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는 또다시, 너무나도 쉽게 그녀에게 휘둘리고 말았다.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순간, 백연신은 손에 쥐고 있던 연고를 한지영 손에 쥐여주듯 내던졌다.“네가 알아서 발라.”단호한 목소리를 남기고는 그녀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대로 계단을 올라가 자기 방문을 닫아버렸다.쾅!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그는 문에 등을 기대어 선 채 머리를 마구 쓸어내렸다.심장이 요동쳤다.‘왜 지영이 앞에서는 늘 이렇게 무력해지는 거지...?’한지영 앞에 서면, 마치 모든 걸 내맡겨도 괜찮다는 듯, 스스로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저녁, 백씨 가문 저택의 식탁.차려진 음식은 놀랍게도 한지영의 입맛에 꼭 맞는 것들이었다.예전 그녀가 살던 S 시의 가정식 요리들이 그대로였고, 그 사이사이에는 재원시 특유의 로컬 요리도 곁들여져 있었다.S 시의 요리를 이만큼 낼 수 있다는 건, 분명 그 지역 음식을 잘 아는 요리사를 일부러 불러온 게 분명했다.한지영은 눈을 반짝이며 젓가락을 들었다.처음에는 몰래 백연신을 곁눈질하다가, 결국에는 대놓고 그를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좋다... 연신 씨 옆에서, 이렇게 밥을 먹을 수 있다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까.’머릿속에는 자연스레 장면이 그려졌다.둘만의 저녁상이 아니라, 언젠가 태어날 아이가 함께 앉아 환하게 웃는 모습. 하루 동안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나누며 웃고 떠드는 풍경.그림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아니, 아이가 하나가 아니라 둘, 셋... 많으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그렇게 상상에 빠진 채 입꼬리를 올리고 웃고 있으니, 아직 부어 있는 두 볼 위에 피어난 미소가 한층 더 어리숙해 보였다.백연신이 시선을 들어 그녀를 흘깃 보았다.“뭐가 그렇게 좋아서 실실 웃는 거지?”“우리... 나중에 아이 몇 명 낳을까, 그거 생각했어요.”한지영은 아무렇지 않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대답했다.백연신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그리고 이내, 씁쓸한 미소가 그의 입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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