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도 안 되어 헬기는 서울 개인병원에 도착했다.그녀가 가장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나 여기 싫어하는 거 잘 알잖아?”“지금 네 처지에 병원을 가리고 있어? 죽고 싶어?”장소월은 여전히 반박했다.“다 너랑 한 패거리잖아. 날 해치려고 작당을 하는 사람들인데 내가 어떻게 여기에 가?”병원 계단을 오르던 전연우는 발걸음을 멈추었다.기성은도 있었다.장소월은 기성은이 듣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는 전연우에게 충성했고, 전생에도 전연우를 위해 장가를 배반한 사람이었다.전생에 기성은과 송시아는 전연우의 왼팔과 오른팔이었고, 그들이 있었기에 전연우가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전연우는 몸을 돌려 신비로운 흑요석 같은 눈으로 여자를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기성은은 조금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아가씨, 병원에 도착한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치료를 받으세요. 더 심각해지면 어떡해요”“그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내가 직접 택시 타고 갈 거예요.”장소월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전연우는 기성은을 보며 말했다.“가서 차 가져오세요. 서울인민병원으로 가죠.”“대표님!”“어서 가세요.”장소월은 그들의 대화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길거리 버스 정류장 앞에서 아무 택시나 잡아 조수석의 차 문을 열었다. 순간 누군가가 차 문을 쾅 닫아버렸다. 전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허리를 들어 업었다. 장소월은 그의 등을 두드리며 소리쳤다.“나쁜 놈, 내려 줘!”전연우는 그녀를 뒷좌석에 집어 던졌다.“기 비서. 문 잠그세요!”‘덜컥’차 문이 잠겼다.장소월은 또 차창을 열려고 했다. 전연우는 말 안 듣는 여자의 멱살을 잡아당겨 한 손으로 돼지머리처럼 부어오른 뺨을 꼬집고, 음산한 눈빛으로 위협했다.“계속 떠들면 상어 낚시 미끼로 쓰일 줄 알아.”장소월은 몸이 바르르 떨렸다.그녀가 가만히 있자 전연우도 손을 놓았다. 손가락에 연고를 덜어서 귀찮은 듯 그녀에게 발라주었다.장소월은 그가 바른
오 아주머니가 왔을 때는 이미 점심 12시였다. 직접 만두를 빚어 삶은 후 서둘러 달려왔다.장소월이 아직 자는 것을 보고 방해하지 않았다.기성은은 오 아주머니와 교대하고 잠시도 머무르기 싫어 자리를 떠났다.엘리베이터에서 기성은은 마침 강씨 집안 사람들을 만났다.강영수는 이상했다. 기성은이 왜 병원에 있을까?장소월 때문에 온 것일까?기성은은 신경 쓰지 않고 지하 1층 버튼을 눌렀다.복도에서 진봉은 서류 가방을 손에 들고 강영수의 뒤를 따랐다.“소월 아가씨는 설산에서 이틀 동안 갇혔고, 지금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앞으로 소월이에 관한 일은 제일 먼저 보고해.”“네, 대표님.”강영수는 장소월의 병실을 알게 된 후, 조용히 들어갔다.진봉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오 아주머니는 난데없이 나타난 사람을 보고 물었다.“누구시죠?”그리고 강영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연회색 양복을 입은 그의 팔목과 목에는 문신이 있었다. 오 아주머니는 문신을 보고 건달인 줄 알고 경각심을 세웠다.장소월은 종래로 이런 사람과 왕래하지 않았다.강영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소월이 친구예요. 소월이... 괜찮나요?”오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잠들었어요. 어쩐 일로 오셨죠?”“별다른 일은 없고, 그저 보고 싶어서 왔어요.”‘혹시 이분이 아가씨가 말한 그 친구일까?”“혹시 아가씨가 직접 밤 떡을 만들어준 그 친구인가요?”강영수는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소월이가... 저에 관해 얘기를 한 적이 있나요?”오 아주머니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전 아가씨를 어릴 때부터 돌봤어요. 늘 곁에 친구가 없었는데 도련님이 처음이었어요. 직접 부엌에 가서 요리까지 하셨죠... 도련님일 줄은 몰랐네요!”‘내가 처음이라고?’강영수는 아직 잠들어 있는 장소월을 보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아가씨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요. 할 말이 있으면 저한테 전달해주세요.”“괜찮아요. 소월이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죠.”“네.”오 아주머니는 눈치 있게
