를 숙여 그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댔다. 웬일인지 자꾸만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어쩌면 처음으로 타협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서왕부.서준은 서재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그는 늘 그렇듯 삐딱한 자세로 등받이에 기댄 채, 한 손으로는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낭호필을 만지작거렸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은 수하가 그에게 보고를 올리는 중이었다.한참 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태자 쪽은 무슨 움직임이 없느냐? 감옥에 갇힌 처형을 보러 간 적은 있고?""없습니다." 수하가 답했다."태자비는? 그 여자도 움직임이 없고?"서준은 눈썹을 까딱이며 쥐고 있던 붓을 책상 위에 툭 던졌다."태자 전하께서 태자비께 이 일에 관여하지 말라 엄명을 내리셨다 합니다. 태자비께서는 예전처럼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울 뿐,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수하가 차분히 보고했다."곡창 쪽은?" 서준이 다시 물었다."태자가 이미 여러 명을 인주로 보냈습니다. 슬슬 움직일 작정인 듯합니다…."수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풍이 밖에서 들어왔다."전하." 그는 굳은 표정으로 예를 행했다."무슨 일이냐."서준은 턱을 괴고
조원철의 시선은 지척에 있는 그녀의 입술에 머물렀다.오늘 화장을 한 데다 시간이 꽤 지나 입술의 연지가 다소 번져 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도톰한 입술이 더욱 투명하고 생기 있어 보였다."안 되겠습니까?"강유영은 그의 옷깃을 쥐고 살살 흔들었다.그녀가 말할 때마다 탐스러운 입술이 달싹였다.조원철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뒷덜미를 감싸 쥐고는 고개를 숙여 그 부드러운 입술을 머금었다.너무도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강유영은 무방비 상태로 당하고 말았다.그렇게 그의 뜨거운 품에 갇힌 채, 묵직하면서도 점점 가빠지는 그의 심장 박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그는 거칠게 그녀의 숨결을 모조리 앗아갔다. 숨이 막혀 헐떡이느라 숨을 쉬는 것조차 힘겨워졌고, 밀어내려고 해도 틈을 안 주고 몰아붙이는 조원철 때문에 진이 빠졌다.그는 상체를 숙여 그녀를 온전히 제 품 안에 가두었다.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입술과 코끝을 촘촘히 덮어왔고, 뒷목을 단단히 움켜쥔 커다란 손은 놓아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억센 힘으로 그녀의 숨결을 온전히 자신의 품으로 옭아맸다.이내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띠로 향했다."흡...."강유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격렬하게 저항하며 허리를 비틀었다.마차 안에서는 절대 싫었다.과거 그가 소주까지 찾아왔을 때, 마차 안에서 겪었던 끔찍한 기억이 순식간에 떠올랐다.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강유영은 주먹을 쥐고 그의 가슴팍을 마구잡이로 내리쳤다. 너무 서러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조원철도 평소와 다른 그녀의 격렬한 반항을 눈치채고 즉시 그녀를 놓아주었다.깊은 욕망에서 빠져나온 그의 어두운 눈동자에 점차 이성이 돌아왔다."싫습니다, 여기선 싫어요…."강유영은 아직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굵은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알았다. 이제 괜찮다."조원철은 그녀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강유영은 그가 더는 선을 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고서
"괜찮습니다. 제 몸은 제가 압니다."강유영은 단박에 거절하고는 쭈뼛거리며 그에게 말했다."수영을 배우고 싶습니다."오늘 물에 빠졌을 때 코와 입으로 물이 밀려들던 고통과 죽음의 공포는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하마터면 정말 죽는 줄 알았다.그가 물에서 자신을 건져 올린 순간, 그녀는 굳게 결심했다. 이번에 목숨을 건졌으니 기필코 수영을 배우겠다고.위급한 순간에 스스로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생존 기술이었다.평소 제 몸을 끔찍이 아끼는 그녀로서는, 예전에 그가 권할 때마다 번번이 거절한 것이 뼈저리게 후회되었다.조원철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볼 뿐, 한동안 말이 없었다.강유영은 그가 흔쾌히 허락할 줄 알았다.예전에 그가 수영을 배우라고 몇 번이나 권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물이 무서워 요리조리 핑계를 대며 미루기만 했었다.오늘 끔찍한 사고를 겪고 나서야 수영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것이다.헌데 어째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걸까?의아해진 그녀는 조심스레 그의 눈치를 살폈다.그는 뚫어지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새까만 눈동자에 짙은 욕망이 일렁였고, 목울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석양의 금빛이 그의 옆모습을 비추며 마차 안의 공기마저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했다.강유영의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귓불부터 목덜미까지 붉게 달아오르고 말았다.저 표정이 무슨 의미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설마….경화 공주가 대놓고 그를 협박했고, 태자도 하마터면 황제 앞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폭로할 뻔했다.이런 와중에 어찌 감히 딴생각을 한단 말인가?조원철은 시선을 거두고 정면을 응시한 채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하지만 강유영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수영은 무조건 배워야 했다. 그가 아니면 수영을 가르쳐 줄 사람은 없었다.그녀는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그의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조원철은 곁눈질로 그녀의 작은 움직임을 낱낱이
조원철을 따라 밖으로 나갔더니, 밖은 어느새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차가운 습기가 얼굴에 닿자, 강유영은 저도 모르게 움찔 목을 움츠렸다.“세자.”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원철의 측근 청운이 다가와서 우산을 건넸다.조원철은 우산을 펼치고는 강유영에게 따라오라는 듯, 눈짓했다.강유영은 난색을 띠며 주저했다.“아씨, 세자께서 처소까지 모셔다드린답니다.”청운이 웃으며 말했다.“배려 감사해요, 오라버니.”강유영은 어차피 그와 따로 할 말도 있고 해서 공손히 예를 행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다.청운은 빗속을 나란히 걷고 있는 두
“문을 열고 들어가 보자꾸나.”한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강유영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정신은 아찔해져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오직 문이 열리면 둘 다 끝장이라는 생각만 맴돌 뿐이었다. 온몸은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조원철의 어깨를 밀었다.그녀는 안간힘을 쓴 것이었지만, 조원철에게는 그저 간지러울 정도였다.투명한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길게 말린 속눈썹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축 처진
초여름의 이른 아침.경성 진국공부의 사당 주변은 아침부터 자옥한 안개로 휩싸였다.조용한 사당 안에서는 승려가 경을 읊는 소리가 이따금씩 흘러나오고, 정원 내 청동로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당을 지키는 시녀와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강유영은 치맛자락을 들고서 처마 길을 따라 뒤뜰을 나오고 있었다. 온몸에 퍼진 근육통 때문에 걸음걸이가 다소 어색했다.좌측 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와 가늘고 여린 그녀의 허리를 가로챘다. 상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끌고 뒤뜰에
강유영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가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들어오거라.”조원철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명령했다.강유영은 누가 보기라도 할까 두려워,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내실로 들어갔다.“언제 오셨나요?”잠깐 오씨 어멈의 저녁을 챙기러 나갔다 온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지금쯤이면 밖에서 왕 소저와 저녁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조원철이 다가오더니 문을 닫았다.강유영은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그와 거리를 벌리고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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