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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081 - Chapter 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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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1화

유건의 눈빛이 번뜩였다. 차라리 이 짐승보다 못한 아버지를 당장이라도 내쫓고 싶었다.‘형부랑 바람난 처제가 불쌍하다고? 그 말이 지금 이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고?’분노가 치밀어오르는 순간, 고상훈이 손짓으로 손자를 제지했다.유건은 이를 악물고, 겨우 한 발 뒤로 물러났다.“하아...”고상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약하다, 그건 좋은 거다. 약한 사람은 오래 살더라. 명진이는 너무 강했어. 그래서 일찍 갔지.”분명한 비아냥이었다.그 말에 고장민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아버지, 저는... 저도 그땐 몰랐습니다.”누가 알았겠는가?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울던 심화연은 아직도 잘만 살고, 강인했던 심명진은 세상을 떠날 거라는 걸.후회라 해도 이제는 너무 늦었다.어머니의 이름이 나오자, 유건은 몸을 돌려버렸다.단 한 번이라도 더 고장민을 마주한다면,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고상훈은 그런 손자를 가리키며 고장민을 바라봤다.“유건이 엄마는 내가 직접 선택한 며느리였어. 그런데 결국, 나는 그 며느리를 두 번이나 죽게 했어. 네가 처음으로 명진이를 배신했을 때, 그때 그냥 명진이를 놔줬어야 하는 건데...”그리고 눈빛엔 진심 어린 후회가 담겨 있었다.“유건이는 내가 직접 키운 아이야. 내 인생에서 그 누구보다도 소중한 아이다.”그리고 곧바로 차갑게 시선을 옮겼다.“넌, 한 줌의 가치도 없지만 말이다.”“아버지...?”“그래, 넌 분명 내 아들이 맞다. 하지만 그뿐이다.”고상훈은 고개를 저으며, 목소리를 낮췄다.“넌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했어. 내가 명진을 지켜내지 못했으니, 적어도 유건만은 네 손에 더럽혀지게 두지 않을 거다.”“아버지!”고장민은 절망에 가까운 목소리로 부르짖었다.“그만 가라.”고상훈은 더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단호했고, 태도는 흔들림이 없었다.“다시는 오지 마라. 우리 집안의 모든 재산은 유건의 것이다. 너와 네 가족은 단 한 푼도... 아니 이름이 불리는 것조차 바라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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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2화

‘우리... 단둘이 데이트?’시연은 잠시 멍해졌다. ‘대체 왜?’하지만 유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의 정적 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렀다.“싫어?”시연은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답했다.[아니요... 그럼 그렇게 해요. 하지만 수술 시간이 일정치 않아요. 끝나면 연락할게요.]“응, 알았어.”이렇게 통화가 끝났다.유건은 한동안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 위에 담긴 얼굴을 손끝으로 더듬듯 스쳤다.세월이 흘러도 배경 화면은 언제나 시연이었다.단, 지난 3년을 제외하고...그 3년 동안, 화면은 새까만 배경뿐이었다.빛도 온기도 없는 나날. 유건의 삶은 죽은 물처럼 고여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손가락 끝에 닿은 사진 속 시연을 보며 유건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오늘 밤에 보자.”삶이 아무리 고단하고 엉망이라도 괜찮다.그에게는 시연이 있으니까....수술은 의외로 일찍 끝났다.시연은 시계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이 시간에 밥 먹기엔 너무 이르네. 그 사람은 아직 퇴근도 못 했을 텐데...’잠시 고민한 끝에 시연은 발길을 돌려 은범의 집으로 향했다.은범의 곁에 앉아 침을 놓고, 조심스레 뽑아낸 뒤 한참을 곁에 머물렀다.사소한 일상을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은범아, 오늘 얼굴빛이 좋아졌어. 사모님 말씀으론 식사도 제법 잘한다던데...”소소한 대화였다. 그러나 시연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다 됐다.”시연은 준비한 물건을 정리하며 가방을 집어 들었다.“그럼 난 가볼게. 다음에 또 올게.”말을 끝내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무언가에 가방끈이 탁 걸렸다.시연은 고개를 숙였다. 처음엔 그냥 어딘가에 걸린 줄 알았다. 하지만 확인해 본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은범의 손. 네 손가락이 분명히 안쪽으로 굽혀져 있었다. 단순한 반사작용이 아니었다. 분명... 의지가 담긴 움직임이었다.“은범아?”시연의 숨이 막히듯 가빠졌다. 그리고 심장박동이 귀를 때릴 만큼 요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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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3화