누구도 자신의 가장 못생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장소월은 강영수가 찾아올 줄 생각도 못 했다.“나 배도 안 고프고, 먹고 싶지도 않아.”말이 끝나자마자 향기로운 음식 냄새에 장소월의 배가 철없이 소리를 냈다.오 아주머니는 피식 웃었다.“아가씨는 못생겨서 도련님을 보기 민망한 거예요.”“소월이 얼굴이 왜요? 전혀 이상하지 않던데요?”강영수는 일부러 속였다.오 아주머니는 강영수의 뜻을 알아차리고 말했다.“그러게요. 아가씨 얼굴 괜찮아졌어요. 붓기가 다 가라앉았다고요.”장소월은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확실히 전만큼 아프지 않은 것 같았다.그녀는 그제서야 얼굴을 내밀었다. 확실히 얼굴이 부어있었지만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목에 있던 붉은 반점도 옅어졌다.장소월은 진작 배가 고팠다.“내가 먹을게.”“아직 링거를 맞고 있잖아. 내가 먹여줄게.”강영수는 숟가락을 들어 장소월에게 건넸다.장소월은 계속 거절하기 민망했다.“그럼 신세 좀 질게.”강영수는 덤덤하게 웃었다.“괜찮아.”만약 가능하다면, 강영수는 매일 장소월에게 먹여 줄 수 있었다.장소월은 이 인정을 앞으로 꼭 갚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장소월은 호호 불더니 반쯤 깨물고 물었다.“이모, 맛이 좀 변한 것 같아요.”“윤서 씨가 안에 후추를 넣으면 더 고소하다고 해서 넣었는데, 아가씨 입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왜요, 맛없어요?”장소월은 덤덤하게 말했다.“괜찮아요.”그녀는 원래의 맛을 더 좋아했다.강영수는 장소월의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보고 명쾌하게 말했다.“너 만둣국 좋아해? 다음에 갖다 줄게. 후추가 싫으면 빼서 준비할게.”“진짜?”장소월이 만둣국에 집착하는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오 아주머니가 장소월의 어머니는 기차역 옆의 노점상이 파는 만둣국을 좋아해, 오 아주머니가 특별히 가서 가르침을 청했다고 했다.하지만 맛은 기차역에서 먹었던 만둣국만큼 맛있지 않았다. 오 아주머니가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었지만 뭔가 빠진듯했다.“당연하지.
그때부터 그녀와 인시윤의 사이는 틀어졌다.사실 처음부터 인시윤은 전연우에게 접근하기 위해 장소월에게 다가갔다. 지금 목적을 달성했으니 당연히 친구로 지낼 필요가 없었다.두 사람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었다.“시윤이 일은 내가 시윤이 데리고 와서 직접 사과할게.”장소월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손등에 얹은 남자의 손을 보았다. 그의 따뜻한 손바닥의 온기에 주사를 꽂고 있는 손이 그렇게 차갑지 않았다.“시윤이가 그렇게 한 것도 어쩌면 나 때문이야. 너에 대한 내 마음을 알고 있거든. 시윤이가 성급했어. 그리고 강용이 너에게 진 빚은 내가 대신 갚을게. 너희들 사이의 왕래를 막지 않을 생각이야. 나랑 강용의 문제는 절대 단순하지 않아. 넌 아직 어리니까, 이 일에 대해서는 앞으로 천천히 알려줄게. 그냥 다른 사람보다 나를 조금만 더 신경 써주면 돼.”한 병의 물이 수많은 물방울이 모여 이루어지듯, 매일 매일 조금씩 채우다 보면 언젠가 가득 채워질 것이다.장소월은 그윽한 강영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너무 많은 갈망과 소유욕이 있었지만, 그는 절제하고 있었다.그는 전연우와 같지만, 또 조금 다르다.전생에 전연우는 장소월을 거의 감금하여 점유했다. 그는 어둡고, 고집스러웠다.강영수가 자신에 대한 마음을 생각하면, 장소월은 가슴속에 돌덩이가 있는 것 같았다.말로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었다.아닌 걸 알면서도, 자꾸 강영수가 자신을 핍박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의 계획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그녀가 원하는 것은 족쇄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 다른 사람에게 통제되는 자유가 아니었다.강영수의 감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누구도 그녀에게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강영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난...’장소월은 고개를 숙였다.“나한테는 다 똑같아. 영수야... 난 그 누구에게도 속하고 싶지 않아. 난 장소월이지 그 누구의 부속품도 아니야. 나만의 목표와 생각이 있고,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들이 있어. 지금 하고 싶은
