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러면서 한 바퀴 휙 돌았는데...살이 찢기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뭔가가 ‘쿵’ 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깜깜한 밤이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그런지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할리 연희의 분노는 하늘로 솟구쳤다가 갑자기 엔데스 명우가 나타나는 바람에 미처 손을 거두지도 못하고 그대로 찔러버렸다!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남자의 등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는데 순간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왜, 왜 그래!”소은지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꽉 안고 있는 남자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그러나.“너, 넌 다친 데 없어?”평소처럼 차분하게 묻는 듯했지만 소은지는 그가 지금 통증을 참아내고 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채고는 온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이때, 할리 가문의 경호원들이 소리를 듣고 나왔다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냉큼 할리 연희를 제지했다.“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그러나 할리 연희의 눈빛에는 이미 두려움으로 가득했다.소은지는 눈앞의 남자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지는 걸 보고 얼른 소리쳤다.“명우 씨, 명우 씨! 구급차,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는 그대로 소은지의 품에 쓰러졌는데 그 모습을 본 소은지는 머리가 새하얘졌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비너스 타운에서 발생했던 일이 하나 떠올랐는데 그때도 엔데스 명우는 목숨이 여러 개인 사람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불바다로 뛰어들더니 소은지를 불길 속에서 구해냈다.그때까지만 해도 삶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었던 그녀였고 남자에 대한 원망이 컸던 상태라 나중에 병문안도 오지 않았던 사람이다.그리고 오늘도...“나한테 할 말이 있다며?”엔데스 명우의 이마에는 이미 식은땀이 가득했고 덜덜 떨며 소은지의 손을 잡으려 했다.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소은지는 냉큼 남자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았다.이때.할리 민상도 집 밖이 시끄러워 나왔다가 두 사람의 모습을 보자마자 얼른 달려와 엔데스
한편.소은지는 엔데스 명우의 마음을 어떻게 거절할지 고민하고 있었다.일주일 전에 소은지가 먼저 그런 제안을 한 건 맞지만 진심으로 그와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물론 본인이 먼저 결혼하자고 하면 남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진작에 예상하고 있었다.이때.핸드폰 진동이 울려 확인해 보니 역시나 그였다.예전 같으면 아예 무시해 버렸을 텐데...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그러고 보면 소은지도 그렇게 모질지 못했다.“여보세요.”“10분 후에 도착할 테니까 내려와.”“너무 늦었어!”소은지는 예전부터 남자가 만남을 요구해 오면 습관처럼 거절했다.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그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보고 싶어.”“...”순간 소은지는 여태껏 엔데스 명우의 강압적인 모습만 봐서 그런지 숨이 턱 하고 막혀왔다.그녀에게 구애할 때도 항상 거만한 태도였기에 엔데스 명우한테서는 평생 이런 간질거리는 말을 들을 기회가 없으리라 여겨왔다.“참나.”“내려와. 응? 서프라이즈가 있어.”사실 지금까지 소은지한테 엔데스 명우라는 존재 자체가 서프라이즈고 놀라움의 연속이였고 만날 때마다 심장이 남아나질 않았다.“알겠어. 마침 나도 할 말이 있긴 해.”“나한테?”“응.”이왕 여기까지 왔고 하루빨리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래층에 내려와 보니 할리 민상은 이미 방에서 자고 있었다.조미영은 거실 불을 끄려고 나왔다가 외출하려는 소은지를 보고 물었다.“아가씨, 어디 가세요?”“네, 멀리 가지는 않을 겁니다.”“알겠습니다.”조미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가 생각났는지 다시 소은지에게 다가와 말했다.“연희 아가씨 곁에 있던 진미자 씨가 떠났답니다.”“네?”그녀의 말에 소은지의 눈이 단번에 휘둥그레졌다.지금 상황에서 할리 연희한테 진미자가 제일 중요한 인물일 텐데...“어디에 갔는지 알아요?”“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유일하게 곁에서 지켜주던 진미자마저 떠났다면 이제 할리 연희의 삶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봐야 했다
분명 떠난다고 했다.아무리 이번에 송씨 가문에서 필사적으로 말려도 송연미는 단호하게 떠나겠다고 했다.마치 일상적인 얘기인 듯 차분하게 말하는 송연미의 태도에 엔데스 현우도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남은 식사를 마저 했다.식사 시간이 끝난 뒤, 엔데스 현우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제가 바래다줄게요.”“진짜요?”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반응인데 사실 이런 물음은 보통 엔데스 운빈한테만 습관적으로 했었다.사실 그녀도 당시 미친 듯이 엔데스 현우를 찾고 싶었지만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눈앞에 그가 있지만 멀리 떠나야 했다.“당연하죠.”그러자 송연미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돌아가는 차 안.두 사람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다가 엔데스 현우가 먼저 정적을 깨고 물었다.“왜 아무 말도 안 해요?”“복수라는 게 너무 힘드네요.”송연미는 고민 끝에 솔직하게 말했다.순간 운전하던 엔데스 현우의 몸이 그대로 경직되었는데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저도 송씨 가문이 정말 원망스러웠어요.”