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점을 집으로 데려오는 길, 별이는 마음이 아파 어쩔 줄을 몰랐다. 집에 도착해서도 정성껏 금점을 돌봤다.장소월도 마음이 아팠지만 중성화 수술을 시키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고양이는 두 마리가 딱 적당하다.금점에 푹 빠져 있는 별이의 모습을 본 전연우는 장소월에게 외출을 제안했다.“저녁 식사 자리 같이 갈래?”평소 장소월은 시간이 있을 때면 전연우와 함께 동행했다. 오늘도 그녀에게 별다른 일이 없는 것 같아 그는 말을 꺼냈다.장소월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갈게!”사실 그녀는 그런 자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위선적인 얼굴들을 마주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기에 흔쾌히 함께 가는 것이었다.장소월은 모임에서 주도권을 잡고 행동했다. 그녀가 술을 원치 않으면 누구도 강요하지 못했다. 인맥을 쌓기보다는 얼굴을 비추고 인사 정도 하는 자리였다.오늘 모임은 도심에서 가장 큰 파티장에서 열렸다. 처음 온 곳은 아니었지만, 장소월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그런 그녀의 행동 때문에 같은 테이블 사모님들은 그녀를 경멸하듯 쳐다보았다. 장소월은 그 불편한 시선을 눈치챘지만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전연우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인사를 받느라 장소월에게 신경 쓰지 못했다.장소월이 디저트 코너에서 케이크 하나를 집어 들고 맛보려던 찰나, 사모님들 몇 명이 다가왔다.“설마 전 대표님 사모님이신가요? 얼마나 대단한가 했더니!”전연우는 외부에서 높은 명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의 부인에 대한 평가도 높아 선남선녀가 만났다는 소문이 자자했다.장소월은 자격지심 따위 조금도 갖지 않았다. 전연우가 좋아하는 건 겉에 드러나는 외모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또한 오늘은 별로 꾸미지도 않았다.이런 속물 같은 사람들을 만날 줄 알았다면 가장 화려하고 값비싼 옷으로 치장하고 나왔을 것이다.장소월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모님들은 더 기세등등해졌다.“왜 말 안 해요? 전 대표님을 꼬셔서 지금 자리에 오른
“고양이가 나보다 중요해?”전연우의 날렵한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장소월은 그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이내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가 전연우보다 중요할 리가 있겠는가.“고양이는 아직 한 살도 안 됐잖아! 고양이한테 질투하는 거야?”장소월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한심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전연우는 못마땅했지만 민망함에 더는 말하지 않았다.동물병원에 도착하자 금점은 뭔가를 감지한 듯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장소월은 금점의 점점 커지는 동공과 불안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는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금점을 달래려던 찰나 간호사가 다가왔다.“고양이 검진 좀 해주세요. 중성화 수술 적기는 언제인지도 알려주세요.”장소월은 간호사에게 금점을 넘겨주었다.장소월도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동안 이 영리한 고양이에게 많은 정이 들어버렸다. 금점은 어느새 가족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전연우는 장소월과 별이가 고양이를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최근 반려동물에 대해 알아본 결과 대부분 사람들은 정신적 의지를 위해 동물을 키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장소월도 그런 걸까?’그 의문은 전연우의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었다.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묻지 않았다.한참을 기다린 끝에 수의사가 나와 장소월과 전연우에게 말했다.“고양이 건강 상태는 양호합니다. 중성화 수술할 수 있습니다.”장소월은 방금 전 금점의 겁먹은 모습을 떠올리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고양이가 좀 무서워하는 것 같았어요. 그건 괜찮을까요?”전연우는 장소월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걱정이 너무 많은 게 문제다.수의사가 대답했다.“괜찮아요. 그런 경우를 대비한 조치도 있습니다.”전연우가 알아본 동물병원이라 장소월은 마음이 놓였다. 거기에 의사도 별문제 없다고 말하니 더는 고민하지 않고 별이에게 전화해 상황을 전한 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전화를 끊은 뒤 별이는 메이린에게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메이린은
