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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131 - Chapter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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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1화

말을 듣고, 시연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시연은 가볍게 웃으며 유건의 정장 재킷을 집어 들었다.“이 정도 거리인데 넥타이는 굳이 안 해도 돼요. 그냥 이렇게 가요.”“그래, 네 말대로.”“지 선생님.”간호사가 문가에 서서 손짓했다.“절차상 보호자 서명이 필요합니다.”“네, 금방 가겠습니다.”시연은 유건의 팔을 놓으며 말했다.“기다려요. 금방 올게요.”“응.”유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소파에 앉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가방 안에서 핸드폰 진동 소리가 울렸다.유건은 원래 남의 전화를 엿듣는 습관이 없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손이 무언가에 이끌리듯 시연의 가방 안으로 향했고, 핸드폰을 꺼냈다. ‘누구지? 강수희? 노은범?’‘노은범은 이제 막 깨어났으니 직접 전화할 리 없고...’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건만, 화면에는 낯선 번호가 깜빡이고 있었다.‘누구야?’유건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망설임도 없이 통화를 눌렀다.“여보세요.”[여, 여보세요?]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잠시 머뭇거렸다.[안녕하세요, 혹시 지시연 씨 핸드폰 맞나요?]“네, 맞습니다.”[실례지만, 혹시... 지시연 씨...]“저는 지시연 씨 남편입니다. 당신은 누구시죠? 무슨 용건이신데요?”유건의 경계와 적대가 묻어나는 목소리에, 상대방은 급히 설명했다.[아, 안녕하세요. 저희는 이삿짐센터인데요. 남편분이시라면 말씀드려도 괜찮겠네요.]‘이삿짐... 센터?’그 말이 들리자, 유건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계속하세요.”[예, 사모님께서 전에 이사 문의를 하셔서요. 구체적인 날짜와 짐의 양을 확인해야 차량을 배정할 수 있어서...]상대방이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지만, 유건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유건은 차갑게 말을 끊었다.“지금 필요 없습니다.”[예...?]상대방이 당황스럽다는 듯 되물었다.[하지만...]“필요 없다고 했습니다.”더는 말을 이어갈 가치도 없다는 듯, 유건은 단호하게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가방에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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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2화

시연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어!”조이는 곧장 엄마의 뜻을 알아차린 듯 급히 멈춰 서더니, 유건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를 번갈아 가며 뚫어지게 바라봤다.고개를 갸웃한 조이가 시연을 올려다봤다.“엄마, 아저씨 다리 어디가 고장 난 거예요?”“왼쪽.”“아...”조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난처한 표정으로 유건을 향해 물었다.“아저씨, 다리 어디가 고장 난 거예요?”알고 보니, 조이는 왼쪽과 오른쪽을 아직 구분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여기야.”유건은 웃으며 왼쪽 다리를 톡톡 두드려 보였다.“알겠어요!”유건은 당연히 조이가 그 다리를 피해 움직일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뜻밖에도 조이는 유건의 왼쪽 다리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조이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살짝 건드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조이가 만지면 안 아플 거예요. 빨리 나아야 해요.”‘이 꼬맹이가 이렇게 속 깊을 줄 몰랐어.’문득 코끝이 시큰해졌다.‘이런 애정을 어떻게 안 귀하게 여길 수 있겠어.’“우리 조이 참 착해.”저도 모르게 유건은 허리를 숙이며 손을 뻗었다.“멈춰요.”시연이 재빠르게 손을 내밀어 유건을 막으며 눈을 흘겼다.“조금만 참아요. 다리 나으면 그때 실컷 안아주면 되잖아요.”그러면서 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아저씨가 조이 보고 싶었대. 손잡아 드려, 아저씨 기분 좋아지게.”“네!”조이는 금세 손을 내밀었다.“아저씨, 조이가 손잡아 줄게요.”“응.”유건은 덩치 큰 어른이면서도, 조이 앞에서는 순식간에 목소리가 가늘어졌다.‘이게 무슨 꼴이냐... 내가... 그래도... 좋아.’시연은 그런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 고개를 저었다.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시연은 화면을 보는 순간, 누군지 단번에 알았다.“여보세요.”[사모님.]아까 그 이삿짐센터였다.[죄송합니다. 또 번거롭게 해드리네요.]“무슨 그런 말씀을요.”시연은 피식 웃었지만, 곧 곤란하다는 듯 덧붙였다.“다만 제가 지금은 좀 바빠서요. 구체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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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3화

