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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391 - Chapter 1400

1480 Chapters

제1391화

부명주는 멍하니 시선을 허공에 두었다. 한참을 그러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하아...”입술이 몇 번 움직이다가, 결국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시연아, 너... 엄마랑 레오 일, 들어볼래?”그동안 부명주는 이 이야기를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딸의 시선이 너무 냉담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자신과 레오의 관계는 결코 떳떳한 게 아니었다.아무리 사정이 있어도, 시연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결국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을 터였다.“네?”시연은 놀란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무슨 말씀이시지...? 설마, 레오에게도 사정이 있었던 건가?’부명주는 씁쓸하게 웃었다.“나, 레오 편드는 거 아니다. 그 사람... 좋은 사람은 아니야.”“레오가 그때 나랑 헤어지기로 한 건 본인의 선택이었어. 근데, 그 선택을... 후회했지.”부명주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단단했다.“G시에 잠깐 왔다가 나를 봤어. 그러고는 곧장 돌아가서 예씨 가문에게 약혼 취소를 요구했지.”“약혼... 취소요?”시연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런데... 결국 결혼하셨잖아요.”“그래.”부명주는 고개를 끄덕였다.“예희주가 동의하지 않았거든. 그 여자가... 좀 더러운 수를 썼어.”그녀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너한테까지 얘기하긴 좀 그렇다. 그냥... 여자 입장에서 참 보기 안 좋은 일이었지.”부명주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시연은 그제야 짐작했다.‘유건 씨도 예전에 그런 일을 겪었잖아. 그때 나랑 조이가 생겼고...’부명주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그 일 이후에, 예희주는 태연하게 굴었어. 태도도 싹 바꾸더라. 그리고 두 달쯤 지나서... 임신 확인서 들고 레오를 찾아왔어.”“그 아이가...”시연은 인상을 찌푸렸다.“루시인가요? 아니, 날짜가 안 맞네요.”“그래, 루시는 아니야.”“그럼...”“그 임신 확인서는... 가짜였어.”부명주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예희주는 그 한 장짜리 종이로 레오를 자기 옆에 붙잡아놨지. 그게 그 둘의 시작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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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2화

“그게...”시연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엉켜버린 과거의 이야기들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시연아.”부명주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이런 얘기, 네 귀에 들어가면 안 되는 건데... 그래도 언젠간 알아야 하니까.”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말했다. “레오도, 예희주도... 둘 다 만만치 않은 사람들이야.”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 그런 종류의 인간들이었다.“그 둘은 그렇게 수십 년을 얽혀 살았어. 한 사람은 ‘딸이 있으니까 최소한의 책임은 지겠다’라면서 이혼을 고집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딸을 방패 삼아 절대 놓지 않았지.” 시연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예희주의 마음이 가장 이해되지 않았다.“예희주는... 대체 왜 그랬던 걸까요?”부명주가 피식 웃었다.“처음엔 진심이었겠지. 레오가 젊었을 땐... 여자들이 좀 휘둘릴 만했거든.”‘그건 알겠어. 지금도 진아가 그분을 ‘잘생긴 아저씨’라고 부르니까...’시연은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근데 나중엔, 사랑이 미움으로 바뀐 거야. 그리고... 그 결혼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었어. 그 뒤엔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들이 있었지.”부명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결국, 둘 다 감정이 아니라 권력을 잡기 위해 싸운 거야. 겉으론 이혼이니 책임이니 하지만, 속으론 서로를 무너뜨리려는 싸움이었어.”시연은 그 말에 눈을 감았다.‘너무 복잡해... 이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야.’“그럼... 본인은요?”시연은 조용히 입을 열며 부명주를 바라봤다.하지만 그 안에는 불안이 섞여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모르겠어.”부명주는 담담하게 말했다.“레오가 십몇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걸... 내가 뭘 어떻게 하겠니.”그 말은 체념 같았지만, 목소리는 의외로 단단했다.“이젠 나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 레오한테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이젠 바라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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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3화

