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조여왔다.‘강이한은 정말 별의별 짓을 다 하는구나!’기사에는 두 장의 사진이 첨부되었고 모두 그녀가 그를 물고 있는 사진이었다, 하지만 눈빛을 포토샵한 사진이었다!댓글이 가관이었다.[강 대표님은 이혼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된다!][강 대표님 재결합 의심!]쾅...!이유영은 화가 나서 회의 테이블 위의 컴퓨터를 바닥으로 힘껏 밀어버렸다.누가 알 수 있겠는가!강이한과 이런 언론에 엮이는 것을 그녀가 얼마나 꺼려 하는지를!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앞으로 유명 인사보다도 그녀와 강이한의 관계가 더 오랫동안 이슈가 될 것이다.생각할수록 화가 난 그녀는 강이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이유영은 곧장 회의실을 뛰쳐나갔다.바로 밖에 있던 지현우는 분노에 찬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다가와 물었다.“무슨 일이세요?”“회의를 먼저 맡아줘요, 저는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요!”“네!”지현우는 아직 기사를 보지 못했기에 눈치채지 못했다.그도 그럴 것이 근무 시간이기에 모두 바빴고 기사를 볼 시간이 없었다.강이한도 바로 이 점을 이용해 그녀에게 대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것이다.30분 후, 이유영은 분노에 휩싸인 채 홍원 그룹에 도착했다.이시욱은 그녀를 보고 공손하게 맞이했다.“아...”순간 이시욱은 이유영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 호칭을 황급히 바꿨다.“유영 씨!”이유영은 키는 비록 작지만 카리스마는 절대 지지 않는다.“강이한 어디 있어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분노가 차있었다.비서실의 모든 사람들은 이유영을 보자 고개를 숙여 일하기 시작했다.그동안 그녀를 지켜보면서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몇몇 사람은 한지음과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그녀를 경멸하는 눈빛이 역력했다.이유영은 그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었고 물론 그들을 보지도 못했다.이시욱이 안내했다.“대표님은 안에서 기다리십니다!”이유영은 화난 채 싸늘한 태도로 사무실로 다가갔다.수많은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강이한 사
이제야 이유영은 이해했다.그는 박연준이 돌아오기 전에 그녀와의 관계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것이었다.이런 방식으로 그녀에게 탈출구를 주지 않고 도망칠 곳도 없게 하였다!이유영은 이렇게 생각하자 분노가 끌어 올랐다.“강이한, 너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파렴치한 사람이야!”“그건 모르는 일이지.”이유영은 기세등등하게 다가와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에게서 튕겨났다.이제 마음속의 분노는 쌓일 대로 쌓였다.“내가 말해주는데, 정국진이 지금 처한 상황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해, 그가 파리를 뜨는 순간 많은 것들이 확실해질 거야!”“그때 로열 글로벌에서...”“그만 닥쳐!”이유영은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협박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니 막 할퀴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역력했다.강이한의 말을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국진이 한동안 전례 없이 바빴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정말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그럴 리가 없었다.생각할수록 분노에 못 이겨 결국 발만 동동 구르며 뒤돌아 나갔다.씩씩거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강이한은 미소를 지었다... 애정이 담긴 미소였다!밖에 있던 이시욱은 나오는 이유영을 보며 말을 건네고 싶었다.하지만 이유영은 바람처럼 쏜살같이 엘리베이터로 향해 지나가버렸고 말을 걸 수조차 없었다.이유영은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면서 엘리베이터까지 탔는데 정국진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까지 났다.“이유영 씨”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유영은 전화를 끊고 뒤돌아보았다.낯설고 이쁜 여성이었다.“누구세요?”“저녁에 잘 때 악몽 안 꾸세요?”여자는 음산한 웃음을 지으며 대놓고 물었다.이유영은 안 좋았던 안색이 더욱 굳어졌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날카롭게 그녀를 계속 쳐다만 보았다.여자는 이유영에게 손을 내밀었다.“정윤아에요, 한지음과 어릴 적부터 친구였어요, 정확하게는 서로 의지하면서 끈끈하게 같이 자란 사이에요.”‘어쩐지 눈빛에
한지음과 관련 있는 사람들에게 이유영은 태도가 좋을 수가 없었다.특히 자신을 한지음과 엮는 것을 싫어했다. 엮이는 순간 자신의 신분이 추락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사실 이유영과 강이한의 사이가 소문나면 제일 조급한 사람은 강서희였다.강서희는 절대 한지음의 일이 끝난 후 이유영과 강이한이 다시 어울리고 심지어 순식간에 이렇게까지 발전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강서희는 바로 강주로 출발했고 아파트에 도착했다.강씨네는 한지음을 잘 대해주었다. 하인이 두 명이고 월급도 충분히 높아 그녀는 보살핌을 잘 받고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이 그녀의 눈과 귀가 되어준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녀의 세계는 이미 온통 암흑밖에 남지 않았는데!강서희가 도착했을 때 한지음은 과일을 먹고 있었다.“지금 아주 편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네?”