저녁 7시 반쯤, 강영수는 병원을 떠났다.진봉은 강영수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기가 번진 것을 보고 장소월과 얘기를 잘 나눈 것으로 짐작했다.강영수가 먹고 있는 약보다 오히려 장소월이 말 한마디가 더 효과가 좋았다.도련님이 이렇게 그 여자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도 어쩌면 좋았다.강영수는 주머니에서 진통제 몇 알을 꺼내 먹었다. 요 며칠 날씨가 추워서 그의 두 다리는 때때로 발작을 일으켰다.“오 집사한테 말해서 가문의 본가에 방 한 칸을 준비하라고 해. 모든 디자인은 소월이 취향대로 하고.”진봉은 화들짝 놀랐다.“아가씨 본가로 들어오세요? 그럼 사모님한테는 어떻게 말씀드릴까요?”“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지금 회사로 돌아가.”“네, 대표님.”장소월이 장가에서 나오는 건, 강영수에게 확실히 좋은 일이었다.자신의 친여동생이 모욕당하는 것을 보고도, 나서서 구해주기는커녕 많은 사람들 앞에서 더 망신을 주다니.전연우는 아주 독한 사람이었다.장해진은 늑대 한 마리를 키운 격이었다.하지만, 장해진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안다면, 오랫동안 키운 양아들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까?병원에서.장소월은 침대에 조용히 앉아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며, 불빛이 눈 밑을 비추며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자신이 맞는 결정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가 가고 있는 길은 자칫 잘못하면 몸이 부서질 수도 있었다.전연우, 내가 떠나면, 당신은 마침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겠네!10시가 다 되어서야 장소월은 잠이 들었다.어두컴컴하고 불이 켜지지 않은 방 안에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고, 그윽한 눈으로 침대에 잠들어 있는 사람을 보았다.“오늘 성은이 말고 또 누가 왔다 갔죠?”오 아주머니가 대답했다.“강 씨 성을 가진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보러 오셨어요. 두 분은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이 떠나고 아가씨가 침대에 앉아 계속 멍하니 있었어요. 그리고 학교 일은 이미 다 해결했다고, 다음 주에 아가씨가 학교로 돌아갈 수 있다고
“퇴원이요?”오 아주머니와 백윤서는 모두 어리둥절하여 오부연을 보고 있었다. 전연우를 제외하고...장소월은 차가운 바람이 그녀를 감싸고 있음을 느꼈다.그녀는 전연우의 깊은 눈동자를 무시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백윤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소월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오부연이 설명했다.“저희 도련님께서 아가씨가 만든 음식을 좋아해서, 특별히 아가씨를 강가에 모셔 도련님을 돌봐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일은 사전에 장해진 어르신과 얘기를 마쳤고, 어르신도 동의한 일입니다.”오 아주머니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누구를 돌봐요? 아가씨 몸이 채 낫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어르신께서 동의하실 수 있어요?”장해진이 어찌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씨 집안이 아니라 다른 집안이었어도 동의했을 것이다.장소월이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호의호식하며 자란 건, 장해진이 그녀를 거래의 도구로 삼기 위함이었다.강씨 가문은 서울의 권력자로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는 진정한 명문 가문이었다.장가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장해진이 강씨 가문의 신발을 닦아주는 것도 가당치 않은데, 강영수가 주동적으로 나서서 사람을 달라고 하니, 장해진은 어찌 안 줄 수 있겠는가?강씨 집안이 말 한마디만 해도 장해진은 당장 딸을 내어줄 수 있었다.“장씨 집안의 일에 언제부터 하인이 나섰죠?”오부연은 차갑게 말했다.장소월은 오 아주머니를 향해 말했다.“이모,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조만간 돌아갈게요.”오 아주머니는 전연우를 힐끗 쳐다보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가씨, 휠체어를 준비해드릴까요?”장소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옷만 갈아입고 나갈게요.”“네, 도련님은 밖에서 통화 중이십니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오부연이 나가고 나서야 백윤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가문의 집사는 역시나 기질이 남달랐다.시종일관 전연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장소월은 그를 보지 않고도 그의 얼굴이 이미 잔뜩 일그