“맞다.”시연이 문득 떠올린 듯 말했다.“이번에 유건 씨가 CA국에 온 이유요... 고장민이랑 심화연이 할아버지의 유골함을 훔쳐 갔기 때문이에요.”“뭐라고?”부명주가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세상에... 인간이냐 그게! 그런 짓을 하다니!”언니의 남편을 빼앗은 여자.그리고 아들의 인생을 망친 아버지가 자기 부친의 유골함을 이용하고 있다니.부명주는 치를 떨며 시연의 손을 꼭 잡았다.“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이어서 눈에도 분노와 안쓰러움이 동시에 비쳤다.“그랬구나...”레오가 낮게 중얼거렸다. 표정이 굳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 말해야 할 것 같았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왜요?”시연이 눈을 들어 레오를 바라봤다.“아까 심화연... 그 사람 얘기했잖아요. 유건 씨 일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예요?”“그건...”레오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그런 표정을 본 시연은 직감적으로 느꼈다.“설마...”숨이 막히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심화연이... 피해자예요?”“그래...”레오가 깊게 찌푸린 이마를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순간, 시연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손끝까지 차가워지고, 숨이 거칠게 엉켰다.“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말을 망설였던 이유가 그거였구나.’시연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숨을 내쉴수록, 현실이 더 잔혹하게 다가왔다.“시연.”레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말한 정황으로 보면... 아마 고 대표가 정말로...”“안 돼요!”시연이 소리를 질렀다.그 말을 단칼에 끊으며, 눈빛이 붉게 달아올랐다.“그럴 리 없어요! 유건 씨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시연아, 됐어, 됐어.”부명주가 재빨리 시연을 끌어안았다.그녀는 흘끗 레오를 노려보며 말했다.“당장 입 다물어. 지금 그런 말이 무슨 도움이 돼?”“미안하다.”레오는 그제야 후회한 듯 고개를 숙였다.“내가 잘못 말했다. 괜히 불안하게 했네.”시연은 눈을 감았다.‘둘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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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4화

“시연은 어때?”레오가 테라스에서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 전화 통화하고 있던 모양이었다.“지금은 그럭저럭 괜찮아.”부명주가 화실 쪽을 가리켰다가 레오의 얼굴빛을 보더니 말했다.“표정이 왜 그래?”그녀는 레오가 쥔 핸드폰을 흘깃 보고 관자놀이를 씰룩였다.“설마 또 안 좋은 소식이야?”“응, 맞아.”부명주가 이마를 짚었다.“이번엔 또 뭐야? 고 대표는 찾았어?”“그건 아니고... 그거보다, 좀 더 골치 아파.”이 끔찍한 소식을 시연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레오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방금까지만 해도 단지 추측이었다.유건의 감정이 폭발해서, 그만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는...‘그걸 시연이 어떻게 받아들여.’하지만 이제, 굳이 레오가 말하지 않아도 시연은 이미 알고 있었다.진아에게서 걸려 온 국제 전화 때문이었다.핸드폰이 울리자 시연은 케빈의 손을 놓고 전화받았다.“여보세요, 진아?”[시연아...]진아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쉽게 말을 잇지는 못했다.이틀 내내, 시연은 이런 목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다.‘또 무슨 일이지...?’심장이 조금씩 내려앉았다.“그냥 말해. 안 좋은 일이야?”[그게... 그게 말이지...]진아가 더듬거리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그... 고승하 말이야. 고승하가 G시에 왔어. 그, 그리고... GP그룹에 들어갔대!]시연이 순간 굳었다.‘결국 이렇게 이어지는 거야.’‘유골함이 사라지고, 유건 씨가 떠나고, 사고가 나고...’‘이젠 고승하가 GP그룹을 장악했네.’[시연아, 미안해...]진아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고승하가 GP그룹의 이사가 됐어. 고유건이 없으니까, 이제 고씨 가문의 첫 번째 후계자가 된 거야.]아무리 주지한이 있고, 부지하랑 다른 친구들이 도와줘도, 명분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알아.”시연은 짧게 대답했다. 모든 나쁜 일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이제 더 나빠질 일도 없겠지.’이상할 만큼 마음이 차분해졌다.“나 먼저 끊을게.”전화를 끊은 시연은 핸드폰을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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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5화