“엄마, 아빠! 금점이가 이상해요!”별이가 두 사람의 팔을 하나씩 붙잡고 긴장한 얼굴로 소리쳤다.장소월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와 별이 모두 고양이에게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모자는 곧바로 고양이 방으로 달려갔고, 혼자 남겨진 전연우도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랐다.고양이 방에 도착한 장소월은 금색 고양이의 행동을 보자마자 별이가 왜 이상하다고 했는지 알아챘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 그녀는 펫숍 사장에게 고양이 중성화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었다.지금 모습은...장소월이 아무 말 없이 나가려 하자 별이는 그녀를 붙잡고 끈질기게 물었다.“엄마, 엄마! 금점이 도대체 왜 이래요?”더는 피할 수 없다고 느낀 장소월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고양이한테 일어나는 정상적인 현상이야. 며칠 뒤에 동물병원에 데려가면 괜찮아질 거야.”병원에 데려간다고 했지만 사실상 중성화 수술을 준비하려는 것이었다. 전연우는 고양이는 생후 6개월 뒤면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한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별이는 더 캐묻고 싶었지만 전연우가 다가오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은점을 보러 갔다.전연우가 금점의 상태를 묻으려 한 순간 장소월은 그를 문밖으로 끌어냈다. 별이가 들으면 안 되는 얘기가 있는지 그녀의 행동은 퍽이나 조심스러웠다.거실 소파에 앉은 뒤 장소월이 입을 열었다.“금점이 중성화시킬 때가 됐어.”전연우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걸 굳이 별이에게 숨길 필요가 있나? 그 녀석은 영리해서 어차피 알게 될 것이다.오후, 장소월은 별이더러 집에 남아 은점을 돌보게 하고는 금점을 데리고 나갔다.전연우는 수많은 고양이들이 달라붙는 펫숍에 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 펫숍 문 앞에서 그는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다.“들어와.”장소월은 먼저 펫숍 사장에게 적합한 동물병원을 추천받으려 했다.장소월의 뜨거운 시선에 전연우는 마지못해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자마자 몇 마리 고양이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손님을 끌기 위해 펫숍에선 고양이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하성욱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두 사람에 대한 증오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이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게 두지는 않을 생각이었다.장소월은 하성욱이 이렇게까지 돌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목이 좀 나아지자 전연우를 바라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이제 괜찮아.” 하성욱의 행동은 격렬해 보였지만, 그녀를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저 전연우를 위협하려 했을 뿐이었다.장소월은 하성욱의 본성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너무 놀음을 탐하는 것이 문제였다.하성욱은 격렬하게 반응하며 보안요원들의 제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하지만 붙잡고 있는 이들이 많아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저 장소월과 전연우를 노려보며 소리칠 뿐이었다.“너희들이 그렇게 잘났어? 돈만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해?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너희들 때문이야!”그의 말에는 슬픔, 경멸, 그리고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장소월은 하성욱을 도운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원망까지 하다니...전연우는 가라앉은 그녀의 기분을 알아채고는 손을 꼭 잡아주며 달랬다.“내가 처리할게.”하성욱의 말은 전연우의 귀에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궁지에 몰린 패배자의 발악일 뿐이니 말이다.“잊지 마. 네가 다 망친 거야.”분명 자신의 문제이면서 왜 장소월과 그를 탓한단 말인가?하성욱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는 자신은 충분히 잘했고, 이 부부가 괜한 트집을 잡아 이 지경이 된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아니야! 내가 망친 게 아니야! 너희가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았잖아! 돈도 많으면서 나한테 좀 베풀면 안 돼?”그 뻔뻔한 말에 주변 사람들은 멈춰 서서 하성욱을 경멸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하성욱은 여전히 당당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었다. 본래 술친구 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며칠 버티다 일자리를 찾으려 했었다.하지만 이 큰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길이 막막해 결국 장소월을 찾아왔지만, 회사