둘째 어르신은 평소 시간이 나면 식물을 키우는 것을 좋아해, 큰 정원을 만들어 다양한 종류의 꽃과 식물을 심었다.집 옆에는 5~6백 년 된 은행나무도 있었다.100년 전부터 강씨 가문은 상인이었고, 그 후 난세,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백 년 동안 집안이 쇠퇴하지 않았다.강가는 항상 규칙을 중시했고, 집안의 사람들은 반드시 본가에 함께 살아야 했다.유독 강영수만 많은 규칙을 어기며 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강씨 집안의 둘째 어르신이 강영수를 아끼기 때문이다.강영수는 가문의 종손이고, 지금은 가업을 잇고 있으니 둘째 어르신은 늘 강영수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핏줄인 것 외에도 강영수는 가문을 지탱할 수 있는 후계자였기 때문이다.강영수는 저택의 본채에서 가장 가까운 별채에 머물렀다.둘째 어르신은 조용하고 아늑한 다른 곳에 살고 있었다.장소월은 강영수가 자신을 남원별장으로 데려가리라 생각했다.뜻밖에도 도착해보니 강가의 본가였다.장소월은 속으로 감탄했다. 강가의 본가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있다니. 산과 물을 끼고 있어 환경이 좋고 주변에 많은 보안 요원이 24시간 수시로 지키고 있었다.장소월은 놀라는 한편, 또 안타깝기도 했다.전생에 전연우가 강용을 이용해 강가를 얻은 후, 강가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어쩌면 이곳도...당시 그녀는 수백 년의 사업을 가진 명문 가문이 하룻밤 사이에 큰 화재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직접 보았다.전연우는 불과 3년 만에 강가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이번 생에는 전생의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전연우는 잔인한 사람이었다.지금 장소월이 집안에서 도망쳤으니, 전연우는 또 어떤 수단으로 그녀에게 복수할까?“여기... 맘에 들어?”장소월은 사방을 훑어보았다. 이곳은 천하 일성 열 개를 합쳐놓은 듯했다.그러고 보니, 그녀가 사는 곳은 강영수의 눈에 그저 낡은 벽돌집에 불과했다.장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주 예뻐.”그녀도 한때 이 집에 버금갈 정도로 호화로운 집에 살
그때 진봉이 다가갔다.“대표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장소월의 목에 걸려있는 달 모양의 목걸이를 본 강영수의 입꼬리가 만족스러운 듯 씩 올라갔다.“알았어. 그럼 난 먼저 회사에 갈 테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집에서 푹 쉬고 있어.”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강영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부연은 생각에 잠겼다.그는 장소월이 집에 남게 된 것이 내심 기뻤다. 도련님의 병은 완치되기 힘든 병이다. 강씨 집안에서 갖은 방법을 써보았지만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다들 몇 개월도 살지 못할 거라 여겼었다.몸의 병을 치료한다고 해도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상처는 빠른 시일 내에 회복될 수 없다.도련님으로 하여금 사람답게 살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장소월 밖에 없을 것이다.오부연은 도련님의 곁에 머무르는 사람이 그 여자가 아닌 장소월이길 바랐다!오부연이 말했다.“도련님께서 아가씨에게 방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절 따라오시죠!”장소월이 오부연과 함께 가정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두 사람이 한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문은 열려있었다.“이곳이 바로 소월 아가씨의 방입니다. 도련님의 방은 바로 옆이고요.”“이곳에서의 생활이 익숙지 않을까 봐 걱정돼 방안 모든 물건을 장씨 집안 그래도 배치해 두었습니다.”장소월이 한 바퀴 훑어보니 확실히 오부연의 말대로였다. 그림을 건 위치까지도 완전히 일치했다.그녀가 장씨 저택에서 쓰던 물건을 모두 가져온 건가?저 침대도...?“드레스룸도 있어요.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바꿔드릴게요.”장소월이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 편히 쉬세요. 무슨 일 있으면 분부하시고요.”“네.”오부연이 자리를 떠난 뒤, 장소월은 방으로 들어가 한 바퀴 훑어보았다. 장씨 집안에서의 방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했지만 그 풍경을 즐길 기분이 나지 않았다.장씨 집안을 떠날 때부터 이유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조금 전 그분 봤어요? 전에 도련님과 사귀었던 분이에요?”
