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어이! 정신 차려야지!”
서연후는 누가 자기 얼굴을 자꾸 툭툭 치는 걸 느꼈다. 약간 아플 정도의 힘이었다.
그는 겨우 눈을 떴다. 시야 속 모든 게 겹쳐 보였고, 눈앞에는 베일을 씌운 것처럼 뿌옇게 안개가 낀 것 같아서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얼떨떨한 와중에 누군가 놀라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깼다 깼어! 애 엄마, 얼른 그거 가져와!”
“지금 가요.”
누군가의 손이 서연후의 등을 받쳐 일으켰다. 곧 뜨겁고 코를 톡 쏘는 국물이 그의 입으로 억지로 들이부어졌다. 혀끝에 매운맛이 닿자, 그는 반사적으로 입술을 꼭 다물고, 이 정체 모를 액체를 더 마시지 않으려 했다.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가 달래듯 말했다.
“홍당무 넣은 생강차예요. 마시면 몸이 좀 데워질 거예요.”
기억 속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풀린 긴장 탓에, 서연후는 여러 번 연달아 떠먹여지는 걸 막지 못했다.
국물 반쯤을 비운 뒤에서야, 서연후의 눈이 선실 안의 빛과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조금씩 또렷해졌다.
그는 흔들리는 배 안, 작은 선실에 누워 있었다. 이건 작은 어선이었다.
귀 옆으로는 파도치는 소리와 밤바람이 스미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아직 바다 위에 있었다.
몸 아래에는 오래되고 허술한 나무 침대 한 장이 깔려 있고, 침대 곁에는 쉰 살쯤 되어 보이는 중년 부부가 앉아 있었다. 햇볕에 그을려 까맣게 탄 피부, 모두 어부 차림이었다.
남자가 물었다.
“어때, 좀 괜찮냐? 정신이 들어?”
서연후는 목이 타는 것처럼 아팠다. 말을 해 보려고 입을 열었지만 들이마신 찬 공기에 목이 확 막혀 기침이 쏟아져 나왔다.
여자가 그의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서두르지 말고 말은 천천히 해요. 우선 숨부터 고르고요.”
고개를 숙이자 자신이 입고 있던 그 웨이터 복장은 어느새 벗겨져 있었고, 낡고 촌스러운 할아버지 티 같은 옷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자가 설명했다.
“옷이 흠뻑 젖어 있더라고요. 그대로 입고 있으면 감기 들어요. 제가 씻어서 밖에 내다 걸어놨어요. 이건 우리 애 아빠 옷인데, 그쪽 거만큼 근사하지는 않아도 일단은 이걸로 버텨요.”
서연후는 머리가 띵하게 아파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혼절하기 직전까지의 일을 머릿속에서 차례로 정리했다.
그는 바다에 몸을 던진 뒤, 강하게 부딪히는 충격에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던 걸 기억했다. 다시 정신을 수습하자마자, 그는 죽을힘을 다해 물속 깊이로 파고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밑을 향해 헤엄쳤다.
그는 한동안 물 밑에 숨어 오로지 의지력으로 숨을 참았다.
겨우 여기까지 도망쳐 온 건데, 다시는 그 숨 막히는 더러운 감옥으로 끌려갈 수는 없었다.
그 사이 물 위로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배 엔진 소리가 윙윙 울리고, 몇 줄기의 강한 손전등 불빛이 수면을 가르고 물속까지 뚫고 내려왔다.
한참이나 멀리 헤엄친 뒤에야, 그는 조심스레 뒤를 돌아봤다. 배 위의 알파들이 만두 던지듯 하나둘씩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한 기세였다.
지태경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서연후는 이를 악물고 계속 헤엄쳤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을 때에야, 그는 밤의 어둠에 몸을 숨기듯 살짝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고르고 곧장 다시 물속으로 잠수했다. 마치 유리 어항을 깨뜨리고 탈출한 민첩한 물고기처럼, 기억 속 고향을 향한 방향으로 쉴 새 없이 헤엄쳤다.
