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의 재회, 똑같은 선택

6년 만의 재회, 똑같은 선택

By:  작은 거인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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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온이서는 법대의 킹카라 불리던 하은후에게 열렬히 구애했었다. 3개월간의 연애 끝에 그녀는 그에게 잠자리가 질렸다는 말 한마디를 가볍게 던지고는 매정하게 차버렸다. 그렇게 헤어지고 6년 후, 두 사람이 다시 마주쳤다. 당시 재벌가 아가씨와 가난한 학생이었던 두 사람의 신분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하은후는 최고 로펌을 이끄는 대표가 되었지만 온이서는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빚도 있었다. 그리고 키워야 하는 딸도 있었다. 그녀가 이혼을 준비하던 그때 하은후가 그녀의 이혼 대리 변호사로 나타났다. 온이서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비웃음이 가득했다. “이 모든 건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온이서는 하은후가 그녀를 뼛속 깊이 증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는 하은후와 엮이려 하지 않았다. 떠나던 날 온이서가 하은후에게 웃으며 말했다. “결혼 축하해.” 그런데 얼마 후 하은후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그녀를 찾아왔다. 마을의 민박집, 그는 어둑한 방에서 온이서를 구석으로 몰아붙였다가 두 눈이 시뻘게진 채 와락 끌어안았다. “날 또 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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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이젠 너랑 자는 것도 질렸어. 헤어지자.”

6년 전 온씨 가문의 아가씨 온이서는 이 한마디로 당시 빈털터리였던 하은후를 가차 없이 차버리고 시장 아들인 황주원과 정략결혼 했다.

6년 후 온씨 가문은 부도가 났다. 남편 황주원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온이서는 이혼을 결심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가장 처참하고 초라한 순간에 하은후와 다시 마주쳤다.

카페.

온이서는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통유리 창가 자리에 앉아 시계를 계속 확인했다.

오늘 그녀의 이혼 소송을 맡아줄 변호사와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변호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보려던 찰나 문이 열리더니 키가 훤칠한 한 남자가 들어왔다.

회색 정장에 검은 셔츠, 그리고 줄무늬 넥타이를 매치했는데 온몸에서 풍기는 기품이 범상치 않았다.

남자가 들어온 순간 카페 여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연예계에서도 보기 드문 외모였고 현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잘생긴 얼굴에 놀랐지만 온이서는 그 얼굴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들어온 사람이 바로 6년 전 그녀가 잠자리가 질렸다고 차버린 첫사랑이자 전 남자친구 하은후였기 때문이었다.

6년 만에 본 하은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기억 속의 하은후는 늘 하얀 린넨 셔츠를 입고 옆집 오빠 같은 다정한 분위기를 풍겼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남자는 그때의 소년미를 완전히 지워버린 모습이었다. 얼굴 라인이 날카로웠고 눈빛은 위험한 포식자처럼 차갑고 공격적이었다.

온이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었다. 황급히 모자를 눌러쓰면서 하은후가 그녀를 보지 못하기를 빌었다.

사실 어젯밤 또 황주원에게 맞았다. 지금 얼굴 여기저기에 멍과 상처가 남아있어 하은후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마지막에 헤어질 때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모습을 기억하길 바랐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완전히 망가진 모습은 절대 보여줘선 안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온이서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하은후가 망설임 없이 그녀의 테이블로 걸어와 맞은편 의자를 빼더니 태연하게 앉았다.

“차가 막혀서 늦었어. 미안.”

하은후의 말에 온이서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자리 잘못 앉은 거 아니야? 누굴 만나려고 왔지?’

“저기요.”

온이서는 고개를 숙인 채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거의 가린 다음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 그쪽 자리 아니에요.”

“아가씨, 모른 척하지 마. 난 아가씨가 죽어도 알아볼 수 있어.”

‘아가씨...’

그녀의 몸이 굳어버렸다. 온씨 가문이 망한 뒤로 정말 오랜만에 들었다. 이 호칭은 예전에 하은후가 제일 좋아했던 호칭이었다. 두 사람이 스킨십을 할 때면 하은후는 온이서를 꼭 끌어안고 쉰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속삭이곤 했었다.

“아가씨.”

“아가씨, 이제 해도 돼?”

“아가씨, 더 원해?”

“아가씨, 날 사랑한다고 말해.”

그때의 뜨거웠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런데 오늘 하은후가 부른 ‘아가씨’에는 예전의 달콤함이 전혀 없이 오직 노골적인 증오만 담겨 있었다.

“전 그쪽이 찾으시는 사람이 아니니까 일어나세요. 제가 만나기로 한 분이 곧 오시거든요.”

“봉진우 씨 오지 않을 거야.”

