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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091 - Chapter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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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1화

밖으로 나오자, 세 사람은 둘로 나뉘어 움직였다.유건은 조이를 데리고 조이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오리 튜브를 사러 갔고, 시연은 조이가 좋아하는 코코넛 워터를 사러 갔다.굳이 필요하지 않으면, 도경미와 경호원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세 식구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와아!”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조이의 눈은 휘둥그레졌다.각양각색의 튜브들, 그중에는 조이가 고대하던 오리 모양도 여러 종류 있었다.“엄청 많아요! 어떤 걸 고를까요?”“천천히 골라. 급할 거 없어.”“네!”조이는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며 신나 했고, 유건은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주었다.“Hi.”갑자기 유건의 어깨에 툭 손길이 닿았다.그가 뒤를 돌아보니, 몸매가 드러나는 옷차림의 외국인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그 뒤에는 친구로 보이는 두 명이 더 따라와 있었다.시선은 모두 유건에게 고정돼 있었고, 그 관심은 숨길 생각조차 없었다.“혼자예요?”앞장선 여자가 성큼 다가오더니 유건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같이 놀까요?”“아빠!”유건이 예의 바르게 거절하기도 전에, 조이가 불쑥 끼어들었다.작은 두 주먹을 꽉 쥔 채, 화가 난 새끼 사자처럼 유건 다리에 매달렸다.꽉 끌어안는 바람에 유건이 몸을 휘청할 정도였다.“아빠, 뭐 해요? 조이를 안 보고!”‘이 조그만 게...’유건은 웃음을 삼키며 조이를 안아 올렸다.“다 보고 있었어.”“흥!”조이는 고개를 돌리며 의심스레 물었다.“아까 내가 뭘 보고 있었는지 알아요?”‘이 녀석, 영리한데?’“이거.”유건은 오리 모양 튜브 하나를 가리켰다.“아까 우리 아기가 이거 보고 있었잖아. 맞지?”조이는 금세 얼굴이 환해져 유건 목을 끌어안았다.“맞아요!”“우리 공주님, 아빠 눈엔 늘 너만 보여.”그 모습을 보던 소녀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수군거렸다.“아, 결혼했구나.”“그러게. 벌써 아이도 있네.”하지만, 처음 말을 걸었던 아이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근데 엄마는 안 보이네? 싱글 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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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2화

조이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작은 입술이 슬쩍 움직였다.손가락 사이로 몰래 엿보던 눈동자가 반짝였다.엄마와 ‘아빠’가 입을 맞추는 걸 본 순간, 조이는 더없이 행복해했다.한편, 유건을 둘러싸던 여자애들은 그제야 미련을 접었다.“가자, 저분 부인이랑 사이 좋은 거 봐.”“아쉽다.”“그러게, 저렇게 젊은데 벌써 결혼해서 애까지 있다니.”“완전 조혼이네.”“...”결국 조이는 직접 오리 튜브를 고르게 됐다.유건은 한 손으로 튜브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조이를 잡아 바닷가로 향했다. 시연은 물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당신이랑 조이 먼저 가요. 나 잠깐 누워 있을게요.”“알았어.”유건도 혼자서 둘 다 챙기긴 벅찰 거라 생각했다.“들어오고 싶으면 기환이 불러.”“네.”‘아빠’와 딸이 손을 잡고 파도 쪽으로 달려갔고, 시연은 선베드에 몸을 기댔다.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와, 기분이 한결 느긋해졌다.햇볕이 강해 선글라스를 벗지 않은 채, 시연은 조금씩 졸음에 빠져들었다.그런데 시야 한쪽에 낯익은 그림자가 스치듯 지나갔다.시연은 움찔하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정신을 곤두세우고 다시 확인했지만, 이미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리고 입술이 본능적으로 ‘유건 씨’을 부르려다, 곧 멈췄다.‘왜 굳이...? 정확히 누구라고 말할 수도 없는데...’분명 강렬하고 낯선 기시감이 있었다.하지만 다시 둘러본 주변은 인파로 북적였을 뿐, 그 어디에도 특별한 기운은 없었다.‘내가 헷갈린 건가?’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잠시 후.유건은 조이를 데리고 돌아왔다.“엄마!”조이는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로 엄마 품에 달려들었다.“엄마 쉬었어요? 아저씨가 말했는데, 이제 배 타러 가야 한대요! 배에서 낚시도 하고 밥도 먹는대요!”“응, 다 쉬었어.”시연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유건은 팔을 내밀었다.시연은 잠시 망설이지도 않고 그의 손을 잡았다.그 힘을 빌려 일어나자, 문득 마음 한편이 묘하게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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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3화

