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화 나 죽으면 그쪽은 꼭 데려갈게

민도준은 조금도 내외하지 않고 온몸을 권하윤에게 기댔다.

그녀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당장이라도 연약한 어깨에 금이 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게 방금 모른척하려던 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권하윤은 이를 악물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죽원으로 데려가면 돼요?”

“나 죽으라고?”:

민도준은 권하윤 어깨에 기대며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걱정 마. 오늘 나 죽으면 그쪽은 꼭 함께 데려갈 테니까.”

연인 같은 자세에 그렇지 못한 말투에 권하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민씨 저택인데 저들은 어떻게 이런 짓까지 했대요?”

“민씨 저택은 뭐 그렇게 안전한 줄 알아? 여기가 더 위험해.”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눈빛은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권하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심스럽게 민도준을 부축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거실에 내버려 두고 싶었지만 누가 보기라도 하면 설명하기 귀찮아지기 때문에 안간힘을 쓰며 그를 방안으로 옮겼다.

민도준은 내외하지 않고 권하윤의 침대에 눕더니 손을 들고 옷을 벗기라는 시늉을 했다.

외투를 벗기자 그제야 아랫배 쪽을 흥건하게 적신 피가 눈에 들어았다.

“대체…….”

권하윤이 놀라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 민도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 손으로 셔츠 단추를 풀더니 배에 난 상처를 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씨발, 개자식들.”

탄탄한 복근과 근육을 덮고 있는 옅은 구릿빛 피부는 그야말로 야성미가 넘쳐흘렀다.

권하윤은 깨끗한 수건 하나를 꺼내 상처 주위를 깨끗이 닦았다. 그제야 점점 상처가 보이기 시작했다. 흉기에 찔린 상처였지만 다행히도 너무 깊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상처 소독해야 할 것 같은데. 제가 구급상자 찾아올게요.”

권하윤은 다시 매원을 나섰다. 아까 본 사람들과 다시 마주칠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이상하게도 방금까지만 해도 사람 하나 없던 저택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밖에서 경비를 서는 보다가드들도 마당을 청소하는 메이드들도 모두 다시 나타났다.

손끝에 민도준의 피가 묻어있지 않았다면 방금 전 벌어진 상황이 꿈이라고 착각할 뻔했다. 하지만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저택의 모습에 권하윤은 오히려 더 오싹했다.

‘방금 전 벌어진 일에서 민씨 가문 사람들은 대체 어떤 역할이었을까?’

한참 생각하고 있을 그때.

“다섯째 작은 사모님, 혹시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있나요?”

메이드 하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권하윤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낮에만 해도 공손하게 대해주던 친절한 얼굴이 이 순간 악마처럼 보였다.

“구급상자를 찾으려고요.”

“혹시 어디 다쳤어요? 의사 불러드릴까요?”

메이드는 이상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권하윤은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

“아니요. 구급상자만 찾아줘요.”

누가 민도준을 살해하려 했든 실패했으니 지금 다시 손을 쓸 가능성은 없었다. 때문에 아무리 자기를 의심해도 상관없다는 판단하에 권하윤은 표정과 말투에 신경 쓰지 않았다.

역시나 메이드는 권하윤의 이상한 태도에 의문을 품는 눈치였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

“습!”

알코올 솜이 상처에 닿자 민도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펴더니 상처에 다시 가까워지는 권하윤의 손을 잡았다.

“지금 복수하는 건가?”

“해본 적 없어서요.”

“또 처음이야?”

머쓱한 듯 자기를 보는 권하윤을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은 민도준은 권하윤의 손을 놓고 아예 드러누웠다.

“그래. 나로 한 번 연습해 봐.”

분명 아무렇지도 않은 말인데 이상야릇하게 들렸다.

권하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상처 소독에 집중했다.

하지만 하필 아랫배 쪽에 나있는 상처 때문에 손끝이 자꾸만 민도준의 피부를 스쳤다.

전에 갈 데까지 다 간 사이였지만 어두운 차 안에서 있을 때랑 환한 등불 아래에 있을 때랑은 확연히 달랐다. 게다가 점점 변화하는 남자의 아랫도리가 자꾸만 눈에 들어와 미칠 지경이었다.

권하윤은 애써 눈을 다른 곳에 두며 거즈를 상처에 붙이고는 구급상자를 정리했다.

