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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Kabanata 1491 - Kabanata 1500

1572 Kabanata

제1491화

“뭐...?”시연의 머릿속이 순간 ‘쾅’ 하고 울렸다.‘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하지만 시연은 곧바로 깨달았다.이건 진아 머릿속에 있는 그 종양 때문이라는 걸.시연의 눈 끝이 붉어졌다. 놀람보다 걱정과 아픔이 먼저 밀려왔다.곧 정신을 다잡은 시연이 진아의 손을 꼭 잡았다.“진아, 나야. 시연이.”“시연...?”진아는 시연을 뚫어지게 바라봤다.시연의 말을 믿어야 할지 가늠하는 눈이었다.“응, 맞아.”시연은 성급하게 굴지 않으려 애썼다.“잘 봐봐. 나 시연이야. 여긴 내 집이고... 너... 이틀째 내 집에 있었어. 진아, 나 알아보겠어?”진아가 움찔하며 갑자기 눈을 꼭 감았다.“괜찮아, 괜찮아.”시연은 불안과 조바심을 숨기듯 진아의 손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한참 후, 진아가 눈을 떴다.시선은 다시 또렷해졌지만, 얼굴빛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시연.”“어.”그 한마디가, 시연을 울릴 뻔했다. 이를 꽉 물고 겨우 참았다.“됐어... 괜찮아졌네.”“응.”어느새 정신을 차린 진아가, 오히려 시연을 달래듯 말했다.“놀랐지? 겁먹지 마.”“응...?”시연이 살짝 멍해졌다.‘진아가 이렇게 침착하다고...?’“두 번째야.”진아가 씩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첫 번째는... 부지하를 못 알아봤을 때. 그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낌이 왔어.”그리고 그 뒤로, 머릿속에 뭔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였다.시연은 그 말을 처음 들었다. 충격 때문에 바로 대답조차 나오지 않았다.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괜히 비관적인 얘기를 꺼내면, 상황만 더 무거워질 뿐이었다.이미 증상이 나타났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병의 진행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어떤 사람은 오래 버티지만, 어떤 사람은 발병과 동시에 생명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기도 한다.‘진아는... 어느 쪽일까?’시연은 화제를 돌렸다.“좀 괜찮아졌지? 괜찮으면 내려와. 내가 아침 만들었어.”“네가 만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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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2화

진아는 그제야 알아차렸다.지하가 빈손으로 온 게 아니었다.큰 봉지부터 작은 상자까지, 대형과 소형 짐들을 한가득 들고 온 것이었다.“들어가자.”지하가 재촉했다.“현관에서부터 바람 들어와.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어...”진아는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팔을 살짝 감싸안고 서서, 지하가 몇 번이나 들락날락하며 짐들을 옮기는 걸 묵묵히 지켜봤다.한참 만에야 모든 짐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그러자 지하가 진아를 한번 훑어보며 말했다.“가위나 커터 칼 있어?”“있어.”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지러 가려 했다.“움직이지 마. 당신이 움직일 필요 없어.”지하가 손을 들어서 막았다.“어디에 있는지만 말해. 내가 가져올게.”진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현관 쪽. 신발장 문 열면, 펀칭 보드에 걸려 있어.”지하는 마치 진아를 유리로 만든 사람 취급했다.한 걸음만 잘못 움직여도 다칠까 봐 불안한 듯한 태도였다.“알겠어.”지하는 말한 대로 가서 커터 칼을 꺼냈고, 포장된 상자들을 하나씩 뜯기 시작했다.그 안에 든 물건들을 종류별로 바닥에 차곡차곡 늘어놓았다.“이건 당신 영양제들. 이건 간식들... 다 확인해 봤어. 임신부가 먹어도 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먹어.”“그리고 이건, 당신 요즘 토하잖아? 입덧 완화되게 도와주는 것들이고...”“이건 약. 아기한테 좋은 것들.”바닥에는 어느새 물건들이 잔뜩 쌓였다.진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다가가서 정리하려 했다.“움직이지 말라니까.”지하가 부드럽지만 강하게 눈을 흘겼다.“당신한테 정리하라고 한 적 없어. 내가 할게. 어디에 두면 되는지 모를 때는 당신한테 물어볼게.” 지하가 너무 완고해서, 진아도 결국 체념하고 그대로 지켜보기로 했다.바쁘게 오가며 제자리를 찾아 정리하고 있는 지하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진아의 마음을 건드렸다.‘만약 우리... 사랑해서 결혼했더라면, 만약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우린 정말 행복한 부부였겠지?’‘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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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3화