하루 종일 밖에서 뛰놀던 조이는 기진맥진해 결국 유건의 품에 안겨 숙소로 돌아왔다.“대표님, 제가 안을게요.”도경미가 팔을 내밀자, 유건은 조이를 조심스레 넘겨주었다.조이는 곤히 잠든 채, 자기를 안은 사람이 바뀌는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도경미와 조이가 방으로 들어가자, 거실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유건이 시연을 바라봤다.“피곤해?”“아니요, 괜찮아요.”시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건 진심이었다. 아직 저녁 8시도 되지 않았고, 어른들에게는 이제 막 밤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게다가 지금은 휴가 중이지 않은가?“그럼...”유건은 살짝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우리, 다시 나갈까?”“네?”시연은 순간 멈칫했다.‘이 시간에...? 괜찮을까?’“뭐가 ‘네’야?”유건이 몇 걸음 다가오더니, 시연의 손을 잡았다.“조이는 이모님 옆에 있어. 그렇게 깊이 잠든 이상, 새벽까지는 안 깰 거야.”아이들의 잠은 어른보다 훨씬 길고 깊다.“그래도...”“‘그래도’는 무슨. 가자.”유건은 더 이상 시연이 망설일 틈을 주지 않고 손을 끌었다.이내 숙소를 나와 차에 올랐다.유건은 컨버터블의 지붕을 내리고 핸들을 잡았다. 시원한 밤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묘한 해방감이 온몸을 감쌌다.시연은 창문에 몸을 기대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단정하게 자른 짧은 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며 달빛에 비친 얼굴이 은은하게 빛났다.유건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게 물었다.“바닷가 갈래?”오늘 밤, 해변에서는 칵테일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인파가 모여드는 게 보였고, 그 열기는 낮 못지않게 뜨거웠다.칵테일에 큰 흥미는 없었지만,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그래.”“어?”갑자기 시연이 몸을 곧추세우더니, 시선을 한쪽으로 고정했다.“왜 그래?”유건은 순간 멈칫하며 시연이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멀지 않은 곳에 갓 결혼한 듯한 부부가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셔츠에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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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4화

“당신!”놀란 건 신혼부부만이 아니었다. 시연 역시 눈이 휘둥그레진 채 유건 팔을 덥석 잡았다.“당신 뭐 하는 거예요! 그만해요...”‘자전거 좀 타고 싶어 했을 뿐이야.’‘그런데 차까지 바꾸자고? 이 사람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괜찮아.”유건은 고개를 숙여 시연을 향해 웃었다.“차 한 대일 뿐이야. 별거 아니잖아.”그러고는 다시 신혼부부 쪽을 돌아봤다.“어때요? 가능합니까?”신혼부부가 망설일 리 없었다. 자전거랑 컨버터블인데, 누가 안 바꾸겠는가?신부가 활짝 웃으며 신랑을 쿡 찔렀고, 신랑도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콜!”“고맙습니다. 여기요.”유건은 시원스럽게 차 키를 건네고, 시연 손을 꼭 잡았다.“가자. 네가 원하던 자전거 타러.”‘진짜... 말도 안 돼.’시연은 입을 반쯤 벌린 채 할 말을 잃었다.신혼부부는 차에 올라타 즐겁게 떠나갔다.시연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결국 유건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당신 돈이랑 원수졌어요?”유건은 시연의 손을 들어 올려 가볍게 입 맞췄다.“나한텐 네가 웃는 게 제일 값진 거야. 네 기분 앞에서 돈이 뭐라고.”시연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내가 지금 웃고 있다고 생각해요?”“타봐야 알지.”유건은 능청스럽게 자전거 앞자리에 올라탔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빨리 타.”‘이 사람 진짜... 고집은 또 왜 이리 세냐.’시연은 결국 체념한 듯 뒷자리에 앉았다.“오래 안 타서 실력은 장담 못 해. 꽉 잡아.”“알았어요.”시연은 작게 입을 비쭉 내밀며 남자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출발!”유건이 힘차게 페달을 밟자 바람이 얼굴을 스쳐 갔다.“와...”시연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뱉으며 웃음을 터뜨렸다.유건은 잠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환한 눈빛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이제 기분 좋아졌어?”조금 전까지 씩씩거리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시연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네!”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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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5화

