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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어게인, 비긴: Chapter 1181 - Chapter 1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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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1화

육현석의 행동에 고은서는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박지연이 고은서를 향해 눈을 깜박거리며 소곤거렸다.“육현석이 이렇게 공공연히 곽승재를 부르는데 반대하지도 않아?”예전 같았으면 이런 상황을 무조건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고은서가 눈을 흘기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지난번에는 곽승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라고 진지하게 권하지 않았어?”그러자 박지연이 즉각 반박했다.“제멋대로 해석하지 마. 내 말은 속세에 미련이 없는 사람처럼 굴지 말고, 승재 씨라도 괜찮으니 마음을 열어보라는 뜻이었어.”전화를 끊은 육현석이 박지연의 말을 듣고 놀라며 물었다.“뭐? 은서가 속세에 미련이 없다고?”고은서가 일부러 장난쳤다.“응. 암자를 좀 소개해 줄래? 지금 하는 일들이 끝나면 도를 닦으러 가려고.”“...”고은서가 몇 마디 변명이라도 하면 설득하는 척하면서 곽승재를 슬쩍 밀어주려고 했는데, 그녀가 직접 인정할 줄이야.‘이러면 형을 밀어줄 방법이 없잖아. 형이랑 같이 암자에 가라고 할 수도 없고.’“거두절미하고 제멋대로 해석하니 은서에게 말려들었잖아.”박지연이 육현석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듣지 말고 어서 밥 먹으러 가자.”고은서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박지연이 왜 자꾸 연애를 권유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녀는 확실히 예전보다 컨디션이 좋아 얼굴에 윤이 나고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다.좋은 연애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은서는 지금 경황도 없거니와 연애에 흥미도 없다. 그녀는 사업에 매진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잠시 후, 그들은 육현석이 예약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육현석과 박지연이 메뉴를 고르는 사이에 고은서는 밖에서 업무 전화를 받고 있었다.통화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여재훈이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성들을 거느리고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남성들은 공손한 자세로 여재훈을 에워싸고 있었고, 여재훈은 얼굴에 아무 표정도 없었다.오후에 통화했는데 여기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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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2화

“죄송하지만, 저희는 그런 복이 필요 없습니다.”고은서가 말을 잇기 전에 곽승재가 도착했다.어떤 공식 석상에 참석하고 오는 길인지, 깔끔한 정장에 넥타이까지 단정히 매고 있었다.그는 고은서 앞에 막아서며 말했다.“어르신들, 고은서가 너무 직설적인 표현을 쓴 건 맞지만, 자기 의견을 말한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라고 봅니다.”“곽 대표, 지금 뭐 하는 거야?”그중 곽승재와 안면이 있는, 비쩍 마른 남성이 몹시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이 여자랑 무슨 사이길래 그렇게 감싸고 도는 거야?”곽승재가 대답하기 전에 여재훈이 입을 열었다.“작은 일 때문에 서로 기분 잡칠 필요 없어요. 내가 괜한 말을 했네요.”고은서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고은서 씨, 곽 대표, 우리는 이만 가볼게.”말을 마친 여재훈이 자리를 뜨자, 다른 사람들도 자연히 따라갔다.그들을 찾으러 나왔던 육현석이 방금의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란 듯 물었다.“은서야, 왜 그래? 왜 여 대표님에게 그렇게 가시를 품고 있어? 여시은 때문이야?”육현석이 아는 고은서는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여시은이 밉상이긴 해도 그녀의 아버지는 품위 있는 신사가 아닌가? 고은서가 이유 없이 적대시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고은서는 육현석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방금 자신이 지나친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이런 장소에서 말을 가려서 하고 예의를 지켜야 했다.하지만 여재훈이 입을 여는 순간, 그녀는 왠지 여재훈이 여시은과 함께 경찰서에서 나오던 광경이 생각났다. 특히 은근히 우쭐대던 여시은의 눈빛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화가 났다.“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아? 식사하면서 상의할 일이 있다며? 가자.”곽승재의 말에 육현석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형,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났네.”곽승재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고은서에게 나지막이 말했다.“들어가자.”그들이 방에 들어섰을 때는 박지연이 음식을 다 시켜놓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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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3화