며칠 동안 유건을 돌보느라 조이를 꽤 ‘소홀히’ 했다.저녁을 먹고 난 뒤, 시연은 딸을 씻기고 그림책을 읽어주며 조이를 재웠다.안방으로 돌아왔을 때, 유건이 막 샤워를 끝내고 욕실에서 나왔다.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손으로는 수건을 들어 머리를 닦고 있었다.“내가 할게요.”시연이 얼른 다가가 수건을 받아서 들었다.유건은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았고, 시연은 그의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 정성껏 닦아주었다.“드라이어 좀 쓰면 어디가 덧나요? 왜 괜히 싫다고 해요?”툴툴대는 말투였지만, 손길은 부드러웠다.유건은 고개를 숙인 채 웃음을 흘렸다.“그래도 네가 닦아주잖아.”“네, 난 좋아서 해주는 거니까요.”시연의 목소리는 무심한 듯 들렸으나, 그 속엔 어쩔 수 없는 애틋함이 묻어 있었다.머리칼이 어느 정도 마르자 시연의 손길이 서서히 느려졌다. 고민 끝에 입술을 달싹였다.“할 말 있어요.”유건은 잠시 입을 다물더니, 낮게 뱉었다.“듣기 싫어.”시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미소가 이렇게 선명한데, 왜 나는 이렇게 불안하지?’“유건 씨.”“말하지 마.”유건은 그녀를 옆에 앉히고 손을 꼭 잡았다.“듣기 싫다고 했잖아.”그런데 그럴수록, 시연의 마음은 저릿하게 아려왔다.‘더는 미룰 수 없어. 이제는 말해야 해.’“유건 씨.”“말하지 말라니까!”“이삿짐센터 전화 받았죠?”결국 시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순간, 방 안은 숨소리조차 무겁게 가라앉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혔다.말 한마디 없는 무언의 대치.끝내 시연이 눈길을 거두며 고개를 떨궜다.그러자 유건이 손을 들어 시연의 턱을 움켜쥐었다. 피하지 못하게, 억지로 눈을 들게 하면서.“날 봐.”“유건 씨...”“보라고 했잖아!”힘은 세지 않았지만, 유건은 그 손길이 시연에게 어떤 고통인지 몰랐다. 그는 그저 이렇게 생각했다.‘아픈 건 나야. 손끝에서 가슴 끝까지, 전부 다.’시연은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눈가가 은근히 젖어 들고 있었다.“왜, 나를 못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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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4화

시연은 순간적으로 얼굴을 돌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그건 두 사람이 끼던 결혼반지였다.시연의 반지는, 3년 전 떠날 때 병실 협탁 위에 빼두고 간 것이었다.그리고 유건의 반지는...이번에 다시 만난 뒤, 시연은 그의 손에서 본 적이 없었다.‘난 이미 없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그 반지 두 개는, 이렇게까지 소중하게 유건에게 간직돼 있었다.“결혼반지 말이야.”유건이 시연을 바라보며 물었다.“끼기 싫어? 나랑은 못 끼겠어? 하지만, 이런 건... 의미가 있잖아.”시연은 유건을 똑바로 보았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싫어?”유건은 혼잣말처럼 이어갔다.“괜찮아. 아무리 의미가 크다 해도, 네가 싫다 하면 끝이야. 바꿔줄게. 네가 좋아하는 걸로. 내 핸드폰 어딨지...”그는 벌떡 일어나려 했다.“유건 씨!”시연이 그를 붙잡았다. 붉어진 눈가, 메마른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그만해요. 이러지 마요.”“왜 그래?”유건은 황급히 다시 앉아 시연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냈다.“왜 자꾸 더 울어? 마음에 안들어? 내가 다 바꿔준다고 했잖아.”“아니... 아니에요...”시연은 목이 메 고개만 저었다.‘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하나도 꺼낼 수가 없어.’그저 유건의 옷깃만 움켜쥔 채 힘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미안해요... 미안해요...”그 순간, 유건의 동작이 뚝 멈췄다.그는 시연이 매달린 채 울음을 터뜨리도록 그대로 두었다.그러다 유건은 눈가가 뜨겁게 젖어오는 걸 참으며 낮게 읊조렸다.“미안하다? 설마, 그 한마디로 나를 버리겠다는 거야?”시연이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유건은 곧바로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눈동자는 붉게 물들었고, 목소리는 거칠고도 절박했다.“세상에 그렇게 쉬운 게 어딨는데!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네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사람이야? 절대 안 돼!”그는 시연의 손을 거칠게 끌어다 자기 얼굴에 붙였다.“내가 뭐가 부족한데?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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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5화