본인이 엔데스 현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엔데스 운빈한테 억지로 시집보냈는데 결국에는 그의 조건과 송씨 가문의 이익만 고려했다.그 뒤로 아무리 파리를 떠났다고 해도 송씨 가문에 대한 원망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도 많이 옅어진 것 같았다.“지금은 모든 걸 내려놓으려고요?”“네.”아주 차분하고 덤덤하게 대답하는 송연미의 얼굴을 엔데스 현우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그러고 보니 예전보다 살이 약간 오른 것 같았는데 그렇다는 건 분명 지금 생활이 매우 윤택하다는 걸 의미했다.사실 송연미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게 매우 어려웠는데 지금은 아주 홀가분하고 편해 보였다.그렇게 어느새 송씨 가문의 별장에 도착했다.송연미는 차에서 내리면서 뒤돌아 엔데스 현우에게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결국에는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다.사실 한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그 사람이 굳이
한편.엔데스 현우가 반산월에 도착해 보니 익숙한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고 줄곧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기가 그를 발견하자마자 냉큼 달려왔다.“도련님.”“누구 왔어요?”엔데스 현우는 불빛이 환하게 켜진 별장 안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언제부터인가 이곳은 밤이어도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하기만 했는데 오늘따라 유달리 환해서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송연미 씨요.”순간.엔데스 현우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지더니 머릿속마저 하얘졌다.한껏 당황해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남기가 다시 말을 이었다.“오후부터 와 계셨습니다.”송연미.엔데스 현우의 머릿속에 익숙한 이름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사실 이 여자와 함께하고 싶어 그가 몇 번이나 붙잡았던 사람인데 결국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었다.그런데 왜 갑자기 나타났을까?그리고 그동안 어디에 있었을까?송연미가 파리를 떠난 후 마치 증발한 사람처럼 파리의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다.송씨 가문에 찾아가서 그녀의 행방을 알아보려 했지만 그들도 알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은 뒤로는 찾는 것도 포기해야 했다.이미 오랫동안 엔데스 현우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던 이름인데 이렇게 다시 떠올려보니 마음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집안으로 들어와 보니 송연미의 모습이 보였는데 긴치마에 예전에는 위로 묶었던 머리가 지금은 웨이브가 들어간 채로 어깨 위에 풀어놓았다.그 모습이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엔데스 현우는 자기도 모르게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저녁 식사 시간.송연미는 문득 소고기 한 점을 엔데스 현우의 앞접시에 집어주며 말했다.“입맛이 바뀌었어요?”사실 엔데스 현우는 여전히 소고기를 가장 좋아했다.그녀와 이렇게 마주 보고 밥을 먹었을 때가 아마 송연미가 억지로 엔데스 운빈에게 시집가겠다고 했을 때인 것 같았는데 그게 마지막이었고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아니요.” 그녀의 물음에 엔데스 현우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고개를 젓더니 단번에 소고기를 입에
그러게나 말이다.저번까지 할리 연희를 응원해 주던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아가씨, 그냥 이대로 떠납시다!”일이 이렇게까지 벌어진 마당에 진미자는 소은지의 일 처리 방법이나 수단이 예전 하선희보다 더 고약하면 고약했지 절대 봐주지 않을 것 같았다.비록 과거의 얘기는 하나도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번 일로 수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건 인정해야 했다.“아니요. 절대 안 떠날 겁니다.”할리 연희는 여전히 고집을 부렸다.그녀의 눈빛에는 소은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는데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소은지에게 달려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여기에 있어봤자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누가 그래요? 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래요!”애석하게도 진미자의 말은 지금 할리 연희의 귀에 전혀 들리지 않아 보였다.“에휴!” 그녀도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었지만 어쨌든 자기 옆에서 어렸을 때부터 자라는 모습을 모두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쉽게 포기가 안 됐다.“지금 현우 도련님도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현우 씨가 여기서 포기할 것 같아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할리 가문에 대한 엔데스 현우의 원한이 얼마나 큰지 할리 연희는 잘 알고 있었기에 그라면 절대 여기서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 같았다.할리 연희의 대답에 진미자는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당연히 여기서 포기할 사람이 아니겠지만 할리 연희가 계속 저 남자의 곁에 붙어봤자 어떤 취급을 당할지 더 이상 안 봐도 뻔했기에 진미자는 굳이 그런 흙탕길을 같이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이모님, 이번에도 꼭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할리 연희는 문득 진미자의 태도가 예전과는 다른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간절하게 호소했다.그러나.“아니요. 전 여기까지 하겠습니다.”여태껏 할리 연희의 곁에서 누구보다도 그녀를 살뜰하게 보살펴줬는데 더 이상 그러기 싫어졌다.순간 할리 연희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그녀에게 되물었다.“이모님?”“계속 도와주는 게 아가씨를 해치는
