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서연이 문고리를 꽉 쥔 채, 문 너머 엎드린 이헌의 심장을 향해 가장 잔혹한 비수를 푹 꽂아 넣었다.
“차라리 내 귀를 파내고 내 이름을 찢어발겨 시궁창에 버리고 싶은 끔찍한 심정이다. 이 역겨운 놈아.”
“아닙니다! 부인, 서연아! 제발 아니야! 나는 지금 허상이 아니라 온전히 널…… 널 보고 있단 말이다!”
“아직도 나를 이용하려 드느냐. 끝까지 나를 기만할 셈이냐.”
서연의 텅 빈 목소리에 차갑고 시퍼런 살기가 감돌았다.
“내가 멍청하게 네놈을 용서하고 이 문을 열어주어야, 네놈의 그 더러운 살인의 죗값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것 같아서 이리 발악하는 것이 아니냐. 네 안위가 두려워서! 끝까지 나를 네 대리 속죄의 쓰레기통 도구로 써먹으려 이리 비참하고 천박하게 짖어대는 것이 아니냐!&rdq
“전군, 출정(出征)하라!”이헌의 낮고 거친 짐승 같은 호령이, 한양 도성의 매서운 아침 공기를 가르고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며칠 뒤.섭정 진안대군 이헌이 직접 이끄는 수만 명의 북방 토벌군이, 마침내 그 거대하고 억센 핏빛 진용을 드러내며 숭례문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만조백관과 수많은 백성들이 길가에 숨죽여 도열하여 그 장엄하고 살벌한 출정식을 지켜보았다.하지만 그 수많은 두려운 시선 중, 이헌의 무사 귀환과 승리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대부분의 훈구파 대신들은, 이헌의 등 뒤에다 대고 겉으로는 조아리면서도 속으로는 '제발 저 끔찍하고 무자비한 폭군이 북방 오랑캐의 칼날에 목이 잘려 돌아오지 않기를' 처절하고 비열하게 저주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누구보다 이 거대한 군대의 출정식 행렬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묘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것.그것은 바로 군대의 가장 안전한 정중앙, 흑위대 정예 병력 수백 명이 물 샐 틈 없이 겹겹이 호위하고 있는 위치에 세워진. 거대하고 튼튼한 참나무로 특수 제작된 한 대의 육중한 검은 마차였다.“…….”그 덜컹거리는 어두운 마차 안에는.인간의 생기라곤 단 1푼도 남아있지 않은, 핏기 하나 없이 파랗게 질린 얼굴의 서연이 미동조차 없이 웅크려 앉아 있었다.가녀린 여인, 그것도 섭정의 정실부인을 화살이 빗발치고 시체가 산처럼 쌓이는 가장 끔찍한 사지(死地)인 북방 최전선으로 데려간다는 소식에 조정은 발칵 뒤집혔었다.완벽히 미친 짓이라며 대신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지며 만류했으나, 이헌은 대전에서 자신의 시퍼런 칼을 뽑아 그들의 목을 직접 겨누며 무자비하고 폭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한양 도성을 벗어난 토벌군의 행군 속도는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이헌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앞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그는 들고 온 무거운 군장과 두꺼운 털옷을, 서연의 하얀 버선발치에 조심스레, 애원하듯 내밀었다.“이게 무엇인지, 어찌하여 제게 오셨는지 묻지도 않으십니까.”“…….”서연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저 허공만을 향한 완벽하고 숨 막히는 묵묵부답.“내일 새벽. 저는 북방의 국경을 넘은 오랑캐를 토벌하기 위해 전장으로 떠납니다. 궐의 어명이, 외통수의 교지가 떨어졌습니다.”이헌이 피를 토하듯 쉰 목소리로 절망적인 상황을 고했다.“제가 한양 도성을 비우는 순간…… 전하와 훈구파 놈들은 반드시 이 텅 빈 대군저를 늑대처럼 습격할 것입니다. 부인을 대역죄인의 여식이라 다시 엮어 관노로 끌고 가 끔찍하게 유린하거나, 내게 고통을 주기 위해 은밀히 자객을 보내 옥체를 해하려 들 것이 완벽하게 분명합니다.”