수업을 마친 장소월은 아직 이른 시간이라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최근 일 때문에 눈코 뜰 새 없는 그를 위해 요리를 해주고 싶었다.오랜만에 하는 요리라 장소월은 부엌에서 정신없이 돌아쳤다. 메이린이 도우려 했지만 그녀는 완강히 거절했다.“내가 할게요.”장소월은 조심스레 브로콜리를 썰기 시작했다.메이린은 어쩔 수 없이 부엌에서 물러났다. 그때 장소월이 그녀를 불렀다.“메이린, 고양이들 밥 좀 줘요. 나 곧 나갈 거예요.”장소월은 전연우의 사무실로 가서 함께 밥을 먹고 오후엔 돌아오지 않을 계획이었다.집에 있을 때면 늘 손수 고양이를 돌보곤 했다.기분 좋게 보온 도시락을 들고 회사에 도착한 장소월은 입구 쪽 보안요원에게 제지당하고 있는 하성욱을 보고 순간 긴장했다.최대한 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로비로 들어섰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숨을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전연우의 사무실에 들어선 뒤에도 장소월은 여전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손으론 보온 도시락 뚜껑을 열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집에 돌아갈 때 또 하성욱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전연우가 검토하던 서류를 내려놓고 다가왔다. 넋 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는 이상하다는 생각에 물었다.“왜 그래?”그는 장소월이 혹여 화상이라도 입을까 두려워 그녀를 대신해 도시락 국그릇을 꺼냈다. 장소월은 아예 손을 떼고 전연우에게 맡기고는 양손으로 턱을 괴고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방금 하성욱 봤어.”전연우는 이미 하성욱 문제를 고려하고 있었다. 장소월이 그의 이름을 꺼내자 태연하게 대꾸했다.“내가 알아서 할게.”보온 도시락엔 사골국 두 그릇과 반찬 네 가지, 밥 두 공기가 담겨 있었다. 전연우는 보안실에 전화해 간단히 지시를 내리고 돌아왔다.오늘의 요리는 장소월이 직접 만든 것이 분명했다. 오랜만에 먹는 그녀의 요리인지라 전연우는 흥미롭게 젓가락을 들었다.장소월은 하성욱의 등장으로 여전히 불안해했다. 순하고 착해 보이는 그가 극
전연우는 잔뜩 어두워진 얼굴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장소월은 더욱더 이상하다고 느껴 캐묻기 시작했다.“왜 이러는지 말해줘!”한참이 지나서야 전연우는 마지못해 동의했다.“알았어, 입어.”그는 장소월이 옷 입는 것까지 통제할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장소월은 여전히 의심스러웠지만 그래도 그 운동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막상 나가보니 후회막급이었다. 너무 눈에 띄는 몸매 때문에 지나가는 남자들마다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으니 말이다.옆에 있던 전연우의 얼굴은 더더욱 어두워져 있었다. ‘이것들 내가 옆에 있는 게 안 보이나?’장소월은 그제야 전연우가 왜 입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당당하게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입고 싶은 옷을 입으면 되지, 남의 시선에 신경 써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장소월은 당당히 전연우의 팔을 잡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껴보니 오늘은 그녀의 인기가 전연우보다 높은 것 같았다. 장소월은 의기양양하게 전연우를 흘끗 쳐다보았다.평소엔 전연우의 인기가 압도적이었는데 오늘은 드디어 한 판 이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약간 들뜬 듯한 장소월을 본 전연우의 얼굴이 더 어둡게 굳어졌다. ‘이놈들은 내가 보이지도 않나?’장소월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더니 전연우가 방심한 틈을 타 재빨리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순간 어두워졌다. 마치 실연이라도 한 듯한 비통함이 눈동자에 만연했다.장소월이 갑작스레 이런 친밀한 행동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연우는 설레면서도 흐뭇했다. ‘우리 와이프 이제 많이 컸네.’돌아가는 길, 전연우는 장소월을 칭찬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드디어 철들었어, 우리 소월이.”그는 아내가 남자 늑대들에게 노출되는 게 너무나 싫었지만 줄곧 피할 수는 없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장소월은 고개를 치켜들었다.“그게 무슨 소리야? 난 항상 철들어 있었는데?”전연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 말이 맞아.”그는 다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