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대한민국 최고의 변호사 차태경은 사랑했던 송지안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책감 끝에 스스로 생을 끊는다. 그러나 눈을 뜬 곳은 조선, 그의 몸은 왕의 이복동생 진안대군 이헌이었다. 그리고 형조 옥사에서 송지안과 똑같은 얼굴을 한 사형수 서연을 만난다. 이번에는 반드시 지키겠다고 맹세한 순간, 구원은 집착이 되고 속죄는 감옥이 된다. “나는 그 여자가 아니야.” 왕좌와 전쟁, 배신이 뒤엉킨 궁궐에서 이헌은 서연을 살리기 위해 율법을 뒤엎고 피의 권력전을 시작한다. 하지만 죽은 여자의 그림자를 붙든 대가는 잔혹했다.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으려는 대군과 대용품으로 살기를 거부한 여인. 그는 왕좌를 버리고도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번 생에서도 가장 사랑한 사람을 제 손으로 다시 파멸시킬 것인가.
View More빗방울이 최고급 통유리창을 거칠게 때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대형 로펌 ‘태산’의 대표 변호사 탑층 집무실. 차태경은 짙은 회색 슈트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넣은 채, 창밖의 흐린 도심을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태경 변호사님. TK그룹 측에서 의뢰한 적대적 M&A 건, 타겟 기업의 분석이 끝났습니다.”
뒤에 선 수석 비서가 조심스럽게 서류철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태경은 천천히 몸을 돌려 책상으로 다가갔다. 테이블 위를 스치는 그의 길고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이 서류의 첫 장을 넘겼다.[타겟: 성원테크. 대표: 송학수. 실질적 경영 대행: 송지안 본부장.]
태경의 시선이 서류 우측 상단에 클립으로 고정된 증명사진에 머물렀다.
송지안. 단정하게 묶은 머리, 옅은 화장기, 고집스럽게 다문 입술. 기울어가는 가업을 살리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는 스물일곱의 여자였다.“현재 성원테크의 재무 상태는 바닥입니다. 주거래 은행에서 대출 연장을 거부하면 당장 다음 주에 1차 부도가 납니다.”
“기술력은.” “확실합니다. TK그룹이 노리는 것도 성원테크의 미공개 특허 기술 세 건입니다. 껍데기는 버리고 핵심 기술만 집어삼키는 것이 이번 합병의 목표입니다.”태경은 서류를 덮으며 낮게 입꼬리를 올렸다.
완벽한 사냥감이었다. 숨통을 조이면 조일수록 발버둥 치겠지만, 결국 스스로 목줄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약자. 그는 책상 위의 만년필을 집어 들며 서늘하게 명했다.“은행 쪽에 손을 써둬. 내일 오전 중으로 대출금 상환 압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라고 해.”
“예. 그리고 성원테크 측에는 어떻게…….” “내가 직접 가지.”태경의 짙은 눈동자에 서늘한 흥미가 스쳤다.
가장 완벽한 파멸은, 사냥감이 제 발로 사냥꾼의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다.---
다음 날 오후, 장대비가 쏟아지는 K은행 본점 로비.
지안은 물에 젖은 서류 가방을 품에 끌어안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낡은 정장 재킷을 적셨지만, 그녀는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지점장님! 제발 3개월, 아니 한 달만이라도 기한을 연장해 주십시오! 당장 다음 달이면 특허 승인이 떨어집니다!”
조금 전, 지점장실 문을 붙잡고 매달리던 자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이명처럼 맴돌았다.
돌아온 것은 싸늘한 거절과 보안요원의 제지뿐이었다.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있었고, 공장 직원들의 월급은 석 달째 밀려 있었다. 눈앞이 새카맣게 점멸했다. 무너지는 다리에 힘을 주며 걸음을 떼려던 찰나였다.툭.
지안의 손에서 미끄러진 서류 가방이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지며 안의 서류들이 쏟아져 내렸다.
지안은 숨을 헐떡이며 황급히 바닥에 주저앉아 젖은 종이들을 긁어모았다. 그때, 불쑥 뻗어 나온 커다랗고 단단한 손이 흩어진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었다.“성원테크의 부채 상환 연기 신청서라.”
낮고 부드러운, 그러나 묘하게 귀를 파고드는 서늘한 음성이었다.