“앞에 있는 두 분! 두 분 말이에요, 못 들었어요?”“어서 멈추세요! 안 멈추면 발포할 겁니다!”“유건 씨!”시연은 겁에 질려 유건을 끌어안고 꿀꺽 침을 삼켰다.유건은 한쪽 발을 땅에 디디며 자전거를 세웠다. 동시에 시연의 어깨를 감싸 안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곧 경찰차 여러 대가 다가와서 둘을 완전히 에워쌌다.“경찰관님.”유건은 미간을 찌푸린 채 정중히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여기서 자전거 타는 게 불법인가?’“무슨 일이냐고요?”앞에 선 경찰이 둘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잘생기고 예쁜 한 쌍이 돈이 없을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런 짓을 해요?”유건과 시연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런 짓이라니, 무슨 말이야?’“경찰관님, 오해하신 것 같은데요.”유건이 침착하게 말했다.“오해요?”경찰은 비웃듯 코웃음을 치더니 손을 내저었다.“비켜요. 여자분은 뒤로 빠지시고요.”유건은 혹시라도 시연이 다칠까 싶어 그녀를 꼭 안은 채 두 걸음 물러섰다.“허!”경찰은 자전거를 손바닥으로 세게 두드리더니 뒤돌아 소리쳤다.“이쪽으로 와서 확인해 보세요.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까?”곧 한 중년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러고는 자전거를 한눈에 보더니 말했다.“경찰관님! 이거 제 겁니다!”경찰은 고개를 끄덕였다.“봐요, 딱 걸렸네요. 현행범이잖아요.”‘현행범? 설마 우리 보고 도둑질했다는 건가?’“도둑질이라니... 멀쩡하게 생겨서는 왜 남의 자전거를 훔쳐요?”경찰은 자전거를 가리키며 유건을 노려봤다.“이 사람이 맞습니까?”중년 남자는 유건 얼굴을 오래 들여다봤지만 확신을 못 하고, 이번엔 시연을 보았다.“글쎄... 밤이라 정확히 못 봤지만, 분명 남녀 한 쌍이었어요!”경찰은 다시 유건을 짧게 흘겨보고 단호히 말했다.“됐습니다. 둘 다 지구대로 가시죠.”유건과 시연은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설마... 그 신혼부부가 자전거를 훔친 거야?’‘세상에... 내가 컨버터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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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6화

“네.”시연은 유건 손에 이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내리막길이라 발걸음은 어렵지 않았지만, 거리는 꽤 멀었다.“못 가겠어요...”시연은 손을 휘저으며 멈춰 섰다. 피곤함에 아직 풀리지 않은 답답함까지 겹쳤다.“더 못 걷겠어요. 그냥, 당신 먼저 가서 차 불러올래요?”유건은 잠시 망설였다. 시연을 이곳에 혼자 두는 게 영 불안했다.겉보기엔 한적하고 조용했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곳이었다.“내가 업어줄게.”결국 그는 시연을 두고 갈 수 없다는 듯 제안을 내놓았다.“아니요, 아니에요!”시연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유건 등에 업히느니, 차라리 그냥 걸어가겠다는 심정이었다.“됐어요. 걸을게요. 됐죠?”유건은 시연의 팔을 살짝 붙들며 슬쩍 웃었다.“아직도 화났어?”“아니거든요...”“그럼 왜 업히기 싫은 건데?”시연은 대꾸 대신 눈을 흘겼다.‘어이가 없네. 안 업힌다고 삐지는 사람은 또 뭐야.’“알았어요.”시연은 결국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업힐게요.”“좋아...”유건은 당장이라도 허리를 굽히려 했다. 그런데 시연이 돌연 뒤돌아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어디 가?”“따라와요.”“응...?”고개를 갸웃거리던 유건은 시연 뒤를 따라갔다. 시연은 조금 앞서 걷더니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서서 발끝으로 땅을 가리켰다.“여기요. 내가 여기서부터 못 걷겠다고 했죠? 그러니까 여기서부터 업어요.”순간, 유건의 머릿속엔 물음표와 느낌표, 줄줄이 생략 부호가 터져 나왔다. 시연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다시 물었다.“못 들었어요?”“푸핫!”결국 유건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하하하...”“왜 웃어요?”시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싫어요?”“좋지!”유건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시연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물론, 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했다.‘아, 진짜 귀엽다. 어떻게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지?’유건은 등을 내주며 허리를 굽히고 반쯤 쪼그려 앉았다.“올라오세요,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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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7화