하은후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한 후 느긋하게 말했다.

“아가씨의 이혼 소송은 내가 맡기로 했어.”

온이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왜? 난 봉 변호사님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드디어 고개 들고 날 보는구나.”

그녀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도 하은후의 눈빛이 차분한 게 보였고 권력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온이서는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봉 변호사님은 왜 안 와?”

“봉진우 씨 재직 중에 규정을 여러 번이나 어겨서 오늘부로 로펌에서 잘렸어.”

“어제저녁까지 연락했는데 오늘 갑자기 잘렸다니. 이런 우연이 있다는 게 말이 돼? 하은후, 일부러 이런 거지?”

“내가 왜? 너 보러 오려고?”

하은후가 코웃음을 쳤다.

“온이서, 아직도 내가 너한테 미련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까지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은후가 그녀를 얼마나 미워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자존심을 짓밟은 여자를 그리워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럼 무슨 뜻인데?”

“내가 망가진 꼴을 보려고 일부러 온 거잖아.”

“자기 주제는 잘 알고 있네.”

정말로 온이서의 우스운 꼴을 보려고 온 게 맞다고 인정했다.

온이서는 이미 짐작하고 있어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직접 들으니 마음이 한구석이 저렸다.

황씨 가문에 시집간 6년 동안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시부모님도 그녀를 싫어했다. 온이서의 친정이 부도가 난 뒤에 시댁에서는 그녀를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정말 매일 고난의 연속이었다. 과거 온씨 가문 아가씨만의 당당함과 자부심은 전부 갈아 없어졌다. 지금 그녀를 비웃고 싶어 하는 사람이 수두룩하긴 했지만 비웃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바로 하은후.

“그렇게 보고 싶다면 실컷 보여줄게.”

온이서가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었다.

오늘 화장을 하지 않아 가뜩이나 하얀 피부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이마의 붉은 상처와 눈가의 푸르스름한 멍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녀의 얼굴에 생긴 상처를 본 순간 하은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커피잔을 꽉 쥐어 손가락 마디가 새하얘졌고 손등의 핏줄이 튀어 올랐다.

‘황주원 이 짐승만도 못한 자식...’

“이제 속 시원해?”

온이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족하면 자세히 설명해줄 수도 있어. 이마 흉터는 재떨이에 맞은 거고 눈가의 멍은...”

“그만해! 닥쳐!”

하은후는 가슴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듯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건 다 네가 선택한 거야. 자업자득이라고.”

“맞아. 내 선택이었고 내가 자초한 결과야. 이렇게 된 거 보니까 마음이 좀 풀렸어?”

온이서가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하은후를 쳐다봤다.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 사과할게.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

그러고는 선글라스와 모자를 챙긴 다음 도망치듯 가버렸다.

하은후는 그 자리에 앉아 온이서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가슴속에서 밀려오는 감정이 파도처럼 출렁거려 당장이라도 그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하은후, 어디야?”

“의뢰인 만나고 있어.”

“귀국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의뢰인을 만나?”

상대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설마 봉진우가 맡기로 했던 이혼 소송을 네가 가져간 거야? 로펌 대표라는 사람이 언제부터 이런 보잘것없는 사건까지 직접 맡았어?”

하은후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부탁할 게 있어.”

“뭔데?”

