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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암살

“우리 오늘 저택에 머물 거야.”

“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권하윤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오늘 할아버지가 우리한테 큰 선물도 주셨다고 엄마가 남아서 이틀 정도 할아버지 말동무라도 해드리래. 나쁜 것도 아니잖아.”

민승현은 오늘 권하윤의 행동에 꽤 마음에 들었는지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하지만 어딘가로 문자를 보내는지 눈가에 걸려 있던 미소는 고개를 드는 순간 사라졌다.

“그만 좀 물어. 난 따로 볼 일이 있으니까 너 먼저 매원으로 가 있어.”

민씨 저택은 민상철이 있는 본채와 남, 북 두 개의 별채 그리고 매원, 난원, 죽원, 국원으로 되어있다.

남북 두 개의 별채는 본채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데 현재 첫째 민재혁네 가족이 남쪽 별채에 머물러 있고 다섯째인 민승현네 가족은 매원에 머물러 있다.

메이드의 안내 하에 매원으로 가던 중 마침 죽원을 드나드는 메이드들이 권하윤의 눈에 들어왔다.

“죽원은 비어있지 않나요?”

“오늘 도준 도련님께서 죽원에 머무십니다.”

도준이라는 이름 두 글자에 권하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민도준에게 몇 번 당하고 나니 이제 그의 이름만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다섯째 작은 사모님?”

메이드의 부름에 권하윤은 정신을 차리고 싱긋 웃었다.

“아니에요. 가서 일 보세요.”

“네.”

메이드가 떠나간 후 권하윤은 죽원 쪽을 힐끗 살폈다.’

‘저녁이니까 내가 매원 밖을 나서지만 않으면 마주칠 일 없을 거야.’

그 시각.

“뭐라고요? 경비원이 그만뒀다고요?”

강민정은 전화 건너편 상대의 말에 의아했다.

“그만두기 전 뭐라고 하던가요?”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집에 일이 있다며 월급도 받지 않고 가버렸으니까요.”

‘갑자기 왜 그만뒀지?’

강민정은 가방 안에 든 고급 정장 외투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녀는 어제 외투에 적힌 브랜드를 알아봤었다. 그리고 브랜드 이름을 듣자마자 큰 충격에 빠졌다. 국내에서 구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주문 제작한 한정판이라서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게다가 경비원이 아무 연유도 없이 그만뒀다는 게 몹시 거슬렸다. 그로 인해 이 외투가 권하윤이 일부러 놓은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곧바로 정장 사진을 브랜드 양복점 매장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보내 구매자를 조회해 보게 했고 사흘 뒤 연락하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만약 권하윤이 정말 딴 남자를 만나고 있다면 이제 내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어.’

생각만 해도 강민정은 흥분됐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아, 오빠. 놀랐잖아!”

생각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민승현이 가까이 왔다는 것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놀랐어? 내가 쓰다듬어줄게.”

민승현은 강민정을 자기 다리 위에 앉히고는 손을 상대의 옷 안으로 쑥 밀어 넣었다.

“새 언니가 오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왜 여기까지 왔어? 들키면 어떡하려고 그래?”

“들키면 들키라지 뭐. 남자가 어떻게 한 여자만 바라봐? 집안 영향 때문에 권하윤이 이런 거 알기나 하겠어?”

“그럼 오빠한테 내가 있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거야?”

강민정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애교 섞인 말투로 투정하자 민승현의 손은 더욱 대담하게 옷 속을 누볐다.

“나 기분 좋게 해주면 앞으로 너 하나만 볼게.”

“오빠 진짜 나빠.”

침대에서 늘 화끈한 강민정이었기에 민승현은 그녀와 한참을 붙어먹고 방으로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가 방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권하윤은 욕실에서 대담하게 걸어 나왔고 민승현을 보자마자 놀란 듯 몸을 돌렸다.

민승현이 조금만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본다면 그녀 몸에 난 흔적을 볼 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옆방에 있는 강민정과 문자하느라 권하윤을 보지도 않았다.

그 사이 권하윤은 잠옷 단추를 목 끝까지 잠그고 돌아서더니 무덤덤하게 한마디를 툭 건넸다.

