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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111 - Chapter 1120

1179 Chapters

제1111화

발밑이 미끄러지며 순간 중심을 잃었다.“형님!”기환이 재빨리 돌아보며 물었다.“괜찮으세요?”“괜찮아.”유건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잠시 정신이 흩어져 한 발을 헛디뎠을 뿐이었다.그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가. 신경 쓰지 말고.”“알겠습니다.”기환은 무전기를 흔들며 덧붙였다.“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부르세요.”“응.”유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섬의 길은 거칠고 험했다.시간이 지날수록 유건의 얼굴빛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사람 마음이란 참... 끝이 없다.유건은 시연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자, 이제는 제발 멀쩡한 모습으로만 살아있길 빌었다. ‘내가 원하는 게 너무 큰 걸까?’‘아니야... 난 그저 시연이 아프지 않길 바랄 뿐인데.’유건이 걸음을 멈추자, 기환이 물 한 병을 건넸다.“형님, 잠깐 쉬시죠.”그는 물을 받았지만 아직 입에 대기도 전에 손을 멈췄다.그러고는 주머니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어라?”“왜요, 형님?”“내 사탕이 어디 갔지?”찡그린 얼굴로 이리저리 뒤져 봤지만 나오지 않았다.“분명 주머니에 넣으셨잖아요? 꽤 큰 봉지라 저도 봤는데요.”하지만 지금은 없었다.“없어졌어...”유건은 고개를 흔들며,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불길하네. 시연을 위해 챙긴 사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가서 찾아올게.”“형님!”기환이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이건 그냥 사탕 문제가 아니야. 시연과 연결된 무언가... 징조일지도 몰라.’유건은 열 걸음쯤 전으로 되돌아갔다. 분명히 10분 전쯤만 해도 사탕이 있었던 게 기억났다.평범한 사탕 봉지 하나에 불과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온몸을 휘감았다.그때, 유건의 시선이 덜컥 멈췄다.잡목 사이, 풀숲 아래.낯익은 천 주머니가 걸려 있었다.“찾았어.”그곳은 아래로 깊은 비탈길이 이어진 애매한 위치였다.아래쪽 풍경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형님, 제가 다녀오겠습니다.”기환이 발을 내딛으려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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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2화

핸드폰은 다행히 주머니에 있었다.유건은 화면을 켜 미약한 빛에 의지해 주변과 자신의 상태부터 살폈다.겉보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전투복이 어느 정도 충격을 흡수해 준 덕에 피멍과 찰과상 정도뿐.통증은 있지만, 견딜 만했다.‘뼈나 관절이 나갔으면 벌써 움직이지도 못했겠지.’자신을 확인한 뒤, 그는 천천히 주위를 훑었다.여긴... 동굴이었다.위쪽에서 굴러떨어진 건 분명하지만, 장비 없이 그 길을 다시 올라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그렇다면 앞으로 가는 수밖에. 어딘가에는 출구가 있을 것이다.유건은 몸을 일으켜 핸드폰 불빛을 낮게 깔고, 한 발 한 발 더듬듯 전진했다.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기는 차갑고 축축해졌다.‘이런 섬에 맹수라도 있으면 곤란한데...’‘독사까지 나오면 끝장이다. 제발, 오늘만은 피할 수 있길.’동굴은 생각보다 거대했다.유건이 10분을 걸었는데도 출구는 보이지 않고, 대신 좌우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타났다.‘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하나씩 확인하지 뭐.’유건은 왼쪽으로 발끝을 돌렸다.막 두 걸음 옮기려는 순간, 반대편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살아 있는 무언가가 내는 소리 같았다.‘설마 짐승? 이럴 때 딱 걸리나.’유건은 번쩍 몸을 돌려 핸드폰 불빛을 그쪽으로 들이댔다.숨을 죽이고, 귀를 곤두세웠다.‘쉿... 뭐지, 지금 그 소리...’“으... 으음...”소리는 아주 희미했지만, 동시에 묵직하게 울렸다.희미하다는 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작기 때문이었고, 묵직하다는 건 분명 호흡 소리기 때문이었다. 유건의 목젖이 꿀꺽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심장이 갑작스레 요동쳤다.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본능처럼 오른쪽 길로 방향을 틀었다.걸음은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고, 가슴은 더 격렬히 뛰었다.앞으로 나아갈수록 그 호흡은 또렷해졌다.“으... 으음...”‘익숙해. 이 소리 너무나 익숙해.’유건은 순간 굳어 섰다.“시연?”입 밖으로 튀어나온 이름에 스스로 놀랐다.‘미쳤군. 내가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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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3화

