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내가 정성을 다해 키운 태자 서강휘가 황제로 즉위하던 날, 그는 온화하던 얼굴 뒤에 숨겨둔 본색을 드러내며 나를 차갑고 커다란 청동 거울 앞으로 밀어붙였다. "스승님, 제가 어릴 적에는 자주 스승님께 벌을 받아 무릎을 꿇곤 했지요." 뜨거운 숨결이 내 귓가를 맴돌았다. "이제는 스승님께서 무릎 꿇을 차례입니다."
View More"스승님, 아직도 저를 용서할 생각이 없으십니까?"서강휘는 조회를 마치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달려와 내 침상 곁에 기대앉았다.나는 그를 보는 것조차 싫었다.그는 궁녀가 건넨 죽 그릇을 서운한 기색으로 받아들더니, 정성스럽게 내 입가로 가져다 대며 먹여주려 했다.나는 죽 그릇을 확 뺏으려다 통증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몸이 굳어졌다.그가 급히 연고를 꺼내 들었다."약을 바르셔야 합니다.""폐하!"나는 이를 악물고 한 글자씩 내뱉었다."지금 이런 꼴이 된 것은 다 폐하 때문입니다!"어젯밤 그가 조금이라도 절제했더라면, 내가 지금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스승님, 저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닙니다."그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귀에 못이 박힐 지경이었다. 황제의 자리에 오른 그의 말은 떠도는 바람처럼 믿을 수 없었다.오해가 풀린 뒤, 나는 오로지 황궁을 떠날 생각뿐이었다. 사강휘는 단순히 나를 가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고 수시로 미친 척을 했다.갑자기 서태윤을 죽이겠다고 하거나, 조 승상을 처단하겠다고 하거나, 아니면 태후가 눈에 거슬린다고 투덜거렸다.나라를 걱정하는 신하로서 나는 당연히 말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달래고 달래다 보면 어느샌가 나는 그의 침상 위로 끌려가 있었다.그때마다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러야 했다.여러 번 당하고 나서야 나도 눈치를 채고 그의 뻔한 거짓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서강휘는 이번에는 가련한 척, 불쌍한 척을 하며 깊은 궁궐에 마음 터놓을 사람 하나 없다며 외로움을 호소했다.그걸 또 위로해주다 보면 나는 또다시 그의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아무리 멍청해도 이제는 경계심이 생겨 보름 넘게 그의 어떤 말도 믿지 않았다. 그러자 어젯밤에는 또 발작하듯, 우리의 관계를 세상에 알려 황후를 맞이하라고 얘기하는 신하들의 입을 막아버리겠다고 했다.그 말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설령 거짓말일지라도, 만에 하나 진실일 가능성
서강휘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당장 처형하거라."나는 한숨을 내쉬며 서태윤의 앞을 막아섰다."폐하, 부디 왕야의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스승님께서는 또다시 형님을 위해 저와 맞서시겠다는 겁니까?"서강휘의 안색은 극도로 어두워졌다."저는 절대로 형님을 놓아주지 않을 겁니다.""폐하,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나는 주위 사람들을 물러나게 한 뒤, 끝까지 숨기려 했던 사실을 털어놓았다."…비록 제가 왕야께 약속한 적은 없으나, 폐하께서 이기시면 왕야의 목숨을 살려달라 하려 했습니다. 허나 그는 폐하의 형님이지 않습니까. 도리상 폐하의 손으로 직접 죽여서는 안 될 일입니다."서강휘는 본래 황제 자리에 오른 과정에 문제가 있었고, 조 승상은 아직도 많은 세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태후 또한 나약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여인이 아니었다. 만약 서태윤이 죽는다면 나라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스승님, 저를 위해서 그에게 몸을 굽히신 것이었습니까."서강휘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고, 그의 검은 눈동자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저를 위해서."내 얼굴이 굳어졌다."몸을 굽힌 것이 아닙니다."‘이 놈은 도대체 책을 어떻게 읽은 거야?’"그러니까 저를 배신한 것도, 버린 것도 아니었군요. 여느 때처럼 저를 아끼고 계셨던 겁니까?"그는 내 어깨를 붙잡고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애타게 대답을 기다렸다.나는 말문이 막혔다."폐하의 말처럼 그렇게 숭고한 뜻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왕야의 곁에서 공을 세워 출세할 생각도 있었으니까요."서강휘는 오직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었다."스승님은 저를 사랑하시는군요."그는 나를 덥석 품에 안았다."저도 스승님을 사랑합니다."그가 말하는 사랑과 내가 그에게 느끼는 감정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서강휘에게 반박하려던 찰나, 굵은 눈물방울이 내 목덜미로 뚝뚝 떨어졌고,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설령 운명이 어긋나고 모든 것이 뒤틀렸다 해도, 그 시절 함께했던
