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의 글씨체를 본 시윤은 일순 멍해졌다.“아빠? 아빠 편지잖아?”승우는 시윤에게 편지를 들키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해왔지만 그게 하필 이런 혼란 속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비밀이 곧 들킨다는 공포가 덮쳐와 승우는 얼굴이 하얗게 지린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그대로 굳어버려 빼앗아 와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렸다.민혁은 안에 든 편지를 본 순간 상대를 오해했다는 머쓱함에 헛웃음을 지었다.“하하, 정말 편지었네. 그러게 진작 말하지 그랬어요.”하지만 민혁이 이내 놓아주었음에도 승우는 그 자리에 굳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윤아, 내 말 들어 봐...”그 순간 불안한 예감이 닥친 시윤은 눈살을 구겼다.“아빠가 엄마한테 주는 편지가 왜 오빠한테 있어?”“그게 그러니까...”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걸 인지한 승우는 눈을 질끈 감으며 씁쓸함을 삼켰다.“이건 아버지가 뛰어내린 날 집에 두고 갔던 편지야. 내가 그동안 숨겼어.”“왜?”아버지가 뛰어내린 것과 관련이 있다는 말에 시윤은 고민도 없이 편지를 확인했다.하지만 몇 줄을 읽고 나서 숨이 턱 막혀왔다.[사랑하는 여보.]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이렇게 편지로 전하네. 요 며칠 나에 관한 뉴스 많이 봤을 거야. 당신이 그 말 다 믿지 않을 거라는 거 알아. 내 명예를 회복하려고 애타하는 것도 알아.그런데 정말 부끄럽지만 나 정말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술에 취해 내 제자인 공은채한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어. 나도 알아, 술은 그저 내가 지은 죄에 대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거. 이런 걸 핑계라고 대는 게 얼마나 비겁한 행동인지도. 나 변명하려는 거 아니야. 그저 당신이 사실을 알았으면 해서 그래.당신한테 모두 털어놓은 뒤 자수하고 교수 자리에서도 물러나려고 했어. 그런데 공은채가 아직 어려서 나한테 품지 말아야 하는 마음을 품은 것 같아. 제 목숨으로 우리 혼인에 끼어들려고 해. 어린 생명이 내 잘못 때문에 꺼져가는 걸 볼 수 없어서 설득하려고도 하고 포기하
만약 본인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미리 알았다면 승우는 절대 그 편지를 숨기지 않았을 거다.승우는 편지에 적힌 시간보다 1시간 일찍 GH빌딩에 도착했다. 그날 옥상에서 본 이성호는 원래보다 열 살은 늙어 있었다.이제 막 공은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데다, 도준이 보복할 거라는 생각에 큰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탓이었다.하지만 기척을 들은 순간 그의 눈은 반짝 빛났었다. “네 엄마는? 혹시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승우는 아버지에게 본인이 시윤에게 느끼는 감정을 영원히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옆에만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친동생을 좋아한다는 말을 도저히 내뱉을 수 없었다. 천륜을 배반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까.때문에 이성호의 물음에 승우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안 왔어요.”그 순간 이성호의 눈에 있던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얘기를 이어나가는 승우의 눈에는 고통과 회한이 가득했다.“그 한마디 때문에 아버지가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릴 줄 알았다면 절대 그 말을 하지 않았을 거야.”시윤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고개를 마구 저으며 뒷걸음쳤다.“그러니까 아빠는 도준 씨 때문에 돌아가신 게 아니라 가족에게 용서받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우리가 아빠를 버렸다고 생각해서 속죄하려고 했던 거야?”“왜...”시윤은 고개를 번쩍 들어 승우를 바라봤다.“왜 그랬어? 왜 편지를 숨겼어?”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승우는 시윤을 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내가 너 좋아하니까. 우리가 친남매인 줄 알고 그 마음이 드러날까 봐 두려웠어. 미안해, 윤아...”승우는 점점 무너져가는 시윤의 머리를 만지려 했지만, 시윤이 차갑게 뿌리쳐 버렸다.심지어 낯선 사람을 보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빠는 이제부터 내 오빠 아니야. 나한테 아빠를 해친 오빠는 없어!”