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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401 - Chapter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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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1화

“레오...”유건의 얼굴을 살피던 시연은 곧장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었다.시연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레오는... 내 친아버지예요.”유건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건 정말 예상 밖의 사실이었다.예전엔 유건이 레오 때문에 질투도 했었고, 레오가 괜히 시연이한테 잘해주는 걸 보면서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겠지’ 생각했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될 줄 몰랐다.“그리고...”시연 입술을 꼭 다물었다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부명주 여사님이... 지금 레오랑 같이 계세요.”연달아 터져 나온 사실들이 유건의 머릿속을 순식간에 뒤흔들었다.시연은 굳이 더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았다.“그 두 분 일은, 나중에 기회 되면 설명해 줄게요. 아무튼 믿어주세요. 레오가 도와주실 거예요.”이 정도면, 유건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레오는 유건을 돕는 게 아니라, 친딸인 시연을 돕는 셈이었으니까. 아직 말을 잇지 못한 유건 대신, 민환이 먼저 웃었다.“형님, 하늘이 아직 형님을 버리지 않으셨네요.”그는 나를 보며 덧붙였다.“형수님이 진짜 형님 복이시네요.”민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기환이는...”“걱정하지 마세요.”시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민환 씨, 유건 씨뿐만 아니라, 기환 씨도 저한테는 소중한 사람이에요. 제가 어떻게 모른 척하겠어요.” 그동안 기환이 몇 번이나 시연을 위험에서 구해줬는지 모른다.‘우린 서로 속을 다 터놓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사를 함께 넘긴 사이잖아.’민환의 눈가가 붉어졌다.“감사합니다... 형수님, 정말 감사합니다.”그가 울먹이며 말했다.“그런 말 마세요.”시연 손을 내저었다.“지금 중요한 건, 레오랑 어떻게 연락하느냐예요.”“핸드폰을 쓸 수 없다고 했으니...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렵죠?”“그래.”유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마를 찌푸렸다.“오늘 널 쫓던 놈들, 레오 쪽만은 아니었어.”그때도 유건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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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2화

이 말은, 시연이 한 거였다.SKY전원주택단지로 막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밥 먹을 때마다 시연은 꼭 투덜거렸었다. 유건은 그런 시연의 말까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잠깐만, 뭐 있는지 볼게.”유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이 근처엔 외국인도 많았지만, 음식 재료는 전반적으로 서양식에 가까웠다. 부엌엔 쌀은 있어도 반찬거리가 별로 없었다.감자, 토마토, 달걀뿐.“밥 짓고, 감자채는 식초에 볶고, 토마토랑 달걀은 같이 부치고, 스테이크 하나 굽자. 어때?”말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조합이었다.시연이 꿀꺽 침을 삼키고 있을 때, 민환도 시연을 향해 눈을 반짝였다.“형수님? 얼른 대답하세요.”“네, 좋아요.”시연이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듣기만 해도 맛있을 것 같아요.”“듣기만? 그게 무슨 뜻이야?”유건이 코웃음을 쳤다.“먹어본 적 없나 보네.”“히히, 먹어봤어요.”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유건의 커다란 티셔츠가 헐렁하게 흘러내렸다. “나도 도와줄게요.”“하지 마.”유건이 단호하게 잘랐다. 시연은 막 물에 들어갔다 나왔고, 몸이 아직 약했다.“너 그 손으로 감자 깎으면 감자 반은 없어질걸? 저기 난로 옆에 가서 앉아 있어.”“네...”“제가 할게요!”민환이 손을 번쩍 들었다.“형수님은 쉬세요. 저 감자 껍질 진짜 잘 벗겨요!”“그래요. 그럼 부탁해요.”시연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둘이 일부러 나 배려하는 거잖아...’유건이 다시 시연을 보며 말했다.“생강차 다 마셔. 한 방울도 남기면 안 돼.”“알겠어요.”‘내가 애도 아니고... 저런 잔소리를 해.’시연은 컵을 들어 생강차를 한 모금 마셨다. 식을 대로 식었지만, 오히려 그게 딱 마시기 좋았다....부엌 안에서는 유건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볶음이 끝나고, 스테이크가 구워지고, 밥이 막 뜸을 들였다.유건이 밥 한 그릇을 퍼 시연 앞에 내밀었다.“먹자.”“네.”시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향을 맡았다.“역시 밥 냄새가 제일 좋아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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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3화