“황주원 좀 알아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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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이젠 너랑 자는 것도 질렸어. 헤어지자.”6년 전 온씨 가문의 아가씨 온이서는 이 한마디로 당시 빈털터리였던 하은후를 가차 없이 차버리고 시장 아들인 황주원과 정략결혼 했다.6년 후 온씨 가문은 부도가 났다. 남편 황주원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온이서는 이혼을 결심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가장 처참하고 초라한 순간에 하은후와 다시 마주쳤다.카페.온이서는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통유리 창가 자리에 앉아 시계를 계속 확인했다.오늘 그녀의 이혼 소송을 맡아줄 변호사와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 변호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보려던 찰나 문이 열리더니 키가 훤칠한 한 남자가 들어왔다.회색 정장에 검은 셔츠, 그리고 줄무늬 넥타이를 매치했는데 온몸에서 풍기는 기품이 범상치 않았다.남자가 들어온 순간 카페 여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연예계에서도 보기 드문 외모였고 현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다른 사람들은 그의 잘생긴 얼굴에 놀랐지만 온이서는 그 얼굴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왜냐하면 들어온 사람이 바로 6년 전 그녀가 잠자리가 질렸다고 차버린 첫사랑이자 전 남자친구 하은후였기 때문이었다.6년 만에 본 하은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기억 속의 하은후는 늘 하얀 린넨 셔츠를 입고 옆집 오빠 같은 다정한 분위기를 풍겼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남자는 그때의 소년미를 완전히 지워버린 모습이었다. 얼굴 라인이 날카로웠고 눈빛은 위험한 포식자처럼 차갑고 공격적이었다.온이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었다. 황급히 모자를 눌러쓰면서 하은후가 그녀를 보지 못하기를 빌었다.사실 어젯밤 또 황주원에게 맞았다. 지금 얼굴 여기저기에 멍과 상처가 남아있어 하은후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마지막에 헤어질 때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모습을 기억하길 바랐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 완전히 망가진 모습은 절대 보여줘선 안 되었다.하지만 세상은 온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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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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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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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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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문 열어, 빨리.”문밖에서 들리는 황주원의 목소리에 분노가 점점 짙어졌다.하은후가 화장실로 들어가라는 눈짓을 보내자 온이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재빨리 화장실로 몸을 숨겼다.그는 쿵쿵거리는 문 쪽으로 차분하게 걸어가 문을 열었다.황주원이 문을 걷어차려던 그때 문이 벌컥 열린 바람에 다리를 든 자세 그대로 멈칫하고 말았다.하은후는 황주원과 그의 뒤에 휴대폰을 들고 촬영하고 있는 듯한 두 남자를 쳐다봤다.“왜 저의 방 앞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는 거죠?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황주원은 문을 연 사람이 이렇게 기품 넘치는 남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현장에서 검거’당한 사람 특유의 당황함이 전혀 없었다.“내 와이프를 찾으러 왔어요.”황주원이 방 안을 들여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온이서,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당장 나와!”그러면서 방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하은후가 팔을 들어 가로막았다.“황주원 씨, 저의 동의 없이 함부로 방에 들어가는 건 불법 행위입니다.”황주원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하은후를 다시 훑어봤다.“날 알아요?”“작년 아스타에서 열린 비즈니스 포럼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어요.”비즈니스 포럼은 아무나 참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황주원도 아버지 덕에 따라가서 구경만 했을 뿐이었다.‘일반 사람이 아니네?’황주원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성함이 어떻게 되시죠?”하은후는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건넸다.명함을 본 황주원은 놀란 나머지 손바닥에 식은땀이 다 났다. 눈앞의 이 남자가 바로 자이언트 로펌의 창립자 하은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는 예전에 아버지에게서 하은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이름은 법조계에서 단순히 성공한 변호사를 넘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넓은 인맥을 상징했다. 법조계의 거장이나 사법 시스템의 실세는 물론이고 금융, 부동산, 과학기술, 심지어 더욱 은밀한 분야에까지 인맥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인물이었다.그리고 법률 고문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청소부’이자 ‘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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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악몽에 놀라 깨어난 온이서는 가슴이 답답해져 급히 몸을 일으켜 숨을 쉬었다.“정신이 좀 드세요?”낯선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온이서가 고개를 돌려보니 창가에 깔끔한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그녀가 깨어난 걸 보자마자 재빨리 다가왔다.“의사 선생님을 불러드릴까요?”“누구시죠?”“아, 죄송합니다. 자기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하은후 변호사님의 비서 진익현입니다. 변호사님은 로펌에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셨어요. 