얼마나 지나갔는지 시간 감각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이 아주 조용해졌다. 너무 조용해서 이 세상에 자신만 남은 것 같았다. 자신에게 증오와 슬픔을 안겨 준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칠흑 같은 바닷속에 홀로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그는 거의 기계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손발을 휘저었다. 함께 있어 주는 건 지쳐 갈라진 숨소리와 사방에서 들려오는 물 갈라지는 둔탁한 소리뿐이었다.
형편없이 떨어진 지금의 체력이 원망스러웠다. 후끈거리는 목덜미가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심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한밤중 바닷물은 잔혹할 정도로 차가웠다. 입김이 나오기 무섭게 하얀 김으로 변해 사라졌다. 손발은 얼어붙은 듯 굳어서 들어올리기조차 힘들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서연후는 생각했다. 차라리 죽더라도 최소한 자기 집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서 죽고 싶다고.
그가 거의 버티지 못할 즈음, 어디선가 떠밀려온 부목 하나가 몸에 닿았다. 그는 그 부목을 부여잡고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일은 기억이 끊겨 있었다.
서연후는 한참 만에 겨우 입을 열었다.
“저를... 구해 주신 거예요?”
쉰 목소리는 마치 목구멍 안에 수십 개의 칼날이 박혀 있는 듯 거칠고 상해 있었다.
“그렇지.”
남자가 말했다.
“고기 잡고 돌아오는 길에 네가 바다에 떠 있는 걸 봤어. 꼼짝도 안 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죽은 줄 알았다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서연후는 마른 입술을 핥고 대충 둘러댔다.
“...친구들이랑 바다 구경하러 나왔다가 물에 빠졌어요. 근데 애들이 그걸 못 봤어요.”
“세상에, 그게 말이 되냐. 무슨 그런 친구가 다 있어?”
“됐어요.”
여자가 남자를 옆구리로 쿡 밀며 눈치를 줬다. 말을 막무가내로 내뱉지 말라는 신호였다.
“그럼 친구들 연락처는 있어요?”
여자가 제안했다.
“우리는 10번 구역에 살거든요. 10번 구역 부두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거기서 친구들한테 연락해서 데리러 오라 할래요?”
10번 구역.
서연후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아닙니다. 거기면 제 집이랑 가까워요. 저 혼자서도 갈 수 있어요.”
“집이 어딘데요?”
“13번 구역이요.”
부부는 동시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13번 구역? 거긴 그...”
서연후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웃으며 인정했다.
“맞아요, 빈민가.”
네 시간 뒤, 서연후는 뱃머리에서 멀리 10번 구역 부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육지에는 크고 작은 어선들이 가득 정박해 있었다. 어부들은 배 위에서 짐을 내리고, 담배를 피우고, 욕을 섞어가며 떠들썩하게 웃고 떠들었다. 모래 빛 털을 가진 작은 개들이 무리를 지어 뛰어다녔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였다. 그 일상은 서연후가 오랫동안 꿈처럼 그리워해 온 풍경이었다.
곧 집에 도착한다는 기쁨에, 그는 몸 여기저기가 아픈 것도 모두 잊어버렸다.
그는 뒤에 있는 여자에게 물었다.
“혹시 펜치 같은 거 있을까요?”
“있어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그물을 정리하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도구함을 뒤져 쇠 펜치 하나를 꺼내 건네며 물었다.
“이걸 어디에 쓰려고요?”
서연후는 바짓단을 걷어 올렸다. 그의 왼쪽 발목에는 금으로 된 발찌가 하나 채워져 있었다. 발찌는 발목뼈에 딱 맞게 달라붙어 있어서 아무 힘도 쓰지 않고는 도저히 빼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다행히도 요즘 들어 그가 많이 말라서 발찌에 약간의 틈이 생겨 있었다. 서연후는 그 틈으로 펜치 머리를 집어넣고 힘을 주었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발찌가 두 동강 났다.
그는 끊어진 발찌를 여자에게 내밀었다.
“몸에 지니고 다닐 만한 건 이거밖에 없네요. 이거 가져가세요. 녹이면 꽤 값이 나올 거예요. 제 나름의 감사 인사예요.”