‘왜...? 왜 하필 지금이야?’‘내가 이렇게 간절히 찾아냈는데, 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거지?’“시연... 시연아...”품에 안긴 그녀의 체온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고, 거칠던 숨결마저 희미하게 끊어졌다.유건은 마치 시연에게 묻듯, 동시에 자신에게 묻듯 낮게 중얼거렸다.“말해 줘... 내가 지금 뭘 하면 되지?”순간,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피!’혈액 속에도 분명 당분이 있다.지금 이 순간 확실한 건 단 하나. 시연은 유건에게 대답해 줄 수 없다는 것.‘망할...! 무슨 수를 쓰든 해봐야 해.’‘조금의 피로도 충분하다면... 시연을 살릴 수 있다면!’“시연, 잠깐만 기다려.”그는 한 손으로 시연을 끌어안은 채, 다른 손을 단단한 전투화 안으로 밀어 넣었다.숨겨둔 스위스 아미 나이프가 손끝에 잡혔다. 한 손으로는 다소 버거웠지만 억지로 칼날을 펼쳤다.슥-그는 오른팔 척골 쪽을 깊게 그어냈다. 곧장 피가 솟구쳤다.“하...!”숨을 몰아쉰 유건은 지체하지 않았다.시연의 얼굴을 감싸 억지로 입을 벌리고, 자신의 상처를 그녀의 입술 가까이 가져갔다.붉은 피가 그녀의 입안으로 흘러들었다.“시연아... 삼켜. 제발, 삼켜 줘!”급하게 베인 탓에 상처는 예상보다 컸다. 피가 시연의 입가로 흘러내렸다.유건은 서둘러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지켜봤다.그 순간, 시연의 목이 미세하게 움직였다.피가 목울대를 타고 넘어간 것이다.유건의 눈이 번쩍 뜨였다.“그래...! 바로 그거야, 시연아. 좋아!”그는 눈물을 머금은 채 연신 속삭였다.조금씩, 시연의 호흡이 안정되고, 식은땀도 잦아드는 게 보였다.확실히 혈당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었다.‘다행이다...! 더는 나빠지진 않겠지...’하지만 시연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다.지금 상황에선 상태 악화를 막은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결국 이곳을 빠져나가 수색대와 합류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었다.유건은 손수건을 꺼내 대충 상처를 감싸고 피를 눌러 막았다. 더 정교한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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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4화

시연은 현실과 꿈을 가늠하지 못한 채, 애써 힘겹게 대답을 내뱉었다.“응...”“그래.”유건은 코끝을 훌쩍이면서도, 일부러 가벼운 말투를 얹었다.“역시 나밖에 없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널 찾아도 결국 내가 찾아냈어.’‘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아? 우린 원래부터 짝이야. 나만이 널 찾을 수 있었어.”“응...”등 뒤에서 또렷하게 떨어진 대답.유건은 순간 멈칫했다.그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답한 걸까, 아니면 무의식 속에서 무심히 뱉은 건가.“야.”그는 시연을 등에 한번 바짝 끌어올리며, 낮게 말했다.“지금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건성으로 대답하지 마.”“응...”짧은 대답.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기운은 분명했다.‘정신은 또렷해... 듣고 있구나.’유건은 목을 고르며, 평소답지 않게 긴장했다.“그럼 하나만 물을게. 사실은... 날 좋아하지? 맞지?”말을 던진 뒤, 등에 업힌 시연은 조용했다.여자의 숨소리만 가늘게 이어질 뿐, 대답은 없었다.‘역시... 알고 있었네. 이런 질문은 피하는구나.’유건은 헛웃음을 흘리며 스스로를 조롱했다.“하하... 농담이야. 대답 안 해도 돼. 그냥...”“응...”순간, 숨이 멎듯 유건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자신의 등 뒤에서 들린 것은 분명한 긍정이었다.유건은 목덜미가 뻣뻣해질 정도로 고개를 비틀어 보았지만, 핸드폰 불빛으로는 시연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목구멍이 저릿하게 말라, 그는 어렵게 다시 물었다.“지금... 인정한 거야? 나 좋아한다고?”시간은 길게 늘어졌다.“응...”또렷한 답변.곧이어, 시연은 숨이 끊길 듯 미약한 목소리로 말을 토해냈다.“좋... 아해.”유건의 온몸이 순간 굳어버렸다. 핏줄을 따라 뜨거운 열이 치솟아 정수리를 뚫고 나갈 듯했다.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등 뒤의 시연은 더는 그의 상태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낮게, 그러나 분명하게 속삭였다.“좋아해... 고유건. 좋아해.”‘이 순간을, 나는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온 세상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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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5화