곽승재가 고개를 저었다.“허준호 씨는 아무 기술도 팔아먹지 않았어.”그는 의문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하는 고은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최근 게임이 잘돼서 돈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허준호 가족이 시도 때도 없이 그를 찾아왔다. 하지만 허준호는 그들과의 만남을 거부했고, 대부분 시간을 회사에서 보냈다.그러자 허준호의 부모는 그의 월세방에 눌러앉았고, 심지어 그가 이전에 쓰던 컴퓨터를 포함해 돈이 될 것 같은 물건은 죄다 가져갔다.“여시은의 부하가 허준호 씨 부모를 찾아가 그 컴퓨터를 샀어?”고은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곽승재가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증거를 찾는 중인데, 거의 확실해.”전부터 이런 가능성을 예상해서인지, 고은서는 이 사실을 듣고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WOR 회사로 가보겠다고 했다.“같이 가자.”고은서는 곽승재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다.“아니야. 호의는 감사하지만, 이건 어쨌든 우리 회사 일이야. 나도 이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지. 일이 생길 때마다 너한테 도움을 청할 수는 없잖아.”곽승재는 기회만 준다면 어떤 일이든 기꺼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고은서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육현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말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녀가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그래야 나중에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정말 잘 맞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고.이전에는 이런 관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육현석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이혼 후 고은서는 점차 확고한 주관을 가진,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지나치게 보호하는 것보다 적당히 손 놓는 것이 낫다. 사랑하는 사람이 성장해서 자체 발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기쁜 일이니까.“그럼 내가 데려다줄게.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해.”곽승재가 한발 물러서자, 고은서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이동 중에 고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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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4화

3시간에 걸친 긴 회의와 논의 끝에 고은서는 최종 결단을 내렸다. 그녀가 직접 팀을 이끌고 해외 저작권 협상에 나서기로 하고, 몇몇 임원에게 관련 자료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회의가 끝난 후, 고은서는 WOR 핵심 멤버들에게 할 얘기가 있으니 잠시 남으라고 했다.남으라는 소리에 핵심 멤버들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쨌든 그들에게 문제가 생긴 건 사실이니까. 고의로 그런 게 아니더라도 이미 안 좋은 결과가 초래된 만큼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가장 안타까운 것은,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게임이 출시 직전에 뜻밖의 사고로 이 지경이 된 것이다.특히 허준호는 석고대죄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책임을 추궁하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킬 테니 긴장을 푸세요.”고은서는 그들의 속마음을 읽은 듯 미소를 지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그러고는 그들을 남긴 진짜 이유를 설명했다. 바로 최단기간 내에 게임 업그레이드를 진행하라는 것이다.해외 게임 저작권 매입은 시간을 벌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여시은이 그녀와 끝까지 싸우려고 한다면, 그녀의 행동을 방해하거나 아예 국내 배급권을 빼앗으려 들 것이다.어느 쪽이든 고은서에게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필요하고 절대적 승산도 없는 길이다.그래서 고은서는 기존 게임의 콘텐츠 개편이 더 안전한 전략이라고 판단했다. 비슷한 장르의 게임과 경쟁하더라도 WOR 게임만의 강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요 며칠 대응 전략을 고민하던 중 그녀는 문득 자신에게 투자를 요청했던 한 게임 개발자가 떠올랐다.그의 게임은 오픈 월드 설정이었지만 흐릿한 이야기 전개 때문에 몰입감이 떨어져서 투자 기준에 미달했다.반면 WOR 게임은 강렬한 액션과 중독성 있는 콘텐츠로 순식간에 유저들을 사로잡지만, 일부 유저 사이에서 ‘게임 속 세계의 현장감이 부족하다’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게임 참여자가 아니라 조종자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만약 WOR 게임에 새로운 세계관을 접목하고 모든 유저를 이 세계의 구성원으로 편입시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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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5화