강서희의 소리를 듣고 한지음은 얼굴이 어두워졌고 그녀쪽을 향해 입꼬리 올리며 말했다.“좀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벌써 왔네?”강서희는 한지음 옆에 다가가 그녀를 하찮게 내려보며 말했다.“너 똑똑하잖아, 지금의 상황을 맞춰봐”“유경원, 너 어머니한테서 철저히 가치를 잃었지?”‘흥, 똑똑하긴 하네’“하지만 이유영은 달라, 강이한에게 그녀가 얼마나 중요하냐면......”한지음은 강서희의 살기를 느끼고 웃으면서 뜸 들이고 다시 말을 이었다.“그들은 10년이라는 시간을 같이 지냈어, 이유영이 많은 누명을 썼고 강이한도 실망했겠지, 심지어 화도 나고!”“하지만, 화가 난 후에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더라도 강이한은 그대로 받아들일 거야.”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해도 누군가에게 그 사람은 예전 그대로일 것이다.강이한은 이 두 사람이 저질렀던 사실들을 아무것도 모른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모른다고 해도 강이한은 여전히 이유영과의 연락을 끊지 않고 있다.왜냐면 이유영이 어떤 사람이든 강이한은 다 받아들이기 때문이다!이것이야말로 강서희를 가장 화나게 만드는 이유다.“네가 그렇게 똑똑하면, 이 모든 것을
반드시 해낼 거라는 눈빛과 함께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크리스탈 가든.이유영은 드디어 정국진과 연락이 닿았고 전화기에서 정국진의 분노를 억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유영아, 너 지금 당장 파리로 와!”청하에 오지 못하게 된 것이 틀림없다.이유영은 실망하며 눈을 감고 답했다.“삼촌......”“너도 못 나오는 거니?”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국진은 알아차렸다.정국진이 청하에 오는 것을 막았으니 당연히 이유영이 나가는 것도 강이한이 막았을 것이다.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침묵하고 있었다.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그 남자는 여전히...“제가 여기서 잘 처리하고 있을게요!”“정말 못 나오는 거야?”정국진은 확신이 들었다.이유영은 강이한과 엮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러니 이건 강이한의 협박일 것이다.“어떻게 협박했어?”“삼촌, 많은 일들을 조사해 봐야 될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뭐가 명확하지 않아서 조사를 하려고 해?”“그동안 여론들이 저에게 미친 영향들을 따지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벗어날 수가 없잖아요, 그럼...”“유영아, 어떤 일들은 파면 팔수록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 그런데도 정말 조사할 거니?”정국진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한지음 같은 경우도 그렇다.한지음이 자신을 왜 미워하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자신의 동생인 것도 몰랐을 것이고 지금처럼 혐오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가족으로부터 오는 충격도 없었을 것이다.“너 지금 크리스탈 가든의 대표라는 걸 잊지 마! 사랑이니 복수니 그런 것들에 빠지지 말고 시야를 넓게 가져! 네가 개의치 않을수록 상대방은 그만큼 더 불안해할 거야!”하지만 문제는 상대방들이 물고 늘어진다는 것이다.“그러면 뒤에서 마음껏 조종하게 내버려둬요?”“너한테 미치는 영향이 있어?”“아직까지는 없어요!”강이한과의 사이를 이간질한 영향 외에는 없었다.특히 여론들도 이미 이유영 편을 들기 시작했고 정국진이 보기에는 내버려둬도 괜찮았다. 이유영이 항상 오너
정국진과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알고 보니 조민정이 찾아줬던 탐정사무소였다.“유영 씨, 원하시던 물건을 찾았습니다!”“이메일로 보내주세요.”“알겠습니다.”찾았다는 말을 듣고 이유영은 눈빛이 어두워졌다.전화를 끊고 이메일을 클릭하여 내용을 확인했다.전화가 다시 울렸고 같은 번호였다.“사진 한 장뿐인가요?”“한지음 씨를 납치한 사람들 중의 한 명입니다.”‘그중 한 명? 한지음은 다 죽었다고 했는데?’“이 사람, 살아있어요?”“네.”“지금 어디에 있어요?”“빙천해역에 있습니다!”사진을 보면 주변에는 눈이 쌓여있고 기후가 안 좋은 빙천지역이 맞았다.하지만 분명히 CCTV에서 캡처해낸 사진 한 장이었다.이 사람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이유영이 말이 없자 상대방이 계속 물었다.“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이 사람과 한지음 씨 또는 강서희 씨가 접촉한 사진을 한 번 구해보세요.”“알겠습니다, 그러면 가격이...”“걱정 마세요, 물건만 찾아내면 가격은 얼마든지 드릴게요!”삼촌이 개의치 말라고 하셨다.한지음 조사를 부탁했던 것도 시간낭비라했었다. 그는 진실이 어떻든 조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정국진의 세계에는 이런 것들을 조사하는 것, 그 사람들의 수단에 대응하는 것도 모두 시간 낭비이다. 그들에게 주는 가장 강력한 반격은 최고의 자리에서 그들의 피에로 같은 추태를 지켜보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피에로들을 하찮게 여겨 대응하지 않아도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유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그들은 어두운 구석에서 끊임없이 즐기고 있다는 것을!그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들을 무참히 짓밟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한지음은 이유영을 짓밟고 싶어 하지만 이유영은 그녀의 존재조차 개의치 않는다.퇴근하고 강이한은 이유영을 픽업하고 같이 홍문동에 왔다.저녁 식사가 이미 준비되었고 여전히 이유영이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하지만 훨씬 간소해졌다.그녀가 낭비를 싫어한