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등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병상에서 산소호흡기를 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자 시윤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윤아...”승우는 그런 시윤을 위로 하고 시었지만, 손이 닿으려는 순간 시윤은 그의 손을 뿌리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그 길로 비틀거리며 도준의 병실에 도착한 시윤은 그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엉엉 울어댔다.“아빠를 죽게 만든 게 도준 씨가 아니었어요. 오빠였어요.”“도준 씨, 도준 씨는 우리 아빠 죽게 만든 적 없어요. 목숨으로 갚을 필요도 없어요. 그러니까 빨리 일어나요. 제발 정신 차려 봐요! 더 이상 정신 차리지 못하면 영영 깨어나지 못한대요.”“엄마도 쓰러졌어요. 상황이 많이 심각하대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우리 가족이 본인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나 봐요, 본인을 미워한다고 생각해서...”“아빠가 얼마나 좋은 분이셨는데, 왜 하필 그런 일이 아빠한테 일어났을까요?”시윤은 전보다 몇 배는 더 세게 울어댔다. 이제 그녀의 세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그동안 살아왔던 삶이 모두 거짓말 같아서 그 껍질을 벗기고 벗기며 진실을 찾으려 한 것뿐인데, 결국 저를 보호하던 껍질까지 벗겨내 마음에 비수가 꽂혔고.공은채의 가식적인 사랑.주림의 가식적인 의리.모든 걸 알면서 외면했던 도준...이와 같은 진실을 하나 하나 알아가면서 이제야 모든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하필 피맺힌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아버지가 후회 속에서 세상을 등지게 만든 장본인이 하필이면 지금껏 믿고 따르고 영원히 저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오빠라니. 그것도 저에게 기형적인 감정을 품었다는 이유로.심지어 이제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은 하필 가장 중요한 걸 뻬앗아가버렸다.오빠와 엄마뿐만 아니라 아직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도준까지...만약 도준이 내일까지 깨어나지 않으면 시윤은 영영 사랑하는 사람이자 제 아이의 아빠를 잃게 된다.너무 큰 고통에 몸을 한껏 움츠린 시윤은 더 이상 울음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그저 침대에 몸
상황을 살피러 달려온 노정숙은 여러 가지 검사를 마친 뒤 도준을 힐끗 바라보더니 싱긋 웃었다.“환자분 의지가 대단하네요. 정말 의식을 회복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이제 막 샤워를 마친 터라 도준은 머리가 젖어 있었다. 그는 뻐근한 팔을 돌리더니 아직도 멍하니 앉아 있는 시윤을 바라봤다.“누가 하도 같이 죽네 마네 난리를 피워대서 시름을 놓을 수가 있어야죠.”그 말에 노정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상냥하게 웃었다.“가족분도 이제 한시름 놨겠네요.”의사가 떠나자 시윤은 그제야 도준이 깨어났다는 걸 실감했다.도준이 침대에 앉아 아직도 문 앞에 서 있는 시윤을 보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왜 그래? 나 모르겠어?”시윤은 눈시울이 시큰거려 곧장 도준의 품으로 달려가려 했다.그때, 웬 그림자 하나가 시윤보다 한발 먼저 도준에게 쌩하고 달려갔다.“흑흑, 도준 형. 놀랐잖아. 형이 죽은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도준은 민혁이 제 몸에 달라붙기 전에 발로 차버리며 귀찮은 듯 말했다.“울긴 뭘 울어? 내가 죽은 것도 아니고.”“맞아. 도준 형은 100살까지 오래오래 살아야 해.”민혁은 눈물을 쓱쓱 닦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이윽고 옆에 있는 시윤을 보자 제가 방해꾼이라는 걸 바로 눈치챈 듯 이내 자리를 비켜 주었다.“그럼 둘이서 얘기해, 난 나가볼게.”‘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시윤은 침대와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눈시울을 붉힌 채 도준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도준은 등 뒤로 숨긴 시윤의 손을 잡아끌었다.“왜 그래? 입에 기름칠한 것처럼 쉴 새 없이 말하더니, 내가 깨어니까 또 기분 안 좋아졌어?”“저 도준 씨 애 임신했어요. 도준 씨 곧 아빠 돼요.”한참 대답이 없다가 입을 삐죽거리며 울어버리는 시윤을 보자 도준은 피식 웃었다.“그럼, 내 애 아니면 누구 애겠어?”“진자 나빴어! 날 속여서 임신하게 했으면서 왜 그렇게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았는데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진짜 걱정돼서 죽을
