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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141 - Chapter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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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1화

시연은 순간 얼어붙었다.조이가 유건을 그렇게 부르는 건 처음이었다.‘벌써... 두 사람의 정이 그 정도까지 쌓인 건가?’“조이.”시연은 목이 메어, 울먹이며 아이를 붙잡았다.“아저씨야. 아빠가 아니라 아저씨.”“아빠예요!”조이는 금세 억울한 얼굴로 반박했다.“아빠 맞아요! 엄마, 제발 싸우지 마요. 제발 헤어지지 마요, 네?”그러면서 두 팔을 뻗어 유건을 향해 울부짖었다.“아빠! 아빠! 얼른 엄마한테 말해요! 화내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요! 으아아...”“조이!”유건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아려왔다.그는 결국 시연을 쫓아 나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애가 너무 심하게 울어. 내가 잠깐 안아줄 수 있을까?”이대로 두면 조이의 약한 몸이 상할 게 뻔했다.시연도 아이가 걱정됐다. 결국 눈을 감듯 고개를 끄덕이며 품을 내어주었다.“아빠!”조이는 바로 유건의 품에 파고들었다. 두 팔로 그의 목을 껴안으며 놓지 않았다.“그래, 우리 아기.”유건은 아이를 꼭 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조이 울지 마. 조이가 울면, 엄마도 울어. 조이가 제일 사랑하는 게 엄마 맞지?”조이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엄마를 바라봤다. 정말 엄마가 울고 있었다.아무리 아빠를 찾으며 떼를 써도, 조이의 세상에서 엄마의 자리는 절대 대체되지 않았다.조이의 입술이 떨리더니 다시 울음으로 번졌다.“아빠...”유건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조이가 물었다.“엄마는 왜 가야 해요?”“그건...”유건의 심장은 쪼그라드는 듯 아팠다. 하지만 결국 말을 내뱉어야 했다.“엄마가... 아빠를 아주 좋아하지 않아.”“왜요? 아빠 좋은데요?”조이는 이해하지 못했다.유건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그래, 조이는 아직 몰라.’‘사람이 좋다고 해서 그게 사랑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걸...’사랑은 언제나 불합리했다. 준다고 다 받는 것도 아니고, 바란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었다.“조이, 엄마 말 잘 들어야지.”유건은 여전히 품 안의 아이를 쓰다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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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2화

“그럼.”유건은 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아빠가 약속할게. 조이는 언제까지나 아빠의 예쁜 아기야.”부녀의 대화를 들은 시연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가가 금세 뜨거워져 고개를 숙였다.유건은 그런 시연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들어가.”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그것뿐이었다.“네.”시연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신도... 가는 길 조심하고요.”유건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너희 먼저 들어가. 난 조금 있다가 갈게.”“알았어요.”시연은 더 이상 유건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한마디라도 더 했다간, 마음이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조이를 꼭 끌어안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아빠!”조이는 여전히 작은 손을 흔들며 외쳤다.“조이 잊으면 안 돼요. 꼭 보러 와야 해요!”“그럼! 아빠가 약속했잖아.”유건은 눈가가 벌겋게 물들었지만, 끝까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그 자리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작은 그림자와 큰 그림자가 문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이렇게 끝나는 건가?’‘불과 어제만 해도, 서로를 끌어안고 가장 달콤한 말을 속삭였는데...’지금은 꿈에서 깬 것처럼 모든 게 허무했다.유건은 이마를 짚었다. 아득한 어지럼증이 몰려왔다.‘어제가 꿈이었나? 아니면 오늘이 환영인가?’하지만 가슴을 조이는 고통이 그 답을 알려줬다.이건 꿈이 아니었다.어제의 달콤함이 있었기에, 오늘의 상처가 더 깊었다.“시연...”유건은 지씨 저택의 대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정말 잔인하다. 부디 제대로 살아. 그렇지 않으면... 내가 비웃을 거야.”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아니, 행복해야 해. 그래야 내가 이렇게 비참해진 게... 헛되지 않잖아.”유건은 알았다.시연을 붙잡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그럼에도 하지 않았다.‘억지로 묶어두는 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존중하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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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3화

