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 챕터 1411 - 챕터 1420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의 모든 챕터: 챕터 1411 - 챕터 1420

1476 챕터

제1411화

유건과 민환이 정말로 ‘게걸스럽게’ 먹는 걸 보자, 시연은 괜히 뿌듯해졌다.“그렇게 맛있어요?”그녀는 유건에게 죽을 떠먹이다가 호기심에 숟가락으로 한 입 맛을 봤다.순간, 시연의 눈이 동그래졌다.입안에 퍼진 그 맛은 짠맛도 아니고 단맛도 아닌, 도저히 정의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시연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유건을 보고 다시 민환을 봤다.‘두 분... 이걸 진짜 먹은 거예요?’“그만 먹어요!”시연이 재빨리 그릇을 치웠다.“민환 씨도요, 그만 먹어요...”“괜찮아요.”유건이 시연의 손을 잡았다.“그렇게 맛없진 않아.”시연은 울지도 웃지도 못할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나도 먹어봤는데요? 내 혀가 문제 있는 건가요?”“음...”유건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냥... 조금 짠 거지.”시연이 풀이 죽은 얼굴을 하자 이번엔 유건이 민환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그렇지?”“네! 맞아요!”민환은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형님 눈치 보느라 죽겠다...’그래도 분위기를 맞춰야 했다.민환은 억지로 두 숟갈을 더 퍼 넣었다.“형님이랑 비교하면... 뭐, 아주 살... 짝 부족한 정도죠.”푸흡-시연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그 정도면 됐지. 내가 유건 씨 요리랑 비교될 리 없잖아.’그때 민환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빵 봉지를 들고 왔다.“형수님, 이거요. 어제 남은 빵이에요. 드세요.”시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민환을 바라보자, 민환은 머쓱하게 웃었다.“드시라니까요. 저랑 형님은 괜찮아요.”‘형수님이 만든 건 우리 둘만 먹으면 되죠.’‘형수님은 굳이... 고생할 필요 없어요.’그 생각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시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그때 유건이 조용히 시연의 손을 감쌌다.“나 다 나으면... 그땐 내가 해줄게.”시연은 놀란 듯 그를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때가... 오긴 올까?’그 짧은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닿았다.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같은
더 보기

제1412화

“무슨 말 하려는 건데?”유건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고승하, 이런 식의 뜬구름 잡는 말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목소리에는 이미 짜증이 묻어 있었다.하지만 승하는 대꾸하지 않고, 대신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걸었다.“민환이랑 기환도 오랜만이잖아. 우리 자리 옮겨서, 얘기 좀 하지?”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차갑고 무표정한 눈빛으로 손을 살짝 들자...쾅!문이 열리며 거친 숨을 내쉬는 건장한 사내들이 선실 안으로 들이닥쳤다.그들은 아무 말 없이 시연과 유건, 그리고 민환을 향해 다가왔다.“유건 씨!”시연이 비명을 내지르며 잡혀 끌려갔다. 손이 거칠게 붙잡히고, 팔이 뒤로 꺾였다.“고승하!”유건이 으르렁거리듯 외쳤다.“뭐 하는 짓이야? 시연이를 놔줘!”“그렇게 흥분할 거 없어.”승하가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 여자한텐 손끝 하나 안 댈 거야.”그러고는 비꼬듯 눈썹을 올렸다.“근데 말이지... 이 여자가 네 ‘심장’이지? 이 여자를 데려가야 네가 내 말을 듣겠지, 안 그래?”그 말과 함께 승하의 손이 천천히 시연의 턱으로 향했다.차가운 손끝이 피부에 닿는 순간, 시연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뱀이 혀로 핥은 기분이야...’승하의 눈빛이 스르르 가늘어졌다.“레오의 딸이라며?”시연의 눈이 커졌다.‘어떻게 그걸...?’“겁먹을 것 없어.”승하가 부드럽게 웃었지만, 그 미소는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었다.오히려 섬뜩할 만큼 서늘했다.“레오의 딸이라... 그렇다면 나한테 좋은 기회 아닐까? 그 집안이랑 엮이면, 세상이 더 재미있어지겠지.”마치 날씨 이야기라도 하듯, 가볍고 담담한 말투였다.“고승하!”유건의 폭발음 같은 목소리가 터졌다.그는 이미 두 명에게 팔을 붙잡혀 있었지만, 그 순간 온몸의 상처가 터질 듯한 고통을 억누르고, 힘으로 그들을 밀쳐냈다.“유건 씨!”시연이 외쳤다.유건은 단숨에 시연 앞으로 달려들어,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감쌌다.“건드리
더 보기

