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했어.”유건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내 다리가 불편하기도 하고... 아니, 설령 괜찮다고 해도 네겐 필요 없겠지. 네가 직접 내려.”“고마워요. 그럼 갈게요.”시연은 고개를 숙이고 차 문을 열어 내렸다.멀어져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유건은 창문을 내리지도 않은 채 오래도록 바라봤다.“대표님?”잠시 후, 시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운전기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출발할까요?”“가자.”유건은 시선을 거둬들였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형님.]짧은 호흡 뒤,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사람을 붙여. 시연이 매일 뭘 하는지, 어디를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전부 알고 싶어.”[네, 형님.]...저녁.진아가 지씨 저택을 찾았다.집 안을 둘러보던 진아는 감탄하며 말했다.“여기, 참 괜찮다. 오랜만이라 그런가, 새삼스럽네.”두 사람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진아 역시 이 집에 와 본 적이 있었다.하지만 새 주인이 들어선 뒤로는 발걸음이 뜸해졌고,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다.“당연하지.”시연은 커피를 내려 잔을 내밀었다.“이 집, 원래 엄마가 고른 거야. 인테리어도 엄마가 직접 정했고. 우리 엄마 안목, 괜찮지?”진아는 커피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향 좋다.”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이 시간에 커피 마셔도, 잠 잘 와?”“나?”진아가 웃음을 터뜨렸다.“난 차라리 밤새 못 자게 만드는 커피가 있으면 좋겠는데.”‘부럽다... 불면이 없다니.’시연은 눈길을 떨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진아는 곧장 그녀의 뜻을 읽고, 손을 꼭 잡아 주었다.“아직 약 먹고 있지?”“응...”“에휴...”진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 약, 오래 먹는 건 좋은 방법 아니야.”정신과 약물은 장기간 복용할수록 부작용을 피하기 어려웠다.“시연아.”진아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조이는 자고 있고, 지금은 나밖에 없잖아. 참지 말고 말해. 힘들지? 그 사람, 그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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