서강휘는 며칠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궁궐의 경비는 더 엄격해졌고, 나를 감시하는 인원은 세 배 넘게 늘어났다.황궁 안에는 폭풍전야의 기운이 감돌았다.나는 서강휘가 죽도록 미웠다.며칠째 옆으로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의 수치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면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지경이었다.서강휘는 저질러서는 안 될 잘못을 결국 저지르고 말았다.온 마음을 다해 스승인 나만 바라보던 소년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서 점차 아름답지만 잔혹한 황제의 형상으로 바뀌어 갔다.이미 일어난 일이라 해도, 만약 이 일 때문에 나라에 영향이 간다면 나는 죽어도 내 잘못을 용서받을 수 없을 터였다.지금 죽는 것이 최선이지만 기회를 놓친 나는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그저 서강휘가 나에게 질려버리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여느 때와 다름없는 오후, 나는 억지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밖에서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마치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지키고 있던 궁인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나 혼자 남겨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러던 중 누군가 안으로 들이닥쳤다."배 나리, 제가 구하러 왔습니다."찹쌀떡처럼 동글동글하고 통통한 아이는 바로 회남왕 서태윤이었다. 그는 시위들의 보호를 받으며 들어와 내 손을 붙잡고 서둘러 도망치려 했다."폐하의 발이 묶인 틈을 타서 어서 도망쳐야 합니다!""잠시만요."나는 그 자리에 멈춰 있으려고 했지만, 그의 무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 걸음이나 끌려갔다. "어찌하여 저를 구하러 온 것입니까?"서태윤이 나를 구하러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와 그의 관계는 서강휘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가깝지 않았으니까.당시 나는 서태윤이 반드시 이길 것이라 믿었다. 서태윤은 친척인 조 승상의 도움을 받고 있었고, 어머니도 새 황후가 된 데다 본인 역시 황제의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나는 가문에 아직 남아 있는 힘을 이용해, 내 목숨까지 담보로 바
나는 곧바로 변장을 하고 궁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아무런 표식도 없는 마차를 타고 태후의 측근 하인들이 감시하는 가운데 서쪽 문으로 향했는데, 조금 긴장이 되었다.서강휘가 모든 판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며 승자가 되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그는 너무나 여유만만했다.그래서 나는 빠르면 빠를수록 도망칠 희망이 컸기에 최대한 서둘러 달라고 요구했다. 궁문에 가까워질수록 오가는 시위들의 묵직한 발소리만 들렸고, 모든 게 계획대로 되는 듯했다.그런데 갑자기 마차가 멈춰 섰다.희미한 바람 소리가 들렸지만, 그게 무엇인지 단정할 수 없었다.덩치 큰 내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복덩아, 어서 가지 않고 왜 멈추느냐?"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바람을 타고 진한 피비린내가 풍겨왔다.나는 눈을 감았다."가지 마십시오."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휘장을 젖히며 밖을 내다보려 했다."어서 서두르지 않고!""슈욱"하는 소리와 함께, 서강휘는 내가 가르쳐 준 활쏘기 솜씨로 정확히 내관의 미간을 맞혔다.휘장이 젖혀진 틈으로 마차 밖에 서 있는 서강휘가 보였다. 마치 오랫동안 먹잇감을 기다린 사냥꾼 같았고, 활을 당겼던 손을 아직 다 거두지도 않은 상태였다.핏방울이 그의 눈가에 튀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닦아냈고, 그 자리에 살기 어린 붉은 자국이 남았다."스승님, 또 지셨군요."그는 나를 마차에서 안아 올리더니, 온 궁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가두어 두었던 곳으로 한 걸음씩 걸어갔다."정녕 미치신 겁니까?"나는 몸을 떨며 그의 품에 파고들어 얼굴을 숨기려 했다.온 세상이 다 알게 될 텐데, 서강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 두렵지도 않은 걸까?어쩌면 이 황궁은 이미 누구도 흔들 수 없을 만큼 굳건히 장악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나와 태후는 그저 우리 스스로 똑똑하다고 착각했을 뿐이었다.순수하고 어린 소년이었던 서강휘는, 이제 사람들을 속이고 다스리는 기술을 제 손바닥 위에서 마음대로 굴리고 있었다.그는 아랑곳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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