버려진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구나.오늘 유건은 처음으로 그 맛을 보았다.과거의 시연은 이미 여러 번 겪었던 일.단 한 번만으로도 이렇게 숨이 막히는데, 시연은 그 고통을 몇 번이나 삼켜야 했을까?유건은 눈을 감았다.‘아마 셀 수도 없겠지.’...은범의 집.의사는 도착하자마자 시연의 설명을 들었고, 이어서 은범의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그리고 결과에 따라 약물 용량을 다시 조정했다.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니, 어느새 저녁 여덟 시 가까이.시연은 핸드폰을 열어 확인했다. 아까 보낸 메시지에는 아직도 답이 없었다.‘혹시 지금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시연아.”강수희가 다정히 불렀다.“지금까지 고생했는데, 배고프지 않아? 같이 저녁 먹자.”“아니요.”시연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거짓말했다.“방금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급한 일이 생겨서 바로 가봐야 해요.”“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강수희는 더 붙잡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빈속으로 가면 안 되는데...”“괜찮아요.”시연은 웃으며 가방을 챙겼다.“조금 있다가 간단히 시켜 먹을게요.”“에휴... 알았다. 나중에 네가 이 집으로 들어오면, 내가 직접 해줄게. 절대 굶기진 않을 거야.”그 말에 시연은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하고, 짧게 인사했다.“그럼 전 이만...”“가는 길 조심하고.”급히 은범의 집을 나온 시연은 버스를 기다리며 유건에게 전화를 걸었다.[나야.]“아직도 영복루에 있어요?”[응.]유건의 담담한 목소리에는 미묘한 흔들림이 묻어 있었다.[이제 끝난 거야?]“응.”시연은 빠르게 말했다.“빨리 갈게요!”[알았어. 기다릴게.]...차를 타고 곧장 영복루로 향한 시연.식당 입구에 서 있던 유건이 곧장 걸어와, 시연의 손을 잡으며 미소 지었다.“방금 주문했어. 금방 나올 거야.”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밥은 먹었어요?”“아직.”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유건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냄새 때문이었다.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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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4화

“정말이에요, 미안해요.”시연이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너무도 진지한 얼굴에 유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됐어. 좀 늦은 게 뭐 대수라고 그래? 나 같은 남자가 잠깐 기다린 거 가지고, 뭘.”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미안한 건... 오늘뿐만이 아니야.’“먹자.”유건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말했다.술을 마신 유건, 그리고 다 회복되지 않은 시연의 다리.결국 귀갓길에는 대리기사를 불렀다.차에 오르자마자, 유건은 자연스레 시연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밀어낼 틈도 없이 먼저 말을 꺼냈다.“잠깐만 기대게 해 줘. 머리가 좀 어지럽네.”“어지러워요?”시연이 놀란 눈길로 바라봤다.“술에 취한 거예요? 아까는 조금만 마셨다면서요?”“응.”유건은 눈을 감은 채 낮게 대답했다.“오랜만에 마셔서 그런가 봐. 몸이 아직 적응을 못 하는 거지”‘그럼 그냥 두자.’시연은 더 말하지 않고 그대로 어깨를 내줬다.“시연.”편안히 몸을 기대며 유건은 잠결처럼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네?”“시연아.”다시 그 이름을 되뇌며 유건은 낮게 중얼거렸다.“미안해.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야. 정말 미안해...”그 순간, 시연의 온몸이 굳었다.시선이 흔들리고 긴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미안해.”이번엔 유건의 얼굴이 여자의 품으로 파묻혔다.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가슴께에서 진동했다.“미안해. 내가 널 배신했어. 잘못했어. 진짜 미안해...”그 말은 끝내 멈추지 않았다.시연은 알았다. 유건이 두 사람이 함께했던 불과 1년도 채 안 되는 그 최악의 결혼 생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대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시연은 천천히 손을 들어, 유건의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내렸다.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다 지난 일이에요.”원망도, 용서도... 그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다 끝났으니까....아침 식탁.유건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주지한이었다.“응, 알았어.”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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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5화