바깥에 세워진 검은색 승용차와 그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는 곽승재.곽승재는 그녀를 WOR에 데려다줬던 그때와 똑같은 옷차림이었다. 이제 막 차에서 내린 듯 눈가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손으로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고은서는 약간 놀랐다. 몇 시간 동안 계속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분명 들어가면서 일하러 가라고 말했는데, 왜 아직 여기 있는 거지?’“은서야.”그때 그녀를 발견한 곽승재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며 물었다.“일은 다 끝났어?”고은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거의 됐어. 왜 여기 있어?”곽승재는 그녀가 걱정돼서 떠나지 못하고 줄곧 차에서 업무를 처리했다고 말했다.“네가 내려온다는 소리를 듣고 미리 차에서 내려서 기다렸어.”“안 추워?”얇은 블라우스 차림의 고은서가 추워 보였는지, 곽승재는 재빨리 코트를 벗어 그녀에게 걸쳐주었고 손도 잡아주었다.코트에서 은은한 우디 향과 곽승재 특유의 남성적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거친 손이 그녀의 작은 손을 감싸며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건물 앞의 밝은 조명이 곽승재의 잘생긴 얼굴을 비추며 이목구비가 더 부각돼 그리스 조각상을 방불케 했다.멍하니 그를 쳐다보던 고은서는 문득 18세 되던 해의 어느 날 밤이 떠올랐다. 그때 길거리에서 변태남을 쫓아버린 후 그녀를 향해 걸어오던 곽승재의 머리 위를 비추던 가로등 불빛도 지금과 비슷했다. 다르다면, 그때의 곽승재는 지금보다 날렵한 체형에 소년미와 남성미가 공존하는 모습이었다.곽승재가 땅에 쓰러져 있는 그녀를 일으켜 세울 때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이렇게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고은서는 그때 쿵쾅거리던 심장 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났다.그 순간의 곽승재가 그녀에게 용감하게 사랑을 쟁취할 결심을 심어주었고, 평생 이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하지만 운명은 그녀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전생의 그림자가 없었다면, 지금 이 순간의 곽승재를 보면서 마음이 약해져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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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6화

곽승재는 고은서의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미간을 찌푸린 채 조금 전 고은서의 말을 생각해 보면 기분이 달라진 게 확 느껴졌다.고은서가 이렇게 변덕을 부리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몇 번이나 고은서는 처음에는 감동한 듯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두 눈에 초점이 사라지더니 이내 지금처럼 낯설고 차갑게 변해버리곤 했다.마치 절망과 슬픔을 겪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자기 마음을 단단히 닫아버린 것 같았다.곽승재는 또다시 총상을 입고 깨어나기 직전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고은서는 정신병원 환자복을 입은 채 깡마른 몸으로 얼굴엔 핏기 하나 없었다. 커다란 두 눈은 텅 빈 공허함으로 가득한 채 그를 바라보다가 칼을 들고 심장을 찔렀다.곽승재가 미처 말릴 겨를도 없이 심장에 거센 고통이 밀려왔다.그는 긴 다리로 몇 발짝 앞으로 나아가 차에 타려는 고은서를 끌어당겨 차에 밀어붙인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은서야, 그 어리석은 자존심 때문에 너를 믿지 못하고 너에게 일어난 일이 전부 네가 꾸민 계략이라고 생각했던 걸 후회해.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도, 너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도 다...”곽승재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고 목소리가 더욱 갈라졌다.“네 악몽 속에서 내가 얼마나 악랄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맹세코 단 한 번도 백유미한테 이성적인 감정을 느낀 적이 없어. 백유미가 일부러 벌인 짓 때문에 널 오해했을지 몰라도 네가 죽든 말든 내버려두거나 네가 죽는 걸 보면서도 가만히 있진 않아...”곽승재의 품에 갇힌 고은서의 코끝에는 그의 향기가 가득했고 두 눈엔 슬픔이 가득 담긴 그의 잘생긴 얼굴만 보였다. 심지어 그의 다급한 심장 박동과 피부 온도까지 느낄 수 있었다.전생에 고은서도 곽승재가 자신에게 그렇게 냉정하고 잔인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분명 그녀를 구해줬을 때는 너무나도 따뜻하고 다정했던 그였으니까.그래서 전생에는 자살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곽승재가 자신을 내보내 줄 거라는 희망을 가졌는데 안타깝게도 그건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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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7화