오늘은 주말이었다.점심때, 시연과 진아는 진아 부모님 댁을 찾았다.점심도 진아 부모님 댁에서 먹기로 했다.오늘은 만두를 빚는 날이었다.최근 요리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른 시연은 임병지를 따라다니며 손을 보탰고,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배웠다.임병지는 조금 민망한 듯 말했다.“아니, 시연아. 너까지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면 어쩌냐. 진아는 뭐하냐, 와서 같이 도와야지.”“아버님, 진아는 제게 기회를 주는 거예요.”시연이 웃으며 말했다.“진아는 이런 거 다 할 줄 아는데요? 제가 스승님 자리 뺏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하하하.”임병지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더 열정을 담아 가르쳤다.“넌 머리도 좋고 센스도 있으니까, 분명 진아보다 잘할 거다.”뜨거운 김이 공중에 피어오르는 부엌에서, 진아는 거실에서 조이와 놀아주고 있었다.시연이 D시에 다녀오며 사 온 장난감들이 잔뜩 있었다. 일부는 레오가 사준 것이었고, 대부분은 외삼촌 케빈이 보내준 것들이었다.조이는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케빈을 ‘외삼촌’으로 받아들여 버렸다.어른들은 아이가 어리면 상처받기 쉽다고 걱정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의 적응력이 훨씬 강한 경우가 많다.카펫에는 장난감이 흩어져 있었다.진아와 조이는 인형의 머리를 빗겨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화장까지 해주며 놀고 있었다.“이모, 예뻐요?”조이가 한껏 꾸며진 인형을 들어 올렸다.“응, 예쁘네.”진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이모.”조이가 진아의 입술을 가리켰다.“립스틱 예뻐요.”“그래?”진아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조이, 이런 거 좋아해? 그럼 이모가 조이도 발라줄까?”“네!!”조이는 기분이 좋아 얼굴을 쳐들고, 입을 쭉 내밀었다.“우리 조이 아주 예쁘게 해줄게.”진아는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내 뚜껑을 돌려 열었다.그리고 조이의 작은 입술에 정성스럽게 색을 채웠다.“다 됐다.”“와!!”조이가 두 손을 동글게 모으며 탄성을 질렀다.“이모, 저도 보여주세요!”“잠깐.”진아는 조이의 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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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4화

‘모녀 화장...?’채숙희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진아를 가리켰다.“조이는 네가 낳은 애도 아닌데, 무슨 모녀 화장이니?”임병지와 눈을 마주치더니 곧이어 말을 보탰다.“진짜 모녀 화장하고 싶으면, 네가 하나 낳으면 되지.”“맞아. 젊을 때 낳아야 아이도 건강하고, 위험도 적어. 진아, 너 요즘 일도 안 나가잖아. 시간 많으니까, 그냥 몸조리하면서 애 가지면 딱 맞겠다.”진아의 동작이 순간 멈췄고,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대답했다.“그건...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요.”“아니, 부 서방이 왜 싫어하겠어?”채숙희가 눈을 굴렸다.“부 서방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고, 너만 아니었으면 벌써 애 유치원 보낼 나이야.”임병지도 끄덕였다.“그래, 맞지. 부 서방은 사람도 괜찮고 능력도 있고... 너희는 애 낳는 게 부담도 아닐 걸?”“조이 좀 봐라. 얼마나 예뻐? 너랑 부 서방 사이에서 나온 딸이면... 얼마나 예쁠지 상상도 안 간다.”부모님은 왼쪽에서 한마디, 오른쪽에서 한마디...진아는 고개를 들 용기가 없었다.그때 시연이 나섰다.“아버님, 어머님.”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렸다.“아이는 원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부부 인연도 있어야 하고... 너무 조급하면 오히려 더 어렵다고 하니까요. 진아한텐 부담 주지 않으시면 좋겠어요.”“그래... 그것도 맞네.”채숙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이건 조급하면 안 돼. 조급하면 더 안 생겨.”그러면서 옆의 남편을 슬쩍 노려봤다.“앞으로 애 재촉하지 마. 알겠지?”“어어.”임병지는 아내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사람이었다.“알았어. 인연이면 오는 거지.”부모님의 한껏 긴장된 태도에, 진아는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부모님께 말할 수 없었다.자신의 ‘인연’은 이미 뱃속에서 자라는 중이라는 걸.하지만... 그 인연은 너무나 짧았다....오후에 시연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였다.멀리서부터 보였다.대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시연도, 진아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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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5화