사과와 감사의 대상이 된 유건은, 그날 밤 서재에 머물렀다.오랫동안 끊었던 담배와 술을 꺼냈다.그는 방법이 없었다.시연과 조이가 떠나는 모습을 태연한 척 바라볼 수는 있었지만, 혼자가 되고 나면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시연과 조이의 부재는 유건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냈다. 아프고, 허전했다.그는 조금이라도 버티기 위해, 니코틴과 알코올의 마취가 필요했다.‘조금이라도, 잠시라도...’마수경은 유건이 걱정되어 몰래 2층으로 올라갔다.서재 문틈 사이로 본 안은 연기로 자욱했고, 빈 술병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들어가서 말리고 싶었지만,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하...”문밖에서 마수경은 무력하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냥... 대표님도 풀 데가 필요하겠지.”유건만이 아니었다. 가사도우미인 RMSU조차도, 시연과 조이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마수경은 밤새 편히 눈을 붙이지 못했다.이른 새벽, 다시 서재로 올라가 보았다.하지만 문을 열자, 그곳엔 더 이상 유건의 모습이 없었다.“대표님? 켁켁...”숨을 들이마신 순간, 자욱한 담배 연기에 기침이 터져 나왔다. 급히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서재에도 없었다. 안방으로 가 보았지만, 거기에도 없었다.‘이 새벽에, 벌써 나가신 거야?’유건은 정말로 집을 나섰다.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머리가 터질 듯이 복잡해진 끝에, 새벽녘 지씨 저택 앞으로 향했다.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뜨기 전, 동이 트기 전이었다.유건은 차 안에 앉아 지씨 집 대문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해가 떠올랐다.주말이었다. 조이는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날.아침 8시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왔다. 시연이었다.유건은 손에 쥔 담배를 비벼 끄고, 차 문을 열고 내렸다.그리고 시연과 정면으로 마주쳤다.시연은 눈을 크게 뜨고 유건을 바라봤다.‘이 사람이... 왜 여기에?’유건은 눈썹을 비스듬히 올리며 물었다.“어디 가?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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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4화

‘어...? 이거, 예전에 내가 본 그 화첩?’유건은 다시 고개를 숙여 바닥에서 짐을 정리하는 시연을 바라봤다.입을 열지 않았다. 말하면, 시연은 분명 화첩을 빼앗아 갈 테니까. 그때도 그랬다.손가락이 저절로 움직였다.첫 장을 펼치자 작은 소년이 그려져 있었다. ‘To 오빠’라는 글귀와 함께, 조그맣게 웃는 얼굴이 덧붙여져 있었다.‘맞아. 역시 그때 그 화첩이네.’수년이 흐른 뒤 다시 본 소년의 얼굴.익숙했다.‘어떻게... 이렇게 낯이 익지?’혹시, 자신과 시연 둘 다 아는 사람이었을까?‘말도 안 돼. 우리가 알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어린 시절에 공통된 인연이 있을 리가 없잖아.’유건은 의문을 안고 다음 장을 넘겼다.여전히 같은 소년. 표정과 동작, 배경이 달라질수록 익숙함은 점점 더 뚜렷해졌다.‘설마, 시연이 그린 건... 아니, 그럴 리 없어.’하지만 휠체어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그림을 보는 순간, 유건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정신없이 짐을 챙기는 시연을 보며 유건의 시선에는 충격과 혼란이 뒤섞였다.‘어떻게... 어떻게 이런 게...’아무리 부정해도, 그림은 눈앞에 있었다.머릿속에 오래전 시연과 나눴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그때의 그는 첫사랑에 관해 물었다. “시연아.”유건은 거세게 치밀어 오르는 파도를 억누른 채 담담하게 불렀다.“네?”시연이 고개를 들어 유건을 보았다.“왜 그래요?”유건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네가 말했잖아. 화첩 속 소년이 네 첫사랑이라고.”손에 든 화첩을 살짝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이거, 그거 맞지?”“어...?”시연은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화첩을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찾았네요? 여기에 있었구나.”그러나 유건은 팔을 높이 들어 올려 피했다.시연의 손이 닿지 않도록.그리고 웃으며 단호히 말했다.“내가 묻는 거에나 답해.” “네.”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숨길 이유 없는 듯 담담하게 인정했다.“당신이 말한 첫사랑의 정의대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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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5화