“네.”시연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이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시연은 유건이 자신에게 무례하게 굴 사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애초에 방을 빌린 건 자기였다. 사실은 유건이 침대에서 자는 게 당연했다.“그럼 내가 바닥에서 잘까요?”시연이 조심스레 물었다.유건은 잠시 시연을 바라봤다.‘진심이야? 자기가 같이 자자고 해놓고 이제 또 바닥에서 자겠다고?’‘이러고도 내가 남자라고 할 수 있나?’그는 속으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됐어.”유건이 담요를 들어 침대 위로 던졌다.“그냥 둘 다 침대에서 자자.”결국 두 사람은 침대 양쪽 끝에 나란히 누웠다.각자 이불을 덮고, 중간에는 손 하나 닿지 않을 만큼의 공간이 있었다.한 사람은 등을 돌리고, 한 사람은 눈을 감았다.이상하게도, 시연은 금세 졸음이 쏟아졌다.며칠 동안 이어진 긴장과 불안이 한순간에 밀려와, 파도처럼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유건은 등을 돌린 채 낮게 중얼거렸다.“시연아, 조이... 잘 있지?”대답은 없었다.“시연?”그가 몸을 돌려 보니, 시연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양손을 머리 옆에 두고, 조용히 숨을 쉬며 자고 있었다.‘이렇게 빨리?’유건이 피식 웃었다.하지만, 그는 몰랐다.오늘 밤이 시연이 며칠 만에 처음으로 편하게 잔 밤이라는 걸.시연은 그렇게 오래도록 애타게 유건을 찾았다. ...다음 날 아침,시연이 눈을 떴을 땐 방 안에 혼자였다.유건이 덮었던 담요는 곱게 개어져 침대 끝에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시연의 옷이 말끔하게 개켜져 있었다.빨래도 다 끝내고, 말려놓은 듯했다.‘언제 다 했대... 난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서자마자,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음, 냄새 좋다...”“형수님!”민환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얼른 세수하세요. 형님이 달걀볶음밥 하고 있어요. 파는 제가 잘라놨습니다!”“하하, 그래요?”시연이 웃으며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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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4화

유건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레오는 그래도... 아버지로서의 본성은 남아 있잖아. 어떤 놈들은, 자식도 부모도 아니야. 인간이길 포기한 놈들이지.”시연이 순간 멍해졌고, 입가의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고장민...’그 이름이 머릿속을 스쳤다.“유건 씨...”그녀는 입을 열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럴 땐 위로란 게 얼마나 공허한 건지... 뼈저리게 느껴졌다.“괜찮아.”유건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이젠 익숙해. 사람이 살다 보면...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잖아. 다 욕심이야...”‘욕심이 아니라, 그냥 너무 외로웠던 거잖아.’유건의 말에 시연의 가슴이 먹먹해졌다.시연은 창가로 걸어가 커튼 한쪽을 살짝 들었다.그 순간, 불안한 기운이 스치듯 느껴졌다.‘뭐지...?’밖을 훑어보던 그녀는 조심스레 말했다.“유건 씨, 밖에... 좀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요.”“뭐?”유건이 다가와 시연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봤다.그리고 미간이 즉시 좁혀졌다.“레오 쪽 사람인가?”“모르겠어요.”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얼굴은 잘 몰라요. 경호원 한 명 빼고는...”레오의 딸이라고는 하지만, 그녀는 레오의 세계와는 거의 닿을 일이 없었다.그 금발의 여자 경호원 외에 시연이도 아는 얼굴이 없었다.“지금 상황에서 괜히 움직이는 건 위험해.”유건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가 단정한 눈빛으로 시연을 보며 말했다.“짐 챙겨야겠어.”시연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안 좋은 사람들이에요?”“확실하진 않아.”그는 시연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달래듯 말했다.“좋은 사람이면 다행이고, 아니면 바로 도망쳐야지. 근데 레오라도 마찬가지야. 어차피 이 집은 더 못 써.”“그렇죠...”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이제는 어디든 도망쳐야 해.’“내가 도와줄까요?”“아니.”유건이 손을 내저었다.“금방 끝나.”...이곳은 유건이 임시로 머물던 집이었다.정리할 게 많지 않아, 짐 몇 개만 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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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5화