저더러 이서 씨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몸 상태가 괜찮으면 집에 모셔다드리라고 하셨어요.”온이서의 귓가에 다시 그 말이 맴돌았다.“난 이서가 6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어젯밤 그녀는 잠시 의식이 돌아왔고 마침 그때 하은후가 내뱉은 이 말을 들었다.이 한마디는 온이서를 다시 끝없는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고 이 말 때문에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고맙지만 저 혼자 갈 수 있어요.”온이서는 침대를 붙잡고 일어났다. 몸이 한결 나아진 듯했다. 머리가 무겁기는 했지만 더 이상 어지럽지는 않았다.“안 돼요, 그건. 변호사님이 저더러 여기서 기다렸다가 집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라고 하셨어요. 안 그러면 변호사님한테 혼나요.”진익현이 하은후와 그녀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녀가 하은후에게 그리 중요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녀 때문에 부하 직원을 혼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정말로 괜찮아요. 바쁘실 텐데 이만 가보셔도 돼요.”진익현은 그녀가 완강하게 나오자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바로 그때 하은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공적인 용무였다.전에 진익현이 보관하고 있었던 서류가 급히 필요하다면서 어디에 뒀는지 물었다. 진익현은 서류를 꽂아둔 캐비닛 위치를 알려준 후 이렇게 물었다.“변호사님, 이서 씨가 깨어나긴 했는데 자꾸 혼자 가겠다고 하시네요...”“내버려 둬, 그럼.”하은후는 말을 마치고는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옆에 있던 온이서는 하은후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들었다. 그의 태도는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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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오후 내내 바빴던 하은후는 회의를 마치고서야 휴대폰을 확인했다. 금액과 메모를 본 순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차비? 날 운전기사 취급한 거야?’...소예린이 라임을 유치원에 데려다준 뒤에 온이서가 집으로 들어왔다.“왔어? 안 그래도 병원에 가보려 했었는데.”그녀는 온이서에게 먹일 국을 들고 있었다. 온이서가 3분만 늦게 돌아왔어도 서로 엇갈릴 뻔했다.“내가 입원한 걸 어떻게 알았어?”“어젯밤에 네가 계속 안 들어와서 전화했더니 하은후가 받더라. 네가 가벼운 뇌진탕으로 의식을 잃어서 병원이라고 하더라고.”“하은후가 받았다고?”“응. 나도 조금 이상했어. 한밤중에 하은후가 왜 네 옆에 있었을까?”소예린이 온이서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설마 밤새 곁에 있어 준 건 아니겠지?”‘그럴 리는... 절대 없어. 날 죽은 사람 취급까지 했는데 밤새 곁을 지켜줬다는 게 말이 돼?’“하은후 얘기는 그만하고.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황주원이야.”온이서는 황주원이 이혼 전문 변호사를 매수해 그녀에게 약을 먹인 사실을 소예린에게 얘기했다.얘기를 들은 소예린이 노발대발했다.“황주원 그 자식 머릿속에 뭐가 든 거야? 어떻게 이런 비겁한 수단까지 쓸 수가 있어?”“황주원이 가정폭력을 행사했다는 약점만 잡고 있으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보니까 정말 실질적인 증거가 없어. 만약 황주원이 황씨 가문의 도우미들을 매수해서 날 고소하기라도 하면 난 앞으로 계속 끌려다니기만 할 거야. 더 지저분한 수를 쓰기 전에 황주원을 확실히 잡을 만한 증거를 찾아야 해.”“황주원이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지? 밖에 다른 여자가 있는 거 아니야?”소예린은 남자들이 다 바람둥이라고 생각했다. 이쪽으로 파고들면 돌파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너도 황주원이 외도했다는 증거를 찾아보는 게 어때?”“밖에 여자가 없어.”온이서가 말했다.“만나는 여자가 없다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아무튼 확신해.”잠깐 생각하던 소예린은 엄청난 거라도 떠오른 듯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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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런데 다음 날에도 계속 토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껴 테스트 해봤더니 그제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온이서가 몰래 아이를 지우려 했지만 황주원에게 발각되고 말았다.황주원은 온이서에게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협박했다. 세간의 수군거림을 잠재울 후계자가 필요했고 그의 비밀을 알아버린 온이서를 쥐고 흔들만한 비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쓰레기만도 못한 놈, 여자를 때릴 땐 주먹이 그렇게 단단하더니. 단단해야 할 곳은 단단하지 않고 쓸데없는 데만 힘을 쓰고 있어.”소예린은 화를 내며 툴툴거린 후 온이서의 손을 잡았다.“이서야, 걱정하지 마. 비밀 꼭 지킬게.”“고마워, 예린아.”“우리 사이에 뭐 그리 예의 차리고 그래. 그나저나 황주원 그 자식이 가정폭력을 행사했다는 증거가 없고 여자 문제도 없다면 대체 뭐로 쥐고 흔들지?”온이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황주원을 잡으려면 반드시 황주원한테서만 약점을 찾을 필요는 없어. 왕의 약점을 잡을 수 있다면 어린 세자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지.”“황주원의 그 시장 아버지 말하는 거야?”“응. 황주원한테는 여자 문제가 없지만 황주원의 아버지는 또 몰라. 나 내일 잠깐 나갔다 와야 하는데 라임이 하루만 더 맡아줄 수 있을까?”“그거야 문제없지.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라임이는 말도 잘 듣고 착해서 라임이랑 있으면 내가 더 행복해.”...다음 날 아침 일찍 온이서는 차를 타고 오봉산으로 향했다.오봉산에 향을 피우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천 년 된 사찰이 있었다. 그곳은 황주원의 아버지인 황용검이 ‘청렴한 정치인’임을 증명하는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황용검은 매달 꼭 이곳에 들러 향불을 피우고 스님을 만나 민생의 안녕을 기원했다. 심지어 그가 불상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사진이 상음시 신문 1면에 실리기도 했다.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보이는 이미지는 완벽해야 했다.온이서는 처음에는 시아버지 황용검의 행동이 전부 쇼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씨 가문 뒷마당에서 황용검의 운전기사가 통화하는 걸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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