“잠깐만. 나도 금방 옷 갈아입을 테니까 같이 가.”“아니에요, 이제 막 깨어났는데 휴식해요.”“뭐야? 지금 나더러 자기한테 딴맘 품고 있는 오빠 만나러 가는 걸 지켜만 보라는 거야?”도준은 시윤의 머리를 꾹 눌렀다.“얌전히 기다려.”사실 시윤도 도준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 폭발 사고를 겪고 나니 시시각각 도준의 곁에 꼭 붙어 있고 싶어 결국 얌전히 침대에 앉아 발을 흔들며 도준을 기다렸다.도준은 채 마르지 않은 머리를 한 채로 대충 옷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곧이어 옷을 들어 올리는 동작에 따라 그의 탄탄한 근육이 여과 없이 눈앞에 드러났다.시윤은 곁에서 그걸 말없이 훔쳐봤다.하지만 도준이 뒤돌아서자, 시윤의 눈에는 점차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도준의 등에 난 상처는 모두 그녀를 보호하다가 생긴 거다.물론 이미 딱지가 앉아 있었지만 여전히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도준이 옷을 미처 입기도 전에, 시윤은 그를 등 뒤에서 와락 끌어안더니 제 고개를 파묻었다.“도준 씨.”도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제 허리를 감싸고 있는 시윤의 손목을 문질러댔다.“왜? 갑자기 하고 싶어?”장난기 섞인 도준의 말에, 가슴까지 차올랐던 슬픔이 순간 사라지자 시윤은 불만 섞인 투로 투덜댔다.“좀 진지할 수 없어요?”도준은 이내 뒤돌아서 코끝이 빨개진 시윤을 지그시 응시했다.“그러게 누가 옷 갈아입는 데 갑자기 덮치래? 자기가 먼저 시작했으면서 나더러 진지해지라고?”시윤은 콧방귀를 뀌더니 이내 도준의 등에 난 흉터에 제 손을 갖다 대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많이 아프죠?”도준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대답했다.“괜찮아.”시윤을 다시 돌아오게만 할 수 있다면 이깟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다.하지만 시윤은 도준처럼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를 취할 수 없어 가슴 아픈 말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그곳이 화학 공장인 줄 몰랐어요?”“알았어.”“알면서 왜 걸려들어요?”도준은 시윤의 볼을 한 손으로 감싸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미끼가 마침 내
시윤이 도준과 함께 병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승우는 병실 창가에 서있었다. 시윤을 본 순간 승우는 눈을 반짝이며 다가갔지만 이내 뒤따라 들어오는 도준을 보자 놀라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깨어났네요?”“아니면요?”원래대로 돌아온 도준을 보자 승우는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정신적으로 보나 몸 상태로 보나, 지금의 도준은 큰 병을 앓다 깨어난 환자 같아 보이지 않았다.그런 승우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시윤은 곧장 어머니 쪽으로 다가가 간병인에게 물었다.“혹시 우리 엄마 한 번도 깨어난 적 없어요?”“네. 의사 선생님도 두 번이나 진찰하러 왔었는데, 충격을 크게 받았는지 여전히 깨어나지 않고 있어요. 오후에도 깨어나지 못한다면 중재 시술을 진행해야 해요.”시윤은 초췌한 어머니의 얼굴을 말없이 지켜봤다. 어머니가 이토록 충격을 받은 건 그 편지 때문이다.친아들 때문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으니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거다.시윤은 코끝이 찡해났다. 만약 그때 복도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싸우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주의를 끌 일도 없었을 거고, 어머니가 이렇게 충격을 받을 일도 없었을 거다.그렇게 자책하고 있을 때, 어깨 위에 손 하나가 얹혀졌다.도준은 시윤의 어깨를 잡아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여기서 울지 마. 어렵게 모셔 온 의료진도 있으니, 그 의료진더러 확인해 보라고 하면 되지.”‘맞아, 시영 언니가 최고 의료진을 모셔 왔었잖아. 그분들이 있는 한 엄마는 꼭 괜찮을 거야.’시윤은 다시 힘을 되찾은 것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도준을 바라봤다.“도준 씨가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믿음으로 가득한 시윤의 눈빛에 도준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손을 들어 시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착하네.”말을 마친 도준은 곧바로 앞으로의 진료를 부탁하러 나가며 승우를 바라봤다.“형님, 여기 있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승우는 도준이 저와 시윤이 함께 있는 상황을 꺼린다는 걸 이내 눈치챘다. 이에 본능적으로 오빠라는 신분을 내