사실 서연후의 옷을 갈아입힐 때 여자는 이미 그 발찌를 봤다. 정교한 세공에 묵직한 무게. 안쪽 둘레에는 어두운 붉은빛 보석이 열댓 개나 박혀 있었다. 누가 봐도 값비싸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13번 구역 출신이라고 밝힌 서연후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녀가 그렇게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여자는 허둥지둥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이건 너무 비싸 보여요! 이런 걸 어떻게 받아요!”
“그냥 받으세요. 옷값이다 생각하시면 돼요.”
서연후는 자신이 입고 있는 티를 끌어당겨 보였다.
여자는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 옷은 다 해진 거라 값어치도 없는 건데...”
“그럼... 1만 원만 주실래요?”
“만원이요?”
“네. 만원에 제가 이걸 파는 거예요.”
서연후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웃었다.
“1만 원이면 딱 제가 집까지 가는 차비거든요.”
배가 부두에 닿자마자, 서연후는 기다렸다는 듯이 배에서 뛰어내려 10번 구역 부두 매표소 쪽으로 달려갔다.
얼마나 뛰었을까, 멀리서 여자가 허둥지둥 그를 부르며 따라 나왔다.
“이봐요, 옷! 옷을 가져가요!”
그녀는 깨끗이 빨아 놓은 웨이터 복장을 품에 안고 그를 쫓아가려 했지만, 서연후는 멀리서 손을 흔들며 외쳤다.
“그거 안 가져갈게요! 번거롭겠지만 그냥 버려 주세요!”
말만 남기고,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 버렸다.
여자는 멍하니 서 있었다. 손에 들린 옷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유람선 종업원 유니폼이란 걸 몰랐지만, 촉감도 좋고 깔끔하게 만든 고급 옷이라는 건 바로 느껴졌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버리라니 생각만 해도 좀 아까웠다.
그녀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남편의 의견을 구하러 선실로 돌아갔다. 남자는 햇빛을 향해 손에 쥔 끊어진 금발찌를 이리저리 들춰 보고 있었다.
여자는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여보, 이거 정말 받아도 괜찮을까요?”
“괜찮아.”
남자가 말했다.
“깨진 물건이 얼마나 하겠어. 게다가 걔가 13번 구역 애라면서. 13번 구역 사람들은 죄다 가난한데 돈 될 만한 게 있겠냐. 아마 어디 비슷하게 생긴 싸구려겠지. 안 받으면 괜히 애만 불편해했을 거야. 받았으면 받은 거지, 뭐.”
“...”
“아이고, 이 짝퉁 참 잘 만들었다. 보석이 이렇게 반짝거리네... 이따가 가게 가서 손 좀 봐 달라 하고, 우리 딸한테 주자. 이런 반짝이는 거 좋아하잖아.”
여자는 조금 전 서연후가 이걸로 돈을 바꾸라며 자신 있게 내밀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태도로 봐서는 전혀 거짓말 같지가 않았다.
찰나의 불안감이 스쳤다. 그녀는 옷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해 봤다. 한참을 뒤지다가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남자가 그녀가 핸드폰을 붙들고 떨어질 듯 흔들리는 걸 보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왜 그래? 뭘 봤는데?”
그리고 화면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손에 들고 있는 이 금발찌는, 몇 년 전 수도 단현시에서 열린 어떤 경매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낙찰된 그 금발찌와 똑같이 생겨 있었다.
남자는 낙찰 금액 뒤에 붙어 있는 0의 개수를 하나하나 세어 내려갔다. 부부의 손이 동시에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 짝퉁이... 이런 걸 따라 만든 거였구먼. 진짜랑 똑같이 만들어 놨네...”
“...”
“...이거, 설마 진짜는 아니겠지?”
남자는 허둥지둥 팔찌를 떨어뜨릴까 봐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그 녀석... 설마 어디서 훔쳐 온 건 아니겠지?”
“이 발찌 딱 봐도 발목에 한참 차고 있었잖아요. 어떤 사람이 정신 나갔다고 발목에 빼지도 못하는 장물을 끼고 살겠어요?”