“아직도 날 원망해?”유건은 시연을 위해, 동시에 자신을 위해 이유를 찾고 있었다.“3년 전, 잘못한 건 나야. 내 잘못 맞아. 하지만 시연... 내가 그때 실수한 건 인정해도, 널 향한 마음만큼은 진짜였어. 그런데... 넌 끝내 날 용서 못 하겠다는 거야?”“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시연은 눈물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맞아요. 한때는 원망도 했고... 미워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그럼, 도대체 왜!”유건의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당신도 알잖아요.”시연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은범이가 깨어났어요.”드디어 그 말이 나왔다.유건은 전혀 놀라지 않은 듯, 오히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그래? 노은범이 깨어났어... 그래서 어쩌라고?”‘그걸... 정말 몰라?’시연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하!”유건의 웃음에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노은범이 깨어났으니까... 넌 날 버리고, 다시 그 사람의 곁으로 돌아가겠다?”시연은 입술을 꾹 다물고,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유건은 냉소 어린 웃음을 흘렸다.“그럼 난 뭐가 되는데? 날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는데?”“유건 씨...”시연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예비용?”유건이 스스로 말을 이어갔다.“내가 네 옆에 있는 이유... 그저 대체품, 그거였어?”‘아니라고,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왜 아무 말도 못 하지?’생각해 온 지난 며칠의 시간이, 유건의 가슴을 도려냈다.“솔직히 말해. 네가 이틀 동안 그렇게 다정했던 거... 내가 널 구해줬기 때문이지?”시연은 숨이 막힌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굳이 듣지 않아도 그 표정 하나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하...”유건은 입꼬리를 비틀며,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역시...”유건은 고개를 젖히며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내가 얼마나 한심하면, 내 목숨까지 내걸어서 겨우 여자의 동정을 얻어내야 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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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6화

“나... 더는 못 하겠어요... 은범이가 깨어났어요. 은범인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요. 내가 어떻게 모른 척해요?”“그럼 난?”유건은 미칠 듯한 심정이었다.“노은범은 네가 필요하고, 나는 필요 없다는 거야? 그 인간은 3년 누워 있었으니까 되고, 내가 겨우 3일 누운 건 안 돼?”“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뭐가 아닌데?”유건은 머리도, 가슴도 다 쪼개질 듯 아팠다.“우리 분명히 다시 잘하기로 했잖아. 잘 지내고 있었잖아. 그런데, 고작 며칠 됐다고, 날 버리겠다고? 지시연... 넌 사기꾼이야!”순간, 유건은 시연을 놓아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왼쪽 다리가 아직 회복되지 않아, 몸이 휘청이며 거의 쓰러질 뻔했다.“유건 씨!”시연은 다급히 손을 뻗었다.“필요 없어!”하지만 유건은 그녀의 손길마저 뿌리쳤다.간신히 몸을 가다듬은 그는 눈을 반쯤 내려, 시연을 곁눈질했다.“평생 날 책임질 수 없으면... 애초에 건드리지 마. 희망 따윈 주지 마.”그 말을 끝으로, 유건은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유건 씨...”시연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허공만 움켜쥔 채 멈췄다.지팡이를 짚은 유건은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쿵!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에, 시연의 어깨가 움찔거렸다.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듯 허물어져 바닥에 주저앉았다.“유건 씨... 흐읍...”시연은 팔꿈치에 얼굴을 묻고, 낮고 억눌린 울음을 터뜨렸다.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면서, 심장은 옥죄듯 조여들고, 폐마저 쥐어짜여 숨조차 가빠졌다.‘이게... 진짜의 생이별이구나.’그래서 사람들은 ‘생이별’과 ‘사별’을 나란히 두고 말하는 걸까?시연은 ‘떠난다’는 것이 괴롭고, 미안할 거라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이 되어 닥치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살을 베어내는 듯한 고통을 처음 느꼈다.‘아픈 건 고유건만이 아니었어. 나도... 똑같이 아프구나.’3년 전, 그녀가 분노에 휩싸여 떠나던 때의 아픔과는 달랐다.지금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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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7화

