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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위한 결혼식
한 사람을 위한 결혼식
Author: 아리토끼

1 화

Author: 아리토끼
[지태경이 알아챘어.]

이 메시지를 확인한 5분 뒤, 서연후가 숨은 선실 안에서 날카로운 경보음이 터져 나왔다.

이 배는 한밤중의 어둠을 가르는 대형 관광 유람선이었다. 수천 명의 승객을 태우고 수도 단현시에서 출발해 9번 구역 화군항을 향해 가는, 무려 17날이나 걸리는 장거리 항해였다.

출항한 지 겨우 48시간, 갑작스러운 사건이 승객들이 누리던 즐거운 여행을 산산이 깨뜨렸다.

밤을 뒤덮은 어둠은 구름 사이 희미한 달빛을 삼켜 버렸고, 칠흑 같은 바다 한가운데 홀로 불을 밝힌 유람선이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울린 경보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연회장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금속을 긁는 듯한 경보음이 객실 전체에 퍼지자, 모두 식사를 이어갈 마음을 잃고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무슨 일이야? 불이라도 난 건가?”

“이상하네, 배가 멈춘 것 같은데?”

“저기! 저게 뭐야!”

누군가 난간 창문에 달라붙어 바깥을 내다봤다.

유람선 뒤편, 십수 척의 군용 배가 파도를 가르며 돌진해 오고 있었다. 먹잇감을 보고 달려드는 하이에나처럼 초록빛이 감도는 빛을 뿜으며 유람선을 향해 내달렸다.

눈치 빠른 누군가가 배에 새겨진 문장을 보고 탄성을 내뱉었다.

“저거, 지씨 가문의 배야!”

서연후는 모자를 눌러쓴 채 시선을 낮추고 떠들썩한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멀어졌다. 돌아서던 중 창가로 구경하러 가던 통통한 남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아야!”

통통한 남자가 밟힌 발등을 들어 올리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눈은 어디에다가 달고 다니는 거야!”

그러다 상대를 똑바로 보자 말문이 턱 막혔다. 긴 드레스를 입고 깃털 장식 모자를 눌러쓴 아가씨였다. 커다란 챙에서 내려온 레이스 베일이 그녀의 얼굴을 절반 이상 가려 표정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자 옷깃 사이로 얇게 비친 페로몬 억제 패치의 한 모서리가 보였다.

누가 봐도 오메가였다.

통통한 남자는 즉시 입을 닫았다. 방금 자신의 행동이 오메가 여성에게 얼마나 무례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변명이라도 하려 입을 열기 전에, 그 아가씨는 드레스를 움켜쥔 채 재빠르게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들이 사방에서 유람선을 둘러싸듯 일제히 조명을 켜고 정박했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훈련된 알파들이 순식간에 갑판으로 쏟아져 올라왔다.

그들은 전부 무장한 상태였다. 일부는 출입구 곳곳을 지키고, 나머지는 말없이 배 전체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유람선은 무려 18층, 객실만 해도 2000개가 넘었다. 숨을 곳은 너무도 많았고, 알파들은 배 안에서 요란하게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웠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수색은 승객 누구의 동의도 거치지 않았다. 타인의 여행을 뒤흔들어 놓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그 오만함은 지씨 가문의 전형적인 행태와 아주 닮아 있었다.

단현시에서 출발한 승객들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 배에 탄 이들 중 대부분도 그런 부류였지만, 불만 섞인 목소리는 한 남자의 등장과 함께 조용히 가라앉았다.

연회장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마치 방금 회의장에서 나온 듯 정장을 입고 있었다. 키는 아주 컸고, 서 있는 자세는 한 그루의 푸른 소나무처럼 곧았다. 얼굴 절반은 검은색 머즐로 가려져 있었고, 피부는 병색이 도는 듯 창백했다.

짙은 눈썹 아래 길고 날렵한 두 눈, 차갑고 매서운 시선이 연회장 안을 훑고 지나갔다. 그의 눈 밑에서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살벌한 기운이 번져 나왔다.