한참 고민하던 소현아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천효연의 납작한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그럼 아가씨도 강지훈 씨의 아기를 가져요. 그럼 자꾸 나한테 와서 자지 않을 거잖아요!” 천효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녀는 은빛 치아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주변 도우미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바보가 이토록 충격적인 말을 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주인님과 효연 아가씨의 잠자리 빈도를 생각하면, 주인님이 허락만 하셨다면 그들의 아이는 이미 몇 명은 됐을 것이다. 이 바보는 입만 열면 효연 아가씨의 급소를 찌르곤 한다! 규영과 미진도 소현아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천효연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지자 규영이 황급히 나서서 분위기를 무마했다. “효연 아가씨, 저희 현아 아가씨는 어린아이와 같은 분이라 이런 걸 잘 모르십니다. 부디 마음에 두지 마세요.” 소현아는 긴장감에 옷자락을 꽉 말아 쥐며 말했다. “제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나요?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좀 멍청해서 그래요. 혹시 제 말 때문에 화가 난 거라면 말해주세요. 사과할게요.” 그녀는 자신이 조금 떨어지는 지능 때문에 자주 말실수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예전 이것 때문에 자주 괴롭힘을 당했었다. 한때는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상황을 알아차린 엄마가 말해주셨다. 마음속에 말을 담아두면 병이 생기기 마련이니 그냥 용감하게 말하면 된다고 말이다. 그릇된 말을 했을 땐 제대로 사과해서 용서를 빌면 된다고도 하셨다. “맛있는 거 줄게요.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네?” 한참을 기다려도 천효연이 대답하지 않자, 소현아는 탁자 위의 간식을 집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천효연의 불쾌한 향수 냄새가 또다시 코를 찔렀다.소현아는 즉시 코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또다시 천효연을 화나게 할까 봐 최선을 다해 참아냈다. 천효연은 자신 앞에 내밀
잔뜩 일그러지는 소현아의 얼굴을 본 천효연의 눈빛이 차갑게 굳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 바보가 먼저 선수를 친다고? 천효연은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소현아 옆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배를 만지려 했다. “현아 씨, 아기 태어나려면 몇 달 남았어요? 나도 아이 정말 좋아해요. 전에 현아 씨가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강지훈 씨가 그랬어요. 아기가 태어나면 나더러 맡아 키우라고요.” 농담하듯 웃으며 말하고 있었지만, 소현아를 쳐다보는 그 눈동자엔 독사 같은 살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소현아는 불시에 벌떡 일어섰다. 자신의 말에 자극을 받았다고 생각한 천효연은 득의양양하게 아래턱을 들어 올렸다. 소현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커다란 눈동자를 사방으로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불안하고 다급한 표정이었다. “현아 아가씨!” 규영과 미진이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애처롭게 서 있는 소현아를 본 그들은 급히 달려왔다. 소현아는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규영은 곧바로 그녀의 뜻을 알아차렸다. “화장실로 모셔다드릴게요.” 그녀는 손에 든 것을 내려놓고 소현아를 1층 화장실로 데려갔다. 화장실 안에서 구역질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천효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효연 아가씨, 죄송합니다. 요즘 현아 아가씨의 입덧이 좀 심해요. 임산부라 요즘 많이 예민하십니다. 가까이 가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만약 현아 아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주인님 성격 아시죠?” 미진은 느긋하게 가져온 음식을 펼쳐놓으며 경고를 담아 공손하게 말했다. 천효연은 눈썹을 치켜들었다.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고작 도우미 주제에 감히 내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고 해?” 미진은 겁을 먹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천효연의 얼굴은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잠시 뒤, 화장실에서 구역질 소리가 멈췄다.