깊은 밤, 마침내 소식이 들어왔다.레오의 지시 덕에 부하들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보고를 올렸다.“오크 지역?”“예, 그렇습니다.”부하가 고개를 숙였다.“그 근처에서 목격됐습니다. 그런데 그 고 대표님이라는 분이... 워낙 대단하신 분이라, 순식간에 저희 사람들을 따돌려버렸습니다.”“지금도 그 근처에 있어?”“아마 있을 겁니다. 너무 늦을까 봐 우선 보고부터 드리러 왔습니다.”“그래.”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유건과 고장민 일가의 얽힌 관계가 머릿속을 스쳤다.“이 일, 절대 밖으로 새지 않게 해. 제임스 경무관 쪽에도 알리지 말고.”“예, 알겠습니다.”부하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저희 말고도, 누군가 고 대표님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뭐?”레오가 눈썹을 치켜세웠다.“누군데?”“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부하가 고개를 저었다.“상대가 워낙 조심해서요. 눈치만 챘지, 정체는 파악 못 했습니다.”‘귀찮은 놈들이 끼어드는 건 아니겠지.’레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낮게 말했다.“좋아. 조심하고, 속도 좀 내. 반드시 데려와야 해. 최대한 빨리! 그리고 잊지 마. 아가씨 이름을 꼭 전해.”“명심하겠습니다. 아가씨 이름만 들으면 고 대표님도 바로 따라올 겁니다.”“가 봐.”부하가 서재 문을 나서자마자, 복도 끝에 누군가 서 있는 게 보였다.“아가씨.”시연이었다.그는 잠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아가씨,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부하가 발걸음을 옮기고 나서야 레오가 서재에서 나왔다.시연은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시연,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 해?”레오가 나직이 물었다.시연은 시차 때문에 낮에는 거의 버티다시피 깨어 있었고, 지금쯤이면 깊이 잠들 때였다.하지만 눈빛이 이미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레오는 짐작했다.‘들었구나.’“고 대표가 오크 지역에 나타났대. 아직 그 근처에 있는 것 같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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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6화

“시연아.”부명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레오가 이미 사람들 보내서 찾고 있잖아. 너까지 가 봤자 도울 수 있는 일도 없어.”“알아요.”시연이 간절히 고개를 숙였다.“그래도... 그냥 한번 가보고 싶어요. 제발요, 부탁드릴게요.”부모는 아이를 향한 미안한 마음을 평생이고 느끼는 법이다.그래서 레오와 부명주는 시연의 부탁 앞에서는 늘 한없이 약해졌다.거절의 말은 전혀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좋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레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같이 가주마.”“레오!”부명주가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괜찮아. 걱정하지 마.”레오가 부드럽게 다독였다.“내가 지킬 거야. 시연한텐 손끝 하나 안 닿게 할 테니까.”게다가 레오가 밖으로 나간다는 건 혼자가 아니라는 뜻이었다.경호 인력만 해도 몇십 명은 붙는다.그 정도면 시연을 지키기에 충분했다.“그럼...”부명주가 잠시 망설이다가, 시연의 눈빛을 보고 결국 숨을 내쉬었다.“그래, 좋아.”그리고 다시 당부했다.“시연, 레오 말 잘 들어야 해. 절대 혼자 움직이지 말고.”이곳에서 시연의 존재는 이미 위험 그 자체였다.앤더슨 가문, 예씨 가문...그들은 모두 시연을 주시하고 있었다.‘시연이 이곳에 왔다는 걸 알면, 분명 상속 문제로 왔다고 의심하겠지.’“알겠어요.”시연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식사를 마친 뒤, 레오와 시연은 바로 출발 준비를 했다.“일찍 와야 해.”부명주가 문 앞까지 나와 두 사람을 배웅했다.“요즘 날도 춥고, 해도 빨리 져. 너무 늦게까지 있지 말고.”그녀는 시연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조용히 말했다.“돌아오면, 내가 만둣국 끓여줄게.”“네... 좋아요.”시연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는 올랐지만, 그 안에 힘이 없었다.“휴...”두 사람의 차가 멀어져 가는 걸 보며, 부명주는 손을 모았다.‘제발... 고 대표도 같이 돌아올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을 텐데...’...오크 지역.운전기사가 차를 몰아 이미 큰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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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7화