“왜 그래?”유건은 시연의 이상한 반응을 눈치채고 급히 그녀를 붙들었다.“어디 아파?”아니, 그게 아니었다!시연은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한 조급함에 사로잡혔지만, 목소리도 손짓도 전혀 따라주지 않았다.‘고유건!’시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기울여 그를 밀쳐내려 했으나, 힘이 너무 약해 오히려 무너져 내리듯 유건에게 안겼다.“시연!”유건이 황급히 그녀를 받아내는 순간.“큭!”날카로운 통증이 허벅지를 찔렀다.그가 고개를 숙이자, 또렷한 은색 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우산뱀...!’유건의 눈빛이 차갑게 수그러졌다.그는 곧바로 손을 뻗어 뱀의 꼬리를 움켜쥐고, 번개처럼 들어 올려 강하게 내던졌다.툭-땅에 내동댕이쳐진 뱀은 곧 움직임을 멈췄다.“허억...”승부는 빨랐지만, 이미 독이 퍼졌다.유건의 심장이 쥐어짜이듯 조여 오고, 호흡은 가빠졌다. 눈꺼풀이 무겁게 덮여 오자 그는 남은 힘으로 시연의 손을 움켜쥐었다.“시연...”그러나 끝내 버티지 못했다.쿵! 몸이 곧게 땅바닥으로 쓰러졌다.함께 기대고 있던 시연 역시 지탱을 잃고, 그대로 옆으로 굴러떨어졌다.“읏!”돌과 흙바닥이 살을 파고드는 고통에 잠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시연은 흐릿한 시야로 멀리 쓰러져 있는 유건을 확인했다.“고유건, 고유건...”시연의 머리는 텅 비어 있었다. 어떤 계산도 계획도 없이, 오직 본능적으로 유건의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하지만 힘은 너무나 부족했다.지금의 시연은 거북이보다도 느렸다.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고유건...”한 뼘, 또 한 뼘...시연의 손바닥과 무릎이 흙에 긁히며 피가 배어 나왔다.숨이 차올라 온몸이 떨렸고, 조금씩 눈앞이 아득해졌다.“제발... 고유건!”시연의 울음이 터졌다.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리며 흙바닥에 스며들었다.‘나는 의사야... 그런데 사랑하는 남자가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우산뱀의 독은 빠르게 신경을 마비시키고 심장과 호흡을 멈추게 한다.지금 이 순간이 바로 놓쳐서는 안 될 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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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6화

시연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팔을 뻗었다. 바로 눈앞이지만, 마치 끝없이 멀리 있는 것 같았다.‘조금만 더...’드디어 시연의 손끝이 유건의 손을 스쳤다. 눈물이 터지듯 쏟아졌다.가까스로 유건의 손을 붙잡았지만, 시연의 온몸은 이미 지쳐 있었다.‘오늘... 우리, 여기서 끝나는 걸까?’이상하게도, 그 순간 시연의 마음속엔 두려움이 없었다. 다만 끝내 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조이... 아빠, 엄마가 세상을 떠나면... 조이는?’‘할아버지가 돌봐주시겠지만, 그 연세에 언제까지 조이 곁에 있을 수 있을까?’‘은범... 아직 눈도 못 떴는데...’마지막으로, 시연의 시선은 유건에게 닿았다.‘고유건... 미안해.’힘겹게 남자의 손을 꼭 쥔 채, 시연의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여기 사람 있다!”“여자야!”“혹시 사모님인가?”“봐라! 저기 고 대표님도 있어!”“빨리 와봐! 고 대표님이랑 사모님 찾았다!”“...”“항독혈청 준비해!”“예!”“산소 공급, 압력 올려!”“예!”“상처 절개했나?”“절개했습니다!”“생리식염수로 세척!”“예!”“...”삐... 익!날카로운 경고음이 심장 모니터에서 울려 퍼졌다.간호사가 황급히 돌아보니, 심전도 곡선이 서서히 일직선으로 향하고 있었다.“교수님! 심정지입니다!”“산소포화도 수치가 안 잡힙니다!”“제세동기 준비해!”“예!”동시에 지시가 쏟아졌다.“에피네프린 1mg 정맥주사! 아트로핀 1mg 즉시 투여! 5분마다 반복! 도파민 20mg 준비해!”“교수님, 제세동기 도착했습니다!”“모두 환자에게서 떨어져! 120줄! 첫 번째, 충격!”콰직!...시연은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상체를 홱 일으켰다.“사모님, 깨어나셨어요?”눈앞에 선 간호사를 보자 시연은 잠시 멍해졌다.‘여기가... 병원?’시연의 머릿속은 여전히 뒤죽박죽이었다.그녀는 눈을 감고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그건 꿈이 아니었다.어렴풋이 남아 있는 장면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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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7화