“저 사람은... 지태경?”

“말도 안 돼. 지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 얼마 전에 진씨 가문의 큰딸이랑 약혼했다던데? 약혼녀 옆에 붙어 있어도 모자랄 사람이 여기 웬일이야... 어라, 진짜 지태경이네.”

“저 사람들 혹시 누구 찾는 거야? 누구지?”

“쉿.”

지태경의 시선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 어느 통통한 남자에게 멈췄다. 그는 말없이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웅성거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길이 저절로 열렸다.

그는 남자 앞에 서서 내려다봤다.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가운 눈빛 속에 은근한 불쾌감이 스쳤다. 그 기운에 남자의 등골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지태경은 남자의 얼굴이 아닌, 그의 양복 주머니를 바라봤다. 통통한 남자는 어리둥절한 채 주머니를 만져보았다. 뭔가가 불룩했다.

그는 이상하다는 듯 주머니에서 회중시계 모양의 위치 추적기를 꺼냈다.

이건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누가 넣었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방금 부딪힌 그 오메가 아가씨 말고는 있을 리가 없었다.

“도련님.”

그때, 한 알파 경호원이 다가와 지태경에게 몇 마디 귓속말을 했다.

지태경은 곧장 돌아섰다.

경호원은 그의 뒤를 따르다 문득 생각난 듯 되돌아와 통통한 남자의 손에서 위치 추적기를 낚아챘다.

그는 다시 지태경을 따라잡아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안, 경호원은 위치 추적기를 내밀며 말했다.

“조씨 가문의 물건입니다.”

지태경은 힐끗 보기만 하고 받지 않았다. 경호원은 곧바로 이를 비닐봉지에 넣어 보관했다. 그리고 간단히 보고를 시작했다.

“10층 음악홀에서 스태프로 위장한 서연후 씨를 발견했습니다. 잠깐의 충돌이 있었고, 서연후 씨가 권총을 가져갔습니다. 모델은 39-09입니다.”

여기까지 들은 지태경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사소한 표정 하나에 알파의 등줄기가 쭉 굳었다. 그는 놀란 나머지 거의 비명처럼 외쳤다.

“서연후 씨는 전혀 다치지 않으셨습니다!”

...

“서연후 씨, 진정하세요.”

“뒤로 물러나라고 했잖아요!”

최상층 갑판. 드레스를 갈아 치운 서연후는 군용 단검을 손에 들고 있었고, 날카로운 칼끝은 바로 앞에 있는 알파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인질로 잡힌 알파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서연후가 격앙된 상태에서 실수로 다치는 일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서연후는 갑판 난간 끝까지 몰려 있었다. 뒤는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밀려드는 파도는 배를 치며 터지기 직전의 폭탄처럼 긴박한 소리를 냈다.

앞에는 부채 모양으로 둘러싼 십여 명의 알파가 포위망을 점점 좁혀갔다.

“말귀 못 알아들어요?”

칼끝이 알파의 목을 찢었고, 실처럼 가는 피가 칼날을 따라 흘러내렸다.

인질이 된 알파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오히려 설득하듯 서연후에게 말했다.

“서연후 씨,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두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도련님 편입니다. 어디로든 도망치지 못하십니다. 도련님도 곧...”

“입 좀 다물어요!”

서연후는 경호원의 허리춤에서 빼앗은 권총을 그의 관자놀이에 들이대며 소리쳤다.

“한 마디만 더 하면 당장 쏴 버릴 거예요.”

“저를 죽이셔도 소용없습니다.”

딸깍.

방아쇠 위에 손가락이 올라갔다.

“내가 못 할 것 같아요?”

알파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서연후는 필사적으로 탈출 방법을 고민했지만 이미 늦었다. 멀리서 너무 익숙한 그림자가 선실 안쪽에서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그 순간, 알파들의 포위망은 중심인물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갈라졌다.