병원에 도착한 시연은 회진을 마친 뒤, 양석현 교수를 찾아가 연차 이야기를 꺼냈다.“그래, 괜찮아.”양석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쓰면, 설에는 못 쉬겠네?”보통 연차는 연말에 몰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나 1년 내내 바쁘게 일하다가 명절에 쉬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으니까.의사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네, 괜찮아요. 설 때 제가 당직 설게요.”시연은 담담히 웃었다.“명절 땐 병동만 보면 되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그게 더 편하죠.”“지 선생... 참... 알았다.”양석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이경민 교수한테도 한마디 해. 언제 나갈 건지 말하고, 스케줄 맞춰 달라고 해.”“네, 감사합니다.”시연은 곧장 이경민 교수를 찾아가 연차 신청서를 내고, 세부 일정은 교수의 스케줄에 맡겨 두었다.그 일정을 마친 후, 오늘의 본인 근무지인 응급실로 향했다.오늘은 비교적 한산해서 하루 종일 환자는 두 명뿐이었다.“지 선생님!”간호사실 쪽에서 김혜민 간호사가 달려왔다. 표정이 은근히 들떠 있었다.“왜 그래요?”시연은 손짓하며 의자에 앉히고 말했다.“앉아서 얘기해요.”“에헤헤.”혜민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지 선생님, 혹시 밖에 대기 의자에 앉아 있는 분 보셨어요?”“누구요?”시연은 곧바로 고개를 들어 바깥을 훔쳐보려 했다.“아, 안 돼요!”깜짝 놀란 혜민이 황급히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그러다 들키면 어떡해요!”“어?”시연은 멈칫했다.“들키면 안 되는 거예요?”“아니, 그런 건 아닌데... 괜히 민망하잖아요.”“그렇긴 하죠.”시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얼핏 본 건 본 거였다. 시선을 거두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혹시 그... 선글라스 끼고 에르메스 가방 든 분 말하는 거예요?”“맞아요, 맞아요!”혜민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왜요?”시연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가늘어졌다.그리고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혜민 선생님이 왜 저걸로 흥분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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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6화

“...그렇군요.”에르메스 여사가 순간 굳었다.그녀는 괜히 옆머리를 쓸어 넘기며 시선을 피했다.“고마워요. 나 먼저 갈게요.”말을 마치자 에르메스 여사는 빠른 걸음으로 앞을 향해 걸어갔다.“아...”시연이 무심코 입을 뗐다.‘다리에 힘이 돌아온 건가?’하지만 걷는 중심이 흔들리는 걸 보니, 아직 회복된 건 아니었다.‘저렇게 급하게 가는 거 보니...’ ‘내가 뭔가 잘못 말한 건가? 아니야, 그런 건 없었는데.’...병원 입구 앞.레오가 차에서 내리더니 에르메스 여사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에르메스 여사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여사는 슬쩍 몸을 빼며 그 손길을 피했다.레오는 미간을 좁히고 잠시 말이 없었다. 억지로 붙잡지는 않고, 그저 물었다.“언제 온 거야? 뭐라도 먹었어?”에르메스 여사는 대답하지 않았다.“가자.”이번엔 레오도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에르메스 여사의 손목을 단단히 잡아끌며 차 쪽으로 향했다.“레오!”에르메스 여사가 몸부림치듯 외쳤다.“놔! 난 안 갈 거야!”“안 간다고?”레오의 발걸음이 멈췄지만, 손은 여전히 풀어주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길게 토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말 좀 들어. 하루 종일 굶으면 몸 망가져.”에르메스 여사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짙은 선글라스에 가려진 얼굴은 전혀 읽히지 않았다.“하아...”레오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의 약점을 건드렸다.“날 싫어해도 괜찮아. 하지만 케빈은? 케빈은 아직 어리잖아. 엄마 못 본다고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는데... 그래도 상관없어?”‘케빈...’그 이름이 나오자, 에르메스 여사의 몸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여전히 말은 없었지만, 레오는 그녀의 태도에서 변화를 감지했다.“가자.”그가 다시 손을 이끌었을 때,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않았다.레오의 입술이 옅게 휘어졌다.“당신과 케빈... 둘 다 밥 안 먹고 버티면 내가 얼마나 속 터지는 줄 알아? 오늘은 내가 직접 해줄 테니까, 꼭 다 먹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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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7화