지안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완벽하게 재단된 네이비 슈트,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머리칼,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짙고 깊은 눈동자. 태경은 무릎을 굽혀 지안과 시선을 맞추며, 젖은 서류를 털어 그녀에게 건넸다.“이런 서류 백 장을 들이밀어도 은행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저들은 가능성이 아니라 담보를 믿으니까요.”
“누구시죠……?” “차태경이라고 합니다.”태경은 품에서 명함을 꺼내 지안의 손에 쥐여주었다.
‘기업 회생 및 법률 컨설팅 전문 변호사 차태경’. 지안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성원테크의 특허 기술에 관심이 있는 투자자를 대리하고 있습니다. 송지안 본부장님, 맞으십니까.”
“저를…… 아십니까?” “비를 너무 많이 맞으셨군요. 일단 일어나시죠. 당신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 지금 당신 눈앞에 있습니다.”태경이 지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안은 벼랑 끝에서 내려온 구원의 동아줄을 보듯,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태경의 입가에 찰나의 호선이 그려졌다 지워졌다. 덫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성원테크의 허름한 본사 사무실 안은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서연은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오열하는 이헌의 정수리를, 온기가 사라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볼 뿐이었다.그녀의 눈빛은 마치, 길가에 널브러진 가장 흉측하고 더러운 썩은 오물을 바라보는 듯한, 소름 끼치게 건조하고 메마른 죽은 시선이었다.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이 아니었다.“하…….”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서연의 파랗게 질린 입술 사이로 아주 헛헛하고 메마른 실소가 새어 나왔다.그것은 분노의 웃음도, 상대를 비꼬는 조롱의 웃음도 아니었다.그저 이미 모든 것이 새카만 잿더미로 변해버린 자의, 더 이상 세상의 그 어떤 달콤한 말도, 저 사내의 그 어떤 뜨거운 진심도 완벽하게 믿지 않는다는 듯한. 지독한 체념과 뼈를 깎는 허탈함이 뒤섞인 기괴한 웃음이었다.“하하…… 흐으윽…… 하하하.”서연이 허탈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소리 내어 미친 듯이 웃었다.그녀의 그 텅 빈 웃음소리가, 이헌의 처절한 오열 위로 스산하고 잔혹하게 흩어졌다.“서, 서연아…… 부인…… 왜 그리 웃으십니까…….”이헌이 극도의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그 공허한 웃음이, 방금 전 끓어오르던 시퍼런 맹독보다 차라리 목을 베는 시퍼런 칼날보다 더 끔찍하게 두렵고 무서웠다.그 순간.서연의 죽은 눈빛이 순식간에 독을 가득 품은 맹독사처럼 서늘하고 날카롭게 번뜩였다.“징그럽다.”“……!!”“이 더러운 살인마 새끼야. 내 몸에 함부로 그 역겨운 손을 대지 마라. 구역질이 나
치이이익-! 쉿!맹독이 든 시퍼런 찻물이 마룻바닥을 시커멓게 태워가며, 마치 사람의 뼈와 살을 녹이는 듯한 기괴하고 끔찍한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코를 찌르는 지독하고 역겨운 핏빛 연기가 두 사람의 발밑에서 매섭게 피어올랐지만, 방 안의 공기는 그 유독한 살기의 연기보다 수만 배는 더 차갑고 잔혹하게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내가 죽어야 네놈이 그토록 사랑하는 지안이 곁으로 갈 수 있을 테니, 내가 널 돕고자 함이다.』서연의 핏기 하나 없이 파랗게 질린 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소름 끼치도록 차갑고 조소 섞인 끔찍한 한마디.그녀가 입에 담은 그 잔혹한 핏빛 선고가 방 안의 끔찍한 적막을 날카롭게 찢고 이헌의 고막에 정통으로 틀어박힌 순간.“아…… 아아…….”이헌은 자신의 썩어 문드러진 심장이, 세상에서 가장 차갑고 거대한 얼음 창에 정통으로 푹 꿰뚫리는 듯한 극도의 참혹한 고통을 느꼈다.단순한 감정적인 비유나 정신적인 슬픔이 아니었다.실제로 흉곽의 가슴뼈가 산산조각 나고, 숨통이 시퍼런 무쇠 쇳덩이에 짓눌려 빵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은 끔찍한 물리적인 통증이 그의 전신을 강타했다.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하며, 그가 간신히 껍데기 위에 쌓아 올렸던 가짜 세상이 완벽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커헉……! 허억……! 컥!”이헌은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꽉 부여잡고 피를 토하듯 거친 숨을 헐떡이며, 다리의 힘이 완벽하게 풀려 그 자리에 털썩, 비참하고 꼴사납게 주저앉고 말았다.자신을 돕고자 저 치명적인 맹독을 삼키려 했다고.자신이 평생토록 안고 짊어지며 속죄해야 할 그 알량한 대리 속죄의 기회조차, 자신의 두 눈앞에서 두