“시연, 무서워하지 마!”유건이 시연의 손을 꽉 잡았다.남자의 팔이 시연의 어깨를 감싸며 몸을 틀자, 총성이 연이어 터졌다.왼쪽으로, 다시 오른쪽으로.유건은 시연을 품에 안고 좁은 골목길을 뛰어다녔다.“아악!”총알 한 발이 바로 귀 옆을 스쳤다. 바람이 귀를 때리며 스쳐 지나갔다.“유건 씨!”시연은 놀라서 유건의 팔을 붙잡았다.유건의 어깨를 스치고 간 자국이 선명했다.“괜찮아요?!”“괜찮아.”유건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안 맞았어.”“다행이에요...”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발.“악...”이번엔 유건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민환!”그가 시연을 안은 채 두 걸음 물러섰다.그리고 갑자기 몸을 돌려 민환을 밀쳐냈다.“형님!”큭!시연은 그의 품 안에서 느꼈다.유건의 몸이 크게 흔들리고, 피 냄새가 확 퍼지는 걸.이번엔 피하지 못했다.“유건 씨!!”“형님!!”유건이 이를 악물며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괜찮아. 죽진 않아.”지체할 시간이 없었다.유건은 민환을 보며 단호하게 명령했다.“시연이를 업어! 빨리 뛰어!”“네, 형님!”민환이 곧장 달려와 시연을 받아냈다.“형수님, 실례합니다. 제가 업으면 더 빨리 뛸 수 있어요!”“어서 가!”유건의 짧은 외침이 뒤따랐다.그 말이 떨어지기 전에 시연은 이미 민환의 등에 올랐다.세 사람은 골목길로 몸을 숨기며 뛰었다.이곳은 골목이 복잡하고, 작은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그래서 유건과 민환이 이곳을 은신처로 택했던 것이다.여덟 번쯤 꺾고, 다시 꺾고, 총소리와 쫓는 발소리는 점점 멀어졌다.“형님.”민환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돌아봤다.“놈들은 멀어졌습니다. 근데, 어디 다치셨어요?”“등.”시연의 시선이 유건의 등으로 떨어졌다. 검은색 점퍼가 피에 젖어 붉게 번져 있었다.‘이게... 전부 피야...?’“형님... 왜 저 대신 맞으셨어요?”민환의 목소리가 떨렸다.“전 원래 그런 일 하라고 있는 사람인데... 형님은 주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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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6화

시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여기... 좀 낡긴 했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네요.”유건이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시연이 곧바로 눈을 흘겼다.“왜 웃어요? 뭐가 그렇게 웃겨요?”“그냥...”유건이 시연의 손을 살짝 잡았다.“지 선생님, 적응력 하나는 진짜 최고네.”이런 낡고 허름한 환경에서조차, 시연은 불평 한마디 없이 움직였다.보통 여자들은커녕 남자라도 투덜댈 법한데...하물며, 시연은 레오의 딸이었다.원래라면 이런 고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칭찬 고마워요.”시연은 미묘하게 웃으며 유건의 손을 살짝 뿌리쳤다.“유건 씨는 좀 쉬어요. 전 일단 여기 좀 닦고 치워야겠어요.”‘이 상태론 상처 소독도 제대로 못 하겠네.’시연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청소를 시작했다.“그래.”유건은 짧게 대답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시연이 대충 정리를 끝낼 즈음 민환이 돌아왔다.“형수님, 이거 좀 봐주세요. 괜찮을까요?”“어디 봐요.”시연이 상자를 열어보았다.안에는 소독약, 칼날, 봉합용 바늘과 실, 그리고 항생제까지 들어 있었다.“좋아요. 완벽하네요.”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민환은 전역한 군인답게 필요한 걸 정확히 챙겨왔다.“물 좀 끓여주세요. 지금은 유건 씨 상처부터 처리해야겠어요.”“네.”민환이 바로 움직였고, 시연은 마스크와 장갑을 꼈다.열악한 상황이지만, 가능한 한 깨끗하게 해야 했다.뜨거운 물을 적신 수건으로 유건의 등 주변을 닦아내자, 피와 먼지가 조금씩 지워졌다.그다음엔 소독약을 묻혀 상처를 다시 닦았다.“유건 씨.”시연이 차분히 말했다.“국소마취제밖에 없어요. 그것도 양이 많지 않아요.”“형님.”민환이 준비해 둔 수건을 반으로 접어 유건에게 건넸다.“입에 무세요. 조금 아플 겁니다.”“응.”유건이 짧게 대답하고, 수건을 입에 물었다.그리고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시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그럼 시작할게요.”그녀의 시선이 오직 상처에 고정됐다.칼날을 손에 쥐고, 천천히 상처를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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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7화