레오는 더는 버티기 힘들었다.“아직 할 말 남았어?”[레오! 마지막으로 말할게. 당장 돌아와!]]여자의 목소리는 거의 찢어질 듯 날카로웠다.하지만 레오는 여전히 짧게 말을 잘랐다.“끊는다...”[당신이 감히 나한테 이렇게! 아아...]여자는 미쳐 날뛰듯 고래고래 소리쳤다.[기다려!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든 거야! 전부 다 당신 잘못이야!]레오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등줄기를 타고 싸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그 순간, 거실 쪽에서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이거 먹어봐요!”“그래...”‘이 소리가 나를 붙잡네.’레오는 마음이 스르르 풀리듯 누그러졌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시연은 유건과 함께 조이를 데리고 고상훈을 찾아갔다.여행 계획을 전하자 고상훈은 반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잘 다녀오너라.”“죄송해요, 할아버지.”시연은 오히려 미안함이 밀려왔다.“할아버지는 몸도 편찮으신데, 저희는 이렇게 여행을 가려고 해서...”‘왜 전에는 이 생각을 못 했을까? 괜히 승낙한 건 아닐까?’“아이, 그게 무슨 소리냐.”고상훈은 자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발목 잡히는 꼴은 두고 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 나이에 몸 안 좋은 건 당연한 거야. 그렇다고 너희까지 아무 데도 못 가게 할 순 없지. 게다가 진단도 나왔잖아. 큰일 아니라 했는데 뭘 그래.”그는 시연의 손을 조용히 잡으며 말했다.“할아버지는 의사 말 잘 듣고 약도 잘 챙겨 먹을 거야. 걱정하지 말아라.”그러고는 품에 조이를 안아 올렸다.“우리 조이, 이제 여행 가는구나. 신나?”“신나요! 아니, 안 신나요!”‘이 녀석, 이게 대체 무슨 대답이야?’조이는 똑똑한 얼굴로 증조할아버지를 꼭 끌어안았다.“증조할아버지가 안 가니까 안 신나요! 같이, 같이 가요!”고상훈은 2초 멍하니 있다가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우리 조이, 어쩜 이렇게 속 깊을까? 하지만 증조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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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8화

“진짜야.”유건은 엄마와 딸이 동시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피식 웃음을 흘렸다.“집에 있는 건 웬만하면 다 있어. 공간이 조금 좁을 뿐이지.”‘이게 좁다고? ...참, 자랑도 여러 방식이 있네.’시연은 웃으며 눈을 흘겼다.“아저씨!”조이가 유건 품으로 파고들며 깔깔댔다.“너무 행복해요!”조이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어느 여자애가 공주처럼 사랑받는 걸 싫어하겠는가?유건은 조이를 꼭 안고 머리칼에 입을 맞췄다.“조이가 행복하면 아저씨도 행복해.”“와!”갑자기 조이가 소리치며 뛰어올랐다.“엄마, 봐요! 텔레비전이에요!”정말이었다. 유건 말대로, 집에 있는 건 이곳에도 다 있었다.‘세상에! 비행기가 이렇게 생길 수도 있구나.’‘내가 알던 건 좁고 답답한 거였는데...’“엄마, 이 비행기 좋아요!”조이는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말했다.“아저씨, 페파피그 있어요?”“있지.”유건은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렸다.“자, 맞지?”“네!”조이는 유건 어깨에 몸을 기대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고마워요, 아빠. 사랑해요.”유건은 순간 굳어졌다.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같은 크기의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빠도 사랑해.”둘의 속삭임은 시연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두 사람이 은밀히 주고받는 걸 보고, 괜히 삐친 척했다.“뭐야? 나만 빼놓고 둘이 무슨 얘기하는 거야?”“히히!”조이는 황급히 엄마 품으로 안겼다.“엄마도 사랑해요!”“아이고, 말도 잘하네.”시연은 웃으며 조이를 쓰다듬었다.“엄마, 빨리 앉아요! 엄마랑 아저씨 사이에 앉을 거예요!”“그래.”한바탕 들썩이던 조이는 금세 열기가 식어, 텔레비전 속 페파피그를 보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했다.개구리처럼 웅크린 채 유건 품 안에서 스르르 잠들었다.“피곤하지 않아요?”시연이 조심스레 물었다.도경미의 정성스러운 보살핌 덕분에 조이는 요즘 부쩍 자라 있었다. 키도 늘고 볼살도 통통해졌다.“안 피곤해.”유건은 한 손을 뻗어 시연의 손을 맞잡았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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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9화