시연이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시연은 은범이랑 약속이 있었다.마침, 시연의 핸드폰이 울렸다.시연은 핸드폰을 살짝 들어 보여주며 말했다.“저 데리러 온 사람이에요. 부 대표님, 편하게 계세요. 저는 먼저 갈게요.”“그래요, 조심히 가요.”지하와 시연이 잠깐 인사를 나누는 동안, 진아는 소파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지하가 다가와 진아 옆에 앉았다.손등의 온도를 확인하고, 차갑지 않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진아의 손을 잡았다.“이 시간에 자면, 밤에 잠 못 자서 더 불편해져.”“응...”진아는 낮게 소리를 내며 하품했다.“자진 않았어. 그냥... 졸려.”진아의 말에, 지하의 눈빛이 환하게 빛났고, 눈동자 끝에 별빛이 도는 듯했다.“듣기로는, 임신한 사람이 쉽게 졸리다던데.”지하는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진아의 배에 손을 올렸다.“수고가 많아, 당신.”임신은 여자만 고생하고 남자는 앉아서 누리는 거라는 말이 있다.그건 사실이었다. 배려하는 남편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고생이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었다.지하는 진아를 살짝 일으켜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너무 졸리면 밥도 못 먹을까 봐, 조금이라도 정신이 들게 하려는 듯했다.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3개월 지나야 필요한 검사들 할 수 있잖아. 검사할 때... 매번 내가 같이 갈게.”진아는 지하 품에 느긋하게 기대며,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굳이 반박하지도 않고, 대꾸도 하지 않았다.지하는 또 말했다.“당신, PT라도 붙일까? 임신해도 적당히 운동해야 한다고 하던데.”진아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조금만 기다리지? 아직 3개월도 안 됐어. 위험한 시기라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아, 맞다.”지하는 금방 깨달은 듯 이마를 톡 쳤다.“내가 깜빡했네. 내가 바보지.”진아는 팔꿈치로 지하 옆구리를 톡 쳤다.“망고스틴 먹고 싶어. 당신이 까서 줘. 요리사 말고, 당신이.”“알았어.”지하가 부드럽게 웃으며 일어섰다.지하가 막 일어선 순간, 핸드폰이 울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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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6화

“그럼 오설아가 당신을 찾은 거면...”진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물었다.“왜 전화 안 받았어? 오설아, 지금 당신 필요하잖아.”지하가 진아에게 망고스틴을 먹여주던 손이 잠시 멈췄다.“당신... 나보고 설아한테 가라는 말이야?”“말은 똑바로 해.”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지하를 노려봤다.“오설아가 당신이 필요한 거지, 내가 뭐라고 했다고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야?”“그런 뜻 아니야.”지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목소리도 조금 가라앉았다.“설아가 나한테 오라고 한 건 아니야. 수술 이후로 계속 상태가 안 좋으니까... 경험 많은 한의사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어. 예전에 당신 맥 봐줬던 그 한의사, 우리 어머니랑 친한 그 사람 말이야.” “아... 그분.”진아는 금방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분이라면 방법이 있겠네. 워낙 명의잖아.”“여보...”지하는 과일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진아를 안았다.“나랑 설아는... 정말 친구야. 아니, 친구라고 하기도 뭐한... 그냥, 설아가 필요할 때 도와주는 사이야. 그것도... 안 돼?”‘안 되지. 당연히 안 되지.’진아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단칼에 잘라 내는 거였다.하지만 지하의 기대 가득한 눈을 보고, 그 말이 목구멍에서 멈췄다.‘됐어. 할 말은 이미 다 했고... 말해서 바뀔 사람도 아니고.’‘어차피 내 상황도 이렇고... 내가 이 세상에 더 오래 있을 것도 아닌데...’‘부지하, 내가 세상 떠나고 난 후에 오설아랑 잘 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부지하.”진아가 갑자기 조용히 불렀다.“내가... 정말로, 당신이 오설아랑 잘되길 바란다고 하면... 믿겠어?”지하의 표정이 굳었다.얼굴빛이 살짝 창백해졌다.대답은 없었다.그 대신...“당신, 참 대단하다. 그럼 그 ‘대단함’을 나한테도 좀 나눠주면 안 되냐? 당신은 언제쯤 나 용서하고... 집에 돌아올 건데?”시연의 집도 좋지만, 지하에게는 진아가 자기 옆에 있는 ‘그 집’이 훨씬 편했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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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7화