이헌은 서연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짐승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며 부들부들 떨었다.하지만.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피눈물을 쏟으며 발악하고, 애원하며 자신의 어깨를 으스러져라 쥐고 흔드는 이헌을 바라보는 서연의 핏기 없는 파란 얼굴에는.그 어떤 분노의 일그러짐도, 자살 시도가 들통난 것에 대한 당혹감이나 두려움도, 심지어 일말의 슬픔이나 감정조차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서연은 짐승처럼 자신의 어깨를 틀어쥐고 거칠게 흔들며 오열하는 이헌의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온기가 완벽하게 소거된, 한겨울의 얼음장처럼 차갑고 텅 빈 죽은 눈동자로 그저 무심하고 극도로 건조하게 응시할 뿐이었다.마치 길가에 굴러다니는 하찮은 벌레 한 마리가 짖어대는 것을 무심코 구경하는 듯한 시선.사람의 혼백과 영혼이 완전히 빠져나가 박제된 인형의 눈깔처럼, 소름 끼치게 건조하고 텅 빈 완벽한 시선.그 소름 끼치는 죽은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이헌의 짐승 같은 오열이 일순간 컥, 하고 무거운 쇳덩이에 눌린 듯 끊어졌다.“부, 부인…… 서연아…… 제발 나를 그리 보지 마라…… 제발 무어라 말 좀 해보아라…… 내게 욕을 해다오…….”이헌이 덜덜 떨며 숨을 헐떡이고, 애원하듯 간절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서연의 파랗게 질린 메마른 입술이 아주 천천히, 기괴하고 잔혹한 호선을 그리며 소름 끼치게 비틀려 올라갔다.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하고, 이헌의 심장을 산채로 씹어 삼키고 짓밟아버리는 듯한 잔인하고 서늘한 조소를 내뱉었다.“왜 이리 기악하며 사색이 되어 짐승처럼
서연의 손에서 튕겨 나간 찻잔은 요란하고 날카로운 여인의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방바닥으로 무참히 내동댕이쳐졌고, 날카로운 유리 파편처럼 산산조각 나 사방으로 거칠게 튀어 올랐다.치이이익-! 쉿!바닥에 엎질러진 시퍼런 찻물은, 단단한 마룻바닥에 닿자마자 맹렬하고 기괴한 소리의 거품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두꺼운 나무 바닥을 시커멓게 태워버리고 흉측하게 녹여내기 시작했다.코를 찌르는 역겹고 독한 핏빛 연기가 방 안을 매섭게 채우며 두 사람의 시야를 흐렸다.그것은 과거, 그가 직접 대전에서 우의정을 비롯한 정적들에게 사약으로 내렸던. 사람의 살과 뼈를 단숨에 끔찍하게 녹여버리고, 온몸의 구멍으로 검붉은 피를 토하게 만들어 가장 고통스럽게 죽여버리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그 맹독이 분명했다.“아…… 아아아……!”이헌의 짐승 같은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찢었다.그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게 남아있던 붉은 핏기마저 순식간에 썰물처럼 완벽하게 빠져나갔다. 시체처럼 백지장같이 사색이 된 끔찍한 얼굴.방금 전까지 자신이 맹목적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그녀가 모든 분노를 거두고 화를 풀어 자신을 다시금 구원해 주리라 멍청하게 굳게 착각했던 그 완벽하고 달콤했던 가짜 낙원이.지금 당장 눈앞에서 새카맣게 타들어 가는 독극물 거품과 함께, 한 줌의 재와 시퍼런 연기로 완벽하게 잿더미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그녀는 나를 용서하고 화를 푼 것이 아니었다.자신을 향해 차를 내어주며 지어주었던 그 눈부시고 다정했던 현모양처의 미소는. 그가 방심하고 황홀경에 빠져 경계심을 푼 사이, 완벽하게 스스로의 숨통을 독약으로 끊어버리기 위한 소름 끼치는 속임수이자 덫이었다.자신을 그저 살인마로 취급하며, 평생 영원한 지옥의 살인 트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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