시연은 확신했다.‘틀리지 않았어. 분명 유건 씨야!’그 믿음 하나로, 머릿속은 이미 하얘졌다.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로지 앞으로... 그 사람에게로 달렸다.‘놓치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몰라.’“뭐야, 저쪽으로 가는데?”레오가 얼굴을 굳혔다.시연이 달려가는 방향은 메터지강 쪽이었다.“빨리, 아가씨 막아!”목소리에 긴박함이 실렸다.‘저러다 강물에 빠지면... 이런 밤중에는 찾기도 힘들다고!’“예!”경호원들이 동시에 움직였다.“아가씨!”하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한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위급한 순간, 몸이 얼마나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는지를.그 순간의 시연에게 세상은 단 하나였다.‘앞으로, 더 빨리!’그리고 시연의 몸이 공중으로 솟았다.순간, 공기가 귀를 때렸다.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눈앞이 하얘지고, 곧이어 거센 물소리가 귀를 덮쳤다.“시연!”“아가씨!”레오의 고함이 터졌다.“멍하니 서 있지 말고, 당장 뛰어!”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경호원들이 이미 몸을 던졌다.어둠 속, 차가운 강물 위로 사람들의 몸이 하나둘 떨어졌다.물보라가 터지고, 각기 다른 머리색과 피부색이 밤빛 속에서 번쩍였다.“이런 멍청한 놈들!”레오는 도착하자마자 이를 악물었다.그리고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여성 경호원의 뺨 위로 날카로운 소리가 터졌다.“아가씨 하나 제대로 못 지켜? 그렇게 연약한 애를 두 눈 뜨고 놓쳐?”“죄송합니다...”여성 경호원은 고개를 숙였고, 손끝 하나 떨지 않았다.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였다.‘아가씨... 뛰는 속도가, 정말 장난 아니었어요.’그녀의 머릿속을 스친 건, 시연이 마지막으로 내달리던 그 뒷모습이었다....강물 속.시연은 수영할 줄 알았다.하지만 강물은 너무 차가웠다.얼음장 같은 물이 몸을 꽁꽁 조여 왔다.“아...”입을 여는 순간, 차가운 물이 그대로 폐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윽...”몸이 저절로 뒤틀렸다.숨을 쉬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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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8화

시연이 아플까 봐, 유건은 손에 힘을 주지 못했다.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시연은 깨어날 기미가 없었다.‘저혈당인가...?’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강물 속에서 몸을 그렇게 썼으니, 체력 소모가 클 수밖에 없었다.주위를 둘러봤지만, 이곳엔 사탕 하나 없었다.유건은 부엌으로 가서 찬장을 뒤졌다.흰 설탕이 담긴 유리병을 찾아내어 숟가락으로 한 스푼 떠냈다.그는 한 손으로 시연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 설탕을 입안에 넣었다.그러나 시연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이러다 감기 걸리겠는데... 옷도 다 젖었잖아.’유건은 결심하듯 시선을 떨구었다. 조심스레 그녀를 안아 들어 욕실로 향했다.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시연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두 번째 단추에 손이 닿았을 때, 시연의 이마가 미세하게 찌푸려졌다.‘깨어나는 건가?’유건은 즉시 손을 거두었다.잠시 후, 시연의 눈꺼풀이 천천히 떨리더니, 흐릿했던 눈동자가 서서히 초점을 찾았다.“유건 씨!”그녀가 갑자기 손을 뻗어 유건의 팔을 꽉 잡았다.“유건 씨, 진짜 유건 씨 맞죠?”유건은 잠시 말문이 막혔고,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다.“그래, 나야.”그 순간, 시연의 눈가가 붉어졌다. 눈물이 턱 밑으로 한 줄기 흘러내렸다.“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유건 씨를 몰라볼 리가 없잖아요.”그녀는 울면서 웃었다.“그때는 뒷모습밖에 안 보였는데, 그래도 알겠더라고요... 그게 유건 씨라는 걸.”유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이 상황을 반가워해야 할지. 마음 아파해야 할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시연아.”유건은 조용히 손을 뻗어 시연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떼어냈다.“지금은 몸부터 녹여야 해. 온몸이 젖었잖아. 씻고 따뜻하게 해야 해.”유건의 말대로였다. 메터지강의 물은 한겨울 칼바람처럼 차가웠다.남자인 자신조차 버티기 힘든 온도였다.유건은 옆에 있던 수건을 들어 시연의 손에 쥐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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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9화