배가 고픈 데다 아기들이 발길질까지 하니 더욱 아팠다. “아가들아, 제발 차지 마. 규영 언니랑 미진 언니가 곧 맛있는 거 가져다줄 거야.” 그녀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규영과 미진은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뱃속 두 녀석들이 워낙 시끄럽게 움직이고 있으니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알았어요, 아가씨. 간단히 드실 걸 가져다드릴게요. 여기 앉아서 절대 움직이지 마세요.” 그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거듭 당부했다. 소현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여기 이렇게 많은 언니들이 지켜보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게요.” 규영과 미진은 사람들에게 다시 신신당부한 뒤에야 먹을 것을 가지러 자리를 떴다. 지난번 일 이후로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게 되어 소현아의 음식은 반드시 그들이 직접 준비해야 했다.소현아는 혼자 소파에 앉아서 작게 아기들과 이야기했다. “아가들아, 소월 이모가 전연우 그 나쁜 놈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내 전화를 왜 안 받은 거지?” “나 소월이가 너무 걱정돼. 근데 너희가 너무 무거워서 몰래 도망갈 수도 없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답은 점점 잦아드는 태동뿐이었다. 소현아는 아기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 누군가 문을 열었는지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얇은 연노랑 잠옷만 입고 있던 소현아는 추위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이어 도우미들의 공손한 인사 소리가 들렸다. “효연 아가씨.” 천효연은 거만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 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여기 뒀던 내 꽃병은 어디 갔어?” 계단 모퉁이에 있던 꽃병이 사라진 걸 발견한 천효연이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아 아가씨가 다치실까 봐 잠시 장식품들을 다 치웠습니다.” 소현아?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천효연의 눈동자에 냉기가 스쳤다. “그 바보는 지훈 씨가 방에 가둬놨잖아?” 도우미
엄마와 통화를 마친 뒤, 소현아는 장소월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 그 나쁜 놈이 소월이를 괴롭히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혹시 소월이는 강용 소식을 알지 않을까... 소현아는 강지훈이 강용의 행방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장소월의 당부를 기억하며 감히 묻지 못했다. 통화음이 두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 상대가 말하기도 전에 소현아는 흥분해서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있잖아, 강지훈 그 나쁜 놈이 나 계속 방에 가둬놓고 문밖으로 못 나오게 했어. 나 진짜 답답해 미치겠어!” “널 여기 데려와 같이 놀려고 했는데, 강지훈의 말이 전연우 그 나쁜 놈이 너 안 보낸다고 하더라고. 둘 다 진짜 짜증 나! 내가 간신히 휴대폰 구해서 전화한 거야. 소월아, 그 나쁜 놈한테 말하고 이쪽으로 놀러 와줄 수 있어?” 한참을 떠들었을 때, 저쪽에서 낮고 위험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지훈이 내가 소월이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고? 언제 나한테 물어봤는데?” 소현아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몇 초 뒤에야 머뭇거리며 다시 말을 꺼냈다. “전... 전연우 씨? 왜 당신이 전화를 받아요?” 전연우가 차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쁜 놈이 전화를 받아서 많이 실망했나?” 소현아는 겁을 먹고 눈알만 뒤룩뒤룩 굴렸다. “저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잘못 들었어요! 소월이는요? 이거 소월이 폰이잖아요. 빨리 소월이한테 돌려줘요!” 전연우가 말했다. “소월이는 전화 안 받아. 다시 전화하지 마.” “소월이한테 나라고 말해줘요. 소월이가 제 전화 안 받을 리 없어요.”소현아는 다급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소월이 찾지 마. 바빠서 너랑 소꿉놀이할 시간 없으니까.” “그리고 강지훈한테 전해. 내게 터무니없는 누명 씌우지 말라고.” 전연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소현아가 다시 걸어봤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 “현아 아가씨, 이제 일어나서 운동할 시간이에요.” 규영과 미
소현아는 얼굴에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빨 자국을 달고서 원망 어린 눈빛으로 강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지훈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말을 들은 순간 소현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소월이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쪽에서 받기만 한다면야.” 소현아는 이제 아침에 있었던 불쾌한 일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어요!” 강지훈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돼.” 신이 나 붕방거리던 소현아는 김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축 처져버렸다. “하지만 방에만 계속 있는 건 너무 따분하단 말이에요.” “절대 도망 안 갈게요. 여기 아기들도 있잖아요. 그냥 아래층에서 좀 돌아다니게만 해줘요, 네?” 그녀가 지금 머무는 방은 집에 있던 침실을 완벽하게 똑같이 복원한 곳이었다. 소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며칠 동안 줄곧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그녀는 방안을 끝없이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방은 갑자기 창고로 변해버렸고, 아무리 깨려고 해도 도저히 깨어날 수가 없었다. 