갑자기 조용해졌다.유건과 시연이 눈을 마주치며 작게 웃었다.시연이 손을 들어 유건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줬다.“아프죠? 조금 쉬어요. 제가 옆에 있을게요.”“응.”유건은 짧게 대답했지만, 눈은 감지 않고, 그저 시연을 멍하니 바라봤다.“왜 그렇게 봐요?”시연이 작게 웃었다.유건은 말하고 싶었다.‘이렇게 보고 있으면 안 아픈 것 같아서.’하지만 그 말은 끝내 삼켰다.“너무 아파서... 잠이 안 와.”“그럼, 제가 얘기 좀 해드릴까요?”“좋지.”“조이 얘기할까요?”“그래.”그렇게 두 사람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메터지강 위로 물결 소리가 잔잔히 흘러가고, 선상에는 고요하고도 따뜻한 공기가 돌았다....“형님, 형수님.”민환이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라면 세 개가 들려 있었다.“뭐라도 좀 드세요.”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형수님, 전 형님처럼 요리를 잘 못 해서요... 라면밖에 없어요.”“라면 너무 좋은데요?”시연이 기쁘게 웃으며 받았다.“외국에 있을 땐 라면이 제일 맛있어요.”그 말은 진심이었다.타국에서 지내던 시절, 라면은 그녀에게 작은 위로였다.하지만 유건은 먹을 수 없었다.민환이 대신 봉지 빵 하나를 꺼내 건넸다.“형님은 빵으로... 조금만 참으세요.”“괜찮아.”유건이 담담히 받아 들었다.그러나 몇 입 먹지도 못하고... 삼키기도 힘든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그는 슬쩍 시연을 바라봤다.“국물 한 모금만... 안 될까?”“안 돼요.”시연이 단호하게 말했다.“등에 상처가 있잖아요. 자극되면 안 돼요. 빵만 드세요.”“아...”유건은 작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고, 입술이 삐죽 나와 있었다.‘완전 애 같네...’시연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민환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이 두 사람... 진짜 이혼한 사이라는 게 믿기 어려운데.’그의 머릿속에서 저절로 생각이 흘러나왔다.‘구경만 해도 다 안다더니...’‘이건 연인보다 더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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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8화

“네... 알겠습니다.”민환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나갔다.그 후로 밤새 두 사람은 쉴 틈이 없었다.시연은 유건의 체온을 확인하고, 민환은 물을 데우고, 수건을 적시고, 다시 식히기를 반복했다.창밖이 서서히 밝아올 때쯤, 유건의 열이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아직 정상보다 약간 높았지만, 위험하다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유건의 호흡이 한결 고르고, 내쉬는 숨이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유건 씨, 정말 잘 버텼어요.”시연은 컵에 담긴 물에 면봉을 적셔 유건의 입술에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작은 물방울이 입술 사이로 스며들자, 유건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졌다.민환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며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시연은 그를 보고 미소 지었다.“유건 씨랑 민환 씨... 두 사람, 사이가 정말 좋네요.”“네.”민환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 “형님은요... 한 번도 저희를 부하처럼 대한 적이 없어요. 늘... 형제처럼 대해주셨죠.”그 말에 시연은 잠시 말이 막혔다.‘그랬겠지... 민환 씨를 위해 총알까지 대신 맞았으니까.’민환이 고개를 들었다. 굳게 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사실... 저랑 기환이는 집에서 쫓겨난 애들이에요.”“네?”시연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퇴역 군인이라고 들었는데요... 어떻게...”“하...”민환이 헛웃음을 내뱉었다.“우린 시골 출신이에요. 친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재혼하셨는데... 새어머니가 아버지 없을 때 우리를 쫓아냈어요.”시연은 말을 잃었다.‘세상에...’“형수님께 이런 얘기 드리기에 부끄럽지만요... 그때는 너무 어려서 쓰레기통 뒤지면서 먹을 걸 찾았어요. 개밥그릇 앞에서 개랑 싸운 적도 있고요.”민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연의 눈앞이 뿌예지면서 눈물이 번져 시야가 흔들렸다.“그럼... 그다음에는요?”시연은 조심스레 물었다.민환이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조용히 대답했다.“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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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9화