제1413화

‘고승하...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유건의 가슴속에서 불안이 요동쳤다.“고승하!”그가 이를 악물며 외쳤다.“시연이는 건드리지 마! 손대지 말라고!”승하는 비웃듯 짧게 코웃음을 쳤다.“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나 있어?” 승하의 시선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유건에게 향했고, 입가엔 냉소가 번졌다.“그 꼴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주제에?”유건은 숨을 삼켰다.‘어떡하지... 지금 이 상황, 어떻게 막아야 하지...’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좋아. 대신 나한테 말해.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시연만 놓아줘.”“쳇.”승하의 표정엔 조그만 흥미도 없었다.“이 여자, 나랑은 아무 상관 없어. 다만 너한텐... 아주 큰 의미잖아?”“고승하, 너 진짜 미쳤구나. 짐승 새끼.”그 두 글자가 승하의 눈동자를 건드렸다.순식간에 그의 눈빛이 붉게 물들었다.“그래. 난 짐승 새끼야.”그는 몸을 숙였다.그리고 유건의 뒤통수를 거칠게 움켜쥐었다.“나는 할아버지한테 버림받은, 엄마한테도 버림받은 사생아야.”승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평생, 내 이름조차 떳떳하게 쓰지 못했어.”‘사생아...?’시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승하는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그래서 이름도 바꿔야 했지. 주민등록에는 고승하라는 글자조차 없어. 내가 짐승 아니면 뭐야?”말이 끝나자 그는 갑자기 손을 들어 올렸다.퍽!승하의 주먹이 유건의 상처 난 머리를 그대로 내리쳤다.“큭...!”짧은 신음이 터졌다.유건의 얼굴 한쪽이 피로 번졌다.“유건 씨!”시연은 비명을 삼켰다.“시연...”유건이 겨우 입을 열었다.입가에 피가 번지면서도 그는 억지로 웃었다.“울지 마...”“하하... 하하하.”승하의 웃음이 섬뜩하게 번졌다.“봐라, 짐승이지? 친동생 머리통을 이렇게 후려칠 수도 있으니까.”그는 몸을 일으키며 차가운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데리고 가.”“예!”거친 목소리와 함께 덩치 큰 남자들이 동시에 다가왔다....사실, 시연은 승하
더 보기

제1414화

그러나 세상일은 늘 뜻대로 되지 않았다.둘은 너무 꽁꽁 묶여 있었다.유건을 다치지 않게 하려면, 결국 시연이 다칠 수밖에 없었다.시연은 이를 악물었다.‘참자. 겨우 손 좀 베이는 건데, 그까짓 게 뭐라고.’피부가 칼끝에 스치며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희미한 쇳내와 함께 피 냄새가 번졌다.딱-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시연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칼날을 던졌다.그 순간, 중심을 잃은 유건이 앞으로 고꾸라졌다.“유건 씨!”시연은 급히 유건을 받아 안았다.남자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안 돼... 이건 열이야. 상처가 곪은 거야.’시연은 떨리는 손으로 유건의 옷을 벗겼다.그러고 나서 등의 붕대를 조심스레 들춰보니, 손끝에 끈적한 액체가 닿았다.‘염증 삼출액...’피와 고름이 섞인 듯한 냄새가 퍼졌다.“유건 씨, 제발 버텨요...”시연은 그를 부여잡은 채 소리쳤다.“거기 누구 없어요?! 도와주세요! 사람 살려요!”아무 대답도 없었다.정적뿐이었다.“고승하! 고승하, 당신 어디 있어! 뭘 원하는데? 우리, 얼굴 보고 얘기해!”역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시연은 유건을 끌어안았다.유건의 열은 점점 더 뜨거워졌고, 그에 반해 그녀의 손끝은 점점 차가워졌다.“유건 씨...”그때, 시연의 품 안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졌다.유건이 힘겹게 눈을 떴다.“시연... 울지 마.”“유건 씨?”시연은 놀라서 눈물을 멈췄고, 유건의 얼굴을 감싸며 속삭였다.“괜찮아요? 어디 아파요?”유건은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었다.이내 건조하고도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시연... 미안해.”“무슨 소리예요, 왜 사과해요?”시연은 이를 악물었다.“유건 씨 잘못 아니잖아요. 다 그 미친 고승하 때문이에요!”“그래... 미쳤지. 완전히 미쳤어.”유건은 낮게 웃었다.하지만 그 웃음은 너무 약했다.등이, 머리가, 온몸이 타는 듯했다.‘이번엔... 진짜 버티기 힘들겠다.’그는 힘겹게 속삭였다.“그래도 다행이야. 마지막이 네
더 보기