“그럼...”진아가 슬쩍 지하를 보며 물었다.“고 대표는? 고 대표는 도리슬한테... 관심이 있어? 받아줄 생각은 있는 거야?”“모르겠어.”지하가 고개를 저었다.“내가 물어본 적도 없고.”유건이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지하는 그런 사적인 부분을 굳이 묻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왜?”지하가 웃으며 물었다.“그렇게 따지는 거 보면... 유건이 도리슬을 받아주길 바라는 거야, 아니면 안 받아주길 바라는 거야?”지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진아가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시연 때문이라는 걸.“당신하고 시연 씨가 아무리 친해도, 시연 씨는 곧 결혼하잖아. 유건이더러 시연 씨를 기다리라고 할 수는 없잖아?”“그런 뜻 아니야.”진아가 고개를 저었다.목소리도 조금 잠겼다.“그래...”지하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세상에 안 끝나는 인연은 없어. 유건이랑 시연 씨 인연도... 여기까지인 거지.”맞는 말이었다.지금의 유건과 시연 사이엔 미련도 원망도 없었다.기대도 없고, 흔들림도 없었다.그저 아주 잔잔한 평온만이 남았다.“그리고 그런 얘기 식탁에서 하다 보면 체해.”지하가 생선 가시를 발라 진아의 그릇에 넣어주며 말했다.“얼른 먹어.”“응.”저녁을 다 먹고 나니, 어느새 8시 가까웠다.지하는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조금 더 같이 있어 줄게.”지하의 이유는 그럴듯했다.“당신 혼자 있으면 심심하잖아? 내가 오래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시연 씨 오면 나는 바로 갈게.”진아는 원래 거절하려고 했으나 지하가 덧붙였다.“내일 해명시에 가야 해서... 모레나 돼야 돌아오거든. 며칠 당신 못 보니까... 오늘만 좀 있게 해줘, 응?”‘부지하가 G시를 떠난다고?’진아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그리고... 드물게 거절하지 않았다.“그래.”지하는 눈이 번쩍 밝아지며, 바로 진아 옆에 앉았다.TV엔 요즘 인기 많은 예능이 재생되고 있었다.진아는 소파에 기대어 깔깔 웃었다.고개를 돌리니, 지하가 군밤을 까고 있었다.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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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8화

“응.”아주 오래된 일인데도, 지하는 그날을 너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그때 지하는 유강석이랑 스쿼시를 치고, 목도 말라서 음료수나 마실까 하고 호텔 1층 카페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바로 그 순간, 진아가 있었다.진아는 얼굴을 살짝 들고, 카페 메뉴판을 쳐다보고 있었다.입술을 꼬물거리며 뭐가 좋을지 중얼거리는 표정.한참을 고민해도 고르지 못하고, 귀엽게 인상을 쓰기도 했다.지하는 그걸 떠올리면서 미소를 지었다.눈빛은 환히 빛나고 있었다.“그때 당신은... 볼살이 진짜 귀여웠어. 얼굴이 통통해서... 찹쌀경단 같았지. 진짜 귀여웠어.”진아는 멍하게 듣고 있었다.이런 얘기를 지하에게서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당신... 나한테 그런 얘기 한 번도 안 했잖아.”그러다 문득 진아가 지하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때... 당신 마음속으로는 이런 생각 했던 거 아니야? ‘이 동그란 얼굴을 가진 애, 빨리 살이나 좀 빼면 좋겠다’... 뭐 이런 거.”지하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순간, 공기가 툭 끊어진 것처럼 조용해졌다.“여보...”지하가 뭔가 말하려고 했는데, 진아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창밖을 바라봤다.차량 불빛이 들어오는 걸 보고 말했다.“시연이 왔네. 이제 가.”지하는 아쉬움과 체념이 뒤섞인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군밤을 내려놓았다.그러고는 쓰레기통에 톡톡 털고는 일어섰다.“그래.”진아도 따라 일어나 지하를 현관까지 데려갔다.지하가 신발을 갈아신자, 진아는 지하의 외투를 펼쳐주며 말했다.“입어.”“응.”지하는 두 팔을 벌리며, 진아가 챙겨주는 그 순간을 묘하게 ‘즐기는’ 얼굴이었다.외투를 입혀준 뒤, 진아는 다시 발끝을 들어 지하의 옷깃과 넥타이를 반듯하게 정리해 줬다.“됐다.”내내 시선 한 번도 떼지 않던 지하는 진아의 손이 떨어지는 순간, 아주 자연스럽게 진아를 품에 끌어안았다.“여보.”“응?”지하가 진아의 귀 가까이에서 아주 낮게 말했다.“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이 동그란 얼굴의 애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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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9화