다음 날, 시연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서로 대화가 이미 다 끝났으니, 더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시연의 짐은 금세 정리할 수 있었다. 애초에 가져온 것도 필요한 물건 몇 개뿐이었으니까.그 외에 유건이 마련해준 것들은 당연히 두고 가야 했다.문제는 조이의 짐이었다. 어린애 물건이란 게 하나같이 많고 번거로웠다.시연이 짐을 싸는 모습을 마수경과 도경미가 보았다. 두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지 선생님이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거지?’마수경은 부부싸움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서둘러 달래듯 말했다.“지 선생님, 부부가 살다 보면 다투는 일도 있죠. 그렇다고 싸울 때마다 헤어지면 어떡해요. 자꾸 그러면 정이 식어버린다니까요.”“알아요.”시연은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우린 싸운 게 아니에요. 그냥... 끝난 거예요.”“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마수경은 이해할 수 없었다. 도경미도 마찬가지였다.“왜요? 두 분 사이... 정말 좋아 보였는데요?”“그러니까요.” 도경미도 맞장구쳤다.“제가 이런저런 집 많이 다녀봤지만, 대표님하고 지 선생님처럼 사이좋은 부부는 본 적이 없어요.”마수경이 다시 물었다.“혹시 오해라도 있는 거 아니에요? 고 대표님이 뭐 잘못하셨어요? 지 선생님 속상하게 한 거예요?”“아니에요.”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고 대표님은 잘못한 게 없어요. 저만 잘못한 거예요.”그 이상의 이유는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설명할 길이 없었다.한편, 당사자인 유건은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다.시연이 뭘 하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그런 마음뿐이었다.마수경은 발만 동동 굴렀다. 결국 서재 문을 두드렸다.“대표님.”“왜요?”유건은 소파에 기대앉아 있었다. 손끝에 담배가 걸려 있었다. 집에 시연과 조이가 있는 동안은 피우지 않았던 담배였다. 모녀가 담배 냄새를 싫어했기 때문이다.마수경은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연기에 두어 번 기침하고는 급히 말했다.“대표님, 안 가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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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8화

시연에게는 언제나 노은범이 고유건보다 더 중요했다.“허... 허허.”유건의 입꼬리가 비틀리며 싸늘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눈가와 표정 어디에도 웃음은 없었다.‘어쩌면 시연은 애초부터 나를 좋아한 적이 없었던 걸지도 몰라.’3년 전에도 그랬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결국은 거짓말뿐이었다.‘정말 사랑했다면, 날 이렇게 버릴 수 있었을까?’‘가고 싶다면, 보내야지. 마음이 나에게 있지 않은 사람은, 붙잡을 수 없는 법이니까.’시연은 짐을 다 챙겼다. 그러고는 2층 서재 문 앞에 섰다. 조심스레 두드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시연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서재에선 불편하실 거예요. 조이가 돌아오면... 우리 나갈게요. 오늘 밤은... 방에 들어가서 자요.”말을 남기고 한참을 서 있었지만, 안쪽은 여전히 고요했다.‘이 사람... 이제 다시는 날 봐주지 않겠지...’시연의 눈시울이 시큰해졌다.‘그래, 그게 맞아. 나 같은 사람은... 유건 씨 곁에 없는 게 더 낫지.’“유건 씨...”시연은 문에 손바닥을 붙이고 낮게 중얼거렸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하지만 알았다. 수천 번, 수만 번의 사과도 아무 소용 없다는 걸.시연은 등을 돌려 걸음을 떼려 했다. 갑자기 뒤에서 서재 문이 갑자기 열렸다.시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홱 돌렸다.“유건 씨?”“이렇게 빨리?”유건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언제나 시연을 바라보던 온기는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았다.“어젯밤에 떠난다더니, 오늘 당장 짐을 싸? 날 떠나는 걸 도대체 얼마나 오래 준비해 온 거야?”‘준비...라니...’“유건 씨...”시연의 목구멍이 막히듯 떨렸다.“처음부터 말했잖아요. 은범이 약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그래?”유건은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그럼 내가 고맙다고 해야겠네? 미리 예방주사라도 놔준 셈이니까.”“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시연은 눈을 떨구었다. 감히 그의 눈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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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9화