돌아오는 길, 곽승재는 고은서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쉬게 했다.라이트문 아파트로 돌아온 뒤 곽승재는 뒷자리에서 자는 고은서를 바라보았는데, 예전보다 살이 조금 붙긴 했지만 여전히 날씬한 몸매였다.회사 일로 짜증이 났는지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표정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곽승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은 채 차에서 내렸다.추울까 봐 곽승재는 자기 재킷을 고은서의 몸 위로 덮어주기까지 했다.고은서는 다소 잠이 깊게 들어 어렴풋이 자세만 바꿀 뿐 깨어나진 않았다....다음 날 눈을 뜬 고은서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미간을 찌푸린 그녀가 어젯밤 새벽까지 회의하고 차에서 잠들었던 걸 떠올렸다.‘곽승재가 안아서 옮긴 건가?’밖으로 나온 고은서는 이미숙으로부터 제대로 된 답을 들었다.이미숙 말로는 곽승재가 혹여 그녀의 잠을 방해할까 봐 깨우지도 말라고 했단다.“그래도 화장은 제가 지워드렸어요. 도련님께서 예전에 화장이 피부에 안 좋다는 말을 기억하고 꼭 지우라고 당부했어요.”과거 예원 별장에서 고은서는 풀 메이크업을 하고 곽승재를 기다리곤 했다.한번은 밤늦게 돌아온 곽승재를 소파에서 기다리다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인 가운데 곽승재의 잘생긴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고은서는 너무 기뻐서 바로 눈을 떴지만 곽승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목소리로 방으로 돌아가서 자라고 했다.당시 고은서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방으로 돌아가서 풀이 죽은 채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위층으로 올라온 곽승재가 이례적으로 안방 앞에 멈춰 섰다.그녀가 고개를 들자 곽승재는 왜 문도 안 닫고 잠도 안 자냐며 차갑게 물었다.그가 화를 낼까 봐 곧바로 화장을 안 지우면 피부에 좋지 않아서 지우려고 준비 중이라고 핑계를 댔다.당시 곽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재로 들어갔다.그런 사소한 건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기억했을 뿐 아니라 이미숙에게 당부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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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8화

다음 날, 고은서는 송민아와 유일 투자은행 임원 몇 명을 데리고 함께 X국으로 향했다.공항에 도착한 고은서는 VIP 라운지에서 여시은을 만나게 되었다.여시은은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애교를 부리면서 빨리 만나고 싶단다.당연히 송민아도 여시은을 보게 되었고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은서야, 여시은은 왜 미운 행동만 골라서 해? 설마 우리가 X국에 간다는 걸 알고 일부러 따라가서 판권을 뺏으려는 건가?”고은서는 여시은을 흘끗 쳐다보았다. 아주 캐주얼한 차림에 비서와 가정부만 데리고 있는 모습이 일하러 가는 것보다는 놀러 가는 것 같았다.그녀와 마주치는 것도 고은서는 놀랍지 않았다.육현석과 곽승재 측 사람들이 그녀가 뭘 하는지 알아냈다는 건 여시은도 알 거다.물론 이 위기를 해결할 방법도 당연히 찾을 거다.그렇다면 여시은이 할 일은 그녀의 계획을 망치는 것이었다.대안을 만들어 놓긴 했어도 여시은의 행동을 보니 역겨움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고 대표?”그 순간 여시은도 고은서를 보고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여시은의 미소는 여전히 달콤했다.“사람이 많네. 어디 출장이라도 가?”고은서는 여시은과 전혀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듯 송민아에게 말했다.“비행기 탑승할 시간 됐어, 가자.”“고 대표, 비행기가 연착된다는 소식을 못 들었나 봐? 그래서 난 아빠한테 비행기 마련해달라고 해서 바로 날아갈 생각이야.”여시은은 인형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친근한 척 말했다.“아직 비행기에 빈자리가 좀 남았는데 급하면 내가 태워줄게.”고은서는 여시은이 일부러 여씨 가문의 재력을 과시하는 것임을 알았다. 아마도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이번 해외 게임 판권을 언제든 빼앗을 수 있다며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았다.“시은이 넌 마음도 넓고 참 착해. 예전 일은 다 잊고 이렇게 도와주려고 하잖아.”고은서가 웃으며 말해도 여시은은 화를 내지 않았다.“아빠가 잘 가르쳐줬지. 널 만나면 화해할 수 있게 다정하게 대하라고 하셨거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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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9화