“상처 소독은 끝났으니 일찍 쉬세요.”

하지만 몸을 일으켜 세우려던 그때 뜨거운 몸이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목덜미를 잘근잘근 씹는 잇새 사이로 뜨거운 숨결이 흘러나와 귓가를 간지럽히더니 곧이어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한 곳 남았는데.”

권하윤의 얼굴은 순간 달아올랐다. 하지만 남자의 상처를 건드릴까 봐 걱정했는지 힘껏 뿌리치지는 못했다.

“다쳤으면 좀 얌전히 있어요.”

한껏 억누른 듯한 목소리가 잇새로 새어 나왔다.

하지만 민도준은 느긋하게 권하윤의 단추를 풀어헤쳤다.

“그러니까 하윤 씨가 좀 힘내.”

권하윤은 마음대로 움직이는 남자의 두 손을 꽉 쥐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지난번 도움을 받은 적 있어 이번에 도와주는 거니까 이제 쌤쌤이예요.”

“나름 공평하네.”

‘휴, 다행이다. 알아듣지 못할 줄 알았는데.’

“우리 사이에 이러는 건 옳지 않으니 앞으로는 거리를 지켰으면……”

하지만 그때.

“이봐요!”

“응, 나 여기 있는데.”

이미 설득한 줄 알고 한숨을 돌렸는데 민도준은 어느새 권하윤의 두 손을 잡아 침대 위에 고정시키며 그녀를 아래에 가뒀다.

“공평하긴 한데 내가 왜 그쪽과 공평을 따져야 하지? 이 세상이 공평하다고 누가 그래?”

“이건 억지예요!”

“또 지껄여 봐. 더 지껄였다간 민승현 앞에서 확 안아버릴테니까.”

충격적인 말에 권하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러자 민도준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

“말 잘 들어.”

권하윤은 결국 또다시 민도준에게 휘둘렸다.

상대의 상처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도 달아오르는 몸 때문에 완전히 잊혔다.

오히려 민도준이 권하윤 등에 난 상처를 보고 눈빛이 어두워졌다.

물론 놓아주지는 않았지만 등이 침대에 닿이지 않도록 갖은 신경을 쓰는 게 보였다.

권하윤은 밤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그 사이 몇 번을 울었는지 몇 번을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고 언제 잠들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민도준이 자기 등에 난 상처를 치료해뒀다는 것만 흐릿하게 기억났다.

-

다음날 아침 권하윤은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깨어났다.

“여보세요?”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목소리는 잠겨 오히려 매혹적이었지만 화가 난 민승현은 그런 게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지금이 대체 몇 시인데 아직도 퍼 자고 있어? 일부러 그러는 거야? 당장 나와!”

민승현의 호통에 시계를 보니 시곗바늘은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사가 9시에 시작된다던 메이드의 말이 갑자기 생각난 권하윤은 나른한 몸을 이끌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준비를 마치고 목폴라를 꺼내 입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 핏자국이 흥건한 침대는 마치 살인사건 현장처럼 섬뜩했다. 그녀의 피인지 아니면 민도준의 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바닥에 널려 있는 흔적들을 보니 저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현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다섯째 작은 사모님, 일어나셨어요?”

“…….”

권하윤은 메이드가 들어올까 걱정되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계속 조용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곧 9시가 되는데 이대로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됐다.

권하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그때 밖에 있던 메이드가 그녀의 걱정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도준 도련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핸드폰이 울렸다.

[민도준: 룸서비스. 고마워할 필요 없어.]

핸드폰 액정에 뜬 이름에 권하윤은 멈칫했다.

‘내가 언제 이 사람 번호를 저장했더라?’

아마 그녀가 자는 틈에 민도준이 저장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메이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설명했다.

시간이 급박한지라 권하윤은 쪽팔린 것도 무릅쓰고 문을 열었다.

메이드는 야릇한 흔적들을 보지 못한 것처럼 말없이 침대 시트를 갈아 광주리 안에 넣었다.

순식간에 말끔히 사라진 흔적에 그제야 수치심도 조금 사라지는 듯했다.

“고마워요.”

권하윤은 메이드에게 인사를 건네고 바로 돌아섰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려는 그때 메이드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잠시만요. 도준 도련님께서 이걸 주셨습니다.”

Related chapters

Latest chapter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