“그럼 이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두 사람은 허겁지겁 부두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서연후는 이미 13번 구역으로 가는 배표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라탄 뒤였다.
그는 배 난간에 몸을 기대고, 남은 몇백 원으로 산 소시지 꼬치를 씹어 먹으며 바닷바람을 맞았다. 입가에는 기름이 번들번들 묻어났다.
두 시간 뒤, 그는 마침내 다시 13번 구역 땅을 밟았다.
13번 구역 부두는 아주 좁았다. 바닷가 바위틈에는 오랫동안 치우지 않은 쓰레기와 스티로폼이 틈새마다 잔뜩 끼어 있었고, 공기에는 짙은 비린내와 눅눅한 곰팡내가 섞여 떠돌았다.
6년 만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암우향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사시장철 비가 내리고, 하늘이 늘 잿빛으로 가득 덮여 있기 때문에 붙었다. 안개도 늘 자욱했다.
이곳에서 가장 흔한 건 비좁고 어두운 골목들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길목 뒤에서 돈을 요구하는 양아치 몇이 툭 튀어나올 수 있는 곳이었다. 씹다 만 껌을 질겅대며, 손에는 맥주병이나 몽둥이 하나씩 들고, 파리 떼 맴도는 쓰레기통 옆에서 사람이건 돈이건 내놓으라며 고함을 치는 동네였다.
비가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질퍽한 바닥에는 크고 작은 웅덩이들이 여기저기 움푹 패여 생긴다. 골목 양옆의 낮은 주택들은 방음도 되지 않아, 이 집의 욕설과 저 집의 카드 놀이하는 소리가 골목 끝까지 훤히 들려왔다.
13번 구역의 환경은 이곳 사람들을 갉아먹는다.
사람들은 모두 싸구려 공기만 들이마시고, 벌레 먹은 것 같은 숨결을 내뱉으며, 흐릿한 눈으로 자기 앞에 아무 미래도 없는 내일을 바라본다. 술에 절은 몸뚱아리는 굳어 가고, 그저 지금 이 순간만을 붙잡고 버티듯 살아갈 뿐이다.
서연후는 어릴 때부터 이런 곳에서 살아왔다. 수도 없이 도망치고 싶었고, 수없이 벗어날 방법을 궁리했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 돌아 나가고, 그렇게 많은 일을 겪고 돌아와 보니, 결국 자신이 다시 돌아올 곳은 여기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암우향의 젖은 길바닥을 따라, 그는 기억 속 길을 더듬어 걸었다.
좁은 골목들을 지나고 돌다리를 몇 개 건너자, 멀리에서 익숙한 건물 꼭대기가 눈에 들어왔다.
서연후의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걸음은 어느새 빠른 걸음이 되다가 곧 뜀박질로 바뀌어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은 3층짜리 학교였다. 지금은 수업 중이라 안에서는 학생들의 책 읽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교문 옆 경비 초소에는 남자 둘이 한 명은 쭈그리고, 한 명은 서 있었다.
쭈그리고 있는 쪽은 몸집이 아주 크고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고, 서 있는 쪽은 온몸이 근육으로 뭉쳐 있었다. 마치 수많은 벌이 그의 뼈와 피를 쏘아 만들어 놓은 근육 덩어리 같았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둘은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서연후도 덩달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 입을 열었다.
“뚱아, 돌아.”
“누가 감히 나를 뚱이라고 불... 어, 연후 형!!”
뚱이랑 돌은 방금까지만 해도 어릴 때 별명으로 불린 것이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서연후를 알아보는 순간 둘 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뚱이 입에 물려 있던 담배가 뚝 떨어졌다. 돌도 멍하니 굳어 버렸다.
“연후 형?”
“진짜... 진짜 형이야?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세상에!”
두 덩치가 동시에 우당탕 뛰어와 서연후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에게 달라붙은 두 덩어리는 마치 뜨거운 찐빵 두 쪽 같았고, 서연후는 그 사이에 껴서 으깨어질 뻔했다. 그는 간신히 몸을 비틀어 겨우 머리만 삐죽 내밀고 숨을 들이켰다.