그리고 삼촌이라는 빽이 있다고 해도 강이한은 개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삼촌까지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오늘 나온 기사 중에 강이한이 삼촌의 신분 때문에 그녀와 재결합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들은 강이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강이한이 무슨 방법을 썼는지, 지금 삼촌은 외국에 잡혀 꼼짝없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갚을 수 없으면 몸으로 갚아, 어때?”‘와장창!’이유영은 포크를 내던졌고 와인잔에 날아가 잔이 깨졌다.그녀의 화난 모습에 비해 강이한은 아무렇지도 않았고 여유가 있었다.‘로열 글로벌 회장님의 조카딸, 로열 글로벌의 내정된 미래 경영후계자, 부유하고, 강력하고, 두터운 실력을 가진 이유영, 그래서 감히 나를 건드렸던 거 아니야?’전에 거만했던 그녀의 모습과 지금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니 강이한은 속이 후련했다.“말해, 몇 번!”이유영은 화를 내며 말했다.강이한은 그녀의 말을 듣고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일어서서 그녀의 옆에 다가가 식탁과 그녀의 의자를 잡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따뜻하면서도 매서운 기운이 감돌아 위험한 분위기였다.이유영이 도망가려던 찰나, 그는 그녀의 머리를 껴안았다.“네가 내게 저지른 일로는, 너를 죽여도 부족해, 정말 횟수를 따질 거니?”그는 힘을 주지는 않았지만 매 한마디의 살기에 그녀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잠시 후 그는 그녀를 놔주었다. 이유영은 잠깐 멍하니 있다가 정신이 반쯤 돌아오고 나서 강이한을 힘껏 째려보았다.이 남자가 지금 복수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절대 그녀를 놔주지 않을 것 같았다.그녀의 눈빛에는 짙은 원망이 담겨 있었으며 강이한을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골수까지 스며든 증오심이 가득했다.“삼촌 쪽에 일이 생기지 않게 하고 싶으면 여기서 조용히 있어, 그렇지 않으면...”강이한은 원망이 가득 찬 이유영을 보면서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계속 이어갔다.“날개 달았다고 이젠 컨트롤 하기 어려워졌네? 괜찮아. 천천히 다시 길들이지 뭐.”한 글자 한 글자에 모두
이유영은 숨통을 잡힌 느낌이 이런 것임을 알았다.예전에 강씨 집에서 혼자 있을 때에도 힘들었지만, 기껏해야 상처받은 마음이 아팠고, 진영숙에게 괴롭힘을 당해서 힘들었지 근심과 걱정은 없었다.지금은 든든한 삼촌도 있다. 그러나 강이한이 한지음의 일을 다 처리한 뒤로 그녀의 숨통을 이렇게 조이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앉아, 밥 먹어!”이유영은 화가 잔뜩 난 반면에 강이한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하지만 그 미소에는 협박도 있었다.이유영은 다시 앉아 나이프로 마구 썰어댔고 결국 접시의 음식은 엉망진창이 되었다.“그 정도로 화내지 않아도 돼.”“강이한, 우리 삼촌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분이 아니야, 너 기다리고 있어!”“그래, 기다릴게.”그의 아무렇지도 않은 반응에 이유영은 무력함을 느꼈다.이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고 이유영은 한 번에 누구의 전화인지 알아차렸다.한지음!강이한은 번호를 보고 안색이 변했다.그가 받을 줄 알았으니 그는 핸드폰을 다시 거뒀다.이유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조롱하며 말했다.“다시는 안 본다더니, 그것도 아니네!”“이미 다 정리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정말? 정말 정리가 됐어?”지금의 상황을 봐서는 전혀 정리가 되지 않았다.강이한도 그녀가 왜 전화했는지 모르지만 본가에서 잘 보살핀다고 했으니 걱정할 것도 없었다.핸드폰이 조용해졌다.하지만 1초 만에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냥 받아, 이쁜이가 급한 일이 있나 봐.”“이유영!”강이한이 한지음 때문에 화내는 모습을 보니 이유영은 우습기만 했다.정리가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같은 선, 같은 세상에 살고있다.그녀의 조롱이 담긴 웃음에 강이한도 화가 났지만 벅차고 전화받으러 갔다.전화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강이한은 무의식적으로 이유영을 바라보았고 안색이 안 좋았다.이유영도 대략 무슨 일인지 눈치챘다.그는 전화를 바로 끊어버리고 식당으로 걸어와 앉아있는 이유영을 바라보았다.그의 준수한 모습에는 인내가 느껴졌다.이 감지력은 전생
지금까지도 이유영은 기억하고 있다. 전생에 강이한과 매일 저녁을 같이 할 때에도, 심지어 침대에 같이 누워있을 때에도, 그는 한지음의 전화 한 통에 떠나버렸다.한지음은 어떻게든 그녀를 난처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고 매번 이런 식으로 그녀를 화나게 했다.이제는 눈에 보이는 게 없다!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가 없으니 이런 방식으로라도 뭐든 하고 싶었다이유영은 강이한이란 남자는 상관없지만 한지음이 자꾸 흔들기 때문에 그녀를 불편하게 하고 싶었다.예전에는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지금 그녀의 엄마만으로도 그녀를 죽일 충분한 이유가 있다.휴대폰을 들고 번호 눌러 전화를 걸자 상대방은 바로 받았다.“유영아!”이렇게 친절한 호칭은 강이한과 결혼한 3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지금 이혼을 한 후에야 이런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저 지금 홍문동에 있어요.”“그래? 잘됐네.”“방금 강이한이 나갔어요!”“어디로?”“강주요, 한지음 찾으러 갔어요.”이유영은 담백하게 말을 했지만 듣는 진영숙은 톤이 가라앉았다.“그래, 알았어, 지금 당장 전화할게!”“사모님, 잘 고민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머지않아 저와 한지음의 관계가 곧 밝혀질 것 같거든요.”“그런데 난처한 사람은 저 뿐일까요?”이 소리를 들은 진영숙의 얼굴이 굳어졌다.이유영은 그녀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이어 말했다.“저야 괜찮습니다, 여론도 이미 익숙해졌고요. 그런데 강씨 집안의 면목이...”아무래도 대가족인데 진영숙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강씨네 가족들은 당연히 신경을 쓸 것이다.진영숙은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알겠어,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 절대 들키지 않을 거야!”그렇다, 절대 이유영과 한지음의 관계가 드러나면 안 된다!이유영은 괜찮지만 강씨 집안은 큰 수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명문가 사이에서 명성을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친자매와 같은 사이의 연결고리!“그리고요.”진영숙이 화가 나서 전화를 끊어버리려고 할 때 이유영이 말했다