지태경은 서연후의 앞 두 걸음 정도 거리에서 멈춰서 오래도록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서연후는 그의 입에 씌워진 머즐을 보더니 비웃음을 흘렸다.

“우리 며칠 만이더라? 너도 그다지 편히 살지는 못했나 봐. 그런 몸으로도 기어이 밖에 나와서 난리까지 치고... 왜? 이제 사람들이 아는 건 두렵지도 않아? 네 약혼녀 알면 어쩌려고? 수습은 되겠어?”

서연후의 조롱을 듣고도, 지태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끼인 알파 인질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흥미를 잃은 듯, 서연후는 인질의 머리에 대고 있던 총을 치웠다. 그리고 그의 배를 걷어차며 포위망 밖으로 밀어냈다.

서연후는 방향을 틀어 이번에는 총구를 지태경의 이마에 겨눴다.

그 움직임에 방금 진정됐던 알파들이 다시 일제히 경계 태세로 돌아갔다. 손은 거의 자동처럼 무기 쪽으로 올라갔다.

차가운 바람이 갑판 위를 휘몰아쳤고,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팽팽했다.

지태경은 정작 총구가 이마에 향하고 있음에도 미동조차 없었다. 거의 얼어붙은 물처럼 고요했다.

오랜 침묵 끝에 그는 말했다.

“집으로 가자, 서연후.”

서연후는 마치 농담을 들은 듯 입꼬리를 올렸지만, 눈에는 단 한 점의 웃음기도 없었다.

탕!

총알 한 발이 지태경의 귓가를 스치며 지나가 뒤편의 창문을 산산이 깨뜨렸다.

쨍그랑.

유리 조각 수천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단 몇 센티만 더 갔어도 그의 머리를 관통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태경은 피하지 않았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반면, 뒤에 서 있던 알파들은 총성이 울리자마자 벌벌 떨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수십 개의 총구가 일제히 서연후를 조준했다.

짭짤한 바닷바람 사이로 희미한 화약 냄새가 퍼졌고, 바람에 실려 서연후의 눈가를 따갑게 스쳤다.

지태경은 서연후의 얼굴만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려.”

그 말은 서연후에게 한 것이 아니었다.

알파들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명령을 따르고 무기를 내려놓았다.

서연후는 손에 총만 없었다면 박수라도 쳤을 것이다.

“지태경, 정말 죽음이 두렵지는 않나 보네.”

그는 지태경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렇게 목숨이 하찮으면, 내가 처음에 거들지 않았어도 됐겠다.”

지태경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찔했다.

잠시 뒤, 그가 말했다.

“무슨 일이든... 집에 가서 얘기하자.”

어처구니가 없어서 서연후는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집? 이제 와서?’

지태경이 아직도 말로 풀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게 우스웠다.

서연후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잘근 깨문 혀에서 피 맛이 번졌다. 그는 마치 낯선 괴물을 바라보듯, 수년을 사랑했던 그 남자를 처음 본 것처럼 바라봤다.

“집에 가자고?”

그가 되물었다.

“우리 집이 어딘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그것도 다시 알려줘야 해?”

“지태경, 너는... 지난 6년 동안 놀 거 다 놀았겠다.”

그 말에 지태경의 눈동자에서 설명하기 힘든 어둑한 감정이 번졌다가 사라졌다.

아주 잠깐... 서연후가 정확히 보기에도 부족할 만큼.

그리고 다음 순간 지태경은 한 걸음을 내디뎠다.

“오지 마!”

서연후는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지태경의 신발 코 앞 몇 센티에 박히며 그의 발을 멈춰 세웠다.

“피하지도 않네. 내 사격 실력이 별로라고 믿는 거야?”

서연후는 장전된 탄환을 확인했다. 네 발이 남아 있었다.

“아니면, 내가 너를 못 죽일 거라고 생각해?”

그는 천천히 방아쇠 위에 손가락을 굴렸다.

“그럼 미리 유감을 표시할게. 네 목숨이 4개 정도는 남아있기를 바라.”