“근데...”시연이 말을 멈추고 잠시 유건을 바라봤다.“언제였지... 아빠가 우리를 데리러 왔어요. 그때 장소미도 같이 왔어요. 난 장소미가 싫었잖아요. 외할머니도 불편해하셨으니까요.” 유건은 곧바로 이해했다.‘그렇다면...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 건가?’그는 분명히 더 묻고 싶었다. 하지만 시연 앞에서 소미의 이름을 꺼내는 건 좋지 않을 듯했다.그리고 혹시라도,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시연이 아니라면?시간이 너무 흘러버려 구체적인 날짜조차 맞출 수 없는 일.유건은 치밀어 오르는 의문과 격정을 눌러 담고, 태연한 척 화첩 표지를 두드렸다.“화첩 한 권을 다 이 소년으로 채웠네. 그렇게 좋아했어?”그는 웃으며 물었다.“네?”시연은 순간 멈칫하더니, 유건 손에서 화첩을 받아 들춰봤다.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말했다.“좋아했죠. 그땐 정말 좋아했어요. 근데 그때는 그 감정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그녀는 전혀 숨기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 지난 일이니까.“남자들은 잘 모르죠. 그 오빠는... 소녀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였어요. 차가운 느낌도 좀 있었고요.”시연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몸이 안 좋아서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약간 병약한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요?”희미해졌다고 생각했던 기억도 그녀가 말을 꺼내자 선명하게 되살아났다.“겉으로는 차갑게만 보였는데, 그게 다는 아니었어요.”“오? 다가 아니라는 게 무슨 뜻이야?”유건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물었다.“음...”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거의 말을 안 했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그 오빠가 자폐스펙트럼장애일 거라 생각했어요. 알잖아요, 우리 우주도 그 병이 있으니까요.”하지만 시연이 처음 소년에게 다가간 건 단순한 오해였다. 동생처럼 아픈 아이일 거라 여겨서 동정심과 연민으로 손을 내민 것이었다.“근데 아니었어요. 내 마음을 다 알고 있었어요. 땀 흘리면 휴지를 건네주고... 그런 세심한 배려를 해 주는 사람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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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6화

문이 열리자마자, 소미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나 지금... 잠을 너무 못 자서 환각이라도 보는 건가?’“유... 유건 씨?”그녀는 지금 꿈을 꾼다고 해도, 유건이 자기 집 문 앞에 서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유건은 지팡이를 짚은 채, 흔들림 없이 문턱을 넘어 거실로 들어섰다.“저, 저...”소미는 긴장한 나머지 혀가 꼬였다.“뭐 좀 드실래요? 커피 드시죠? 마침 좋은 원두가 있는데...”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건이 몸을 홱 돌렸다.칼날 같은 눈빛이 소미를 정면으로 찔렀다.소미의 어깨가 움찔하며 굳었다.‘왜... 왜 저렇게 보는 거야? 혹시... 지시연한테 무슨 일이라도?’‘하지만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물어볼 게 있어.”유건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는 커피를 마시러 온 게 아니었다.“예전에 네가 처음 날 봤을 때. 그때 내가 어떤 모습이었지?”소미의 눈이 커졌다. 말문이 막혀 버렸다.“처... 처음이요?”“그래, 처음!”유건의 시선은 소름 끼치도록 집요했다.“우리 어릴 적 첫 만남. 그때 내가 뭐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말해 봐.”“그, 그건...”소미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이 남자... 설마 이걸 묻고 싶어서 온 거야? 왜? 뭐라도 알게 된 거야?!’“나, 난...”소미는 침을 삼켰다. 목이 바짝 말라 단어조차 나오지 않았다.“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요. 알잖아요, 그땐 내가 너무 어렸으니까요.”‘어려서 기억이 안 난다고? ...예전 같았으면 내가 믿었겠지.’하지만, 시연은 그때의 일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둘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좋아.”유건은 숨을 깊게 삼키며 분노를 억눌렀다.“기회를 한 번 더 줄게. 그때 나에 대해서... 네가 기억하는 건 뭐든 말해 봐.”소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말할 수가 없어... 뭐라고 해야 하지...?’“허.”유건은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며, 시선은 점점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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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7화