제1415화

“유건 씨!”시연은 울먹이며 유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고, 눈물이 손끝을 타고 떨어졌다.“조이... 조이가 당신의 가족이에요. 조이는 당신의 딸이에요. 당신의 친딸이에요, 유건 씨!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품에 안긴 유건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유건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한참 동안 멍하니 시연을 바라봤다.그리고 희미하게 웃었다.“그래... 조이는 나한테 친딸이나 다름없지.”“아니에요!”시연은 숨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조이는... 조이는 정말 당신 딸이에요!”울음 섞인 목소리에 절박함이 묻어났다.“조이는 내가 낳은 당신의 아이예요. 당신을 아빠라고 처음 부른 그 아이, 그 조이가... 당신 딸이에요, 유건 씨!”유건은 처음에 자기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하지만 두 번째 들리자 그건 더 이상 착각이 아니었다.유건은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는데, 목이 바짝 말라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지금 뭐라고 했어? 조이가... 내 딸이라고? 우리... 아이?”“네!”시연은 울면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그래요. 조이는 당신의 딸이에요. 우리 아이예요. 우리 둘의 딸이에요.”그 말에 유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온몸이 굳어버렸다.“그게... 말이 돼?”목소리가 갈라졌다.“시연, 혹시... 나 살리려고 지금... 거짓말하는 거야?”“아니에요!”시연은 흐느끼며 고개를 저었다.“나 거짓말 안 해요. 그날 기억하죠? 로얄호텔 7203호. 5년 전이요.”그 말을 듣는 순간, 유건의 눈빛이 흔들렸다.‘로얄호텔 7203호...’잊을 수가 없었다.바로 그날 밤... 그 일이 모든 시작이었으니까.그날 이후, 장소미가 유건에게 들이대며 ‘그날은 우리 둘 사이의 일’이라고 말했었다.그래서 유건도 그게 사실이라 믿어버렸었다.“그날 밤, 그 사람이... 장소미가 아니라... 너였다고?”“네...”시연의 어깨가 작게 떨리며 눈물에 젖은 목소리가 부서질 듯 흔들렸다.“나였어요... 그날, 그 방에 있었던 사람은...
더 보기

제1416화

“조이.”유건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그럼... 조이가, 우리 조이야?”“네.”시연이 눈가를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자, 눈물로 젖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가 괜히 조이한테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상복을 입힌 게 아니에요. 조이는 할아버지의 증손녀예요. 고씨 가문의 아이예요.”유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제야 모든 게 맞물려 들어갔다.그때, 그는 시연에게 단순히 감사하다고 느꼈다.고상훈에 대한 예의와 가문의 체면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사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하...”유건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참... 웃기다.”그는 낮게 중얼거렸다.“내가 몇 번이나 너한테 물었잖아. 조이 아빠가 누구냐고. 그때마다... 너는 대답 안 했지.”유건의 눈가에 서린 웃음이 점점 젖어 들었다.“나는 그게 분해서 심지어 널 탓하기도 했어. 사생활이 문란하다고...”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유건은 자신을 저주하듯 입술을 깨물었다.‘결국... 나였잖아.’‘그 ‘문란한 남자’가, 나였다고.’유건은 시연의 손을 꽉 붙잡았다.그 어떤 말로도 지금의 감정을 다 전할 수 없었다.충격, 벅참, 후회, 그리고 깊고도 짙은 통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시연... 미안하다.”유건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정말... 내가 잘못했어.”“아니에요.”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울먹였다.“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나... 사실, 알고 있었어요.”“뭐?”유건이 눈을 들었다.“너... 알고 있었다고?”그는 잠시 숨을 멎었다.‘설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만약 그렇다면, 시연이가 감당해야 했던 그 세월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처음부터는 아니에요.”시연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몇 년 전쯤이었어요. 그때 누가... 말해줬어요.”“누가?”시연은 숨을 고르며 천천히 말했다.“목소리를 변조한 사람이었어요. 해외 IP 이메일
더 보기