“뭔데? 다 들어줄게.”유건은 단 하나가 아니라, 천 가지 만 가지라 해도 시연이 입을 열기만 하면 못 들어줄 게 없었다.“약속해 줘요...”시연은 목이 막힌 듯, 간신히 이어 말했다.“언젠가... 그날이 오면... 그때는 민트 향수... 바꿔 줄래요?”그날이란... 어떤 날일까?시연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그게 무슨 뜻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유건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래... 약속할게.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그러고는 억지로 장난스러운 빛을 띠며 물었다.“민트 향수가 그렇게 좋아? 혹시 다른 사람이 못 맡게 하고 싶은 거야?”“네...”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고, 울음기가 묻어 있었다.유건은 그걸 듣고, 이를 악물며 감정을 억눌렀다.“유언처럼 말하지 마. 나 아직 멀쩡히 살아있거든? 어쩌면, 그런 날 안 올 수도 있어.”시연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유건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는 살짝 비비듯 기대었다.그 순간, 유건의 피부에 미묘하게 젖은, 차갑고 짠 기운이 스쳤다.유건은 멈칫했다.‘우는 건가?’그렇다면, 그건 곧 시연도 그를 놓기 싫다는 뜻 아닐까?...이 여행지는 섬이 1,190개에 달했다. 그중 사람이 사는 섬은 약 200개, 관광 섬만 해도 100여 개가 넘는다.며칠 동안, 유건은 조이를 데리고 이곳저곳 섬을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즐겼다.첫 숙소였던 쿠라마티 섬을 시작으로, 라두마풀리, 하쿠라 마푸시, 풀문 아일랜드까지... 발길 닿는 곳마다 들렀다.매일 밤, 조이는 녹초가 되어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고, 시연 역시 씻고 나면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져 꼼짝도 하기 싫어했다.“많이 피곤해?”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보이는 건 유건뿐이었다.오랜 운동으로 단련된 그의 몸에 이 정도 일정은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피곤하죠.”시연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수술실에 서 있는 것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 거긴 조용한데... 여긴 다리가 아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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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8화

차에서 부두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였다.이제 몇 발짝만 더 가면 되는데, 시연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유건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좀 오래 걸리네...’불평은 아니었다. 다만 설명하기 힘든, 어딘가 석연찮은 기분이 들 뿐이었다.그 순간.쾅!!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폭발음이 귓전을 찢었다. 땅까지 흔들릴 정도의 굉음.순간적으로 유건의 온몸이 튀어 오르듯 흔들렸다. 눈앞이 짧게 캄캄해진 찰나, 한 그림자가 유건을 향해 몸을 던졌다.“형님!”정민환이었다.민환은 유건을 덮치듯 끌어안고 부두 반대 방향으로 몇 바퀴나 구르며 피신했다. 코끝을 찌르는 매캐한 연기가 공기 가득 번졌다.멈춰 선 뒤, 유건은 눈을 부릅뜨고 부두 쪽을 바라봤다.그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 눈이 찢어질 만큼 벌어졌다.요트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붉은 화염이 치솟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집어삼켰다.방금 들었던 폭발음, 바로 요트가 터진 소리였다.“시연!!!”유건의 입술이 떨리며 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얼굴의 핏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휘청거리며 부두 쪽으로 달려가며 그는 절규했다.“시연아!!!!”“형님!!”민환이 급히 붙잡았다.“지금은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해요!”불길에 삼켜진 배는 도저히 오를 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언제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날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기환이가 있어요!! 기환이 있다고요!!”“그게 무슨 소용이야?!”유건은 악에 받친 듯 민환을 밀쳐냈다. 붉게 충혈된 눈빛이 번뜩였다.“기환이가 있으면 시연을 지켜낼 수 있어?!”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기환이라도, 결국 피와 살로 된 사람일 뿐이었다.이런 상황이라면 기환도 스스로 살아남기 힘들지 않을까? “형님...”쾅!!민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번째 폭발음이 울렸다. 이미 불길에 휩싸인 요트가 산산조각 나며 터지기 시작했다.유건의 몸이 그대로 굳어졌다. 눈은 부두 쪽만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눈꺼풀조차 깜빡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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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9화