‘그래! 결국 기회를 장소미 손에 쥐여 준 건 나였어!’유건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고, 동시에 소미의 비열함을 저주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장난 같은 운명을 만든 하늘을 원망했다.그는 손목을 홱 꺾으며 소미를 거칠게 밀쳐냈다. 이를 악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내 머리핀. 내놔!”가짜가 무슨 자격으로, 그 오랜 세월 내내 그것을 차고 다닐 수 있었단 말인가?소미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온몸이 떨렸다.“못 들었어? 당장 내놔!”“알았어요!”눈물이 뚝 떨어졌고, 소미는 황급히 방 안으로 달려갔다.잠시 후, 그녀는 손에 나비 머리핀을 쥔 채 나왔다.떨리는 손으로 내밀며 겨우 말했다.“여... 여기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건은 그것을 냉정하게 낚아채 손가락에 움켜쥐었다.세월이 흘러도, 앤티크는 앤티크였다.낡기는커녕, 오히려 더 짙은 빛을 품고 있었다.유건은 소미를 더 보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유건 씨!”등 뒤에서 소미가 불렀다.유건의 발걸음이 멈췄다.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리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그 사람... 맞죠?”소미의 목소리는 울음에 젖어 있었다.“이렇게 화내고, 이렇게 빼앗아 갈 정도라면... 그 사람, 시연 맞죠?”언젠가부터 소미는 의아해했다.유건이 왜 자신을 ‘나비 공주’로 오해했는지.혹시... 시연 때문이 아니었을까...하지만 시연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니라 여겼다.그래서 더 안심하고 감히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유건은 눈을 단단히 감았다. 그러나 답하지 않았다.“그건 네가 물을 자격이 없는 질문이야. 네 신세나 걱정해.”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앞으로 G시에선 어떤 자리든, 어떤 경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는 네 얼굴 보고 싶지 않아.”잠시 숨을 고른 뒤,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한 번 더, 단 한 번만 내 눈에 띄면, 그 순간 넌 G시에서 사라지게 될 거야.”그 말과 함께 유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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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8화

“기억나. 그날 비가 왔어. 그 소녀가 내 앞에서 소리쳤지. ‘야! 비 오잖아, 왜 안 들어가? 이러다 아프면 어떡해!’”“그때 난 기분이 너무 엉망이라 대꾸도 안 했어. 그런데... 그 아이는 날 두고 가지 않았지. 담을 넘어와서, 휠체어 탄 날 지붕 밑으로 밀어 넣어 줬어.”유건의 목소리 속에서 오래된 장면들이 하나씩 흘러나왔다.시연은 그 첫마디를 듣는 순간부터, 얼굴빛이 변했다. 듣는 내내 눈가가 붉어지고, 이내 촉촉이 젖더니, 어느새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유건이 말을 마쳤을 때, 그의 눈빛도 시연과 똑같이 젖어 있었다.말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의 시선을 붙잡은 채, 침묵으로만 확인했다.“당신...”시연이 겨우 입을 뗐다.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당신이... 그 오빠였어요?”“왜, 아닌 것 같아?”유건은 따뜻하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내가 그렇게 달라졌나? 화첩 한 권 가득 날 그려 놓고도, 얼굴을 못 알아보는 거야?”시연은 입술을 벌렸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조심스레 손을 들어 올려 유건 쪽으로 내밀었다.유건은 고개를 숙여 여자의 손길이 닿도록 허락했다.시연의 손끝이 유건의 이목구비를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오래전 그림 속 선을 하나하나 다시 짚듯.‘맞아... 그 오빠야. 정말로...’견디지 못한 듯 시연의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다.“내 잘못 아니에요... 당신이 그때랑 너무 달라져서 그래요.”그랬다.소년이던 유건은 야위었고, 창백하며, 부서질 듯 연약했다.성인의 유건은 단단하고, 곧고, 강했다.뼈대는 변하지 않았지만, 얼굴선과 분위기는 너무나 달랐다.시연이 몰라본 건, 도저히 탓할 수 없는 일이었다.“바보야.”유건은 시연의 손을 움켜쥐어 자기 뺨에 붙였다.“나를 몰라봤으니, ‘나비 공주’도 기억 못 하지?”‘나비 공주...?’시연은 눈을 크게 뜨며 멍해졌다.“그때 마당에 핀 꽃, 네가 좋아했잖아.”유건이 조용히 상기시켰다.“아...”시연은 기억을 되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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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9화

