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아주 가까이 있는데도 송민준의 목소리가 모깃소리처럼 낮아 고은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그는 많이 지쳤는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송민준이 이해되지 않았던 터라 고은서는 더 캐물을 생각도 없었다.두 사람의 무게가 모두 벼랑의 풀 더미에 실렸다. 찬 바람이 몰아친 그때 풀숲 아래의 흙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더는 이곳에 몸을 숨겨선 안 되었다.“오빠, 풀이 곧 끊어질 것 같아. 빨리 내려가야 해.”다급한 고은서와 달리 송민준의 말투는 어쩐지 덤덤해진 것 같았다.“허리를 다쳐서 움직이지 못해. 너 혼자 내려가.”“안 돼. 같이 가.”고은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옆에 발을 디딜 수 있는 돌덩이들이 있어. 조심하면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을 거야.”풀 더미의 흙이 계속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그들이 앉아 있는 곳도 흔들리기 시작했다.고은서는 일어서면서 송민준을 잡아끌었다.“빨리 움직여. 이러다 떨어지면 돌에 맞을 수도 있어. 그건 너무 위험해.”“은서야, 후회할까 봐 두렵지 않아?”송민준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또 무슨 후회 타령이야? 오늘따라 대체 왜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하는 거지? 귀신에 씌었나?’고은서가 다급하게 재촉했다.“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잠시 생각하던 송민준은 뭔가 결심한 듯 고은서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고은서, 이건 네 선택이야.”그러고는 한 손으로 고은서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옆의 잡초를 붙잡으며 튀어나온 돌을 밟으려 애썼다.지금이 하도 위험한 상황이라 고은서는 송민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녀는 송민준의 팔을 붙잡고 호흡을 맞춰 움직였다.두 사람의 발이 바닥에 닿자마자 조금 전 앉아 있던 풀 더미가 자갈과 함께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겁에 질린 고은서는 송민준의 팔을 꽉 붙잡았다. 송민준은 아픈 소리도 내지 않고 고은서를 감싸 안으며 발을 디딜 곳을 찾았다.힘겹게 나아가긴 해도 비교적 순조로웠다. 지면까지 몇 미터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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