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재가 걸어온 영상통화였다.오늘 X국에 없었던 그는 고은서가 일을 마칠 시간을 어림잡아 영상통화를 걸었다.고은서가 전화를 받자 곽승재는 그녀가 입은 남자의 외투와 어깨를 가볍게 감싸고 있던 남자의 팔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단번에 미간을 찌푸리며 어디 있냐고 묻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고은서는 의아했다.“곽승재, 할 말 있어?”곽승재는 가슴을 타고 올라오는 답답함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할 얘기가 있는데 불편하면 나중에 다시 얘기해.”고은서가 송민준을 흘끗 쳐다보며 입을 열기도 전에 그가 눈치껏 먼저 말했다.“은서야, 저기서 따뜻한 음료 팔던데 내가 가서 한 잔 사 올게.”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고마워.”송민준은 자연스럽게 고은서의 옷깃을 정리해 주고는 느긋하게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고은서는 그제야 화면을 돌아보았다.“할 말이 뭔데, 해.”곽승재는 바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송민준이 고은서에게 덮어준 외투, 어깨를 감싸던 팔, 다정하게 옷깃을 올려주던 행동만 가득했다.고은서는 송민준의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걸까.곽승재는 가슴이 솜뭉치로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아파서 숨도 쉬기 힘들었다.하지만 그에겐 따져 물을 권리도 없었다.“곽승재, 왜 그러는데. 심각한 일이라도 생겼어?”고은서는 곽승재의 말이 들리지 않아 다시 물었다.곽승재는 생각을 정리했지만 기분은 여전히 울적해서 침울한 어투로 말했다.“심각한 일은 아니야. 그냥 승연이가 오늘 나를 찾아온 걸 말해주려고. 오랫동안 널 못 봤는데 요즘 바쁘냐고 묻더라.”일부러 영상 통화를 걸고 송민준 앞에서 얘기를 꺼리는 모습에 엄청난 기밀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단지 곽승연이 찾아왔다고 얘기하려고 그런 건가.곽승연이 그녀의 연락처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정말 무슨 일이 있었으면 직접 연락을 했을 텐데 굳이 곽승재가 가운데서 전할 필요가 있을까.잔뜩 실망한 채 표정이 좋지 않은 곽승재를 보며 고은서는 굳이 나무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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