말이 끝나자, 유건은 두 손으로 시연의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였다.입술이 맞닿았다.시연은 눈을 감고 받아들였다. 분명 마음이 닿은 입맞춤인데, 달콤하고 행복해야 하는 순간인데, 때가 너무 늦었다.곧 유건의 손바닥이 축축해졌다.시연의 눈물이 흘러내린 것이다.유건이라고 다르지 않았다.두 사람의 눈물이 뒤섞여 흘렀다.무력하고도 슬픈 입맞춤.“바보...”유건은 손끝으로 시연의 눈가와 뺨을 가만히 쓸어냈다.“뭐 하러 울어?”‘웃기는 소리... 당신도 울고 있잖아.’“바보는 당신이죠.”시연은 울먹이며 원망 섞인 목소리를 냈다.“그때... 왜 직접 오지 않았어요?”“나도 그러고 싶었어.”유건은 낮게 대답했다.“하지만 그땐 눈이 안 보였잖아. 치료받으러 다니느라... 쉽지 않았어.”‘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지한을 보내지 않았을 거야.’‘그 머리핀도, 다른 것도... 직접 전했을 거야.’‘최소한, 잘못된 사람에게 줄 일은 없었을 텐데.’“아직도 내가 바보라고 생각해?”유건은 시연의 코끝을 살짝 눌렀다.“진짜 바보는 너야. 네 물건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빼앗기냐고.”시연은 눈물범벅으로 고개를 저었다.‘처음도 아니야... 아빠부터, 그 뒤로도... 수없이 내 걸 가져간 게 장소미였잖아.’“미안해.”잠시 장난스러운 기류를 거둔 유건은 무겁게 고개를 떨구며 진심을 내뱉었다.“내가 어리석었어. 눈이 멀어 있었어. 다 내 잘못이야.”“아니에요.”시연은 흐느낌 사이로 고개를 저었다.“나쁜 마음은 막기 힘들어요. 그건 당신 탓이 아니에요.”언제, 어디서, 어떻게 덮칠지 모르는 악의.소미의 행동은 계략조차 필요 없었다.그저 틈을 노려 파고드는 집요함.어릴 적부터 지켜본 시연만큼은 안다.‘장소미는... 상상도 못 할 짓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야.’십 몇 년 동안의 교묘한 행동.소미가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녀가 저지른 일들은 이미 시연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이젠 다 지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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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0화

만약 시연이 부정한다면, 유건의 성격상, 분명 그 즉시 그녀를 데리고 떠날 것이다.그러면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침내 이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은범은?깨어났다고는 하나, 여전히 반쯤 무너진 몸.남녀 간의 정이 아니라 해도, 은범은 시연에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무엇보다, 그녀는 은범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시연의 가슴은 천근 돌덩이에 눌린 듯 무거웠다.천천히 입술을 열었다.“사랑해요. 나... 은범을 사랑해요.”그 말을 듣는 순간, 유건의 몸이 굳어 버렸다. 심장이 얼어붙은 듯 싸늘한 기운이 전신을 타고 번져 나갔다.‘사랑한다고? 시연의 입에서 그 말이...’그렇다면,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그녀를 위해 한 번쯤은 악역이라도 감수하려 했던 기회마저, 시연은 허락하지 않았다.“그래...”오랜 침묵 끝에, 마침내 유건이 목을 열었다.경직된 고개가 기계처럼 끄덕여졌다.“다행이네. 그래, 다행이야.”목젖이 크게 들썩였다.말끝은 자꾸만 어긋나고, 속내와는 전혀 다른 말들이 튀어나왔다.“행복하길 바랄게.”그의 얼굴은 좋지 않았다.시연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괜찮아요? 어디 아픈 거 아니죠?”“괜찮아.”유건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내가 뭐가 어쩌겠어... 난 간다.”말을 끊자마자, 그는 돌아섰다.몇 걸음 성큼성큼 걸어가 차 문을 열고, 몸을 밀어 넣었다.“유건 씨...”시연은 무심결에 두세 발짝 따라갔지만, 이내 차가 고개를 돌려 빠르게 멀어졌다.남겨진 시연은 제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결국 손으로 눈을 가려 버렸다.눈가가 너무 시큰거려서, 더는 버틸 수 없었다.‘어쩌지...’가슴 깊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누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이틀 사이에... 평생 흘릴 눈물을 다 쏟아내야 할 것 같아.’...강수희가 도착했을 때, 시연은 얼음찜질해 둔 덕분에 눈가 붓기는 거의 티가 나지 않았다.강수희는 두 손 가득 큰 봉투들을 들고, 잔뜩 지친 기색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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