돌아오자마자 유건부터 찾는 조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조이...”시연은 조이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허망하게 놓치고 말았다.작은 토끼처럼 튀어 나간 조이는 쪼르르 계단을 올라가 아저씨를 향해 달려갔다.“아저씨! 아저씨!”“왜, 무슨 일이야?”서재에서 나온 유건은 조이를 보자마자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무릎을 굽혀 조이에게 두 팔을 벌렸다.“아저씨 여기 있지.”“아저씨!”조이는 환하게 웃으며 유건 품에 안겼다.“조이 오늘 받아쓰기 백 점 맞았어요!”“그래?”“네! 진짜요!”조이는 작은 가방을 벗어 책자를 꺼내 유건에게 내밀었다.“아저씨가 가르쳐준 거잖아요! 봐봐요!”“잘했네.”유건은 조이를 꼭 안고, 땀에 젖은 머리칼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이렇게 뛰어다니면 땀이 다 나잖아. 감기 걸리겠다.”조이는 원래 조산아였다. 그래서 늘 체력이 또래보다 약한 게 걱정이었다.뒤늦게 따라온 시연은 아빠와 아이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가슴이 더 무겁게 짓눌렸다.‘결국 나만 악역을 맡아야 하는 거구나...’“조이.”시연이 손을 뻗었다.“이리 와. 엄마한테 와야지.”조이는 잠시 유건을 올려다보더니 ‘아빠’의 품에 몸을 더 파묻었다.“아저씨랑 조금만 더 있을래요.”“조이, 엄마 말 들어.”시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이는 금세 알아챘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기류에 민감했다.조이는 다시 유건을 바라봤다.“아저씨? 엄마 화났어요? 아저씨랑 엄마 싸운 거예요?”유건은 조용히 웃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이의 등을 토닥이며 품에서 내려놓았다.“엄마 말씀 들어야지. 가.”“네...”조이는 이해하지 못한 채, 작은 가방을 둘러메고 시연 쪽으로 다가갔다.“엄마.”“그래. 우리 딸 착해.”시연은 조이를 끌어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배고프지? 과자 조금 먹을래? 밥은 조금만 기다리면 돼.”“싫어요.”조이는 고개를 저었다.“과자 말고, 밥 많이 먹을래요. 아저씨랑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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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0화

“조이.”딸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 순간, 시연은 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작은 얼굴을 어루만지며 낮게 속삭였다.“조이, 착하지. 우리 아저씨랑... 영원히 같이 있을 수는 없어.”그 말을 듣는 순간, 조이의 작은 몸이 움찔 떨렸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 가득했다.“왜요? 왜 그래야 해요?”조이는 아직 어리지만, 들은 말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엄마랑 아저씨, 같이 있자고 했잖아요! 우리 이제 가족이라고 했잖아요! 아저씨가 조이 아빠가 된다고 했잖아요!”시연은 입술이 굳어져 버렸다.그렇다.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그땐 시연도 진심이었다. 그렇게 될 거라 믿었고, 또 바랐다.하지만, 고작 며칠 만에 모든 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엄마!”조이는 울분 섞인 눈으로 엄마를 노려보았다.“엄마가 말했잖아요! 엄마가 약속했잖아요!”“조이...”시연은 무력하게 고개를 떨구었다.“그때랑 지금은 달라. 이제는... 우린 같이 있을 수 없어.”“달라진 거 없어요!”조이의 입술이 떨리더니, 결국 울음이 터졌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유건을 향해 외쳤다.“아저씨! 아저씨도 이제 엄마랑 조이 버리는 거예요?”“아니야!”유건은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왼쪽 다리를 절뚝이며 서둘러 다가가더니, 지팡이를 바닥에 내던지고 시연의 품에서 조이를 안아 올렸다.“우리 아기, 아저씨가 버릴 리 없지. 절대 아니야.”“흑...흑...”조이는 더욱 서럽게 울며, 엄마를 향해 울부짖듯 말했다.“엄마, 들었죠? 우리 안 가도 돼요! 안 가도 된다잖아요! 아저씨가 우리 버리는 거 아니래요!”“조이야...”시연은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떠나는 건 아저씨가 아니라, 엄마야...’“시연.”유건은 조이를 품에 안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붙잡아주길 바라듯 말했다.“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후회한다고 말해. 그냥... 내 곁에 남아. 제발...”“유건 씨...”시연은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저었다.“당신도 알잖아요. 이미 알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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