이헌의 목소리가 극도의 공포와 다급함으로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떨렸다.“이 한양 도성은 이제 부인에게 가장 위험한 죽음의 사지입니다. 제가 곁에 없으면, 놈들의 더러운 칼날을 결코 피하실 수 없습니다.”이헌은 피투성이가 된 붕대 감은 두 손으로, 서연의 얇은 옥색 치맛자락 끝을 간절하고 다급하게 꽉 부여잡았다.“그러니 제발…… 제발 저와 함께 북방으로 떠나 주십시오.”“…….”“전쟁터가 비록 화살이 비처럼 빗발치고 피가 튀는 험한 지옥이라 하나, 차라리 그곳이 여기 한양보다 안전합니다. 내 두 눈앞에, 내 품 안에 계신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든 완벽한 파멸과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피할 수 없고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는 끔찍한 ‘외통수’의 함정에 완벽하게 걸려들어 버린 것이다.“흐으…… 하하하! 아하하하!”이헌은 칠흑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친 사람처럼 기괴하게 실소를 터뜨렸다.자신의 그 오만하고 비겁했던 과거의 더러운 업보들이, 이제는 완벽한 살인마의 덫이 되어 하나둘씩 자신의 목통을 끔찍하게 조여오고 있었다.“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출정할 것이다. 흑위대는 당장 전군 출정 준비를 서둘러라.”“저, 전하……! 진정 피바람 부는 그 사지로 들어가시려 하옵니까!”이헌은 무영의 만류에 대답하는 대신, 몸을 홱 돌려 서연의 처소가 있는 고요한 안채 쪽을 핏발 선 눈으로 짐승처럼 바라보았다.그의 눈동자 속에는 전장에서 오랑캐의 칼에 맞아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따위는 단 1푼, 단 한 조각도 없었다.대신, 뼈를 녹여버릴 듯한 극도의 끔찍한 공포가 시퍼렇게 번뜩이고 있었다.그 거대한 공포의 근원은 오직 하나였다.‘내가 이 한양을 비우는 순간.’이헌의 심장이 덜컥, 하고 천 길 낭떠러지 발밑으로 처참하게 곤두박질쳤다.‘왕과 훈구파 놈들은 당장 이 텅 빈 대군저를 굶주린 짐승처럼 습격할 것이다.’그들이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진짜 숨은 이유.자신이 전장에서 오랑캐들과 피를 흘리며 발이 묶여 있는 동안, 자신의 가장 치명적이고 유일한 약점인 안채의 서연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자신이 평생을 걸고 미치도록 집착했던 고결한 여자.자신이 대역죄인의 여식임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살
“전하의 지엄하신 교지이옵니다! 섭정이신 진안대군께서는 당장 어명을 받드시오!”한밤중, 죽은 듯이 고요하던 대군저의 적막을 날카롭게 찢고 당도한 궐의 다급한 파발.시뻘건 옥새가 무겁게 찍힌 누런 교지를 두 손에 치켜들고 온 승지의 앙칼진 목소리가, 차가운 마당의 공기를 매섭게 울렸다.은장도의 시퍼런 칼날을 맨손으로 미친 듯이 꽉 쥐었던 탓에 하얀 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손.피투성이가 된 붕대를 칭칭 감은 채, 굳게 닫힌 서연의 처소 문밖 흙바닥에 짐승처럼 엎드려 밤새 피눈물로 오열하던 이헌이. 승지의 부름에 비틀거리며 처참한 몰골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그의 퀭하게 파이고 시뻘겋게 핏발 선 두 눈이, 승지가 내민 교지를 향해 독사처럼 서늘하게 향했다.“이 야심한 밤중에, 내게 교지라.”이헌은 찢어진 입술을 달싹이며 갈라진 쇳소리를 내며 뚜벅뚜벅 걸어가, 승지의 떨리는 손에서 그 교지를 거칠고 무자비하게 낚아채어 홱 펼쳤다.『북방의 오랑캐 여진족이 압록강을 무참히 넘어 도성과 사직을 위협하고 있으니.조선의 안위와 군사를 책임지는 섭정, 진안대군 이헌을 당장 북방 토벌군의 최고 도원수로 임명하노라.섭정은 당장 내일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정예군을 이끌고 최전선 사지로 출정하여 오랑캐의 목을 베어 백성을 구하라.』교지에 적힌 그 끔찍하고 기만적인, 얄팍한 명분이 덕지덕지 발린 문장들을 차가운 눈으로 읽어 내려가던 이헌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기괴하고 잔혹하게 비틀려 올라갔다.“하, 하하…… 참으로 얄팍하고 역겨운 수작이로군. 감히 내게 이런 얕은 함정을 파다니.”“저, 전하……! 어찌 지엄하신 어명 앞에서 이리 불경한 실소를&hell