“왜 왔어?”

경계 태세를 취하는 권하윤의 반응에 민승현의 표정은 한껏 어두워졌다. 순간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열녀 나셨네. 어제 자 달라고 그렇게 애원하더니 오늘은 깨끗한척하기는!’

“우리 집에서 내가 어딜 가든 네가 뭔 상관인데? 누군 뭐 너랑 한방 쓰고 싶어서 온 줄 알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 온 거야.”

솔직히 화를 내는 건 권하윤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그녀의 태도에 대한 불만도 섞였다. 하지만 민승현은 스스로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다른 여자랑 붙어먹는 걸 봤다고 뭐 꼬투리라도 잡았다는 거야 뭐야? 웃겨 정말. 나도 너 미행한 거 따지지도 않았거든! 게다가 남자는 다 가끔 한눈팔 때도 있고 그런 거 아닌가? 민정은 오히려 한 가족이라서 더 안심되고 좋은 거 아니야? 그런데 그걸 못 받아들여?”

민승현은 적반하장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의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에 권하윤의 표정은 차가워졌다.

“한 가족이라고 받아들이라고?”

“그래! 사촌 여동생이면 가족 아닌가?”

“그래? 오늘 한 말 기억하길 바랄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싸웠고 민승현은 끝내 문을 쾅 받으며 나가버렸다. 딱 봐도 강민정한테 가는 것 같았다.

다시 찾아온 평화에 권하윤은 오히려 편하고 자유로웠다.

머리를 말리고 침대에 누우려던 찰나 등이 갑자기 따끔거렸다. 거울을 통해 확인하니 샤워를 한 탓에 아침에 맞은 상처에서 다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내일 염증이 생길 게 뻔했다.

권하윤은 곧바로 외투를 걸치고 구급상자를 찾으러 아래층으로 향했다.

하지만 매원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한참을 찾았지만 다시 돌아 제자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메이드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두컴컴한 밤, 찬 바람이 등을 스치자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슬리퍼를 신은 채 조약돌로 되어 있는 돌길을 지나려니 발바닥이 찌근거렸다.

하지만 고요한 밤 무서울 정도로 매섭게 부는 바람 소리에 권하윤은 온 신경이 쏠렸다.

낮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고 경비가 삼엄하던 곳에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게다가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고 무서웠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고 있을 때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몸은 머리보다 먼저 반응했고 어느새 가까이에 있는 돌문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네 다섯 되는 낯선 남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타났다.

“어디 갔어?”

“분명 매원 쪽으로 오는 걸 봤는데?”

암흑 속에서 반짝 빛을 내는 게 그들 손에 들린 권총이라는 걸 알아차린 권하윤은 놀란 듯 입을 틀어막았다.

남자들은 매원에 민승현네 가족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대충 훑어보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고요함이 다시 찾아오자 권하윤은 다리가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러내려 상처가 쓰라렸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뒤라 약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말끔히 사라졌다. 상처고 뭐고 목숨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까 사람들과 한패인가? 아직도 남아있었나?’

온갖 잡생각을 하며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배를 부여잡고 거의 쓰러져가는 남자였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눈빛은 마치 사냥감을 바라보는 흑표범 같았다.

민도준을본 순간 권하윤은 더 이상의 지체도 없이 몸을 돌렸다.

“내가 다쳤다 해도 너 하나 죽일 힘은 남아 있어.”

살기가 섞인 남자의 경고에 권하윤은 체념한 듯 다시 돌아서며 억지 미소를 쥐어짜냈다.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있어요?”

잔뜩 겁을 먹은 권하윤의 행동에 민도준은 풉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왜? 이젠 도망 안 가나?”

“도망이라니요? 사람이 다친 걸 봤는데 어떻게 그대로 두고 도망가요. 전 그저 구급상자 찾으러 가려던 것뿐이에요.”

갑자기 싹 바뀐 여자의 태도에 민도준은 흥미가 생겼다.

방금까지 상관없다는 듯 도망치려 하더니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뒤바뀐 태도를 보니 재밌기만 했다.

“와서 나 좀 부축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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