기환이 시연을 안고 수술실 앞에 도착했을 때, 민환이 곧바로 나섰다.“이게 무슨 짓이야? 형수님을 왜 여기까지 데려왔어?”“형...”“시끄러워.”시연은 그들의 대화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잔뜩 찌푸린 얼굴로 수술실 문만 뚫어져라 바라봤다.“내가 오겠다고 한 거예요. 여기서... 그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민환은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다.민환의 속마음도 그녀와 마찬가지였다.누가 뭐래도, 이 순간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은 시연이었다.다만, 유건이 깨어났을 때 괜한 걱정을 하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러웠다. 민환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제가 휠체어 가져올게요.”곧 휠체어가 도착했고, 간호사가 따라와 링거와 이동식 거치대까지 준비했다.수술실 앞에 선 시연의 팔에는 곧바로 바늘이 꽂혔다.곧이어 배게와 담요까지 챙겨온 터라 자세가 조금은 편해졌다. 간호사는 혹시라도 시연의 상태가 악화될까 싶어 곁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그제야 민환과 기환은 겨우 숨을 고를 수 있었다.둘은 눈빛을 마주쳤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생각은 같았다.‘이제 형님도... 고생 끝, 행복이 시작이겠지.’‘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오래 걸렸나?’‘정말, 목숨을 걸고 지켜낸 자리였지.’‘...’두 사람은 더 이상 나쁜 상상은 하지 않고, 속으로만 간절히 빌었다.‘제발, 형님은 아무 일 없어야 한다. 형님 앞날은 이제 막 시작인데...’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흘렀다.시연은 두 손을 단단히 모아 이마에 대고 눈을 꼭 감았다.‘고유건, 제발... 무사해야 해. 반드시 살아서 나와야 해.’신도 부처도 믿지 않는 시연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기적을 믿고 싶었다.그러던 어느 순간.철컥-수술실 문이 열렸다.시연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검은 피부에 곱슬머리를 한 외국인 의사가 걸어 나왔다.“선생님!”시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려 했다.“형수님!”기환이 급히 부축했다.“아직 링거 맞고 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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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8화

조금 전까지의 응급상황은 아슬아슬했지만, 뱀독은 고비만 넘기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유건은 원래 체력이 좋은 편이라 회복도 빠를 터였다.하지만 위험한 순간을 지나도 눈을 뜨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시연은 단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그의 곁을 지켰다.민환과 기환은 아예 마음을 놓고, 두 사람을 한 병실에 머물게 했다.안에서는 시연과 유건이 회복 중이고, 밖에서는 민환과 기환이 교대로 지키고 있었다.“형님은 왜 아직도 안 깨실까?”민환이 중얼거렸다.“해독 중이잖아. 금방일 리가 있나.”기환이 툭 던지듯 말했다.“휴...”민환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냥 형님이 빨리 눈뜨셔서, 기분 좋게 웃는 걸 보고 싶을 뿐인데.”기환이 웃음을 터뜨렸다.“뭐가 그리 조급해? 형님은 오히려 후회 좀 하시게 푹 주무시는 게 나아. 하하...”...안쪽.시연의 핸드폰이 울렸다.원래 받을 생각은 없었는데, 화면에 뜬 이름이 진아였다.시연은 조용히 통화를 눌렀다.“진아야.”[시연!]상대방의 목소리는 안도감에 잔뜩 젖어 있었다.[드디어 연락됐다! 부지하한테 들었어. 사고 났다면서? 괜찮아? 대체 무슨 일이야? 누가 널 해치려는 거야?]“난... 괜찮아.”시연은 곁에서 깊은 잠에 빠진 유건을 바라봤다. 자신의 손안에는 여전히 남자의 손이 따뜻하게 잡혀 있었다.“그 사람... 다쳤어.”[아...]진아는 곧바로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그 사람은... 지금 괜찮아?]“이제 괜찮아.”시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갈라져 있었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진아가 혹시 끊긴 건 아닌가 생각할 때, 시연이 낮게 물었다.“내가 만약에, 그 사람하고 다시 시작해 본다면... 괜찮을까?”진아는 순간 얼어붙었다. 놀랍기도 했지만, 어쩐지 예상대로 흘러간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진아도 솔직히 말해, 만약 어떤 남자가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다면, 단 한 번쯤은 ‘연애 바보’가 되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진아가 대답이 없자, 시연은 씁쓸하게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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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9화