말이 끝나자마자 총성이 또 한 번 밤하늘에 터졌다. 이번에는 지태경의 어깨를 관통하며 피가 옷을 물들였다.

지태경은 반작용에 잠시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가 채 자세를 추스르기도 전에, 서연후의 두 번째 총성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오른팔이었다.

연이어 두 번, 서연후는 총구를 비틀며 탄창을 비워버릴 기세였다.

지태경이 총 두 발을 맞자, 경호원들이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듯 우왕좌왕 움직였다. 몇 명은 지태경의 상처를 확인하러 달려갔고, 몇 명은 제 몸을 던져 그의 앞을 막아섰다. 나머지 두 발이 그의 심장을 꿰뚫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서연후는 더 쏘지 않았다.

단 몇 초의 혼란 사이, 그는 틈을 찾았다. 총을 던져 버리고 난간을 넘어, 그 깊고 어두운 바다로 몸을 던졌다.

원래부터 그게 진짜 목적이었다.

지태경은 순식간에 눈을 크게 떴다. 그는 곧바로 팔을 뻗었다.

낙하하는 몸이 툭 멈췄다. 서연후의 손목이 미친 힘에 잡아당겨지며 부러질 듯 팽팽해졌다. 두 발이 허공에 매달린 채, 그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난간에 몸 반쯤 걸친 지태경이 그를 온 힘으로 붙잡고 있었다.

지태경의 어깨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따뜻한 피가 팔을 따라 떨어져 서연후의 볼 위를 타고 흘렀다. 빨간 자국이 길게 그어졌다. 마치 예전 그의 얼굴에 남았던 흉터처럼.

지태경의 손은 떨리고 있었고, 지금의 몸 상태로는 서연후를 끌어올릴 수 없었다. 예전에는 너무도 쉽게 했던 일인데 지금은 하늘의 별을 따는 일보다 어려웠다.

그렇다. 페로몬을 무리하게 혹사시키며 몸을 망쳐 온 그였으니 히트가 망가지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의 지태경은 허점투성이였다.

하지만 서연후는 총보다도 더 강력한 무기를 아직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유로운 손을 들어 자신의 뒷목에 붙은 억제 패치를 뜯어냈다. 강한 페로몬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지태경의 이마에 곧바로 식은땀이 맺혔다. 방금 총구를 머리에 대고 있어도 꿈쩍하지 않던 남자가, 지금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버티고 있었다.

그의 목 위 혈관이 불거졌고, 이를 악물며 견디고 있었다. 형언하기 힘든 고통이 그를 휘감았다.

“서연후... 그만.”

떨리는 목소리.

경련하는 손가락.

금방이라도 손을 놓칠 듯 위태로웠다.

갑판 위에서 알파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서연후는 시간이 없다는 걸 알고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높이 들어 올린 뒤 꽂아 넣었다.

지태경이 짧게 신음을 흘렸다. 날카로운 칼날이 그의 손바닥을 꿰뚫어 난간에 꽂아 버렸다.

피가 흘러내려 서연후의 얼굴 절반을 붉게 적셨다. 그래도 지태경은 손을 놓지 않았다. 죽어라 버티며 그를 붙잡고 있었다.

서연후는 바람에 실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페로몬 매칭도가 낮으면 좋은 점도 있더라. 지태경, 네 실험 결과는 만족해?”

끈적한 피가 두 사람의 맞잡은 손에서 천천히 흘러내렸다.

서연후의 손이 미끄러졌다.

지태경은 손안에서 온기가 서서히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는 이례적으로 거의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서연후!”

“지태경.”

서연후는 그의 손가락 위에 자기 손을 올리며 힘을 줘서 말했다.

“차라리 그냥 죽어버려.”

어깨와 팔, 손바닥까지 다친 지태경은 버틸 힘이 없었다.

서연후는 너무 쉽게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마른 그림자가 거센 파도 속으로 삼켜지며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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