이때.소은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혹은 무슨 일이 생겼거나?”그녀의 말에 이유영의 눈이 단번에 휘둥그레졌다.“아, 아니.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소은지는 말끝을 흐렸다.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알아들은 이유영이 다급하게 되물었다.“그 뜻인즉?”소은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만약 그들의 추측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잊지 마. 여기에 올 수 있다는 건 갈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 여기서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아챘다면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그동안 이유영이 파리를 어떻게 죽을힘을 다해서 보호했는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는데 그런 와중에 강이한이 이곳에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심지어는 지금까지 아무 단서도 없었는데 이정은 지금 저 모양 저 꼴이 되어도 강이한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하여 소은지의 저 추리가 너무 터무니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이유영이 한숨을 길게 쉬며 답했다.“네 말대로라면 정말 다행이겠지.”맞는 말이다.지금 상황에서는 제일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소은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물론 너도 이제부터는 해 뜰 날만 있을 거고.”“맞아!”이유영은 제발 그들이 예상한 대로 결과가 이뤄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그녀의 삶에서 강이한이라는 남자 자체를 아예 도려내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소은지의 말에 이유영은 그제야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그건 그렇고, 할리 가문은 이제 완전히 네가 맡기로 한 거야?”요 며칠 동안 소은지에게 연거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이유영은 자기 친구가 참 걱정되고 마음이 불안했다.비록 소은지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믿는 사람이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하거나 져본 적이 없지만 이번 일은 직접 엔데스 가문을 상대해야 했기에 기존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되었다.“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넌 걱정하지 마!” 이유영이 지금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소은지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이 큰 압박감을 주었고 그 느낌이 너무나도 무겁고 답답했다.송연미는 단호하게 말했다.“왜냐하면 현우는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이기 때문이야.”그 말은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왜?”송연미의 아버지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 일은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엔데스 가문의 회장은 현우에게 무언가를 남겼을 거야. 그분이 가장 아끼던 사람은 바로 현우였으니까.”가장 아끼던 사람이 현우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한 상황을 남겨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 회장이 정말로 자
엔데스 명우가 어떤 사람인지 파리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었다.엔데스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 소은지는 명우에게 가장 미움을 받는 사람이 되었고 현우와의 관계도 본래부터 경쟁적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소은지의 일이 여섯째 도련님과 엮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둘 사이의 갈등은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컸다.“소은지, 넌 무슨 자격으로 현우에게 보호받고 있는 거야?”송연미는 이성을 잃은 듯 소은지를 향해 소리쳤다.현우는 소은지를 보호하고 있었다.그리고 이 상호 관계가 현우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차에서 내릴 때, 강이한이 자연스레 이유영을 안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유영의 단호한 목소리가 먼저 울려 퍼졌다.“우지 씨.”“네, 아가씨.”강이한의 손이 닿기 전, 우지가 서둘러 다가와 이유영의 곁에 섰다. 우지는 이유영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차에서 내리도록 도왔다.이유영은 귀를 기울이며, 주변의 적막함과 선선한 바람 속에서 지금이 밤임을 직감했다.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공기는 차갑지 않고 오히려 기분 좋게 부드러웠다. 어디선가 은은한 꽃향기가 풍겨왔다. 어떤 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향기는 달콤하면서도 상쾌했다.
강이한은 알아챘다. 이유영이 일부러 강이한을 자극하고 있다는 걸.강이한의 불같은 성격을 알기에 일부러 화를 돋워 강이한을 떠나보내려는 의도였다.이유영은 더 이상 강이한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싶었다.“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난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강이한이 설마 다 알아챈 건가?“10년이란 세월이야.”강이한은 1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는 어떤 관계도 서로를 모를 수 없다고 말했다.10년이었다.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됐든 강이한은 이유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