유건이 허리를 굽혀 식탁 위에 있던 빵 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입에 물고 천천히 씹으며 말했다.“왔던 데로 돌아가.”그 한마디가, 칼날처럼 심장에 박혔다.‘그래... 결국 이렇게 말하겠지.’시연은 눈가가 뜨겁게 시려 왔지만 애써 참았다.그리고 다시 물었다.“그럼... 유건 씨는요? 이렇게 숨어서 지낼 생각이에요? 지금 수배 중인 거 몰라요?”유건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에게로 향했다. 검은 눈동자 속에 묘한 그림자가 일었다.“알지. 내가 수배 중인 거, 너도 알고 있잖아.”그는 빵을 다시 한입 베어 물었다.“그걸 알면서 왜 온 거야? 나처럼 도망자 신세가 되고 싶었던 거야?”“유건 씨...”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둘 사이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갔다.민환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형님, 형수님... 그만하세요. 형님, 형수님은 형님을 걱정해서 오신 거잖아요. 형수님, 형님도 요즘 너무 예민하셔서 그래요.”유건은 말없이 숨을 고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다시 말하지만, 옷 마르면 바로 나가. 아니면... 내 옷 입고 지금 나가든가.”‘또, 가래.’시연의 속이 싸늘하게 내려앉았다.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손에 들고 있던 빵과 반쯤 남은 생강차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좋아요. 그럼 지금 나갈게요.”뒤돌아서는 순간, 유건의 시선이 그녀의 발끝에 닿았다.맨발이었다.“시연, 돌아와.”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왜요?”시연이 돌아섰다.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나보고 나가라면서요. 이제 와서 왜요?”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그러고는 한 걸음, 두 걸음...유건에게 다가가더니, 갑자기 손을 들었다.“내가 왜 왔는지 몰라요? 유건 씨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요, 이 바보 같은 사람아!”여자의 주먹이 유건의 가슴팍을 툭툭 내리쳤다. 여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유건은 그 손을 잡았다. 시연의 손목 위에 자신의 손을 얹은 채 눈을 내리깔았다.“양말 신어. 맨발로 나가면 감기 걸려.”“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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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0화

“그러게요.”시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고장민 일가가 고씨 가문의 자리를 되찾고 싶다고 해도, 심화연까지 희생시킬 만큼 미쳐 있진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그건 그냥 악랄한 수준이 아니잖아.’‘그건...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지.’“유건 씨.”시연이 유건의 손을 꼭 잡았다.“우리 같이 가요. 이렇게 숨어 있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요. 유건 씨는 죄 없는 사람이에요. 경찰이 오해할 리 없잖아요.”시연의 눈빛은 간절했고, 믿음이 섞여 있었다.게다가 레오도 있었다.그가 움직이면 경찰도 함부로 할 수 없을 터였다.하지만 유건은 시연만큼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그는 잠시 민환을 흘깃 보고 나서, 낮게 말했다.“아까 기환 얘기했었지?”“네. 맞아요.”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맞다, 그걸 깜빡했네. 기환 씨는 왜 안 보이지? 같이 있었던 거 아니야?’“기환 씨는요? 밖에 나갔어요?”“아니.”유건이 고개를 저었다. 표정이 단단히 굳어 있었다.“그날, 우리가 정신을 차렸을 땐... 기환이 없었어.”“뭐라고요?”시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숨이 턱 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기환 씨가... 사라졌다고?’그녀는 비록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말 한마디로 충분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기환 씨는 그냥 없어진 게 아니야.’‘고장민 쪽에서... 그 사람을 이용한 거야.’“그 사람들이...”시연의 입술이 바짝 말랐고, 손끝이 얼음처럼 식었다.“기환 씨로 유건 씨를 협박하는 거예요?”“그래.”유건이 짧게, 하지만 확실히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모든 게 맞춰졌다.시연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그래서 도망친 거구나.’‘붙잡히면, 기환 씨 때문이라도 자백해야 하니까...’‘그래서 숨어 있었던 거야.’이제야 그녀는 이해됐다.유건이 왜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왜 위험을 무릅쓰고도 경찰과 거리를 두는지...민환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물론 저희도 계속 찾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날 무슨 일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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