강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현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밥을 한입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연우 그 나쁜 놈도 소월이가 마당에서 그림 그리는 건 허락하던데... 강지훈 씨는 날 침실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네. 전연우보다도 더 나빠.” “...” “아래층에서만 놀아. 방을 나서면 규영과 미진이 따라갈 거야.”결국 강지훈이 한발 물러섰다. 소현아의 눈에 다시 별빛이 들어왔다. “음, 당신은 전연우 그 나쁜 놈보다 조금 나아요. 정말 아주 조금.” 아침을 먹고 난 뒤 소현아는 바로 휴대폰을 요구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거의 즉시 연결되었다. “현아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명세진의 목소리는 흥분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듯 조심스러웠다.오랜만에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 소현아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엄마,
강지훈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돌아왔다.옆방에서 샤워를 마친 강지훈은 잠옷을 입고 소현아의 방으로 들어갔다.소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2.2미터나 되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편안하게 팔다리를 쭉 뻗은 채 말이다. 무슨 꿈을 꾸는지 웅얼거리며 입가에 흘린 침을 닦고 있었다.곤히 잠든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강지훈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는 이불을 끌어다 그녀의 배를 덮어주고는 코를 꼬집었다.“윽...”잠시 후 소현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듯 눈을 떴다.“강지훈 씨 너무 싫어요. 숨을 쉴 수가 없잖아요. 빨리 놔줘요.”침대 곁에 있는 사람을 본 소현아는 두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강지훈이 말했다. “말해 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제대로 말하면 놔줄게.”소현아는 씩씩거리며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입으로 숨을 쉬었다. 가슴이 뻐끔뻐끔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마치 복어 같았다.강지훈은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까지 막아버렸다.몇 초 지나지 않아 소현아는 다시 웅얼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강지훈은 그저 잠시 그녀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지만, 한번 맛을 보니 멈출 수가 없었다.그는 손을 떼어 그녀의 허리에 얹고 반바지를 벗기려 했다.소현아는 필사적으로 바지를 붙잡고 엉덩이를 비틀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강지훈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손 놔. 살살할게.”“저 졸려요. 자고 싶으니까 강지훈 씨도 빨리 자요.”그녀는 강지훈이 또 키스하려 할까 봐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낑낑거리며 그를 밀치고는 죽은 척 눈을 감았다.강지훈이 어떻게 하든 소현아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정말로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곤히 잠든 그녀를 바라보는 강지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다음 날 아침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지훈의 몸에 꼭 안겨있었다. 그녀의 코끝에 그의 단단한 가슴이 닿아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어젯밤 일이 떠오른 소현아는 그의 가슴을 힘껏 깨물었다.곧이어
분개하고 있던 천효연의 시야에 문득 옆 방문 앞에 놓인 목욕 가운이 들어왔다.목욕 가운 허리띠에는 검은색 은은한 무늬가 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강지훈의 것이었다!강지훈이 그녀를 침대에 버려두고 저 바보 같은 여자를 찾아온 것이다!그 사실을 깨달은 천효연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강지훈은 바람기가 있긴 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천효연은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하여 그녀는 강지훈이 바깥에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저 바보 같은 여자가 나타난 이후로, 강지훈은 그녀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바보를 위해 그녀에게 손찌검까지 했다!설상가상으로 그 바보는 강지훈의 아이까지 가졌다...천효연은 간신히 벽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놓인 목욕 가운을 쏘아보았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방 안에서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우미가 다가오자 천효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아.”소현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미진이 밥을 먹여주기를 기다렸다.그녀도 남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부터 손목이 끊어질 듯이 아파 어쩔 수가 없었다.아침밥은 강지훈이 직접 먹여주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규영과 미진에게 밥을 먹여주라고 지시하고 서둘러 떠났다.“아가씨, 오늘은 어디 불편한 곳 없으신가요?”어제 주인님의 모습은 너무나 무서웠다. 그가 아이를 해치지는 않았을까, 규영과 미진은 걱정이 태산이었다.그들의 마음을 알 리 만무한 소현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가 다시 끄덕였다.“손목이 너무 아파요. 어떡하죠?”두 사람은 안도하며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달랬다. “이따가 저희가 마사지해 드리면 괜찮아지실 거예요.”소현아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점심 식사를 마친 후, 규영과 미진은 의사의 말에 따라 소현아를 데리고 방안을 걸어 다녔다.
