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도 의사지만, 이런 일이 자기에게 닥치면, 침착하기가 쉽지 않았다.다행히 시연이 돌아왔다.진아도 의지할 사람이 생겼고, 판단을 함께해줄 사람이 생겼다.지금 G시는 한낮이지만, 시연의 생체시계는 아직 CA국에 머물러 있었다.시차 적응제를 먹은 시연은 진아에게 떠밀리다시피 위층으로 올라가 잠들었다.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고, 이렇게 포근한 집 안에서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예전에 공부하던 시절 같았다.하지만 시연과 달리 진아는 조금 자고 금방 눈이 떠졌다.가만히 걸음을 죽이며 아래층으로 내려온 진아는 주방에서 뜨거운 코코아를 한 잔 끓였다.그리고 무얼 할지 몰라, TV를 켜고 아무 예능이나 틀어놓았다.예능을 보며 피식피식 웃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시연이 깰까 봐 진아는 허둥지둥 뛰어나가 문을 열었다.“누구...?”문이 열리자, 눈발을 뒤집어쓴 지하가 서 있었다.“진아.”진아는 순간 멈칫하더니, 본능적으로 위층을 한번 올려다봤다.“이렇게 일찍 왔어?”오늘 진아와 지하는 약속이 있었다.이혼 이야기를 정리하려면, 이혼 협의서를 작성할 부분도 있고, 이러저러한 내용을 조율해야 했다.하지만 지금 진아는 부모님 집에서 지내고 있어서 그쪽에서 이야기하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마침 시연 집에 오기로 한 날이어서 아예 여기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진아는 몸을 조금 옆으로 비켜 지하가 들어오도록 했다.“들어와. 안에서 얘기하자.”“응.”지하는 거실로 들어와 외투를 벗으려던 참이었다.“줘.”진아는 수건을 들고 지하에게 다가갔다.“내가 걸어둘게. 눈 좀 털어. 집 안 따뜻해서 이따가 녹으면 다 옷에 스며들어.”“응.”지하는 아무 말 없이 외투를 건넸다.진아는 외투를 걸고 수건으로 눈을 털어내며 지하를 흘끗 쳐다봤다.‘부지하, 빈손이네?’“이혼 협의서... 안 가져왔어?”“안 가져왔어.”지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네가 뭘 원하는지 먼저 말해. 대략적인 생각은 알고 있어야 하잖아.”“아.”진아는 외투의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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