유건의 눈빛은 아이처럼 또렷하고, 조금은 천진난만했다. 그가 간절히 말했다.“저기... 시연아, 나 좀 꼬집어 줄래?”시연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낮고 부드럽게 물었다.“꼬집어요? 아프면 꿈이 아니라는 거예요?”“응.”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층 더 어리숙한 표정이었다.“꿈꾸는 사람은 아픔을 못 느낀다잖아.”“아...”시연의 코끝이 시큰해졌다. 떨리는 손끝으로 유건의 얼굴을 감싸 올렸다. 그러고는 꼬집는 대신, 유건의 입술을 조심스레 덮었다.유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뭐지? 지금... 키스한 거야?’시연은 곧 키스를 거뒀다. 방금 막 깨어난 유건에게 무리될까 걱정돼서였다. 독이 아직 다 빠지지 않았으니, 호흡과 심장을 더 조심해야 했다.유건은 멍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 모습은 꼭 막 잠에서 깬 조이와 똑같았다.‘조이, 진짜 아빠 유전자를 하나도 안 빼놓고 닮았네...’시연은 속으로 중얼거리자, 괜스레 마음이 저릿해졌다.“어때요?”시연은 살짝 웃으며, 유건의 메마른 입술을 쓰다듬었다.“아직도 꿈꾸는 것 같아요?”유건은 목젖이 꿀꺽 움직였다.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응... 오히려 더 꿈 같은데.”꿈이 아니라면 시연이 먼저 입을 맞출 리가 없었다.“흐음...”시연은 다시 두 손으로 유건의 얼굴을 감싸며, 이번엔 조금 더 깊게, 조금 더 오래 키스했다.10초쯤, 숨이 닿고 체온이 섞일 만큼.입술을 뗀 뒤에도, 시연은 여전히 유건의 얼굴을 감싼 채 속삭였다.“바보, 꿈 아니에요. 당신도 진짜, 나도 진짜... 그리고 우리 키스도 진짜예요.”그러면서 코끝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며칠째 면도도 안 했어요? 수염 까슬까슬해서 찔리잖아요, 아프다고요...”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시연의 뒷머리가 거칠게 잡혔다.곧이어, 유건이 거세게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시연의 부드러움과 달리, 유건의 키스는 뜨겁고 강렬했다.시연은 당황했다.‘안 돼, 호흡에 무리 가면...’그렇지만 억지로 뿌리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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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0화

“왜 그래요?”시연은 손을 빼내려 애썼다.“수액 갈아야 하잖아요.”하지만 유건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오직 시연에게만 꽂혀 있었다.“네 말,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이렇게 누워 있는 게 싫다니... 그럼 내가 나으면, 그럼 너는... 너는...”말을 잇는 남자의 목소리는 떨렸고, 숨은 자꾸 엉켰다.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채, 애타게 물었다.“너 진심으로... 날 좋아해...?”“네, 나는 진심으로 당신을 좋아해요.”시연은 차마 그 결박 같은 집착을 외면하지 못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답을 내주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간호사 불러올게요.”순간 손이 텅 비어버린 유건은 멍해졌다.‘방금... 시연이 뭐라고 했지?’얼마 지나지 않아, 시연은 다시 들어왔다. 간호사가 수액을 교체하고 나가자, 유건은 재빨리 시연을 붙잡았다.“시연! 아까 뭐라고 했어? 한 번만 더 말해줘.”“왜요?”시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못 들었어요? 그럼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요. 나도 아무 말 안 한 셈 칠게요.”“그럴 수 없어!”유건은 다급했다.“분명히 들었어! 내가 나를 좋아한다고 했잖아! 게다가 산속에서도 그랬어! 이제 와서 발 빼려 하지 마!”“어?”시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스럽게 웃었다.“그럼 다 들었네요? 그런데 왜 다시 말하라 했어요?”여자의 손끝이 유건의 가슴팍을 콕 찔렀다.“나한테 거짓말까지 했어요? 감히? 나한텐 절대 거짓말 안 한다더니?”“나...!”유건은 완전히 말려들었다.“아냐, 나는 절대...”“거짓말했죠! 했잖아요!”“그럼... 나 벌줘.”유건은 시연의 손가락을 붙잡아 가슴 위에 얹고, 고스란히 드러누웠다.“네가 어떻게 하든, 다 받아낼게.”“흥, 내가 못 할 줄 알아요?”시연은 꾹 참은 웃음을 삼키며 그의 목을 살짝 움켜쥐었다.“감히 날 속여요? 내가 이 손 풀어줄 것 같아요?”물론 그 손길은 장난에 가까웠다.유건은 시연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고, 그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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