공기가 얼어붙었다.“쾅!”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박연준이 탁자를 세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박연준의 억눌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가서 유영이를 백산 별장으로 데려가.”이유영은 미친 게 분명했다.‘감히 엔데스 셋째 도련님 같은 인물과 술집에 가?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건가?’정국진이라면 이유영이 엔데스 신우와 가까워지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특히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엔 더욱 반대가 심할 것이다. 박연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고 남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문기원이 급히 박연준을 따라나섰다.“네!”위험한 박연준의 모습에 용준은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대답했다.강이한이 각막을 이유영에게 이식해 주려고 할 때 왜 박연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는 듯했다.지금 이유영 곁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그녀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과거의 그녀는 마치 강이한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천사 같았다. 하지만 혼란을 겪은 이후 그녀는 변했다.거만하고 방탕하게 아무하고도 거리낌 없이 어울렸다.지금 박연준이 생각했을 때, 이유영은 더 이상 고상하고 단정한 명문가의 며느리가 아니라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바람 같은 여자였다.최근 그녀는 서재욱과 엔데스 신우와 모호하기 짝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주에서.박연준이 차에 타기 전, 문기원이 그를 붙들었다.“선생님, 선생님!”“비켜.”“오늘 정말 중요한 회의입니다.”문기원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은 서주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이유영을 생각하면 문기원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정말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박연준 곁에 있는 문기원조차 그녀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박연준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다.박연준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눈을 감은 순간, 그의 눈빛 속 날카로움은 잠시 가려졌지만 몸 전체에서 풍겨 나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은 고민에 휩싸일 때마다 이런 방식을 택했다.하지만 결국 이런 방식은 오히려 고민에 잠긴 마음을 더욱 괴롭힐 뿐이었다.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진 근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었다.“죄송합니다만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그녀의 몸은 항상 술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예전에 건강이 좋지 않기도 했고 어렵게 다시 찾은 시력인 만큼 그녀는 술과 더욱 멀리하게 되었다.하지만 오늘 진영숙이 백산 별장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니 이유영의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회피하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인 건지 알 수 없었다.남자는 그 말을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죄송해요. 제가 깜빡했네요.”남자의 목소리는 유난히 부드러웠다.“괜찮아요.”“...”“이제 가도 될까요?”“술을 마시지 않아도 즐길 수 있잖아요.”“...”하지만 이유영은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특히 많이 노출된 옷을 입은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하지만 남자는 그녀에게 반항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그녀를 향락의 세계로 이끌었다....한편 박연준은 서주에서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용준의 전화를 받은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그쪽은 괜찮아?”진영숙에 관해 묻는 것이었다.이유영이 인정사정없을 거라는 걸 박연준도 알고 있었다.과거 강이한 곁에 있을 때의 이유영을 떠올렸다. 그때의 그녀는 적어도 강이한에게 만큼은 너무 몰아붙이지 않았었다.그래서 진영숙이 아무리 이유영을 괴롭혀도 그녀는 어떻게든 참고 견뎠다.지금은 성격이 점점 더 나빠졌다고 해야 할까? 아예 참는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용준은 진영숙의 현재 상황을 박연준에게 설명했고 이미 좋지 않았던 박연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회의 끝나고 바로 갈게. 일단 진정시켜.”박연준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 과연 내가 진정시킬 수 있을까?’“네!”“유영이는