“전하! 당장 대규모 토벌군을 파병하여 북방의 적들을 무자비하게 섬멸해야 하옵니다!”“적의 기세가 너무도 흉흉하고 심상치 않사옵니다! 훈련된 정예병과 가장 강력하고 뛰어난 도원수(초정 사령관)를 파견하지 않으면, 평양성마저 순식간에 불타 함락될 것이옵니다!”대신들이 핏대를 세우며 피를 토하듯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최근 이헌의 무자비한 권력 탄압에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리며 웅크려 있던 훈구파 잔당들의 우두머리, 좌의정의 두 눈동자에 소름 끼치고 예리한 맹독사가 번뜩이기 시작했다.‘거대한 북방의 전쟁이라…… 참으로 하늘이 내게 내린 완벽하고 절호의 기회로구나.’좌의정은 속으로 기괴하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용상에 앉아 사색이 된 왕 이도와 은밀하게 뱀 같은 시선을 교환했다.왕 이도 역시, 바들바들 떨던 손을 멈추고 좌의정의 그 서늘한 눈빛이 담은 숨은 의미를 단박에 알아차리고 입꼬리를 미세하게 올렸다.지금 조선 조정을 공포로 장악하고 있는 무소불위의 섭정, 진안대군 이헌.그를 이 궐 안에서 합법적으로 죽이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그의 흑위대는 너무도 강력했고, 그의 권력은 왕인 자신조차 숨도 못 쉴 정도로 무자비하고 압도적이었으니까.하지만.그를 저 멀리, 피가 튀고 칼날이 난무하는 가장 위험한 최전선의 전쟁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지(死地)의 한가운데로 합법적으로 내몰아버린다면 어찌 되겠는가?그가 전장에서 눈먼 적의 화살에 맞아 뒈지든, 오랑캐의 칼에 베여 죽든, 그것은 섭정을 합법적이고 명분 있게 제거할 수 있는 하늘이 내린 가장 완벽하고 절호의 기회였다.“전하.”좌의정이 아주 무겁고 엄숙한 충신의 표정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은장도 사건의 그 끔찍하고 참혹했던 핏빛 밤이 지난 이후.대군저 안채는 사람의 온기라곤 단 1푼도, 단 한 점도 느낄 수 없는. 마치 살아있는 자들의 거대한 무덤처럼, 완벽한 죽음의 고요와 뼈 시린 적막 속에 끝없이 잠겨들었다.서연은 스스로의 마음을 완벽하게, 그리고 영원히 굳게 닫아걸어 버렸다.그녀는 이헌과의 일말의 소통조차 잔인하고 철저하게 끊어냈다.이헌이 덜덜 떨리는 핏물 젖은 손으로 문밖에서 밤새도록 애원하며 건네는 따뜻한 밥상도, 지밀상궁이 눈물을 훔치며 조심스레 밀어 넣는 맑은 미음과 탕약도. 서연은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단 한 방울의 물조차 목구멍으로 넘기기를 거부했다.“…….”그녀는 그저 아무런 장식도 없는 텅 빈 벽에 등을 기댄 채.창호지 너머로 아주 느리게 비치는 흐릿한 햇살의 이동만을, 마치 혼백이 빠져나간 몽유병자처럼 가만히 응시할 뿐이었다.자살하는 것조차 미치광이 사내에게 철저히 감시받고 통제당하는 이 숨 막히는 대군저 감옥 안에서. 그녀가 저 살인마 사내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하고 끔찍한 복수는, 스스로 곡기를 완전히 끊어 자신의 육신을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말려 죽이는 것뿐이었다.분노도, 원망도, 슬픔도, 심지어 절망감조차 모두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살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얇은 육신으로, 그녀는 마치 생명력을 완전히 잃고 그저 기계적으로 맥박만 뛰는 비참한 ‘목각인형’처럼. 자신의 영혼과 모든 인간의 감정을 완벽히 지워버렸다.“부, 부인…… 서연아…… 제발 식사를 조금이라도…….”그날 밤.안채 마당에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오고 있었다.이헌은 굳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