승우는 반대편에 있는 ICU병실을 빤히 바라봤다. ‘민도준이 목숨을 내걸고 시윤을 구해줘서? 그 덕에 빚진 목숨을 갚은 셈이 돼서?’순간, 방금 전 느꼈던 이상함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도준이 깨어난 타이밍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절묘했다. 마리 시윤의 마음에 남은 매듭을 풀어주기라고 하려는 것처럼.그 뿐만 아니라 원혜정이 시윤을 납치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도준이 지키고 있는 경성에서 아무도 몰래 해원까지 건너왔다는 것부터가 이상했으니까.‘정말 이 모든 게 한순간 감시를 소홀히 한 탓일까?’시윤의 납치 사건이든, 아니면 도준이 시윤을 구하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눈물의 상봉을 한 것이든 모든 게 너무 순조롭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만약 도준이 관건적인 순간에 시윤을 구하지 않았다면, 마지막에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이 아무리 아무리 승우라고 해도 시윤과 양현숙은 도준을 쉽게 용서하지 않았을 거다.승우는 눈살을 찌푸리고 도준이 사라진 쪽을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이내 단서를 찾으러 ICU 병실로 향했다....한편, 그 시각 시윤은 간병인과 함께 양현숙의 손을 주물러주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문 의료진이 몰려와 양현숙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이내 새로운 치료 방안을 내놓았다.그중에 섞여 있는 노정숙을 보자, 시윤은 진료가 끝나자마자 다가가 진심 어린 감사 인시를 전했다.“선생님, 전에 격려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 덕에 기적이 정말 일어난 것 같아요.”말을 마친 시윤은 옆에 있는 도준을 한번 바라봤다. 그 눈에는 도준을 향한 애정이 넘쳐 흘렀다. 도준의 팔을 꼭 두르고 있는 모습만 보더라도 죽다가 다시 살아나 만난 이 인연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었다.노정숙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시윤 씨는 정말 좋은 아가씨예요. 그러니 민 사장님도 본인을 깨워준 아내분 소중히 여기세요.”“네.”도준은 또 뭐라고 말하려는 시윤을 와락 끌어안으며 말을
하지만 의사가 아닌지라 아무리 봐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결국 승우는 모든 의료 기기들을 사진 찍어 의학을 독학하는 친구한테 물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한테서 답장이 왔다.“이 기기들 모두 최첨단 기기들이야. 사진상으로는 별문제 없어.”승우는 문자로 대화하기 번거로워 아예 전화를 걸었다.“내 말은 이 기기들을 보고 사용했던 환자가 정말 의식을 잃었었는지 알 수 있냐, 그 말이야.”“환자 몸에 연결하지 않아 나도 그건 모르지. 확인하고 싶으면 이전 데이터가 있어야 해.”“그 데이터는 어디서 구하는데?”“주치의한테 있을 거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야 해서 다들 갖고 있어.”‘주치의...’‘주치의라면 노정숙 선생님 말하는 거겠지?’“그럼 의식이 없던 사람이 일어나자마자 정상인처럼 활동할 수 있어?”“그건 환자가 얼마 동안 의식을 잃었는지에 달렸어. 회복 속도가 빠른 체질인 데다 의식을 잃은 기한이 길지만 않다면 안 될 것도 없지.”전화를 끊은 뒤, 승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도준이 의식을 잃었던 게 아니라면 의학을 모르는 일반인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지만 의사는 절대 속을 수 없을 거다.그 말인즉, 정말 그렇다면 주치의인 노정숙은 당연히 알았을 거기에 직접 물어보면 알려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데이터를 복사해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는 게 가장 확실해.’승우는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마침 간호사 한 명이 다급히 그의 옆을 지나갔다.마침 양현숙을 담당하는 간호사가 다급히 걸어가자 승우는 이내 간호사를 뒤따랐다.“왜 그래요? 혹시 어머니한테 무슨 일 있는 거예요?”평소 승우와 자잘한 대화를 나누기 좋아하던 간호사는 그를 보자 이내 걸음을 멈추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이승우 씨, 어머님이 깨어나셨어요. 얼른 가보세요.”어머니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승우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병실로 향했다. 하지만 병상 옆에 있는 시윤과 도준을 보는 순간, 걸음을 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