“박연준, 네가 강이한과 이렇게 가까운 사이였고 또 이제는 강이한 어머니까지 지키려 한다는 사실을 난 여태 몰랐네.”그 말은 날 선 조롱처럼 들렸다.동시에, 과거 강이한과 박연준의 사이가 이유영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되새기게 했다.그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이유영의 냉정한 말에 박연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다른 일 있어서 먼저 끊을게.”이유여은 박연준의 대답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사랑이란 그저 우스운 감정에 불과했다.차는 천천히 백산 별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지혁 씨.”“네.”“지혁 씨는 사랑해 본 적 있어요?”이유영은 지혁을 향해 불쑥 물었다.예전의 이유영은 사랑이란 존재를 믿어 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누군가를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토록 반짝이던 사랑이란 단어 뒤편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었는지 이젠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의 말을 들은 지혁은 묵묵히 앞을 응시하며 손에 힘을 주었다. 핸들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이유영은 굳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쾅!”그 순간, 갑작스러운 충격음과 함께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이유영은 아픈 이마를 짚고 있었고 지혁은 차에서 내려 사고 처리를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 문이 열렸다.“아가씨.”지혁이 이유영 앞에 공손하게 나타났다.“무슨 일이에요?”“셋째 도련님 차입니다.”“...”그 말을 듣고 그녀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자꾸 나타나는 셋째 도련님의 존재에 우연한 사고인지 아니면 이미 계획된 일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이유영은 미간을 짚으며 말했다.“어떻게 된 거예요?”“셋째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이유영은 이 전설 속의 셋째 도련님을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특히 엔데스 가문과 정씨 가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밖에서 이유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이유영은 몰랐다. 그 아이가 결국 진영숙이 데려온 의사로 인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줄은.과거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아!”분노가 치밀수록 이유영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고 진영숙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녀는 이유영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몰아세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놔, 놔 이 미친년아! 악!”“짝!”이유영의 손바닥이 진영숙의 뺨을 후려쳤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말릴 용기를 잃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유영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다시 한번 움찔하고 말았다.이유영의 행동에 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진영숙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결국 이유영은 진영숙을 놓아주며 말했다.“주제 파악하라는 의미에서 그랬어요. 당신은 할머니라는 말을 입에 올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에요.”그렇다. 진영숙은 할머니가 될 자격이 없었기에 이유영도 그녀를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질 수 있었다.진영숙의 귀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머릿속이 멍해진 채 한참을 그 자리에 얼어 있었다.그 사이 이유영은 조용히 자리를 떴다.“저년이 감히...”감히 뭐라고?예전엔 강이한 곁에서 순한 토끼처럼 보호받더니 지금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이유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차가운 밤바람이 그녀를 감쌌다.그 순간, 가슴속의 억눌린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듯했다.지혁은 이유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용준을 밀쳐내고 앞으로 다가왔다.“아가씨.”“가요.”용준은 여전히 당당한 이유영의 모습을 보며 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이유영의 휴대폰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박연준이었다.차에 오르자마자 전화를 받은 이유영의 모습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했다.“여보세요.”“어디야?”“풍산.”“유영아...”전화 너머의 남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박연준은 지금 이유영이 강씨 집안을 어떤 태도로 맞서고 있을지 잘 알고 있었다.