민환의 손날은 치명적이지 않았다.그저 잠깐 유건의 의식을 끊어놓을 정도였다.그래서 유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보인 건,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던 조이였다.아이의 눈은 이미 울음으로 가득 차 있었고, 두 눈망울이 붉게 부어 있었다.“조이...”유건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눈물 뚝뚝 흘리는 조이를 단숨에 품에 끌어안았다.“아빠...”조이는 흐느끼듯 목소리를 떨었다.“엄마, 무슨 일 생긴 거 맞죠?”조이는 상황을 전부 알 리 없었다.하지만 아이의 직감은 어른보다 날카로웠다.어른들 모두가 다급해 보였고, 아빠는 업혀 돌아왔는데, 엄마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유건의 가슴팍이 칼로 도려내듯 아려왔다.그럼에도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엄마 괜찮아. 아무 일 없어.”그 말은 조이를 달래기 위함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향한 애타는 주문이기도 했다.‘아무 일 없길... 제발, 아무 일 없길...’“근데... 엄마는 왜 안 와요? 엄마 어디 있어요?”조이는 꿀꺽 침을 삼키며 눈망울을 더 크게 떴다.대답을 잃은 유건은 목이 콱 멨다.심장부터 사지까지 온몸이 답답하게 조여왔다.“조이, 아빠 믿지?”“네.”조이는 눈물범벅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어.”유건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아빠가 꼭 엄마 데려올게. 약속할게.”조이의 표정은 잠시 나아지는 듯했으나, 이내 다시 불안이 피어올랐다.“근데 언제요? 엄마 언제 와요?”유건은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곧. 금방 올 거야. 조이가 밥 잘 먹고, 잘 자고... 내일 아침 눈 뜨면 엄마 볼 수 있어. 알겠지?”“네.”조이는 훌쩍거리다 작게 대답했다.“그래, 우리 딸 참 착해.”유건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숨조차 편히 쉬지 못했다.그 다짐은 빈말이 아니었다.하지만 현실은, 요트 폭발이었다.시연의 생사가 불투명했다.만약 내일 아침까지도 그녀의 흔적조차 찾지 못한다면...‘그땐,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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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0화

유건의 마음은 살짝만 건드려도 산산이 부서질 얼음 조각 같았다.그 조각들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살을 찢고 피를 흘리게 만드는 듯했다.그는 말없이 움직였다.방해되는 양복 재킷을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쳤다.그러고는 곧장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형님!”“형님!”민환과 기환이 동시에 소리쳤다.유건이 직접 뛰어들려는 게 분명했다.솔직히 말하면,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었다.이미 수색 인력이 투입돼 있는데, 유건 한 사람 더 들어간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게다가 그는 전문 구조 요원도 아니지 않은가.“어떻게 할까?”기환이 눈을 굴리며 민환을 바라봤다.“막을 수 있겠어?”민환은 씁쓸하게 반문했다. 아까도 급한 마음에 손을 날려 유건을 잠시 기절시켰다.하지만 또?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다.더군다나 민환은 검게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냥... 형님 들어가게 둬. 만약 형수님이 정말 바다에 계시다면...”그 뒤의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정말 형수님이 바닷속에서 이미 떠나셨다면...’ ‘형님이 마지막 길을 함께하는 거지.’기환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얼굴까지 하얗게 질렸다.“여기 남아서 상황 지켜봐. 난 형님 곁에 있을 거야.”민환이 단호하게 말했다.“나도!”기환 역시 고개를 번쩍 들었다.유건, 민환, 기환... 셋은 함께 죽을 고비를 넘어온 형제였다.이럴 때 곁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건 남자가 아니다.시간은 흘러갔다.따가운 햇살은 기울어 노을이 되었고, 이내 검은 어둠이 서서히 남은 빛을 삼켜갔다.폭발의 열기마저도 이제는 희미해졌다.처음엔 요란하던 수색의 함성도 점차 잦아들었다.그러나 유건은 여전히 바닷속에서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했다.몇 시간째였다. 얼굴은 점점 푸르게 질리고, 입술은 보랏빛으로 변해갔다.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처음엔 기적을 바랐다.시연이 멀쩡하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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