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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라는 사치
후회라는 사치
Author: 간도

제1화

Author: 간도
그날은 이주원과 가장 크게 싸운 날이었다.

그는 탁자 위의 물건들을 모조리 바닥에 내던지고는 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강하리, 제발 의심병 좀 고쳐. 나 신나은이랑 진짜 아무 일도 없었단 말이야.”

나는 그저 묵묵히 그의 옷 속에서 립스틱을 하나 건졌다.

구하기도 힘든 한정판 브랜드 립스틱, 아쉽게도 사용 흔적을 남긴 립스틱이었다.

나는 괴로운 마음을 달래고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 앞에서 좀 자제해주면 안 돼?”

이때 이주원이 내 손에 쥔 립스틱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힘이 너무 세다 보니 내 손등에 빨간 손자국이 났다.

“이런 날들 이제 정말 지긋지긋해. 앞으론 너 꼴리는 대로 살아.”

말을 마친 후 그는 소파 위의 외투를 챙기더니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문 닫히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나는 바닥에 축 늘어져 이주원이 벌이고 간 난장판을 하나둘씩 치웠다.

이때 5살 된 딸 아윤이가 침실에서 달려 나왔다.

아윤이는 내 목을 가볍게 끌어안고 손등에 난 빨간 자국을 어루만졌다.

“엄마, 아파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아이의 두 눈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아 품에 꼭 안았다.

“아윤이 착하지. 엄마 하나도 안 아파. 그저... 조금 피곤하네.”

나는 7년 동안 이주원을 철석같이 믿어왔다.

하지만 그는 신나은과 함께 몇 번이고 내 마지노선을 건드리고 있었다.

일이 이 지경에 다다른 이상 나도 더는 이 결혼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아윤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앙증맞은 손으로 나의 큰손을 꼭 잡아주었다.

“아윤이가 엄마 침대 데리고 갈게요. 우리 선생님이 한잠 푹 자면 피곤이 금방 풀린댔어요.”

아이의 착한 행동에 서글픈 내 마음이 엄청난 치유를 받았다.

나는 딸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옆에 살포시 누웠다.

우리만의 이야깃거리를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그렇게 밤이 흘러갔다.

깊은 밤, 아윤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게 들려왔다.

이때 침대 옆에 놓아둔 휴대폰이 울려서 열어보았더니 신나은이 내게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사진 속에서 이주원은 윗몸에 아무것도 안 걸친 채 호텔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그 어떤 문구도 없지만 그 무엇보다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나는 순간 울화가 치밀어올라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끝내 몸을 휘청거리며 거실에 약 찾으러 나갔는데 평상시에 철석같이 놓여있던 약병이 오늘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고통이 극에 치달을 때야 나는 깨달았다.

‘이주원!!’

그는 낮에 대판 싸우면서 모든 물건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흰색 약병이 창문 밖으로 튕겨 나갔고 그 안에는 내 목숨과도 같은 심장약이 들어있었다.

심박이 멎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의 일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이미 허공을 맴도는 영혼이 돼버렸다.

괴롭고 씁쓸한 마음을 안고서 고이 잠든 딸아이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렇게 죽는 건 내게 나름 해탈이지만 아윤이가 아직 이렇게 어린데 나중에 어떡하지?

다음날 단잠에서 깨난 아윤이는 비몽사몽하게 눈을 뜨고 습관처럼 옆자리에 누운 나를 찾느라 더듬거렸지만 정작 나는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현실을 감지한 아이는 살짝 속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윤이는 맨발로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면서 나를 찾다가 마침내 소파 옆에 드러누운 나를 발견했다.

“엄마, 왜 여기서 자요? 아윤이랑 같이 침대에서 자야죠.”

아이는 내 몸에 한참 동안 기대있었지만 나는 평소처럼 상냥하게 달래줄 수가 없었다.

아윤이는 기분이 언짢은 듯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엄마 피곤할 테니 좀 더 자요.”

내 불쌍한 아가야, 이토록 어린 너를 어쩌면 좋을까?

나는 너에게 생과 사에 대해서도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아이는 그저 내가 잠든 줄로만, 조만간 깨날 거라고 믿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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