강지훈의 움직임은 이전 그 어느 때보다 격렬했다.소현아는 배가 짓눌리는 느낌에 불안해졌다. 또한 콧속으로 불쾌한 향수 냄새가 흘러들어왔다.“윽...”너무나 불편하니 그만해달라고 강지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입을 틀어막고 있어 다급해진 소현아는 그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퍼져나갔다.강지훈이 통증에 약간 뒤로 물러섰다.“강지훈 씨 때문에 아기가 눌렸어요. 그리고 당신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요. 토할 것 같아요.”소현아는 찡그린 얼굴로 몸을 일으켜 앉아 퉤퉤 침을 뱉었다.강지훈의 서늘한 표정을 본 소현아는 토끼처럼 재빨리 배를 감싸 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험악한 인상에 입가에 피까지 묻히고 음침한 눈빛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사납기 그지없었다.소현아는 겁을 먹고 몸을 웅크렸다.“의사 선생님이 아기 다칠 수도 있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다른 사람 찾아가서 같이 자요. 하지만 자고 나서는 깨끗하게 씻고 저 찾아와야 해요. 낯선 냄새가 나면 토할 것 같단 말이에요.”그녀가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지금 당신 옷에서 이상한 냄새 나요. 도우미 언니들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 같아요. 저도 싫고 아기들도 싫어할 거예요.”강지훈은 그녀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의 욕망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렬하게 끓어올랐다.눈앞의 이 토끼 같은 여자를 당장이라도 삼켜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몸에 걸치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옷 벗으니까 냄새 안 나지? 이리 와.”소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안 갈래요. 당신 때문에 아기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사람 찾아가세요.”강지훈의 눈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네가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소현아는 밖으로 도망쳐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문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훈에게 붙잡혀 다시 끌려가고 말았다.그의 무릎에 앉혀진 소현아가 또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강지훈이 소리쳤다.“울지 마!”강지훈도 어
“지훈 씨, 아랫부분으로 도와줄게요...”그녀의 말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강지훈은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천효연은 더 이상 요염한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손가락으로 강지훈의 다리를 꽉 움켜쥐어 길게 할퀸 자국까지 남겼다.죽을 것 같이 괴로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강지훈의 마음속엔 조금의 파동도 일지 않았다.여전히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짜증 섞인 얼굴로 천효연의 입에서 물건을 빼내고 그녀를 잡아 벽에 밀어붙인 다음 다시 아래로 밀어 넣었다.질식하기 직전, 천효연은 삽입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허리를 비틀며 그에게 맞춰 움직였다.“지훈 씨, 정말 대단하네요...”강지훈의 붉게 충혈된 두 눈엔 살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천 조각을 그녀의 입에 쑤셔 넣었다.천효연의 목소리는 입안에 갇혀버렸다. 쾌감에 찡그려졌던 미간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왜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걸까? 예전에는 분명 신음소리를 내는 걸 좋아했었는데...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천효연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강지훈은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흥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그는 침대에 널브러진 여자를 힐끗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일어나 욕실에서 간단히 씻은 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새 잠옷을 아무렇게나 집어 들고 소현아의 방으로 향했다.소현아는 간신히 울음을 그치고 규영과 미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강지훈이 옆에서 방해하지 않으니 밥상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규영과 미진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아가씨, 오늘 너무 많이 드셨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만 드시라고 하셨잖아요...”소현아는 퉁퉁 부은 눈으로 그들을 가련하게 바라봤다.“이번 한 번만 먹을게요. 강지훈 씨가 먹으라고 했어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확실히 강지훈이 시킨 것이다. 하여 더 이상 말을 하진 않았지만, 걱정스러움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그때 강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