과거 강씨 집안에서 강이한이 곁에 없는 동안에는 진영숙의 말에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홍문동으로 이사한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진영숙이 찾아오면 이유영은 그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고 감히 그녀의 말에 거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도대체 언제부터일까?’아마 강이한과의 이혼을 결심한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이유영은 진영숙의 말에 더 이상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그땐 고작 진영숙의 지시를 어기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한참 뒤에야 겨우 말을 꺼낸 진영숙이 이유영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이빨을 드러낸 짐승 같은 기세가 실려 있었다.이유영은 고작 이런 걸로 화를 내는 진영숙이 가소로웠다.이유영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고 망설임도 없이 진영숙의 얼굴에 뿌렸다.“앗!”진영숙은 비명을 질렀고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손을 댄다는 건 이런 거예요.”이유영은 바닥에 주저앉은 진영숙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퍽!”손에 들고 있던 잔이 손끝에서 떨어지며 바닥에 산산조각 났다. 그 순간, 방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예전의 풍산 사람들이 기억하던 이유영은 언제나 조용하고 온순한 여인이었다. 누가 감히 지금 이유영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분노로 찬 이유영은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진영숙 역시 이유영을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예전에도 이유영에게 자주 화가 났지만 오늘처럼은 아니었다.진영숙은 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어 올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이유영은 격하게 숨을 들이마신 진영숙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다시 백산 별장에 가거나 우리 가족 근처에 얼씬거리면 그땐 당신 진짜 가만 안 둬.”그 마지막 한마디는 징벌처럼 무겁고 섬뜩할 만큼 냉정했다.월이는 이유영의 세상 전부이자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힘들게 월이를 낳으면서 강씨 가문은 이 아이와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아
끊임없이 박연준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던 강이한의 모습을 이유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두 사람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늘 서로를 원수처럼 대했고 그 모습을 본 이유영도 두 사람 사이에 과거의 악연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악연이 한 여자 때문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그 여자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무척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모든 게 이토록 명백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영만은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그 7년 동안 강이한은 얼마나 다정했던가?그 친절함 속에 실은 다른 여인을 향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이유영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박연준은 강이한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있었다.이건 과거의 이유영이라면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실감하고 있었다.“어쨌든 강이한 씨의 어머니잖아요.”조금 전 용준이 한 말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마치 우스운 농담을 듣는 듯했다.“형님이 돌아오신 후에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용준은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공손함 속에는 이유영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있었다.이유영은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진영숙이 월이를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의 분노는 가슴 깊이 타오르고 있었다.“지혁 씨.”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지혁을 불렀다.지혁은 그녀의 뒤에 있다가 곧장 앞으로 나섰다.“네, 아가씨.”“전 들어가야겠어요.”이유영이 내뱉은 짧은 문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용준은 지금까지 이유영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 냉혹함에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네!”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혁은 곧장 앞으로 다가섰다. 분위기는 마치 폭발할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이유영은 어지럽게 엉킨 현장을 냉정히 바라보며 우아하게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용준은 지혁을 막으려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