“버려진 아기였다고요?”“네.”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형수님, 지금 지한 형 보시면 믿기 어렵겠지만... 태어났을 때 몸이 많이 안 좋았어요. 그때 가족들이 병원에 두고 그냥 떠났대요.”그 일은 예전에 한 번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었다.당시 고상훈이 그 뉴스를 보고 직접 나서서 지한의 치료비를 대줬다.사실 지한의 병은 고칠 수 있는 병이었지만, 보통 집안에서 감당하기엔 치료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지한은 결국 완치됐고, 그 후로 고상훈은 지한을 사실상 입양하다시피 돌봤다.지한과 유건은 나이 차도 크지 않아서 형제처럼 지냈다.더군다나 나중에 유건이 그런 일들을 겪게 되었을 땐, 그나마 옆에 지한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민환이 말을 잇자, 시연은 아무 말 없이 잠시 고개를 숙였다.‘유건 씨 주변 사람들도, 다들... 상처투성이였구나.’그녀의 가슴 한쪽이 서늘하게 저렸다.지한, 민환, 기환...형식적으로는 유건의 부하이지만, 그 관계 안에는 진심이 있었다.유건은 단 한 번도 세 사람을 낮춰본 적이 없었다.그래서일 것이다.모두가 가족처럼, 형제처럼 유건을 따랐다.시연은 조용히 손을 들어 유건의 이마를 다시 짚었다.“열이 많이 내렸네요. 곧 깨어날 거예요.”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제가 뭐 좀 만들어올게요.”어젯밤엔 겨우 빵 몇 조각만 삼켰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어려울 것 같았다.‘뜨끈한 국물이라도 있어야 조금 나을 텐데.’민환의 요리는 믿기 어려웠다.그래서 시연이 직접 나서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형수님, 고생 많으십니다.”“아니에요.”시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맨날 민환 씨한테 신세만 질 수는 없잖아요.”“무슨 말씀이세요.”민환이 고개를 저었고, 얼굴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형수님이 아니었으면 형님은 이미...’그 생각이 들자 말끝이 저절로 흐려졌다.예전엔 지한, 민환, 기환 모두 시연이 유건의 곁을 떠났을 때, 속으로 꽤 원망했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민환의 마음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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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0화

“시간 계산 해보면, 지금쯤 형수님께서 요리 꽤 했겠네요.”유건이 민환을 흘겨봤다.그러다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잘 들어. 이따가 시연이 뭐 들고 들어오든지 간에, 그냥 먹어. 먹을 수 있으면 삼켜. 토하지 말고.”“네?”민환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가, 잠시 후 놀란 얼굴로 물었다.“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형수님이 그렇게 요리를 못하세요?”유건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대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내가 간단히 설명해 줄게. SKY전원주택단지든 본가든, 집안 사람들 다 알아. 남자 주인은 요리해도 되는데, 여자 주인은 절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돼.”“아...”민환이 입을 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그럼... 형수님이 만든 게... 그 정도예요?”유건이 피식 비웃었다.‘이놈, 아직 부엌의 공포를 모르는구나.’“맛이 없다고? 아니지.”“‘익었으면 먹는 거지.’ 그게 다야.”“아... 네...”민환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눈동자는 순수할 만큼 맑았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스쳤다.‘나... 무서운데...’얼마 지나지 않아, 문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형수님!”민환이 재빨리 일어나, 시연이 들고 있는 냄비를 얼른 받아서 들었다.“다 하셨어요?”“네.”시연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민환은 그녀 뒤를 힐끔 보았다.“뒤에 또 있어요? 제가 가져올게요. 형수님은 앉으세요.”“없어요.”시연이 눈을 깜빡였다.“이거 하나뿐이에요.”“네?”민환이 그대로 굳어버렸다.“왜요?”시연이 고개를 갸웃했다.“이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우리 세 명밖에 없는데요?”“하하... 네, 맞아요.”민환이 억지로 웃었다.“그럼 이건 뭐예요? 덮밥? 전골?”“아니요.”시연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유건 씨는 밥 먹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죽 만들었어요.”“죽...”민환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죽이면 그나마 괜찮을 수도 있겠지?’그가 냄비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열려는 순간, 시연의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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