여시은의 애교는 지나치게 친밀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나긋나긋했다.여자에게 마음이 약해지는 남자라면 누구라도 그녀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VIP 라운지에 둘밖에 없는 남자 여행객은 벌써 곽승재 대신 고개를 끄덕일 기세가 아닌가.“죄송하지만 불편합니다.”하지만 곽승재는 여시은의 애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게 거절했다.“곽 대표님, 너무 매정하시네요.”여시은은 여전히 투덜대며 말했다.“아저씨가 뭐 필요한 게 있으면 대표님께 부탁하라고 했어요. 전 그냥 비행기 같이 타겠다는 건데 정말 안 될까요?”“낯짝도 참 두꺼워. 불편하다고 말까지 했는데 어른까지 들먹이네.”곽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송민아가 먼저 참지 못하고 고은서에게 속닥거렸다.비록 목소리가 작아도 가까이 있던 여시은은 아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여시은은 예쁜 눈동자로 송민아를 바라보더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송민아 씨 아닌가요? 듣기론 집에서 무척 아끼는 딸이라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집 보내기 위해 애를 많이 쓴다면서요.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고은서는 그 말이 귀에 거슬려 송민아를 대신해 한마디 하려는데 송민아가 손을 잡아끌었다.“배우는 걸 그렇게 좋아하시면 어디 한번 제대로 배워봐요. 집 안에서 나와 민시후 약혼을 밀어붙였지만 상대가 마음이 없다는 걸 알고 난 뒤엔 먼저 파혼을 제안했고 이젠 사적으로 연락도 안 해요. 사람들 보는 앞에서 가족까지 들먹이며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여시은 씨는 할 수 있어요?”송민아의 말에 여시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송민아 씨,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사사건건 날 저격해요?”여시은이 불쌍한 척 말했다.“전 그냥 아줌마랑 빨리 만나고 싶어서 태워줄 수 없냐고 곽 대표님께 정중하게 물어본 거예요. 강요하려는 건 아니었어요.”송민아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자 여시은이 부러운 듯 말했다.“시은이한테 참 잘해주네요. 약혼자가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이렇게까지 감싸다니. 사람 마음 얻는 데는 시은이를 따라갈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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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0화

고은서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놀리듯 말했다.“그래도 네가 기세등등한 걸 보니 우리가 비굴한 입장은 아닌 것 같다.”“당연하지. 상대가 되지 않아도 기 싸움에서 질 수는 없어.”고은서는 송민아의 말에 다시 큰 소리로 웃었다.“알았어, 화내지 마. 화내면 몸 상할 텐데 어떻게 돌아가서 주인혁 콘서트에 가겠어.”마침 주인혁이 콘서트를 열 예정이었고 송민아는 주인혁의 열렬한 팬으로서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난 너그러우니까 여시은과 똑같이 행동하지 않을 거야.”고은서는 송민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멋져, 넌 대단한 사람이야.”힘들게 송민아를 달랜 뒤 고은서는 곽승재의 걸음을 맞춰 그의 전용기에 함께 탑승했다.곽승재의 전용기는 비상시를 제외하고는 자주 이용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국내선 노선을 주로 이용하고 그건 신청할 필요도 없어 편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오늘은 그녀를 위해 일부러 노선을 신청했다.“널 도와주고 나도 그곳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고은서의 생각을 읽은 듯 곽승재가 설명했다.“같은 방향이니까 같이 가면 북적거리고 좋잖아.”고은서는 곽승재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출장 간다는 핑계로 X국에 동행하려는 것임을 알았다.마음이 살짝 움직인 고은서는 굳이 그의 속내를 들추지 않았다.지난번 원지훈과 함께 T국에 갔을 때 큰 손해를 봤다. 당시 곽승재가 적시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엉망인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었다.이번에는 곽승재가 동행하니 확실히 더 안전하긴 했다.장장 몇 시간의 비행을 거쳐 일행은 X국에 도착했다.국내보다 더 추운 곳이라 고은서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쌀쌀한 바람을 느꼈다.그녀가 팔로 몸을 감싸는데 곽승재가 자기 재킷을 그녀에게 덮어주었다.고은서는 정중히 거절했다.“됐어. 트렁크에 옷 있으니까 그냥 입어.”곽승재는 고은서의 몸에 아예 옷을 입혀주며 할 일이 있으니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고은서는 그 모습에 더 마다하지 않았다. 일하러 왔는데 아프면 큰일이니까.일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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