제1417화

“후...”유건이 시연의 손을 꼭 쥐더니, 뜻밖에도 웃었다.그 웃음엔 미련도, 분노도 없었다.해방된 듯,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의 미소였다.“그래서 네가 그날 밤의 여자였구나.”유건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시연,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그게 너였다니.”유건이 좋아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연뿐이었다.단 한 번도 변한 적 없었다.“유건 씨...”시연의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눈물이 또 터질 것처럼, 목이 메였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아니야.”유건이 힘겹게 손을 들어, 시연의 뺨을 쓸었다.그 손끝이 뜨겁고 거칠었다.“우리 둘 다 피해자야. 그러니까... 이젠 자신을 탓하지 말자.”“네...”시연은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손을 놓지 않고, 그의 손을 더 꼭 잡았다.“조이를 위해서라도... 제발 버텨줘요. 다신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알겠죠?”유건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 아직 안 끝났어. 조이한테... 가야 해.”그리고 눈빛이 불길처럼 번졌다.‘그래, 아직은 아니다.’‘숨이 붙어 있는 한, 난 돌아간다.’‘조이를, 내 딸을 직접 안을 때까지.’지금껏 ‘남의 아이’라 여겼던 조이가, 사실은 자기 피와 살이었다.그 생각만으로도 유건의 가슴 한가운데서 다시 뜨거운 무언가가 살아났다.“유건 씨.”시연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조금만 기대세요. 벽에 기대면 편할 거예요.”그녀가 유건의 어깨를 받쳐 세우자 유건이 미소를 지었다.“어디 가게?”“나가볼게요. 혹시... 나갈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조심해.”“알아요.”시연은 손끝으로 벽을 더듬으며 천천히 걸었다.어둠이 짙어, 손끝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습기와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무슨 방법이든 찾아야 해.’‘유건 씨...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보여.’끼이익.문이 천천히 열리며 차가운 빛 한 줄기가 어둠을 갈랐다.시연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빛의
더 보기

제1418화

시연은 숨을 고르며 유건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일어나요, 유건 씨... 조금만 더 힘내요.”“응...”유건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상처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듯, 중심이 자꾸 기울었다.시연이 그를 꽉 붙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무너졌을지도 모른다.유건이 겨우 몸을 세우며 낮게 물었다.“이유가 뭐야. 우릴 그냥 보내겠다는 게... 무슨 꿍꿍이야?”승하가 피식 웃었다.“별거 아냐.”그 미소는 어딘가 위험하게 비틀려 있었다.“그냥 궁금해서 그래. 사람들은 늘 말하잖아. 사람의 마음, 양심, 그런 거. 근데 난 알고 싶었어. 세상에 진짜 그런 게 있긴 한 건지.”“무슨 소리야?”유건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혹시 네 부모가 한 짓을 합리화하려는 건 아니지?”승하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아니, 그건 이미 끝난 일이야. 난 그냥 궁금할 뿐이야.”목소리는 한결 담담했다.“세상 모든 건 변하잖아. 계절도, 이름도, 사람의 얼굴도. 그런데 감정만은 영원하다고? 그건 말이 안 되잖아.”승하가 천천히 유건과 시연을 번갈아 가리켰다.“예를 들면 너희 둘. 정말 변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어?”“뭐?”시연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유건도 고개를 저었다.‘이 자식,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이젠 감정 시험까지 하겠다는 거야?”유건의 목소리가 차갑게 떨어졌다.“네가 뭔데 우리를 재단해?”“하하.”승하가 어깨를 으쓱였다.“아니면 말고. 그냥 물어봤을 뿐이니까.”“무시해요.”시연이 짧게 말했다.“우리 나가요, 유건 씨.”그녀는 유건의 팔을 더 단단히 감싸 쥐었다.“정민환 씨는?”시연이 걸음을 떼기 전 물었다.“그 사람... 당신이 어떻게 했어?”승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정민환? 아... 그 덩치 큰 놈? 그 사람은 도망쳤어. 내 놈들이 못 잡았거든.”“정말?”시연의 눈이 번쩍였다.‘그럼 됐어... 민환 씨가 살아 있다면, 레오에게 연락할 수 있을
더 보기