밤이었다.시연은 진아의 머리를 조심스레 닦아주고, 손끝에 헤어오일을 덜어 정성스레 발라주고 있었다.진아는 코맹맹이 소리가 아직 가시지 않은 채 얌전히 앉아 있다가 말했다.“그 사람... 모레까지 G시에 없어.”시연의 손이 잠깐 멈췄다.그리고 바로 진아의 뜻을 알아챘다.“그래.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응.”진아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시연의 손을 잡았다.“다행이야. 네가 있어서.”밤이 길어지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시연은 바로 오선화 교수에게 연락했다.오선화 교수는 아주 시원하게 대답했다.[그래, 점심에 와.]점심은 오선화 교수의 휴식 시간이었다.이건 사실상 시연에게 큰 면의를 준 셈이다.“감사합니다, 교수님.”...다음 날, G시의 날씨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비와 눈이 뒤섞여 내려, 공기마저 축축하고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출발 전, 시연은 들고 갈 큰 가방을 꼼꼼하게 다시 점검했다.“담요, 보온병에 탄 설탕물, 휴지, 체온계... 다 챙겼어.”진아는 그런 시연을 보며 웃었다.“그렇게까지 긴장할 일은 아니잖아? 그냥 작은 수술인데.”“무슨 작은 수술?”시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살짝 째려봤다.“여자한테는 절대 작은 수술 아니거든? 지금 네 상태면 거의 출산하는 거랑 비슷해. 몸조리 잘해야 돼. 절대 대충하면 안 돼.”그 말에 진아는 갑자기 오설아가 떠올랐다.‘오설아... 혹시 조리를 제대로 못 해서 그랬나?’그리고 다시 시연이 자신 때문에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모습을 바라봤다. ‘좋다.’“가자.”시연이 운전대를 잡고, 진아를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점심때, 지하는 해명시로 가기 위해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대표님, 이 서류에 사인 부탁드립니다.”“응.”지하는 비서가 건넨 서류를 꼼꼼히 살핀 뒤, 책상 위의 펜을 들어 서명하려 했지만, 잉크가 나오지 않았다.‘무슨...?’지하는 펜을 들어 두 번쯤 털었지만 여전히 잉크가 나오지 않았다.“대표님.”비서가 조심스럽게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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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0화

“대표님?”지하는 미간을 세게 문지르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찾아봐. 진아... 아니, 아니야. 지시연 씨. 시연 씨가 지금 어디 있는지.”“집에 있는지, 아니면...”시연은 지금 일을 쉬고 있었다.“아, 맞다.”지하는 문득 떠올렸다.“시연 씨 차가 있어. 시연 씨 차가 어디 있는지 확인해 봐.”“네, 도련님.”재명은 왜 이런 걸 확인하라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부호준이 있는 이상 이런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회사에서 새로 보낸 차량이 도착했을 때쯤, 재명에게서도 연락이 왔다.“대표님, 지시연 씨 차량이... 미리여성병원에 있습니다.”‘뭐라고...?’지하는 그 자리에서 머리카락이 쭈뼛 설 만큼 머리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미리여성병원? 진아... 임신했어!’‘그런데 시연 씨랑 진아가 거길 왜...?’‘설마... 아니야. 안 돼!’지하는 문을 확 열고 올라타며 소리쳤다.“출발해! 빨리!”차는 미친 듯 속도를 올리며 미리여성병원을 향해 달려갔다....병원.진아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었다.마취 때문인지 기본 체온이 조금 떨어져, 진아는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오선화 교수는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수술대 앞에 섰다.이전에 시연이 설명한 진아의 상세한 상황을 들은 오선화 교수는 생각했다. ‘병 때문에... 자신이 가진 아이를 지킬 수 없는 어머니라니. 안쓰럽고, 슬프다.’“긴장하지 마.”오선화 교수는 진아에게 차분히 말했다.“내가 할 거니까, 거의 아무 느낌도 없을 거야.”“감사합니다.”“그럼... 시작할까?”“네... 잘 부탁드립니다.”진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무영등 아래에서 부드러운 눈물이 조용히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수술실 밖.시연은 초조하게 서성이다가 결국 의자에 앉았다.오선화 교수를 믿고는 있지만, 그래도 진아를 향한 걱정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시연의 두 팔에는 진아의 패딩과 담요, 그리고 보온병에 넣은 따끈한 설탕물이 안겨 있었다.‘진아야... 제발 괜찮아야 해. 진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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