“엄마!”시연은 조이의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 조이가 품 안에 꼭 파묻혀 있었다.둥글둥글한 맑은 빛 눈망울이 커다랗게 뜨여 있었고, 살짝 억울한 기색이 비쳤다.“배고파요...”시연은 정신을 다잡으며 아이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미안해, 엄마가 너무 오래 잤네.”옆을 바라보니, 자리가 비어 있었다.“아저씨는요?”조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이도 방금 깬 참이라 유건이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었다.“여기 있어.”문 쪽에서 유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미소를 띠며 걸어왔다. 방금 막 일어난 듯,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묻어난 나른한 기운이 그를 평소보다 젊어 보이게 했다.“아저씨!”조이가 반갑게 부르자, 유건은 다가와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다.“식사 준비 얘기 좀 하고 왔어. 조이가 먹을 건 경미 이모님이 챙기고 계셔.”그는 조이의 볼을 손끝으로 살살 누르며 물었다.“많이 배고프지? 금방 나올 거야.”그리고 시연을 바라보며 덧붙였다.“우리 큰 아기도 마찬가지. 조금만 참아.”‘큰 아기라니.’순간, 시연은 얼굴이 붉어졌다.‘이 나이에 아기라니?’하지만 정작 이 말을 한 유건은 태연했고, 부끄러운 건 고스란히 시연의 몫이었다. “조이, 이리 와.”시연은 괜히 조이를 품으로 불러 안았다.“엄마랑 손 씻으러 가자.”“네!”“내가 안을게.”유건은 시연에게 조이를 내주지 않았다.“조이, 이제 꽤 묵직하잖아. 게다가 난 너보다 힘이 세고, 손도 씻어야 해.” 그렇게 말하니 더 우길 수 없었다.세 사람은 함께 세면대로 향했다.유건이 조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시연은 수도꼭지를 틀어 조이의 작은 손을 잡아주었다. 손가락 마디 마디를 곱게 문질러 씻기고, 수건으로 톡톡 닦아냈다.“다 됐다.”자리로 돌아온 시연은 가방에서 핸드크림을 꺼냈다.“이거 발라야 해. 안 그러면 손이 건조해져.”조이는 얌전히 손을 내밀었다.“네, 향기 나는 거요!”시연은 아이의 작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정성껏 발라주었다.‘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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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0화

“좋아요!”조이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앞으로도 계속 사이 좋아야 해요!”“그래.”유건은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아저씨가 약속할게.”“아저씨 최고!”...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여덟 시였다.이곳은 G시에 비해 세 시간 느린 곳.그러니 시계로는 아직 여덟 시지만, G시 기준으론 벌써 열한 시였다.비행기에서 내릴 즈음, 조이는 이미 곤히 잠들어 있었다.굳이 먼 곳으로 가지 않은 것도 다 조이 때문이었다.시차가 너무 크면 아이가 적응하기 힘들고, 혹시나 낯선 환경 때문에 탈이 나면 더 곤란했다.그때, 유건은 말했다.“앞으로 매년 나오자. 세계 여기저기, 다 같이 가보고 싶어.”시연은 그저 웃으며 듣기만 했다.‘앞으로...? 글쎄... 아마 안될 텐데.’숙소는 이미 준비가 끝나 있었다.도경미가 잠든 조이를 데리고 들어갔고, 시연과 유건은 방으로 향했다.시연이 샤워하고 있을 때, 유건이 말없이 들어왔다.시연은 그를 내보내려다가 어느새 다가와 매달리듯 속삭이는 소리에 멈칫했다.“오랜만이야...”‘정말 오랜만이지.’교통사고 이후, 줄곧 비워둔 공백이었다.시연의 심장이 덜컥 떨렸다. 거절하려던 말이 목 끝에서 바뀌었다.“조심해요. 상처 당기면 안 돼요.”“응.”유건의 얼굴에 기쁨이 스쳤다.“걱정하지 마. 알아서 할게.”그날 밤, 모든 게 끝났을 땐 이미 열한 시였다.시연은 진이 빠져 눈을 뜰 힘조차 없었다.“자고 싶어요.”유건은 시연의 머리칼을 쓸어내리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잘 자.”...다음 날, 가장 늦게 일어난 건 시연이었다.체력 차이랄까?유건은 말할 것도 없고, 조이의 잠버릇도 따라가지 못했다.“엄마 깼다!”조이는 벌써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고, 엄마가 나오자마자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우다다 뛰어와 시연 앞에서 한 바퀴 빙 돌았다.“엄마, 예뻐요?”조이는 이미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그 위에 알록달록한 꽃무늬 셔츠를 걸쳐 입어, 꼭 미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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