제1419화

“왜 그래요?”시연이 유건의 표정을 눈치챘다.유건의 시선이 어딘가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돌아왔다.그는 낮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고승하, 병이 있는 것 같아.”“병이요?”시연의 눈이 커졌다.“유건 씨도 모르는 병이요?”처음 봤을 때부터 시연은 승하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걸 봤다.그 창백한 얼굴, 힘없이 말라 있는 손가락들.누가 봐도 오랜 병을 앓는 사람의 모습이었다.“응.”유건이 고개를 저었다.그의 기억 속 승하는 건강한 소년이었다.‘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하지만, 유건에게 고장민 일가는 기억하기도 싫은 이름이었다.그 집안에 무슨 일이 있든, 유건은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그리고 처음엔 승하가 휠체어를 타는 걸 보고 다리 문제인 줄 알았다.하지만 최근에 그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는 걸 보며 단순히 몸이 약해진 거라고 생각했다.“몰라도 돼요.”시연은 담담하게 말했다.“그 사람한테 더 이상 신경 쓸 이유 없잖아요. 우리 그냥 가요.”“그래.”유건이 짧게 대답했다.그러나 배에서 내리자마자 유건의 몸은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이어서 피부가 창백해지고,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유건이 이렇게 버티고 선 건... 시연이 그에게 해준 말 덕분이었다.그 한마디가 유건의 마음을 붙잡아 둔 마지막 힘이었다.하지만, 그 ‘약효’라는 오래가지 않았다.시연은 유건을 부축하며 점점 무거워지는 그의 몸을 느꼈다.그 무게가 어깨에 쏟아질수록 그녀의 다리도 점점 힘을 잃어갔다.‘괜찮아... 아직 괜찮아...’시연은 이를 악물었다.“시연...”유건이 낮게 그녀를 부르자, 거친 숨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젠... 내려놔. 네가 쓰러지겠어.”“안 돼요.”시연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아직 괜찮아요.”“시연.”유건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이러다간 나 때문에 너까지 위험해져. 날 두고 가. 레오를 먼저 찾아.”“닥쳐요!”시연이 울먹이며 그를 끊어냈다.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숨을 몰아쉬며 그를 노려봤다
더 보기

제1420화

시연의 마음은 불이 붙은 듯 조급했다. 머리로는 침착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입에서 터져 나온 말은 결국 원망이었다.“레오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이렇게 오래됐는데, 아직도 우리를 못 찾은 거예요?”레오라면, 앤더슨 가문이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들었다.그런데 왜 아직...“시연.”유건이 힘없이 손을 들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 손끝의 온기는 아직 남아 있었지만, 미약했다.“조금만... 기다리자.”시연은 입술을 깨물었다.‘기다리라니... 이 사람, 지금 이대로 두면...’유건의 체온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숨소리는 얕고 빠르게 흔들렸다.“일어나요.”시연이 다시 몸을 숙였다.그러나 유건은 이미 스스로 일어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그녀가 팔을 걸어 들어 올리려 했지만, 남자의 몸은 축 늘어진 채로 미동도 없었다.“유건 씨! 일어나요, 제발!”유건은 목이 타들어 가듯 쉰 목소리로 말했다.“너... 먼저 가.”“안 돼요. 그런 말 하지 마요.”시연의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조이 생각해요. 당신이 지금 쓰러지면, 조이는... 조이는 어떡해요.”유건의 시선이 희미하게 흔들렸다.시연은 울음을 삼키며 결심한 듯 말했다.“일어나지 못하겠으면... 내가 업을게요.”“뭐?”유건이 힘겹게 눈을 떴다.“안 돼. 그건...”“할 수 있어요.”시연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고, 눈물로 젖은 얼굴 위로 결기가 섞인 미소가 번졌다.“내가 끌고라도 같이 가요.”그녀는 말 그대로 몸을 돌려 무릎을 꿇고 앉았다.그리고 유건의 팔을 잡아 어깨 위로 걸었다.“자요, 이렇게 해요. 천천히.”“시연... 안 돼.”유건의 낮은 신음이 터졌고, 상처 부위가 다시 벌어지며 숨이 거칠게 섞였다.그러나 시연은 멈추지 않았다. 손끝이 떨리고 온몸이 저렸지만...‘지금 멈추면 이 사람은 끝이야.’그 생각 하나로 버텼다.“됐어요... 됐어요. 일어섰어요!”시연의 떨리는 목소리는 기쁨마저 드러냈다. 여자의 등 뒤
더 보기
이전
1
...
140141142143144
...
148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