“너희... 조금만 놔줘. 진짜 으깨지겠어...”
두 찐빵은 좀처럼 팔을 풀지 않았다. 뚱은 눈가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채 웃는지 우는지 모를 얼굴로 말했다.
“형, 이제서야 돌아온 거야? 나 진짜 형 생각 엄청 했다고! 6년이야, 6년! 6년이 얼마나 긴 줄 알아? 선생님도, 우리도, 형 걱정을 얼마나 했는데! 몇 년 동안 집에도 안 오고, 양심이 있어 없어!”
그 말을 들으니 서연후의 코끝이 찡해졌다.
그는 낮게 말했다.
“미안. 다 내 잘못이야...”
뚱은 콧등을 훌쩍이며 고개를 젖혀 서연후를 위아래로 훑었다가, 목소리가 잠시 갈라졌다.
“어쩌다 이렇게 말랐어? 밥은 먹고 다닌 거야?”
서연후는 시큰한 눈을 몇 번 깜박였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지.”
두 찐빵이 드디어 그를 풀어 주었다. 서연후가 물었다.
“선생님은?”
돌이는 팔등으로 눈을 한 번 훔치며 말했다.
“아, 안에 계셔. 내가 불러올게!”
뚱이랑 서연후는 교문 앞에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서연후는 학교 전체를 깊게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진짜 잘 만들었다.”
뚱이 으쓱하며 말했다.
“그럼! 선생님이 엄청 정성 쏟았거든. 이 정도는 되어야지. 처음 공사할 때 내가 계속 지켜봤다니까. 내 눈앞에서 부실 공사 할 생각은 하지도 못해.”
“너랑 돌, 지금 여기서 같이 일해?”
“응.”
뚱이 말했다.
“지금 학교에는 선생님이 몇 분 없어서, 우리 선생님이 혼자 여러 역할 다 맡고 있어. 그래서 가끔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돌아다니시지. 게다가 어떤 인간들은 선생님이 학교 세웠다고 질투해서, 부탁도 안 했는데 찾아와 시비나 걸고. 나랑 돌이 여기 붙어 있는 건 선생님 챙기는 것도 있고, 그런 놈들 들어오지 말라고 버티는 것도 있어. 우리 둘이 버티고 있으면 누가 감히 선생님을 건드리겠냐.”
그들은 더 이상 어릴 때처럼 그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통통한 꼬맹이와 깡마른 까무잡잡이가 아니었다.
“너희 진짜 대단하다.”
서연후가 칭찬했다.
뚱의 얼굴이 붉어졌다.
“에이, 연후 형만 하겠어? 그때 형이 아니었으면, 6년 전에 형이 들고 온 그 물건들 없었으면, 이 학교가 어떻게 생겼겠어.”
뚱은 서연후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서연후는 조용히 받아 입에 물었다.
뚱이 손으로 바람을 가리며 불을 붙여 주었다. 불꽃이 살짝 튀었다 사그라들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그래서 형은 그동안 뭐 하고 지냈어? 선생님 말로는 수도에서 일자리를 구했다던데. 일이 많이 바빴어? 지금은 휴가야?”
“...”
서연후는 잠시 침묵했다. 싸구려 담배 특유의 매캐한 연기를 내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뒀어.”
“그만뒀다고?”
뚱은 그대로 믿어 버리더니 금방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이제 다시는 안 나가는 거야?!”
“그래.”
서연후는 시선을 내리깔고 담배 끝을 툭툭 털었다.
“다시는 안 나가.”
“서연후!”
따뜻하고 맑은 목소리가 둘의 뒤쪽에서 들려왔다.
정돈되지 않은 서두른 발소리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서연후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한 사람이 그대로 그에게 달려와 안겼다.
그는 한발 물러나며 균형을 잡았다.
익숙한 비누 향이 코끝에 스며들자, 서연후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고, 눈을 감았다가 열면 당장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그는 팔을 들어 상대를 꼭 끌어안았다. 얼굴을 상대의 목덜미에 묻고 아주 낮게 말했다.
“선생님, 저... 돌아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